디지털교도소와 신상공개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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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살인범 등의 신상 정보를 임의로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논란이 된 ’디지털교도소’의 1기 운영자(30대 남성)가 9월 22일 경찰에 체포됐다. 2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불법적 게시물 삭제만 하겠다던 초기 입장을 바꿔 사이트 접속 차단을 결정하고 시행했다. 그러나 이틀 만에 주소를 바꿔 디지털교도소가 부활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디지털교도소는 “대한민국의 악성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하여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는 목적으로 탄생했다.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한다고도 주장했다.
디지털교도소는 성범죄, 아동학대,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이라며 100여 명의 신상을 공개했다(이 중 77명을 성범죄자로 공개). 사진과 이름, 핸드폰 번호 등 상세한 정보를 사이트와 SNS 등에 공개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법적 판결이 확정된 사람들뿐 아니라 단순한 혐의자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디지털교도소 측은 제보에만 의존해 혐의자들의 신상 정보를 공개했다. 그 결과 억울한 피해자들이 여럿 생겨나며 실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9월 3일, ‘음란물’에 지인의 얼굴을 합성하는 ‘지인 능욕’ 죄목으로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생이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착취물 구매’를 시도했다며 신상이 공개된 한 대학 교수가 경찰 조사 결과로 무고함이 밝혀졌다. 누군가가 증거를 조작해 디지털교도소에 제보한 것이었다. 또 다른 애먼 사람이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공범으로 몰려 신상이 공개됐다. 그는 단지 가해자와 이름이 같았을 뿐이다.
위험한 방식
전화번호까지 공개된 사람들은 살해 협박을 포함해,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 문자를 하루에 수백 통씩 받기도 했다. 누명을 써 느닷없이 천인공노할 흉악범으로 몰린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받았을 것인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디지털교도소 측은 자신들이 검증했다며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등 자세한 신상 정보를 온라인에 공개했다. 하지만 동명이인조차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간단한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그저 제보에만 의존했다.
위에 언급된 대학생 사망(9월 초) 전에는 흉악범죄, 특히 성범죄자들의 신상이 공개됐다는 점이 알려지며 디지털교도소에 우호적인 태도를 취한 사람들이 많았다. 당시의 몇몇 언론 보도는 이런 정서를 은근히 부추겼다.
가령 7월 7일자 〈여성신문〉의 보도 ‘성범죄자 신상 공개 사이트 디지털교도소, 누리꾼들 “오죽하면 이런 사이트 생기겠나”’는 디지털교도소 운영자 입장을 길게 소개하며 이를 응원하는 반응이 다수라는 점을 부각했다.
성범죄 사건에서 판사들이 성차별적 편견에서 보수적 판결을 내린 경우가 실제로 종종 있었다. 그러므로 성범죄 판결에 대한 여성들의 불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증거도 없이 단순 혐의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며 마녀사냥을 부추긴 디지털교도소의 방식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여성신문〉 식의 보도도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온라인 폭로로 애먼 사람이 범죄자로 몰리며 커다란 피해를 보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닐뿐더러 드물지도 않다.
사법부 등 국가 권력 강화가 해결책?
결백한 사람들이 흉악범죄자로 몰리며 돌이키기 힘든 피해를 입는 일들이 발생하자 디지털교도소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졌다. 관망하던 언론들도 9월 초 이후 비판적 보도를 쏟아냈다.
그러나 디지털교도소로 인한 피해가 단지 사적인 처벌을 했기에 생긴 문제로만 취급하는 견해가 많다. 주류 언론은 디지털교도소 운영자가 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주로 문제 삼는다.(법률은 국가가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 사이트에 올라온 성범죄자 신상 정보를 해당 사이트에서만 열어 볼 수 있고 다른 곳에 이용할 수는 없게 한다.) 자유주의자들 중에서도 국가의 신상공개 제도를 비판하는 견해를 찾아보기 힘들다.
사적 처벌이 법치주의를 무너뜨린다는 주류 언론의 비판은 국가의 단속과 처벌 강화를 통해 국가의 권위를 회복하라는 주문으로 이어진다. 가령 〈경향신문〉은 9월 27일자 사설에서 “접속 차단만으로는 제2, 제3의 사이트 개설을 막는 데엔 한계가 있”으므로 “악성 범죄를 강력히 단죄하는 사법시스템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디지털교도소 같은 것이 생긴 이유를 처벌의 미흡함에서만 찾는 것은 틀렸고 위험하다. 디지털교도소가 신상을 공개한 범죄 유형인 살인, 아동학대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을 보면, 사법부가 흉악범죄에 전반적으로 관대하다는 주장도 맞지 않다. 살인은 특히 그렇고, 아동학대 처벌은 오히려 강화돼 왔다.
디지털교도소 운영자는 신상공개로 응징하는 것이 흉악범죄 예방에 가장 효과적이라고 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이런 생각은 바로 우파가 부추겨 온 것이다. 2000년대 들어 신상공개 제도가 도입되면서 신상 공개 대상 죄목과 공개 범위가 확대돼 왔다. 2009년 이후에는 살인 사건의 경우 경찰과 언론이 경쟁하듯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흔해졌다.
이는 사법부가 엄벌주의로 권위를 회복하면 디지털교도소 같은 곳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옳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오히려 엄벌주의는 범죄에 대한 ‘도덕적 공포’를 부추겨 오히려 사적 처벌 동기를 부추기고 정당화한다. 특히, 엄벌주의는 경찰 등 억압 기구들에 대한 착각과 환상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하다.
국가가 신상공개를 한다고 해서 무고한 피해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수사기관이나 사법부도 얼마든지 오판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국내외에서 적지 않다. 수많은 조작이 일어났던 정치 재판들을 논외로 하고 형사 범죄만 보더라도 그렇다.
신상공개의 역효과
세계에서 가장 강경한 형사 정책을 시행하는 미국의 경우, 1989~2017년 2월까지 유죄오판 사례 1982건이 밝혀졌다. 유죄오판 피해자들은 면죄를 받을 때까지 평균 8.8년의 시간을 교도소에서 복역했으며, 이 피해자들의 3분의 2는 살인이나 성범죄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1 사형제 반대운동이 제시한 유죄오판 사례들도 널리 알려져 있다.
범죄 유형별 오판들을 통계로 만들고 분석한 미국의 연구 같은 것이 아직까지 한국에는 없다. 하지만 수사기관이나 재판부가 엉뚱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웠던 것이 최근 몇 년 새 확인된 건만 여럿 있다. 1999년 삼례 나라슈퍼 강도사건으로 무고한 3인이 강도치사 혐의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건(2016년에야 재심으로 무죄 판결), 화성연쇄살인의 범인으로 지목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경우(진범이 잡힌 뒤에야 강압수사와 재판의 오류가 인정됨)가 대표적이다.
이렇게 오판이 밝혀지는 것은 사실 극히 드물다. 그리고 오심으로 인한 피해가 원상 회복될 수도 없다. 그래서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억울한 사람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기에 신상 공개까지 한다면 낙인 효과가 매우 커져서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나중에 무고함이 밝혀져도 낙인 효과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들의 임의적 신상공개만 문제 삼고 국가의 신상공개는 지지하는 것은 문제의 진정한 본질을 흐린다. 신상공개 제도 자체가 범죄에 대한 대중의 도덕적 공포를 자극해 디지털교도소 같은 일종의 자경단이 생겨나기 쉽게 만든다는 점이다.
신상공개 제도를 도입한 여러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 하지만 신상공개가 전면적이고 상세한 미국 같은 곳에서는 범죄와 범죄 전과자에 대한 히스테리가 특히 심하다. 미국은 성범죄 전과자들의 자세한 신상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게 인터넷에 공개하고 자세한 주소를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이런 정보를 접한 사람들은 엄청난 공포에 빠지고, 공포나 복수심에서 범죄 전력자들을 사적으로 보복하는 활동들이 급증했다.
자본주의 국가가 신상공개 제도를 도입한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을 범죄에서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신상공개로 흉악범죄가 줄어들었다는 증거는 없고, 범죄 피해자들이 국가의 보호를 더 잘 받게 된 것도 전혀 아니다.
신상공개 제도는 우파나 지배계급 자체가 범죄에 대한 두려움을 부추기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범죄의 사회적 원인을 가리고 대중을 통제하기 위한 것이다. 두려움에 빠져 무력감을 느끼는 광범한 대중에게 무장력을 독점한 국가에 의지하게끔 만들려는 것이다.
진보·좌파 다수의 도덕주의
국가의 범죄 공포 부추기기와 언론의 선정적 보도 관행을 배경으로 도덕주의도 팽배해 왔다. 디지털 교도소는 흉악 범죄에 대해 고조된 히스테리를 보여 준다. 여기에는 성범죄에 대한 도덕주의적 접근도 한몫하는 듯하다.
특히, 급진 페미니즘이 한국의 여성운동에서 지배적인 조류로 자리잡으면서 진보·좌파 진영 내에도 도덕주의가 팽배하다. 진위 파악에 신중하게 접근하지 않고 의혹만으로도 유죄를 단정하는 태도가 좌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온라인 폭로가 일어나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알지도 못하면서 동조부터 하고 보는 사람들은 너무 많다.
2000년 말~2001년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이 ‘운동권 성폭력 가해자’로 16명의 실명을 인터넷에 공개한 ‘100인위원회’ 사건 후 10년 뒤에 좌파들 사이에서 이런 태도가 크게 부활했다. ‘100인위’는 엄밀한 진상조사도 없이 제보에 의존해 실명을 공개했다. 그때 사용된 ’성폭력’ 개념은 피해 호소 여성의 불쾌함을 기준으로 하는 주관주의적인 것이었다. 이런 방식은 엄청난 혼란과 마녀사냥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2
좌파들이 급진 페미니즘의 주관주의적 개념들을 추수하면서 운동 전반에 도덕주의와, 진실은 중요치 않다는 태도가 만연해졌다. 이런 상황은 일부 개인들이 악의적 의도로 특정 개인이나 단체를 비방하는 데에 온라인 공간을 쉽게 활용하게 만든다. 한 사기꾼이 온갖 “가짜 뉴스”로 한 단체 자체를 성폭력 가해 단체로 조작해 중상모략할 수 있다. 디지털교도소 1기 운영자도 남성임이 드러났는데, 그의 진정한 동기도 의심스럽다.
성평등과 진보적 사회 변화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디지털교도소 사태를 계기로 이런 접근법의 위험성을 분명히 돌아봐야 한다.
도덕적 공포 부추기기의 위험성
국내외에서 우파들은 오래전부터 범죄에 대한 대중의 도덕적 공포를 종종 부추겨 왔다. 특히, 경제 위기로 자본주의 체제가 위기에 빠지며 지배계급에 대한 대중의 불신이 증가할 때 이런 일이 잘 일어난다. 도덕적 공포 부추기기를 통해 실업과 빈곤 증가에 대한 책임을 가리고, ‘법·질서’ 운운하며 경찰력을 강화하고 이주민 통제 강화, 파업과 시위 탄압 등에 이를 이용했다.
성범죄 문제에서도 엄벌주의로 성범죄가 줄어드는 것이 아닐뿐더러, 성차별 해소에 별 관심도 없는 국가가 통제력 강화에 성범죄 사건을 이용하기 쉽게 만든다. 개혁주의 정당이지만 좌파 정당인 변혁당의 기관지에서 올해 4월 대담을 나눈 변혁당 학생들이 신상공개를 지지한 것이 부적절한 이유다.
국가가 범죄에 대한 대중의 공포를 부추기면 무고한 피해가 생겨날 뿐 아니라 범죄의 사회적 원인은 감춰진다. 자본주의는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과 극심한 경쟁, 차별·천대를 낳는다. 이로 인해 소외가 증폭돼 인간성이 왜곡되고 뒤틀리게 만든다. 이런 체제 속에서 좌절한 개인들의 일부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다. 그런데 그 피해자들도 대부분 가난하고 열악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감옥을 늘리고 형량을 높이고 감시제도를 강화하는 등 자본주의 국가의 처벌 강화라는 방안은 범죄를 크게 감소시키지는 못하면서(사실 이런 흉악범죄가 크게 늘어나고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197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 형벌 제도 지탱에 들어가는 예산이 크게 늘었다(이 예산 증가는 미국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가파르다). 반면, 빈곤을 줄이고 주거 개선이나 복지 확충 등을 위한 예산들은 크게 늘지 않았고 심지어 줄인 경우도 많았다.
자본주의에서 국가는 부유층과 권력자들을 위한 기구이지 결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의 도구가 아니다. 국가 기구나 자경단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조건 개선과 차별 등에 맞서는 대중 자신의 투쟁이 중요하다. 이런 투쟁들이 발전해 사회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나야 개인들을 향한 각종 범죄들도 대폭 줄어들 수 있다. 결국 온갖 불평등과 불의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제거하는 것만이 범죄를 뿌리뽑는 길이다.
범죄에 대한 도덕적 공포 부추기기를 경계하며 노동계급이 대중 투쟁을 벌이는 것을 통해 사회의 진정한 진보적 변화에 대한 희망을 확산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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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연구 XII - 오판 방지를 위한 사법시스템 평가·정비방안 연구》,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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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인위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2001년 2월에 필자가 쓴 기사 “운동권 내 성폭력 가해자 명단 발표, 어떻게 볼까?”를 참고하시오. 주관주의적 성폭력 개념의 문제점은 최미진이 쓴 《성폭력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논쟁》(책갈피)에서 더 자세히 비판했다. 현재 이 책은 절판되어 개정증보판이 나올 예정이지만, 도서관 등에서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