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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의 역사:
자본주의는 어떻게 감염병 위협을 키웠는가

다음은 영국의 계간 사회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2020년 봄호(166호)에 실린 조셉 추나라의 글 “팬데믹 시대의 사회주의”의 일부를 발췌 번역한 것이다. 조셉 추나라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자 계간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의 편집자다.

조셉 추나라 ⓒ이미진

초기 인류 사회는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작은 무리로 이뤄져 있었다. 이런 작은 무리들은 때때로 다른 동물이나 환경에서 유래하는 감염병에 노출됐다. 작은 무리를 이룬 인간들은 감염병에 걸려 죽거나 그렇지 않으면 면역력을 획득하게 됐다. 어찌 됐든 최초 감염 집단 너머로 감염이 확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신석기 혁명이 일어나고는 상황이 달라졌다. 약 1만 년 전 중동에서 시작된 신석기 혁명의 결과로 정주 농경 사회가 등장했다. 인구가 늘어나고 정착지에 인분이 쌓였다. 가축을 길러서 지속적으로 동물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러면서 바이러스나 다른 병원체가 퍼지기 훨씬 좋은 조건이 형성됐다. 인구 집단 사이에서 무역, 전쟁, 이주가 늘어난 것도 병원체가 퍼지는 데에 도움이 됐다.

시간이 흐르고 사람들이 일군의 질병들에 공통적으로 노출되면서 [사람들과 병원체들 사이에] “불안정한 순응”이 나타났다. 그 결과 역사가 윌리엄 맥닐이 말한 “문명화한 질병 집적지”들이 지중해나 인도 아대륙 등지를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형성됐다.

그러나 새로운 무역로가 열리거나 전쟁이나 정복이 벌어지면 이런 곳에도 새로운 질병이 유입됐다. 예컨대 서기 165년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활동하던 군인들을 매개로 로마 제국으로 “페스트”(어쩌면 천연두일지도 모른다)가 퍼졌다. 페스트는 15년 동안 유행했고 이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페스트는 당시 무역 네트워크와 항로를 타고 확산됐다 ⓒ출처 미국 의회도서관

벼룩한테서 옮는 세균성 감염병인 가래톳페스트는 상선을 타고 퍼진 곰쥐를 매개로 확산되다 541년 지중해에 상륙했다. 이 질병은 767년 무렵까지 간헐적으로 유행했는데,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추정도 있다.

13세기 몽고 제국이 무역로를 열고 유라시아 대륙 전반에 걸쳐 광대한 연락망을 구축한 결과, 가래톳페스트는 유라시아 대초원에 굴을 파고 서식하는 설치류에게 전파됐다고 맥닐은 주장한다. 그 후 이 질병은 대상(隊商)의 이동 경로를 따라 퍼지다 1346년 크림반도에 이르렀고, 그 후 유럽에서 흑사병으로 알려지게 됐다. 당시 무역 네트워크와 항로는 북부 유럽으로까지 뻗어 있었고 이를 타고 곰쥐와 질병이 유럽 전체로 확산됐다. 그 결과 1346~1350년 동안 유럽 인구 3분의 1이 사망했다. 인구 밀도가 늘어나고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치고 쥐가 들끓은 탓에 흑사병은 빠르게 퍼졌다. 가래톳페스트의 주기적인 유행은 유럽에서 1670년대까지 계속됐다.

유럽의 흑사병보다 더 파괴적이었던 사례는 “신세계”로 불린 아메리카 대륙이 식민화되는 과정에서 퍼진 “구세계”의 질병들이다. “신세계”는 “구세계”의 질병에 특별히 취약했다. 아메리카 대륙에도 인구 밀집 지역이 여기저기 있었지만, 전염병의 역사가 긴 아프리카·유라시아 대륙만큼의 생태적 다양성은 없었다.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식량 생산에서 가축이 하는 구실이 더 적었다. 천연두, 볼거리, 홍역이 식민 제국을 건설하는 잔혹한 과정과 결합됐다. 이것이 초래한 감염병 유행은 1568년부터 반 세기 동안 멕시코 중부에서 인구의 90퍼센트를 쓸어버렸다.

아메리카 대륙 다른 곳에서도 비슷한 재앙이 일어났다. 페루 원주민 인구는 700만 명에서 50만 명으로 줄었다. 이 재앙은 다시 “구세계”로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행한 결과로 나타났을 공산이 큰 더 치명적인 천연두 균주가 17세기에 유럽으로 도로 유입된 것이다. 18세기 초에 그로 인한 사망자는 매년 40만 명에 이르렀다.

당시 유럽에서는 심대한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도시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위생 상태가 엉망인 빈민가로 인구가 대거 몰리면서, 새로 생겨난 도시에 열악하고 지저분한 생활 환경이 조성됐다. 가난, 스트레스, 인구 과밀로 질병에 대한 취약성이 커졌고 일단 질병이 한 번 나타나면 순식간에 퍼질 지경이 됐다. 게다가 도시에 상륙한 질병은 성장하는 무역 네트워크를 타고, 노동·전쟁·식민지 통치를 위해 또는 전쟁·가난·탄압을 피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매개로 확산될 수도 있었다.

영양 상태, 하수도, 위생, 공중 보건이 개선되기 시작한 19세기가 되기까지 영국에서는 도시 사람들이 시골 사람들보다 대체로 더 이른 나이에 죽었다. 특히, 런던은 사람들을 먹어치우는 “걸신”이었다. 런던에서는 “천연두, 홍역, 결핵 같은 ‘대중성 질병’ 탓에” 18세기 거의 내내 태어나서 세례를 받는 사람보다 죽어서 매장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천연두 바이러스는 인플루엔자나 코로나바이러스처럼 동물을 통해 전염되지 않았다. 인간 자신이 천연두의 숙주였다. 천연두가 어떤 지역을 한 차례 휩쓴 뒤에도 그 지역에 계속 남아 있으려면, 매년 천연두에 감염될 사람이 충분히 태어나야 하므로 인구가 10만 명은 돼야 했다. 17세기 중반 런던에는 이미 그것의 세 배나 되는 인구가 있었다. 1801년에는 맨체스터, 리버풀, 버밍엄 인구가 각각 10만 명에 육박했다.

대체로 폐에서 증상을 일으키는 결핵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세균성 전염병이었지만 여기서도 동물 유래 감염이 중요했다. 결핵은 결핵균에 감염된 우유를 매개로 인간에 감염됐고, 그런 다음에는 기침이나 타액을 통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염됐다. 수천 년 전에도 결핵이 발병했다는 증거가 있다. 그 시기는 아마도 소를 가축화한 시기와 맞물려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핵이 주요 사망 원인이 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 도시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178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사망자의 5분의 1이 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점부터 결핵의 확산은 초기 산업화의 패턴을 따라갔다. 결핵은 처음에는 서유럽, 그 다음에는 동유럽과 아메리카로 퍼졌다. 당시 미국에서는 결핵을 “소모”라고 불렀는데[결핵 환자의 체중이 급감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1812~1821년 뉴욕에서는 사망자 4분의 1이 “소모”로 죽었다. 인구가 밀집한 도시의 형성뿐 아니라 “도시 낙농업”의 존재도 결핵의 확산에 영향을 줬다. 도시 낙농업은 결핵이 소에서 소로, 그리고 소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수 있게 했다.

19세기에는 도시화, 빈곤, 식민주의가 결합돼 새로운 위험을 낳았다. 콜레라는 수 세기 동안 인도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인도가 영국 제국에 편입되고 그에 따라 인구와 재화가 이동하면서 콜레라가 확산했다. 1817년 인도에서 시작된 콜레라 유행이 중국과 러시아를 뒤덮었다. 3년 후 영국 군인들은 콜레라를 지중해 동부로 퍼뜨렸다. 그리고 1832, 1848, 1866년에는 인도에서 유럽, 아메리카 전역으로 확산되는 진정한 팬데믹이 벌어졌다.

환경 역사가인 조지 데너는 다음과 같이 썼다. “도시, 대개는 무역과 관련된 항구 도시에서 먼저 나타나는 것이 그 병의 특징이었다. 발병은 처음에는 그 지역을 연결하는 수로와 연관지을 수 있었고, 몇 년이 지나면 여러 주를 종횡으로 질러가는 성장하는 철도망과 연관지을 수 있었다.”

콜레라는 감염자의 절반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콜레라는 가난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병했다. 콜레라균이 오염된 물로 퍼졌기 때문이다. 19세기 초에는 오물이 들판에 뿌려지거나(농촌의 경우) 주택에서 떨어진 곳이나 길거리에 버려지기 일쑤였고, 식수원인 호수나 강에 오수가 흘러들어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젊은 시절 19세기 맨체스터에서 콜레라를 퍼뜨리는 생활 환경에 관해 자세히 쓴 바 있다. “유행이 시작되면 도시의 부르주아지 전체가 공포에 휩싸인다. 이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불결한 거주지를 떠올리고는 그런 빈민굴 하나하나가 역병의 중심지가 돼 유산 계급의 저택으로 사방팔방 불행을 퍼뜨리리라는 확신에 벌벌 떨었다.” 엥겔스는 맨체스터에 있는 6951채의 집을 조사한 결과를 이렇게 썼다. “2565채는 [위생 상태 개선 등을 위해] 회칠이 시급하고, … 960채는 수리가 불가능해졌으며, 939채는 제대로 된 배수 시설이 없었고, 1435채는 습기가 찼으며, 452채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2221채는 변소가 없었다.”

몇 년 후 엥겔스는 “주택 문제”를 다룬 글에서 같은 문제를 다뤘다. “현대 자연 과학은 노동자들이 밀집한 소위 ‘해로운 구역’이 우리의 도시들을 괴롭히는 모든 전염병의 온상임을 입증했다. 콜레라, 티푸스, 장티푸스, 천연두 등 온갖 무시무시한 질병들 … 자본주의 사회 질서는 치료해야 할 이 병폐들을 거듭해서 재생산한다.”

많은 나라에서 이런 상황은 결코 과거지사가 아니다. 예컨대 전쟁과 기근으로 황폐화된 예멘에서는 최근에도 콜레라가 유행했다. 더 일반적으로 급속한 도시화와 그에 따른 슬럼의 형성은 팬데믹을 낳는 산업화 초기의 생활 환경을 더 널리 확산시켰다. 감염병, 만성 질환, 영양 실조가 공중 보건 축소, 위생 결핍과 결합돼 일으킨 치명적인 폭풍은 현대 세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남수단인들도 최근까지 콜레라로 고통받았다 마실 물을 구하는 남수단 소년 ⓒ출처 유니세프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까지 가장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대중성 질병을 낳던 여건들이 일부 개선됐지만 인플루엔자 팬데믹이라는 새로운 위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플루엔자 유행도 전례가 없는 일은 아니었다. 1550년대에 유행한 인플루엔자는 잉글랜드 거주자들 5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다음 아메리카 대륙에 또다시 큰 피해를 입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돌아온 인플루엔자는 더 위협적이었다.

그 서곡은 1889년에 시작된 “러시아 독감”이었다. 오늘날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하라에서 시작된 러시아 독감은 그해 가을 페테르부르크로 번졌고 8주 만에 유럽 전역과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부로 확산했다. 러시아 독감은 몇 달에 걸쳐 라틴아메리카, 인도, 결국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로까지 침투했다. “유럽에서 첫 유행 기간(1889~1890년)에 사망자 수는 매우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27만~36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는 예행 총연습에 불과했다. 1918년 봄, 제1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와중에 병사들이 인플루엔자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질병은 곧 팬데믹이 됐지만 1차 유행 때는 사망자가 많지 않았고 전쟁의 효과에 가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의 균주가 변이하면서 나타난 2차 “스페인 독감” 유행은 파괴적이었다. 데너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제1차]세계대전은 여러 사건들의 이례적인 합류점을 형성했다. 무수히 많은 남녀가 수준 이하의 환경에 밀집해 있었다. ⋯ 이 밀집한 군중은 지구 구석구석으로 뻗은 교통망으로 연결돼 있었다. 고된 삶에 짓눌린 인구 집단은 전염병, 특히 호흡기 질환이 순식간에 유행할 수도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조성했다.

바이러스는 무시무시한 속도와 범위로 퍼졌다. 이후 몇 달 동안 전체 인류의 거의 3분의 1이 감염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뜩이나 전쟁 동원으로 남아나지 않은 의료 시설들은 폐렴 환자들로 마비됐다. 2차 유행보다는 덜 치명적이었던 3차 유행이 1919년에 뒤따랐다. 이 세 차례의 유행 동안 사망한 사람은 5000만~1억 명인 것으로 최근 추산됐다. 이는 제1차세계대전이 직접적으로 낳은 사망자보다 몇 배나 많은 수다. 사망률이 높았던 것은 단지 인플루엔자 균주의 독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바이러스로 인해 2차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이 들어와 폐렴을 일으켰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번에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치명률이 제대로 조사되지 않는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었다. 인도에서는 스페인 독감이 185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인도인들은 기아와 열악한 주거 환경에 시달렸고, 영국의 곡물 징발은 가뭄과 맞물려 면역 반응을 약화시켰다. 공중 보건도 불충분했다. 이 모든 요인들이 재앙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인플루엔자의 정체를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대학살을 초래했는지 알아내려고 수십 년 동안 노력한 이후 1947년 국제 인플루엔자 감시 기구가 설립됐다. 이 기구는 나중에 신생 세계보건기구(WHO)의 일부가 된다. 이후에 1957년(“아시아 독감” 팬데믹), 1968년(“홍콩 독감” 팬데믹)에 유행한 인플루엔자는 각각 약 200만 명과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그 후 빗나간 경보가 두 건 있었다. 하나는 1976년에 발병한 돼지 독감으로, 이 질병은 미군 기지를 통해 확산되다가 사그라들었다. 그러기 전에 미국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4300만 명이 정부 주도의 비상 계획에 따라 백신을 접종받았다. 두번째 사례는 1977년 “가짜 팬데믹”이었는데 이 질병은 광범하게 퍼졌지만 증상이 미약했다.

현대 세계를 위협하는 팬데믹

바이러스성 팬데믹의 등장은 여전히 현대 세계를 크게 위협하고 있다. 그 위협을 이해하려면 사회 구조의 변화를 살펴 봐야 한다.

여기에 생물학자인 롭 월러스 등의 저작이 도움이 된다. 롭 월러스는 현대 농업 체계와 동물 유래 감염의 연관성을 추적했다. 가장 잘 알려진 월러스의 저서 《거대 농장이 거대 독감을 낳는다》[국내 번역판 제목은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는 대규모 농축산업이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내고 퍼뜨리는 거대한 배양 접시 구실을 할 가능성을 조명한다. 많은 수의 단일 품종 가축을 한 곳에 몰아넣고 기르는 축산 방식은 전염률을 높이고 면역 반응을 약화시킨다. 산업적 농업의 성장은 전 세계적 현상이며, 늘어나는 육류 소비에 맞춰 육류를 공급하는 “축산 혁명”은 소위 “남반구”에 집중됐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다음과 같이 썼다.

산업화한 양계·축산의 세계적 상징이자 … 매년 22억 마리의 닭을 도살하는 타이슨 푸즈는 대규모 수직 계열화, 계약 사육자 착취, 거리낌 없는 노동조합 탄압, 횡행하는 산업 재해, 폐기물 방류, 정치적 부패의 국제적 대명사가 됐다. 타이슨 같은 거대 기업들의 국제적 지배력 때문에 지역 농민들은 대규모 닭고기·돼지고기 가공 기업들에 통합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 농업 지대 전체가 양계장으로 전환됐고 농민들은 양계장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은 현대 축산 복합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온라인 잡지 《촹》(闯)에서 한 익명의 저자는 월리스의 논의를 끌어다 쓰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여기에 더해 경제 주변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집약적인 과정이 벌어진다. 경제 주변부에서 “야생” 균주를 접하는 사람들은 지역 생태계에 유례 없이 광범위한 농업·경제적 침투를 해야 하는 처지에 몰린 사람들이다. ⋯ 전염병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농업·경제적 생산의 핵심부에서 생겨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런 핵심부의 배후지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

자본의 기본적인 논리는 이전까지만 해도 고립되고 무해했던 바이러스 균주를 극도로 경쟁적인 환경에 데려다 놓는 데에 일조한다. 그런 환경에서는 감염병 유행에 도움이 되는 특정한 형질들, 예컨대 빠른 수명 주기, 동물과 사람 간 감염 도약, ⋯ 새로운 매개로 전파되도록 빠르게 진화하는 능력 등이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해, 문제는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는 공장식 축산만이 아니라, 더 광범위한 생태계 파괴와 상품 생산 확대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상이한 동물 종들을 한데 모이게 하고 인간들을 다른 동물들과 만나게 한다. 그러면서 새로운 병원체를 유행시킨다.

몇 가지 사례가 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1960년대에 볼리비아 출혈열이 설치류를 통해 농장 노동자들에게 퍼졌다. 1963~1964년에 그 병은 샌와킨의 농업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발병했다. 그 지역 쇠고기 산업을 장악하고 있던 유력 가문이 1952년 혁명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업을 접자, [그 산업에 의존하고 있던] 샌와킨 사람들은 울창한 밀림으로 밀려나 농사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곳에 살던 설치류의 서식지를 파괴했다. 그 설치류들은 마을로 침입했다. 말라리아를 잡기 위해 DDT를 살포하는 바람에 고양이 개체 수가 준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는 데에 일조했다. 도로 건설로 인해 설치류가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면서 열병은 전국으로 퍼졌다.

다른 사례는 1990년대 말 동남아시아에서 등장한 니파바이러스다. 이는 집약적 돈사가 발전하고 박쥐를 매개로(아마도 배설물에 의해) 돼지가 감염된 결과였다. 당시 박쥐들은 가뭄과 벌채로 서식지가 파괴됐다.

특히 중요한 최근의 사례는 에볼라바이러스다. 감염자의 최대 90퍼센트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에볼라바이러스가 유행성 형태로 나타난 것은 2013년 서아프리카에서다. 에볼라 바이러스 또한 야생에서 박쥐에 의해 전염되던 바이러스였다. 기니 지역의 사바나에서 미국, 유럽, 중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토지를 약탈한 결과 박쥐들은 먹이와 보금자리를 찾기 위해 기름야자 대농장으로 모여들었고 이는 동물 유래 감염이 나타날 조건을 조성했다.

이런 경향은 농업이 아무런 규제 없이 확장되면서 최근 수십 년에 걸쳐 악화했다. 그래서 월리스는 최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산업적 농축산업과 더불어 ─ 추나라] 자본은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원시림과 소농 경작지까지 남김없이 정복하려 합니다. 이들의 투자는 삼림 파괴와 개간을 추동하면서 새로운 질병이 생겨날 조건을 만들어 냅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기능을 하는 대규모 토지를 일률적으로 개간하면서 이전까지는 한 곳에 갇혀 있던 병원체가 그 지역의 가축과 주민들에게 전염됩니다. 요컨대 런던, 뉴욕, 홍콩 같은 국제 자본의 중심지인 거대 도시를 질병의 주요 온상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토지 이용의 변화뿐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한 더 광범위한 생태계 교란도 동물 유래 감염의 가능성을 더 높일 것이다.

이런 양면적인 위협의 증대는 최근 수십 년 간 나타난 두 가지 주요 인플루엔자 발병에서 잘 드러난다.

첫째는 “조류 인플루엔자”(H5N1)로 알려진 특이한 균주에서 생긴 것이었다. 조류 인플루엔자는 1997년 홍콩의 양계장에서 처음 나타났다. 조류 인플루엔자로 수많은 닭이 폐사했다. 그해 말 18명이 입원했고 H5N1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았다. 1997년 12월에는 홍콩의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에서 산 채로 팔리던 닭들이 폐사했다. 이번에도 범인은 H5N1인 것으로 드러났다. 홍콩에는 “매우 다양한 농가들이 있어서 ⋯ 닭들을 (닭 입장에서) 매우 스트레스가 큰 환경에 대거 몰아넣고 기르는 대규모 시설도 있고, 닭들이 다른 가축들과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수로나 연못에서 야생 오리나 야생 거위 같은 야생 조류와 어울려 지내는 소규모 시설도 있다.” 시장 변동을 완충하기 위해 임시로 닭들을 수용하는 “수용 시설”도 존재한다.

공장식 축산과 자연 파괴는 바이러스가 병독성과 전염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게 했다 ⓒ출처 Shpernik088

이 무계획적이고 규제되지 않는 산업은 닭 외에도 “오리, 거위, 꿩, 메추리, 비둘기, 갖가지 야생 조류”는 물론 포유류와 파충류를 포함한 “온갖 종의 동물들을 가둔 사육 상자들이 어지럽게 즐비한 시장”에 동물들을 공급했다.

이러한 생산 체계는 무엇보다도 중국 본토의 생산자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고 그들에게서 상당한 압력을 받았다. 홍콩과 맞닿아 있는 광둥성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개척한 산업적 양계 방법을 모방한 새로운 양계 방법을 실험하는 실험장이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말처럼 이곳은 “인플루엔자 진화의 중심지”였다.

여기서 중요한 구실을 한 것은 바로 태국의 두 형제가 설립한 차른 뽁판드 그룹이다. 차른 뽁판드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타이슨을 모방했으며 1978년부터 시작된 덩샤오핑의 중국 경제 개방 정책을 기민하게 이용했다. 산업적 농축산으로의 전환은 바이러스를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더 독한 바이러스를 길러냈다. 월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병원체는 숙주를 지나치게 해치도록 진화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자신을 퍼뜨릴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원체가 다음 숙주에 감염하기 전에 숙주를 죽여 버리면 스스로 전염 경로를 차단하는 꼴일 테다. 그러나 다음 숙주가 훨씬 빨리 온다는 것을 병원체가 “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병원체는 독성이 강해지는 것에 개의치 않을 것이다. 숙주가 죽기 전에 다음 숙주에 성공적으로 감염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산업적 — 조셉 추나라] 농축산은 인플루엔자가 독성을 키우는 쪽으로 진화하도록 또 다른 방향에서 압력을 가한다. 산업적 농축산에서는 감염된 개체들이 일정한 수에 이르면 살처분된다. 숙주에 머물고 있는 인플루엔자 감염은 닭이든 오리든 돼지든 어떤 동물이든 그 동물이 살처분되기 전에 충분히 많은 숙주를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광둥성과 홍콩에 걸쳐 양쪽 모두를 넘나드는 가금류 농축산 네트워크는 치명적인 인플루엔자가 생겨나기에 매우 알맞은 환경이다. 이 지역에서는 확장되고 산업화했지만 규제를 거의 받지 않는 농축산업이, 그 지역의 습지로까지 뻗어 나간 농축산 현장이나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조류의 혼재와 결합됐다. 나중에 H5N1은 거위에서 발견되는 균주와 메추라기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균주가 결합돼서 생겨난 것임이 밝혀졌다.

H5N1의 확산은 공세적으로 새들을 도살 처분하고, 시장을 폐쇄하여 소독하고, 종을 분리하도록 시장을 개편하고, 생오리 판매를 금지해서 저지됐다. 2억 마리에 달하는 가금류가 폐사하거나 도축됐다. 이런 조처들은 효과가 있었지만, H5N1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경우가 적었고 그 규모가 작았던 덕이 크다. WHO의 기록에 따르면 H5N1에 감염된 사람은 861명이었고 그중 455명이 사망했다. 가장 인명 피해가 컸던 곳은 이집트, 인도네시아, 베트남이었다.

그러나 21세기 최초의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일으킨 것은 H5N1이 아니었다. 2009년에 H1N1(“돼지독감”) 균주에 기반을 둔 인플루엔자가 새로운 위협으로 부상했다. 이것은 1918년 팬데믹을 일으킨 균주의 변종이었다. 그 발원지는 동남아시아의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이 아니라 북아메리카였다. 미국에서 확진자가 나타났을 때부터 이미 이 바이러스는 인간에서 인간으로 전염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질병은 대규모 산업적 농축산이 급속히 발전하고 있었던 멕시코의 돼지 떼로 퍼졌다. 이 균주는 “인간과 조류, 북미와 유라시아에 사는 두 가지 돼지”에 감염되던 바이러스 계통의 유전자 조각이 결합된 것으로 밝혀졌다. WHO는 재빨리 돼지 인플루엔자 팬데믹을 선언했다. 다행히도 바이러스는 비교적 증상이 심각하지 않았고 계절성 인플루엔자와 사망률이 비슷했다.[한국에서는 ‘신종 플루’라고 불렀다 — 역자]

이 일로 WHO는 상당한 역풍을 맞았다. 특히 여러 WHO 소속 전문가들이 백신과 항바이러스제 생산에서 이익을 보는 제약 기업에 고용돼 있다는 사실을 영국의 의학 잡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이 폭로하면서 역풍은 거세졌다. 이는 공중 보건을 공공재가 아닌 사재로 취급하는 것의 위험성을 보여 준다. 영리 추구에 물든 의료 기관이 의심을 받거나 적개심을 사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H5N1과 H1N1은 아슬아슬하게 피한 재앙으로 보는 것이 옳다. 더 정확히는 재앙이 그저 미뤄진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다행히도 현재까지는 H5N1가 인간에서 인간으로 쉽게 전파되지 못하고, H1N1가 병독성이 강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나타난 두 코로나바이러스는 재앙을 낳았다.

2003년 광둥성에서 한 코로나바이러스가 나타나 수많은 폐렴 환자를 낳았다. 이 바이러스에서 비롯한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사스)의 증례치명률은 약 10퍼센트였다. 사스는 광둥성의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에서 팔리던 흰코사향고양이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 이 동물들은 사스와 관련된 다양한 코로나바이러스의 숙주인 중국 관박쥐와 인간을 잇는 가교 구실을 했을 것이다.

사스의 등장은 월리스가 말한 도시와 농촌 사이의 상호작용을 반영한다. 광둥성이 급격하게 성장한 결과 광대한 “도시-주변” 지역이 형성됐는데 이 지역은 “산업과 농촌, 도시 활동과 농촌 활동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상호의존하는” 특징을 보였다. 이는 중국 경제 개방 이후 더 가속화했다. “개혁 이전에 도시와 농촌의 상호작용은 ⋯ 중앙 자원 배분, 가격 통제, 이동 통제로 엄격하게 제한됐다. 이는 도시와 농촌을 분리하는 보이지는 않지만 실질적인 ‘장벽’을 세우는 효과를 냈다. ⋯ 개혁 이후 경제 자유화·유연화 정책이 시행되자 도시 인구와 농촌 인구의 직접적이고 자발적인 상호작용이 허용됐고, 이는 도농 관계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이미 인구가 1000만에 이르던 광저우에 사스가 유입된 것은 2002년 말이었다. 그러나 중국 정부 관료들은 2003년 2월 11일까지 사스 발병에 관한 정보를 자기 국민에게든 국제 보건 관련자에게든 알리지 않았다. 사스는 결국 정부가 대규모 격리, 검사, 방역 조치를 취한 끝에 2004년에 사그라들었다. 이는 여러 면에서 2020년 초에 벌어진 일의 예행 연습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사스만큼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다. 사스는 이미 감염자가 심각한 증세를 보이고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는 시기에 전염력이 가장 높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그렇지 않았으며 이미 훨씬 널리 퍼졌다.

훨씬 더 치명적인 코로나바이러스 감염병인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메르스)은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타났다. 메르스의 증례치명률은 3분의 1에 이르렀다. 메르스는 유럽, 아시아, 다른 중동 지역, 북아메리카로 퍼졌으며 2494명의 확진자와 858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메르스의 경우 박쥐와 인간을 연결해 준 것은 단봉낙타였다. 단봉낙타들은 수십 년 동안 메르스와 유사한 바이러스에 감염됐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석유가 풍부하고 많은 곳이 도시화한 현대 아랍 국가들에서 낙타는 운반이나 즉각적 소비에 쓰이지 않고, 사회적 지위의 징표로서 소유되거나, 경주, 판매용 육류·유제품을 생산하는 데에 쓰인다. 오늘날 낙타는 집약적으로 사육될 뿐만 아니라 많은 수가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입되고 있고(2013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도축된 낙타의 70퍼센트가 수입산이었다), 낙타 경주나 전시용으로 여러 아랍 국가들을 드나들고 있다. 이런 상업적 과정이 상이한 개체군에서 유래한 상이한 코로나바이러스 균주의 혼종을 낳고 메르스 발병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코로나19는 사스나 메르스와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의 네가지 속(屬, 하위 그룹) 중 하나인 베타코로나바이러스속의 한 종류가 일으키는 질병이다.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여겨지는 우한은 인구가 1100만 명에 이르는 도시로, 중국 중동부 내륙 후베이성의 성도(省都)다. 우한은 광둥성의 북쪽에 있으며, 광둥성은 중국 동부의 장쑤성과 함께 중국 제조업 성장을 추동하는 엔진 구실을 했다. 우한은 20세기 초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중요한 도시였다. 우한은 수로 교통의 중심에 있었고 나중에는 철도 교통의 중심지가 됐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우한은 국가가 지원하는 대규모 중공업, 특히 철강 산업, 나중에는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였다.

1970년대 말 중국 경제가 개방되면서 우한은 해안 지방에 비해 중요성이 감소했다. 그럼에도 근래에 우한은 중국 건설 경기 호황의 한복판에 있었다. “우한은 건축 자재와 토목 기사들을 과잉공급하여 거품을 키웠을 뿐만 아니라 도시 자체가 부동산 호황 도시가 되기도 했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의 발표에 따르면 우한 거주자 수는 2008~2017년 동안 20퍼센트 증가했다. 신규 유입 인구의 다수는 중국의 다른 곳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며 이들은 도시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2017년 주택 개발 사업에 투자된 금액은 268억 달러에 이르렀고 부동산 가격은 지난 10년 동안 네 배나 치솟았다. 우한의 최대 부자인 옌 즈는 2018년 최대 100억 달러에 이르는 부의 상당 부분을 부동산에서 벌어들였다.

우한에 거주하는 많은 사람들은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에서 식량을 구하며 코로나19도 이를 배경으로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월리스가 지적하듯 “공장식 축산과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둘의 유사점을 (그리고 둘의 변증법적 관계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래식 신선 식품 시장과 이국적 식품들은 오늘날 중국에서 산업 생산만큼이나 중요하며, 둘은 경제 자유화 이래로 병존해 왔다. ⋯ 사실 두 식품 유형은 토지 이용 면에서 통합될 수 있다. 산업 생산의 확장은 이윤을 추구하는 야생 식품 생산을 잔존하는 야생의 더 깊숙한 곳으로 밀어넣고, 팬데믹이 될 잠재력이 있는 훨씬 더 다양한 병원체들을 끄집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도시 주변부가 갈수록 확대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비인간 개체군과 새롭게 도시화한 농촌의 만남(그리고 상호 침투)이 늘어날 수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가장 특이한 야생 동물조차 [농업의 — 조셉 추나라] 가치 사슬에 얽혀 있다. 타조, 호저, 악어, 과일 박쥐, 사향고양이가 그런 예다.(사향고양이가 소화하지 못한 채 배설한 열매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원두로 공급된다.) 어떤 야생 종들은 심지어 그 정체가 과학적으로 밝혀지기 전에도 매대 위에 오른다. 대만 시장에서 팔리는 코가 짧은 새로운 상어가 그런 예다.

갈수록 모든 것이 식품 상품으로 취급되고 있다. 한 지역씩, 한 종씩 자연이 뜯겨나갈수록 남은 것들은 그만큼 귀중한 것이 된다.

실제로 중국의 정책은 전국 수준에서, 그리고 서로 경쟁하는 지방·지역 관리들을 통해 야생 축산을 조장했다. 야생 축산은 농촌 경제를 진작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2017년 야생 축산의 가치는 5200억 위안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됐다.

중국 자본주의는 전염병이 퍼질 조건이 이미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홍콩의 열악한 주거 환경 ⓒ이윤선

코로나19는 순식간에 우한 밖으로 퍼졌다. 세계 인구가 전례 없이 서로 연결돼 있었을 뿐 아니라 항공 교통 덕분에 이동 시간이 병원체의 잠복기보다 짧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무런 증상을 보이지 않은 채 타지에 도착해서 질병을 퍼뜨릴 수 있었다.

2003년 사스가 유행했을 때에는 홍콩이 세계 다른 주요 도시로 전파되는 중심지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중국 자체가 다른 도시들과 촘촘한 연결망을 이루고 있다. 우한에도 국제공항이 있고 이 공항은 해외 60여 개 도시들을 우한과 연결한다. 2019년 중국에서는 5억 1500만 건의 국내 항공 운항이 있었고, 국제 항공 운항은 2002년 620만 건에서 2016년 5162만 건으로 늘어났다.

중국에서 눈부신 성장과 도시화가 진행되는 동안 보건의료 지출은 여전히 미미했다. “공공지출 대부분은 다리, 도로, 값싼 전력 생산 같은 고전적인 기반 시설에” 쓰였으며 이는 “기초적인 공중 보건이 전반적으로 악화”되고 다른 나라들의 산업화 초기 생활 환경이 일부 재현되는 결과를 낳았다. 보건의료를 위한 1인당 공공지출은 “‘중상위 소득’ 국가들보다도 낮았으며 ⋯ 브라질, 벨라루스, 불가리아의 절반 수준이었다.” 게다가 농촌을 떠나서 도시로 건너온 수많은 농민공들은 고향을 떠난 탓에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없다. 중국 전역과 세계 전체로 전염병이 퍼질 조건이 무르익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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