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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 살인’ — 자본주의와 계급 불평등이 낳은 비극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간병하다 방치해 사망케 한 22살 청년의 사연이 온 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다.

극심한 가난과 실업, 간병 부담 속에서 청년은 홀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먹을 것도 없고, 휴대전화·전기·도시가스마저 끊어진 상황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아버지는 아들을 놓아주려고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아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아버지를 방치했다.

법원은 1심과 2심 모두에서 청년에게 존속살인죄를 적용해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이해하나, “살해의 고의”가 있었으므로 “패륜적 범죄”라는 것이다.

비정하고 냉혹한 현실에 많은 사람들이 비통해했다. ‘돌봄 의무를 방치한 죄는 청년이 아니라 국가에 있다’는 사회적 질타도 쏟아졌다. 심상정과 이재명 대선후보는 “돌봄 사각지대”를 꼬집으며 국가의 책임 방기를 문제삼았다.

개별 가족에게 맡겨진 간병과 돌봄 부담 ⓒ이미진

‘간병 살인’은 간병과 돌봄 부담이 개별 가족에게 떠넘겨진 한국 사회의 열악한 복지 현실을 비극적으로 들춰낸다. 자식에게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끝없는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 환자와 가족은 자살과 살인 등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린다.

간병 지옥

간병은 “전쟁” 또는 “지옥”으로 불릴 만큼 가족의 삶과 미래를 절망에 빠뜨린다.

우선 비용 부담이 심각하다. 간병비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루에 8만~10만 원에 이르는 비용을 오롯이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2018년 보건복지부는 간병인 고용 시 월평균 부담액이 280만 원이라고 발표했다. 임금 근로자 월평균소득(세전 309만 원)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쏟아부어야 감당할 수 있는 액수다.

최근 코로나19 장기화로 중증·고령 환자의 간병비 부담이 더욱 늘어났다. 국내 간병인 종사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하루 간병비가 10만~15만 원으로 훌쩍 올랐다.

부자들에게 비싼 병원비와 간병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노동자·서민층 가정은 직격탄을 맞는다. 간병·돌봄 문제가 계급 문제인 까닭이다.

노동자 등 서민은 집 팔고 빚을 내도 간병비·병원비·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어렵다. ‘간병 파산’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비싼 간병비를 감당 못하면, 환자 가족이 직접 돌보는 수밖에 없다. 현재 간병이 필요한 환자의 90퍼센트를 가족이 직접 돌보고 있다. 간병 부담으로 직장을 그만둔 보호자는 14퍼센트, 근로시간을 줄인 비율은 33퍼센트에 달한다(민주당 고영인 의원실, ‘2018년 간병살인에 대한 조사, 시사기획’).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청년이거나 노-노 간병(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경우)인 경우는 더 크게 고통받는다.

치매나 뇌혈관 질환 같은 만성질환이나 자폐증, 발달장애의 경우 장기 간병은 필연적이다. 이렇게 기약 없는 간병은 가족의 몸과 마음까지 피폐하게 만든다. 헤어날 방도가 없는 경제적 압박감과 절망감 속에서 가족들은 수면 부족·우울증·정신 질환에 시달리며 골병 들기 일쑤다.

찔끔 개선 혹은 생색내기

문재인 정부는 당선할 때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약속하며 간병 지원책과 ‘국가치매책임제’를 내놓았다. 그러나 말만 요란했을 뿐, 필요 수준에 턱없이 못 미치거나 생색내기 수준에 그쳤다.

정부는 2022년까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하루 간병비 2만 원)가 적용되는 10만 병상을 확보하겠다고 했지만, 달성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8월 기준으로 6만 1352병상에 그쳤고, 지원 계획은 불투명하다. 애초 목표치가 필요한 간병 규모에 한참 못 미치는데도 말이다.

10만 병상 확보조차 이토록 지지부진한 이유는 민간 병원 중심 의료체계와 간호 인력 부족 탓이 크다. 최근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운영하는 일부 병원이 간호인력 부족을 이유로 심사를 거쳐 경증 환자만 수용하고, 정부 지원금만 챙기는 일도 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전체 입원 환자의 10~13퍼센트 정도만 이 서비스를 이용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정부는 간호 인력 부족 문제 해결도 외면해 왔다.

정부의 간병·요양 서비스 중에는 노인장기요양제도도 있다. 그러나 조건이 까다로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지원 대상 인정률이 10퍼센트 수준이다. 중증 정도에 따라 등급이 결정돼 혜택도 제한적이다. 방문요양서비스는 하루에 2~4시간만 이용할 수 있기에 가족의 간병을 대체할 수 없다.

간병 부담을 덜어보고자, 많은 사람들이 요양병원과 요양원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민간 기관이고 시설이 열악하다.

민간 요양 기관은 수익성을 우선시하기 때문에 비용이 매우 비싸거나 반대로 안전하고 질 좋은 간병 서비스를 기대하기 어렵거나 둘 중 하나다.

괜찮은 시설을 갖춘 곳을 이용하려면 비용이 월 200~700만 원이나 된다. 동시에 부정 수급은 물론이고, 노인 학대 등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윤석열의 장모가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혐의가 요양병원 불법 개설과 요양급여 부정 수급 건이다. 요양병원 설립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돈벌이를 위해 병원을 짓고 급여를 탔다는 죄목이다.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일하는 간병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도 문제다. 50~60대 여성이 대부분인데, 보통 출퇴근 없이 주 6일 24시간 내내 일한다. 올해 간병노동자의 일급은 9만~11만 원 수준으로 시급으로 따지면 4000원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공공 요양 기관 비율은 2.2퍼센트에 불과하다. 건강보험공단이 직영으로 운영하는 요양원(정원 150명)에 입소하려면 대기자가 많아 무려 9년을 기다려야 한다.

‘국가치매책임제’는 이름만 거창할 뿐, 주로 치매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치매지원센터 증설 외에 크게 진척된 것이 없다.

간병·돌봄 복지 대폭 확대

한편, 국민의 힘 대선후보 윤석열은 “요양·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언하며 몇 가지 생색내기 수준의 개선 조처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그와 동시에 ‘문재인 케어’가 “비급여의 무차별적인 급여화”로 인해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켰다”고 공격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문재인 정부는 간병비 급여화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재정 지원도 턱없이 부족했다. 윤석열의 비판이 공허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장모가 요양급여 부정수급으로 1심 유죄를 받은 후보가 국가의 급여 낭비 운운하는 것도 우습다.

반면, 이재명 대선 후보는 ‘돌봄 국가책임제’를 주장하며 ‘공공 의료 체계 및 노인 요양 기관 확충, 보건의료인력 수급 및 처우 개선, 노인장기요양보험 서비스 시간 증대’ 등 유의미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관건은 이를 위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기업주와 부자의 방해를 거슬러 얼마나 실질적인 수준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 할지다. 최근 좌우 줄타기를 하면서 기업주들의 환심을 사려는 이재명의 행보는 이런 점에서 매우 의구심을 키운다.

간병은 개인이나 개별 가족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지배계급은 노동력으로서 쓸모가 없어져 착취가 불가능하거나 착취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집단(노인·장애인·중증 환자 등)에 투자할 열의가 없다. 보건·사회적 돌봄 복지를 늘리는 데 매우 인색할 뿐 아니라, 경제 위기 시기에는 알량한 복지도 후퇴시키려 한다.

‘간병 살인’을 없애려면 이윤 논리를 거슬러야 한다. 환자·노인·장애인 등 간병과 돌봄이 필요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국가가 지원을 대폭 늘리라고 요구해야 한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왕창 걷고 쓸데없는 군사비를 대폭 삭감해 간병과 돌봄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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