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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에서 대안의 건설로

1992년 미국 흑인 소요가 일어났을 때 미국 운동은 아직 1980년대 패배의 경험을 생생하고 기억하고 있었다. 반면 현재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운동과 좌파 운동이 게토의 무슬림 이주자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할 수 있는 훨씬 유리한 조건이 존재한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국가의 노동권 공격과 사유화에 반대하는 거대한 노동자 투쟁이 진행중이고, 유럽헌법 부결을 이끌어 낸 새로운 좌파 운동이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기성 좌파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보수당과 함께 지난 20년 간 정부를 운영해 온 사회당은 현재 이주자들의 처지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지금 사회당 지도자 프랑소와 올랑드와 폭동의 진원지인 클리시 수 부아의 사회당 시장은 사르코지를 비판하고, 게토에 대한 공공투자 확대를 요구하지만, 동시에 ‘사회질서의 즉각적 회복’ 등 강력한 진압과 지방자치 경찰 증원을 요구하고 있다.

공산당은 사르코지의 해임을 요구하는 측면에서 사회당보다 한 발 앞서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사회당의 입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마 지금 소요가 확산되고 있는 지역에서 시 정부 운영에 관여하고 있는 곳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다른 좌파들은 일종의 ‘무슬림 혐오증’을 가지고 있다. 최근에 프랑스 아딱의 지도자이자 유럽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좌파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디끄》의 편집자인 베르나르 까쌍은 무슬림과 함께 활동한다는 이유로 영국의 리스펙트와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공격했다.

어쨌든 사르코지 해임과 공공투자 확대를 놓고 이들과 공동 활동을 펴는 것이 가능하다면 피해서는 안 될 것이지만, 정치적 방향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급진좌파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노동자투쟁(LO)이나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같은 급진좌파들도 과거에 오류를 저질렀다. 그들은 소위 ‘세속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관점에서 무슬림 이주자나 이들의 2∼3세대 자녀들과 효과적인 연관을 맺지 못했다.

LO는 적극적으로 히잡 금지 법안을 지지했고, LCR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해서 사실상 반대 운동을 조직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습관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장은 소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경찰 과잉 진압 비난, 사르코지 사임, 공공투자 확대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확대해야 한다.

동시에 급진좌파들은 좌파 정치 대안을 가지고 소요 가담자들에게 다가가 토론하고 이들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프랑스 급진좌파가 과거에 가졌던 무슬림에 대한 잘못된 태도를 철저히 반성하고 고칠 때만 가능할 것이다. 만약 이 작업을 급진좌파가 시작하지 못한다면 엉뚱한 사람들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

무슬림 이주자 공동체는 하나의 계급이 아니다. 설사 그 구성원 다수가 노동계급일지라도 그 안에는 자영업자, 룸펜 프롤레타리아가 있고, 자본가와 중간계급 야심가들이 있다.

보통 소요가 끝난 뒤에는 이런 야심가들이 지배자들과 타협하곤 한다. 그것이 바로 미국에서 1964∼68년과 1992년 로스엔젤레스 흑인 소요 뒤 일어났던 일이다. 이 소요의 결과, 공동체의 사회적·경제적 복지는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다만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이제 흑인 중간계급과 흑인 자본가로 변신했을 뿐이다.

지금도 프랑스 이주자 공동체 내의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와 무슬림 기업가들이 중재자를 자처하고 각종 훈수를 두고 있다.

지배자들은 이들 중 일부를 흡수할 준비가 돼 있다. 그들은 이미 1980년대부터 중간계급 지도자들 중 일부를 기존 체제로 흡수해 왔다. 물론 이것은 충분하지 않았다. 오늘날 무슬림 이주자들은 5백만 명이나 되지만 무슬림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다.

2003년 사르코지가 꾸린 프랑스무슬림신앙위원회(CFCM)나, 소요가 일어나기 전에 발표한, 미국 ‘차별 시정’ 정책을 본 딴 ‘긍정적 차별’ 정책은 이런 공백을 노린 것이었다.

사르코지는 강화된 경찰 억압으로 다수의 무슬림들을 겁먹게 만들고, 소수의 ‘중재자’들을 통해 불만을 흡수하려 했다.

지금 미국에서 ‘존경받는’ 흑인 지도자들이 지난 30년 간 흑인운동에 미친 해악적 영향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미래 운동의 심각한 약점이 될 수 있다.

물론 다른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번 소요 기간 동안 정부 입장을 대변하면서 ‘평화’를 내세운 무슬림 지도자들은 청년들의 공격을 받았다. 사르코지와 가까운 무슬림 지도자 다릴 부바케르는 청년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했다.

그러나 좌파적 대안이 부상하지 않는다면 온건 이슬람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주의를 포함한 각종 분리주의 사상을 대안으로 보는 경향이 강화될 수도 있다.

1992년 로스엔젤레스 소요가 끝난 뒤 불과 몇 달 뒤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했다.

“불타 버린 수많은 상점들 중 단 하나가 완성되기도 전에, 두번째 로스엔젤레스 소요와 이것이 보여 준 전국적인 도시·인종적 위기는 정치가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졌다. 아버지 부시 정부의 도시 개혁에 대한 ‘새로운 열정’은 차가운 무관심으로 돌아갔다.”

지금 위기에 빠진 프랑스 지배자들이 내놓고 있는 약속 중 많은 부분은 소요의 물결이 지나간 듯 보이자마자 무시될 것이다.

그들은 이미 신자유주의 개혁의 일환으로 게토 지역 복지를 삭감해 왔고, 프랑스 자본주의는 그것을 계속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급진좌파들이 이런 폭동 과정에서 급진화하고 정치적으로 각성한 청년들에게 접근할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 투쟁을 준비하는 비옥한 토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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