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의 피해자와 수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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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정부가 경제 활동을 재개한다며 방역을 완화했기 때문이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에서도 가파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다.
국내에서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확산이 현실화되고 있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가 전체의 10퍼센트를 넘고, 특히 취약한 노인 환자가 늘면서 방역 당국이 위기감을 나타내고 있다. 더위 때문에 마스크 착용이 어려워지고 실내 냉방 장치가 가동되고, 공공시설이 폐쇄돼 노인들이 갈 곳을 잃으며 걱정은 한층 커지고 있다.
서울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해, 병상 수 부족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처럼 외출금지령 같은 고강도 거리두기 조처가 취해지지 않은 한국에서 등교 여부는 방역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 구실을 해 왔다. 그리고 5월 초 시작된 등교 개학은 사회 모든 부문에서 방역을 완화하는 신호 구실을 했다. 학교 발 감염 사례가 많지는 않지만, 학원, 운동시설, 교회, 집단 거주시설 등 곳곳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추적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정부가 신천지 때처럼 속죄양을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주요국들이 경제 활동 재개 신호를 보내면서 급반등하던 주가가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로 다시 고꾸라지기 시작했다. 경제 전망도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코로나19와 경제 위기는 일부 자본가들도 울상을 짓게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자동차·석유제품 등의 수출이 둔화하면서 수출 대기업 일부가 큰 손해를 보고 있다. 이런 상황만 보면 코로나19가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이들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난 6개월 동안 계급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적지 않은 기업주들이 세계적 위기 속에서도 이윤을 긁어모았다. 평범한 사람들이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안 부유층은 더욱 부유해졌다.
기업주들은 정부의 어마어마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노동자들을 해고하거나 ‘무급’ 휴직으로 내몰았다. 이들은 새로운 수익원을 찾아 나서는 동시에 노동자들을 무자비하게 외면하고 있다.
쿠팡 같은 물류 기업들이 한 사례다. 쿠팡의 부천 물류센터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지자 사측은 “어려운 시기”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쿠팡 대표 김범석은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지 않다.
쿠팡의 올해 1분기 온라인 결제액은 4조 84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전체 매출을 뛰어넘는 실적이다. 1월에는 2019년 같은 기간보다 13.5퍼센트, 2월에는 23.4퍼센트, 3월 26.3퍼센트 성장했다.
그러나 쿠팡 노동자들은 완전히 다른 경험을 했다. 비위생적인 작업 환경과 저임금 불안정 노동은 코로나 이전이나 이후나 마찬가지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더 많은 물량을 더 짧은 시간에 처리해야 했다. 노동 강도는 대폭 높아졌지만 시급은 오르지 않아 쿠팡맨들이 받는 돈은 오히려 줄었다. 2년 일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지만 열악한 조건 때문에 2년을 버틴 “정규직은 2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하웅 쿠팡노조 위원장)
물량이 엄청나게 늘면서 3월 12일에는 쿠팡 배송 요원이 과로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코로나 이후 배송물량이 폭주해 한 사람이 하루에 물건 300개를 배송하고 있었다고 한다.
쿠팡 노동자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콜센터, 돌봄교실 등 또 다른 저임금 일자리에서 ‘투잡’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되고 자기도 모르는 새 동료와 가족들을 감염시켰다.
이런 현상은 국제적이다. 쿠팡 대표 김범석이 ‘롤 모델’로 따르고 있는 세계 최대 물류업체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3월 18일 이후 자산이 362억달러(약 43조 6065억 원) 늘었다.
미국 정책연구소(IPS)가 발간한 ‘빌리어내어 보난자 2020 리포트’를 보면, 올해 1분기에 미국 억만장자 상위 170명 중 34명의 재산이 오히려 늘어났다. 이 중 8명은 10억 달러 이상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같은 기간 미국인 2200만 명은 실업수당을 청구해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5월 21일 ‘위기 극복을 위한 주요 산업계 간담회’에 참가해 정부와 기업이 ‘한 배를 탄 운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 배의 밑바닥에서 열심히 노를 젓고 있고, 일부는 아예 배 바깥으로 밀려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노동자들
해고된 노동자들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것만 해도 3~5월에 실업자가 127만 명 늘었다. 임시근로자(50만 1000명), 일용근로자(15만 2000명) 등 가장 열악한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큰 만큼 이들은 언제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250만 명에 이르는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사실상 실업 상태로 내몰렸다. 이들은 법률상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덤프트럭, 화물차, 택배, 셔틀버스, 퀵서비스, 대리기사, 배달앱 노동자, 학습지·방과후 교사, 보험설계사, 간병사, 철도 매점 노동자, 경마기수, 재택집배원 등 일상에 흔히 마주치는 노동자들이다.
보육·돌봄 노동자들과 가사노동자(가정관리사)도 일이 줄면서 소득이 크게 줄었다.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도 분류되지 않아 특수고용 노동자들에게 지급되는 재난지원금도 받기 힘들다. 서울시는 '노숙인 공공일자리' 개편안에서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임금을 최저임금 이하로 삭감하는 계획을 내놨다.
기업주들은 정부의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아 인건비 지출을 아끼지만 노동자들은 소득 절벽으로 생계가 위태롭다.
제주항공은 유상증자를 추진하면서 그중 20퍼센트를 우리사주조합에 우선배정하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무급휴직에 이어 노동자들더러 회사 빚 갚는 데 돈을 내라는 것이다.
아시아나케이오는 고용유지지원금을 받지 않고 노동자들을 무급휴직으로 내몰았다. 노동자들을 쥐어짜 기업을 키워온 자들이 이제 와서는 휴직급여의 10퍼센트도 내기 아깝다는 것이다(유급 휴직을 할 경우 정부가 90퍼센트를 지원한다). 무급휴직도 희망퇴직도 거부한 노동자는 해고됐다.
배달 노동자들
코로나19로 배달업체들이 성장하면서 실직자들이 대거 배달 노동자가 됐다. 올해 1~4월 오토바이면허 응시자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퍼센트 늘었다. 배달 플랫폼 ‘바로고’에 따르면, 1~4월 오토바이를 타고 일하는 신규 기사가 갑절로 늘었다. 이 기간에 배달 건수도 627만 건에서 982만 건으로 늘었다.
경쟁이 늘면서 건당 수입은 줄고 사고는 늘었다. 국토교통부 조사를 보면, 올해 4월까지 오토바이 등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퍼센트 늘어났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8퍼센트 줄었는데, 오토바이 사고 사망자만 늘어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배달 서비스가 늘어난 게 이륜차 사망사고 증가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설명했다.
3월 12일에는 쿠팡 노동자가, 5월 4일에는 CJ대한통운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병원 노동자들
문재인 정부는 병원 노동자들이 ‘코로나19 영웅’이라고 했지만, 수많은 병원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보상과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구 지역 병원 노동자들은 위험수당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대구 지역에 애초부터 거주해 파견자가 아니라는 게 이유다. 대구 이외 지역에서 코로나 환자를 진료한 노동자들도 제외됐다.
“확진자가 줄자 일부 코로나19 전담병원 노동자들은 사실상 무급휴직을 강요받았고, 임금체불과 임금삭감까지도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19 영웅’의 민낯이다. 일반병동으로 복귀하기 전 [격리를 위해] 개인 연차 사용을 강요받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했다. 심지어 검사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라는 경우도 있었다.”(보건의료노조, 6월 5일)
간병노동자들은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간병노동자들은 감염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고, 고령자가 많고, 근골격계질환을 포함한 부상 위험이 높다. 그런데도 간병노동자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국회와 정부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5월 27일)
장애인들
청도대남병원 사례는 장애인들의 극한 상황을 보여 줬다. 장애인 확진자들은 장애인용 화장실도 없는 격리시설로 보내졌다.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경우 방호복 등 지침과 지원이 부족해 활동지원사를 구하기도 어려웠다. 주변에 지인이나 활동가가 없는 경우 한참을 굶는 경우도 많았다.
“청도대남병원의 5층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해 있던 102명의 환자 중 102명 전원이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모든 환자가 코로나19에 걸린 것이다 …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2월 25일 일곱 번째 사망자가 나왔다. 그때까지도 보건당국의 방침은 5층 밀집수용 상태 그대로 환자들을 ‘코호트 격리’하는 것이었다. 전원 이송 결정이 내려지고도 … 환자 이송이 끝난 것은 3월 5일이었다 … 이 사회가 정신장애인을 어떻게 대우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일이었다.”(우석균, ‘불평등한 세계에서 팬데믹을 응시하다’)
더 부유해진 자본가들
헤지 펀드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자본가들은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붙잡아 부를 늘렸다. 헤지펀드는 민간 투자자들을 모집해 화폐, 상품, 채권, 주식 등에 투자한다.
세계 증시가 폭락과 폭등을 반복하는 동안 이들은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었다. 영국의 유명한 헤지펀드 매니저 크리스핀 오데이는 3주 만에 1억 1500만 파운드[1750억 원]를 벌었다.
6월 2일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는 올해 수익률 상위 20개 코스닥벤처펀드 유형의 헤지펀드 평균 수익률이 30.5퍼센트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144퍼센트가 넘는 펀드도 있다.
경제 위기가 계속되면 기업 파산·매각 ‘시장’에 뛰어들어 구조조정 후 재매각하는 방식으로 단기 이익을 챙기는 자본가들도 늘어날 것이다. 1997~1998년 IMF 위기 때 본 것처럼 말이다.
물류 기업들
상반기에 수익을 늘린 것은 쿠팡만이 아니다. 통상 1분기는 비수기로 불린다. 국내 택배시장 1위인 CJ대한통운의 1분기 영업이익은 582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퍼센트 성장했다. 매출액은 3퍼센트 성장해 2조 5154억 원을 기록했다.
한진통운도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퍼센트 늘어난 254억 원을 기록했다. 매출도 13퍼센트 성장해 5365억 원을 기록했다.
또 다른 집단감염 우려를 낳고 있는 롯데택배(롯데글로벌로지스)도 같은 기간에 매출액은 124억 원, 영업이익은 44억 원 증가했다. 영업이익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 대비 268퍼센트에 이른다.
바이오 기업들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한 경쟁에 수많은 다국적 제약기업들이 뛰어들었다. 한 번만 접종하려 해도 최소한 수십억 개가 필요하고, 운 좋게도(?) 인플루엔자 백신처럼 그 효과가 몇 달밖에 안 가면, 매년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미 자국 정부로부터 어마어마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국립대학 등 정부의 연구 기관들도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데, 성과가 나면 그 결과를 기업들에 넘겨 줄 공산이 크다.
3월 16일 최초로 코로나 백신 인간 실험을 한 모더나(Moderna)의 CEO 스테판 밴셀의 순자산은 103퍼센트 늘어 현재 약 15억 달러(약 1조 8442억 원)가 됐다.
국내 제약기업인 셀트리온 회장 서정진의 주식 가치는 5월 말 현재 1월 대비 2조 원(81.3퍼센트) 폭증해 4조 8967억 원이 됐다. 이건희, 이재용 부자에 이어 주식부호 3위가 됐다.
코로나 진단키트 개발로 유명해진 씨젠의 올해 매출은 9688억 원, 영업이익은 5777억 원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보다 매출은 694.4퍼센트 영업이익은 2481.3퍼센트 늘어나는 것이다.
부자들
6월 5일(현지 시각) 미국 CNN 보도를 보면, 미국 갑부들의 재산은 3월 18일보다 19퍼센트(약 680조 원) 증가해 3조 5000억 달러(약 4216조 원)에 이른다.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의 재산은 3월 18일 이후 무려 362억 달러(약 43조 6065억 원) 늘었다. 아마존 주가는 3월 중순 대비 47퍼센트 급등했다.
같은 기간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순자산은 301억 달러(약 36조 2584억 원) 증가했다. 최근 트럼프와 밀월관계인 저커버그는 트럼프를 공개 비판한 직원을 해고했다.
현재 미국인 4300만 명이 실업급여를 신청한 상태다.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운동이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배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