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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폭탄, 비극적인 죽음, 재난:
이윤 시스템이 만들어 낸 인재

8월 8일부터 내린 비로 수도권에 큰 피해가 났다. 도심과 주택가 곳곳이 침수됐다. 차량 수천 대가 침수되고, 지하철 운행이 중단되기까지 했다.

서울에는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하루 동안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개봉동 현장 ⓒ출처 서울시

과학자들은 기상 이변을 기후 변화의 직접적 결과로 설명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 한다. 기상 현상에는 늘 예외가 있고 복잡한 현상이라 기온 상승이 어떤 효과를 낼지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폭우의 원인이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 양상이 기온 상승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MBC 재난 방송센터와 인터뷰한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손석우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전반적으로 기온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대기 중에서 가지고 올 수 있는 수증기 양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힘이 발생하더라도 더 많은 수증기가 있기 때문에 더 많은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조천호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은 폭염과 폭우가 이어지는 이유를 더 자세히 설명한다.

“온난화가 일어나면 적도와 극지 사이 에너지 차이가 예전보다 적어진다. 그 결과 [그 사이를 흐르는] 제트기류가 약해지고 뱀처럼 구불구불하는 기류의 패턴은 더 커진다. 오메가형 열돔 현상이라는 건 바로 그 사행(蛇行)이 커진 형태다. 그 상태로 천천히 움직이니까 마치 정체 상태가 된다. 그 아래 고기압이 오면 폭염, 저기압이 있으면 폭우라는 극단적인 날씨가 나타난다.”(〈한국일보〉, 2021년 7월 22일치)

지난해 발표된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6차 제1실무그룹 보고서에서도 “지구온난화 정도가 더 심해지면 거의 항상 육지에서 더 많이 폭우가 증가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기후 변화가 지금처럼 가속되는 한 이런 극단적 기상현상이 앞으로 더 많이 일어날 것이다.

일부 지역의 경우 기상 이변이 아예 일상적 기후로 자리잡게 될 수도 있다. 비교적 강우량이 풍부해 수원을 중심으로 건설된 도시들이 최근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것이 그 한 예다.

그런데도 기후 위기에 책임이 있는 주요 선진국들과 기업주들은 나 몰라라 하고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고 있다.

인재

그러나 폭우로 인한 피해를 전적으로 기후 변화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기후 위기가 가끔 매우 큰 이변을 일으킬 뿐 아니라, 기존 자연 재해의 빈도를 높이고 그 규모도 키운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빗물 처리 제반 시설 부족과 물이 빠지지 않는(불투수) 땅의 면적이 늘어난 것을 상습 침수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도시가 개발되면서 아스팔트가 늘고 물이 흡수될 곳을 잃고 있다. 또한 도시가 홍수를 감당할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고 있다. 예견된 참사라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한국 정부들은(지방정부를 포함해) 기후 변화의 양상에 걸맞은 대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아 왔다.

이번 폭우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서울 강남 일대와 서울 남부 지역은 상습 침수 지역이다. 기상 ‘이변’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기상 ‘이변’의 정도가 예측치를 한참 벗어난 것도 아니다. 서울시는 이미 2011년 우면산 산사태를 겪은 뒤 시간당 100밀리미터의 강우량에 대처할 수 있는 방재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계획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번에 강남구와 서초구 지역에는 시간당 100밀리미터가 넘는 비가 쏟아졌지만, 강남 지역의 시간당 최대 강우 처리 용량은 85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서울시는 2015년에도 ‘강남역 일대 및 침수 취약 지역 종합배수 개선 대책’을 내놓았지만 공사는 차일피일 미뤄져 왔다.

수해방지 관련 예산도 삭감됐다. 서울시의 올해 수방·치수 예산은 지난해보다 약 900억 원이나 삭감됐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649억 원을 삭감한 예산안을 제출했고, 민주당이 다수인 서울시의회는 여기서 또 248억 원을 삭감했다.

취약계층과 평범한 노동자·서민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다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 가족 3명의 비극적인 사망 소식은 기후 위기가 불러온 비극이 단지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해 준다.

이들은 사람이 쪼그려 앉아야 간신히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아래 살았다. 지하 계단에는 이미 물이 들어차 수압 탓에 안에서 문을 열 수 없게 됐다. 물이 금세 어른 허리 높이까지 차오른 가운데 좁은 방에 갇힌 이들은 구조를 요청했지만 결국 사망했다.

저지대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여름마다 엄청난 불안감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가로수를 치우다 구청 노동자가 감전돼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지하철 운행이 중단된 사고는 섬뜩하기조차 하다. 출퇴근 시간에 빗물이 지하철로 밀려 들어오면 대형 참사가 날 수도 있다. 지난해 중국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 바 있다.

비구름이 남쪽으로 내려가며 사고와 피해는 더 늘어날 듯하다. 농경지에 홍수가 나면 물가도 더 오를 것이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것은 취약계층과 평범한 노동자·서민이다. 기후변화는 전 세계적이지만 그에 따른 피해는 계급에 따라 불평등하다.

이런 피해를 줄이려면 도시 인프라를 크게 개선해야 한다. 주거 문제도 해결해야 하며, 교통 시스템도 크게 손봐야 한다. 홍수나 폭염에 대한 대비도 강화해야 한다. 그것도 매우 빨리 해야 한다.

그러나 팬데믹 비용 지출마저 줄이려고 수많은 사람들을 감염 위험에 내몰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몇 년에 한 번 닥쳐올 기후 재난에 대비하려 하지는 않을 듯하다. “재난관리체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라는 윤석열의 지시는 실제로는 구체적 실행과 재정 투입 없이 시간만 끌다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

반지하방 앞에서 애써 표정을 구겨도, 서민용 공공주택 공급보다는 기업주들과 부자들을 위한 주택 공급확대와 부자 감세에 더 정성을 쏟을 것이다. 전쟁 지원에는 공을 들여도 재난 방지 투자에는 인색하다.

갈수록 심해지는 기후 위기의 피해에 맞서 노동계급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기후 위기 자체가 멈추지 않는다면 수백만 명이 사는 도시가 그 변화에 ‘적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기후 위기를 낳고 악화시키고, 무엇보다 그 피해를 불평등하게 전가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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