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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배출권 거래로 기후 위기를 멈춘다고?

오늘날 기후 운동에 압력을 받은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빈말로라도 기후 위기 대응을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화석연료 경제를 최소한만 손보고 싶어한다. 사실상 자본주의 경제 전체가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10여 년 안에 완전히 탈바꿈하려는 시도는 자본가들의 이윤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다.

게다가 최근 경기 불황이 계속되고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까지 벌어지자 선진국 정부들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약속을 슬쩍 거둬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별 효과를 내지 못한 시장 중심적 대책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독일과 네덜란드 등은 석탄발전 감축 약속을 내팽개치고 가동 기간 연장 혹은 재개를 선언했다. 유럽의회는 최근 건설·운송 산업에서도 배출권 거래제를 활용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건설·운송 산업은 발전 산업에 이어 가장 배출량이 많은 부문인데, 직접 규제 대신 대표적 시장 활용 방식인 배출권 거래제를 적용하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시장을 통해 온실가스를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내놨다.

원래 윤석열은 대선 당시 온실가스 감축 협약을 지킬 필요 없다고 했다가 취임 이후 말을 바꿨다. 미국 바이든 등 주요 선진국 지배자들이 주도한 합의에 구색은 맞추려는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효율화 종합대책’은 온실가스 감축을 기업의 자발성에 맡기고 있어서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정부가 기업들과 자발적 협약을 맺겠다는 것이다(가칭 ‘KEEP30’). 기업이 탄소중립과 효율 혁신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을 내놓으면, 정부가 이를 평가해 ESG*를 인증하고 자금을 지원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기후 위기에 주된 책임이 있는 기업주들에게 기후 위기 대응 비용을 청구하기는커녕 오히려 돈을 주겠다는 꼴이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말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주들은 하나 마나 한 계획만 내놓거나 그마저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막대한 지원금은 가져가면서 말이다. 가령 한국에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기업인 포스코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을 0으로 만들겠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강원도 삼척에는 초대형 화력발전소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미미, 기업 후원은 확실

윤석열 정부는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강화하겠다고도 말한다.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각 기업들에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유상 또는 무상으로 할당하는 제도다. 온실가스를 많이 감축해서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배출권이 더 필요한 기업에게 이를 판매할 수 있다.

그리고 정부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을 조금씩 줄여 나가면 배출권 가격이 오를 테니 기업들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매우 미미하다.

첫째, 기업들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실제 배출량보다 훨씬 많이 배출권을 할당한다. 실제로는 감축 압력 자체가 거의 없거나 적은 것이다.

둘째, 온실가스 배출을 상쇄한 것으로 인정되는 조처를 하면 추가로 배출권이 주어진다. 그래서 화석연료를 계속 사용하면서도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메탄 같은 화학적 부산물을 태우거나 나무를 심겠다고 오래된 숲을 밀어버리는 등의 조처로도 추가로 배출권을 얻을 수 있다.

셋째, 화석연료와 배출권 가격이 시장 변동에 따라 오르내리다 보니 기업들에게 일관된 신호를 주지 못한다. 가령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가격이 폭락했는데, 배출권 가격이 낮으면 기업들이 온실가스를 줄여야 할 동기도 사라진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줄이는 조처에 거액을 투자하기보다 사태를 관망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실시됐는데 전체 배출권의 3퍼센트만이 기업들에 유상으로 할당됐다. 그동안 포스코나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은 실제 배출량보다 훨씬 많은 배출권을 공짜로 받고 남는 배출권을 팔아서 이익을 챙겼다.

그래서 탄소배출권 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은커녕 그린워싱을 돕는 기업 후원 정책이라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기업들에 무상으로 할당된 배출권 중 약 6200만 톤이 남았는데 이는 2019년 기준으로 1조 8058억 원 규모다. 여기 포함된 SK 하이닉스, 현대자동차, 한화솔루션 같은 주요 대기업들은 2019년 한 해에만 국내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27퍼센트를 차지했다(〈뉴스타파〉, ‘프로젝트 1.5°C : 고장난 배출권 거래제... 온실가스 내뿜고 돈 번 기업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유상 할당을 늘리겠다고 한다.

그러나 유상 할당 비중이 높은 유럽의 배출권 거래제를 보더라도 탄소배출권 거래제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는 믿을만한 게 못 된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부터 시행돼 온 유럽연합의 탄소배출권 거래제는 고작 매년 0퍼센트에서 1.5퍼센트의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냈을 뿐이다(IOP사이언스).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가 제시한 대로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상 오르지 않도록 하려면 G20 국가들이 평균 매년 11.3퍼센트를 감축해야 하는데도 말이다.

진정한 해결책

시장 원리를 이용해 기후 위기를 멈추겠다던 선진국 정부들의 약속은 공염불이 된 지 오래다. 지난 20년 동안 온실가스 배출량은 계속 늘었고, 팬데믹으로 잠시 줄었던 배출량도 다시 늘고 있다.

사실 2019년에 전 세계에서 분출한 기후 운동이 ‘그린 뉴딜’ 같은 대규모 정부 개입 정책을 요구하거나 ‘체제 전환’ 같은 구호를 내세운 것은 이런 경험에서 비롯한 것이다. 시장에 내맡기는 방식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이런 압력에 밀려 잠시 재정 지출을 늘리는 계획을 내놨지만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계속되자 그런 약속마저 거둬들이고 다시 후퇴하고 있다.

이런 후퇴를 막고 비록 제한적일지라도 실질적인 조처들을 강제하려면 광범하고 강력한 아래로부터의 운동이 필요하다.

더 나아가 기후 위기를 완전히 멈추려면 그것을 낳은 자본주의와는 근본에서 다른 원리로 운영되는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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