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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 위기,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 원인이다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다시금 불거졌다. 롯데건설, 신세계건설, 동부건설 등이 다음 타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위기에 빠진 PF 사업장을 LH가 직접 매입하는 방안과 100조 원이 넘는 금융 지원 방안 등을 밝히고,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발표하며 위기 진화에 나서고 있다.

그럼에도 우려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부동산 PF 부실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미 2022년 하반기부터 상당수 부동산 PF 사업장이 대출 만기를 연장하는 방식으로 연명해 왔다. 특히 토지 구입 등 초기 비용을 지불하기 위해 빌리는 ‘브릿지론’은 부실 위험도가 크다. 수익성 전망이 어두워 아직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한 채 대출 만기만 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부동산 PF 위기가 불거지자 정부는 부실 우려가 큰 187개 사업장에 대출 만기를 연장해 줘 왔다. 이 중 77퍼센트가 브릿지론 단계에 머물러 있는데, 만기 연장 이후 공사를 시작한 사업장은 지금까지 단 한 곳도 없다.

지난해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한 증권사 브릿지론의 80퍼센트가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 만기 연장으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더는 버틸 수 없다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부동산 PF 부실은 자본주의의 무계획적인 생산으로 인해 반복돼 온 위기의 패턴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PF 사업은 건설업자들과 금융업자들에게 막대한 수익을 안겨 줬다. PF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 선진화’ 기법의 일종이라며 도입된 것으로, 담보 없이 사업성을 보고 대출해 주는 것을 뜻한다.

그 전에는 건설사들이 직접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하다가 큰 손실을 보고 파산하는 일이 벌어졌다. PF는 금융권이 건설사의 사업 내용을 평가하고 돈을 빌려 주도록 해, 건설사에 집중돼 있던 위험을 분산시키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시행사는 토지 매입 계약금 정도만 투자해 빚을 내 사업하고, 성공하면 수십 배에 달하는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화천대유자산관리는 자본금 5000만 원을 가지고 대장동 개발 사업에 참가해 수천억 원대의 이득을 봤다. 이런 사업에 돈을 빌려 준 금융권도 높은 이자로 막대한 수익을 챙겼다.

그러나 이는 곧 과잉 투자로 이어졌다. 특히 규제가 좀 더 많은 주택보다 사무실 건설에 투자가 몰렸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이 금리를 인상하고, 한국도 금리를 높게 유지하자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투기 수요가 빠지며 곳곳에서 미분양 사무실·아파트가 늘어났고, 위기에 빠진 PF 사업장이 늘어난 것이다.

부동산 PF 위기는 건설사를 넘어 금융 시장 전반을 뒤흔드는 뇌관이 되고 있다. 그 규모가 클 뿐 아니라 여러 금융 기관들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PF의 규모는 2020년 말 92조 원에서 지난해 9월 기준 134조 원으로 늘었다. 숨은 부채까지 합치면 164조 원이 넘는다는 추산도 있다.

이미 2008년 세계적 금융 위기의 여파로 한국의 부동산 시장도 큰 타격을 받아 건설사의 절반가량이 부도났던 바 있다. 그 여파로 2011년에는 저축은행의 3분의 1이 부도났다. 이후 저축은행에 대한 규제는 일부 강화됐지만, 증권사, 보험사, 상호금융 같은 제2금융권 전반에서 PF 대출과 채무 보증이 크게 증가했다.

세계적 저금리와 PF 위기

최근 부동산 PF 위기가 시행사의 부족한 자본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행사가 전체 사업비의 2~5퍼센트가량의 돈만 대고, 나머지는 순전히 대출받아 사업을 벌여서 사업이 부실화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현상을 짚은 것에 불과한 것으로, 금융권과 건설사가 왜 그런 사업에 돈을 대고 보증을 섰는지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 붐과 거품 붕괴는 여러 차례 발생해 왔다. 예전과 최근 위기의 차이는 거품의 규모가 훨씬 커졌을 뿐 아니라 그 여파 또한 더 커졌다는 점이다.

부동산 PF 위기는 실물 경제의 변화에 근본 원인이 있다.

한국은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자본 축적이 진행되면서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문제를 겪어 왔다.

정성진 교수의 연구를 보면, 한국은 1970~1980년대 대부분의 기간 이윤율이 12~16퍼센트 수준이었지만, 1980년대 후반부터 빠른 속도로 하락해 1990년대 후반부에는 과거의 절반 순으로 떨어졌다.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에스테반 마이토(Esteban Maito)는 한국의 이윤율이 1970년대 58.3퍼센트, 1980년대 31퍼센트, 1990년대 24.1퍼센트, 2000년대 9.5퍼센트로 하락했다고 추계한 바 있다.

물론 정부와 기업주들은 1998년 외환 위기 상황에서 부실 기업을 구조조정하고, 대량 해고와 임금 삭감 등을 통해 노동자 착취를 늘리며 이윤율이 더 크게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그럼에도 수익성은 과거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

이윤율이 떨어지자 실물 경제에 투자하는 설비 투자율(국내총생산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장기적으로 줄어들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연간 설비투자 증가율은 15퍼센트에 가까웠지만, 2000년대에 5퍼센트대, 2010년대에 4퍼센트대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역대 정부들은 금리를 낮추고, 기업 규제를 완화하며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썼다. 세계적인 저금리하에서 풀린 돈이 실물 경제에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부동산 시장 같은 부문으로 더 많이 흘러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지난 몇 년간 급격한 경기 변동이 일어나며 경제가 요동친 것은 부동산 거품이 더욱 커졌다가 더욱 파괴적으로 꺼지게 만들고 있다.

부동산 PF 위기의 원인은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했고, 그 책임은 이제까지 이 체제에서 수혜를 입었던 자들이 져야 한다 ⓒ이윤선

코로나19로 인해 불황이 깊어지자 각국 정부들은 경기를 부양하려고 금리를 거의 0에 가깝게 인하했고, 부동산 거품이 커졌다. 그러나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 공급 차질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해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었다.

그래서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한국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중국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다. 미국도 사무실 공실이 증가하며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금융 위기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낮은 이윤율 속에 금융 부채가 늘어나는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 부양은 일시적으로 기업주들에게 혜택이 됐다. 기업들에게 투자처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빚 내서 집을 사게 하는 수요 부양 정책이기도 했다. 집값이 올라 빚을 내 집을 산 사람들이 소비를 늘릴 여력이 생겼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집 없는 서민이다. 전월세 비용이 크게 올라 생계비 고통이 커졌다. 2021년 기준, 월급을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36년을 모아야 서울에서 25평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 거품이 계속될 수는 없다. 소득이 충분히 늘어나 비싼 주택을 살 수 없다면 빚으로 그 격차를 메우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구 늘어나는 사무실에 들어갈 기업이 별로 없으니 공실도 계속 늘어났다.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이처럼 최근 PF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의 장기적인 문제와 맞물려 심화돼 왔다.

윤석열 정부는 대출 만기를 연장해 주며 거품 붕괴를 미루는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지금까지 저금리 대출을 늘리고, 다주택자들에게 세금을 감면해 주는 등 부동산 수요를 조금이라도 늘리려고 애써 왔다.

그럼에도 최근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에 들어가는 등 위기가 심화되자 “질서 있는 연착륙”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PF 사업장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강조점은 “질서 있는”에 맞춰져 있다. 이는 부동산 PF 위기가 시장 전체를 뒤흔드는 위기로 확산되지 않도록 시장 살리기에 나설 것이라는 말이다.

정부의 막대한 시장 지원 정책은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가 벌어지고 있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부동산 급등기에 건설사와 금융권은 큰 이익을 누렸지만, 위기에 빠지자 정부가 구제해 주는 것이니 말이다.

이는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냉담하게 내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평균 보증금은 1억 3000만 원이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에 지원할 수 있다는 100조 원이면 피해자 77만 명을 온전히 구제할 수 있는 돈이다. 그러나 정부 지원은 서민에게로 향하고 있지 않다.

민주당은 정부에 부실 PF 문제를 미루지 말고 구조조정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말하는 구조조정도 시장을 더욱 안정적으로 살리기 위해 추진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은 말로는 정부의 부동산 세금 감세 등을 비판했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기업과 부자 감세에 협조해 왔다. 2023년 예산안 통과 때도 법인세, 다주택자 종부세 등을 완화하는 세법 개정안을 국민의힘과 함께 통과시켰다. 이미 문재인 정부 시절 기업주와 우파들에 타협하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하고, 부자 감세 혜택을 준 바 있다.

민주당은 개혁 염원 대중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지만 근본에서 지배계급에게 낙점을 받아 집권하려 한다. 이 때문에 경제 위기 상황에서 말과 행동의 격차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경제 위기가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 등 서민의 삶을 지키려면 시장과 기업을 살리기 위해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위기의 원인은 근본에서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했고, 그 책임은 이제까지 이 체제에서 수혜를 입었던 자들이 져야 한다. 이를 위해 대안적 요구를 제대로 내놓는 것도 중요하다.

태영건설처럼 부도 위기에 빠지는 기업들은 기업주의 재산을 몰수하고 무상 국유화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고, 수분양자들에게 피해가 없게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국유화가 사회주의 조처라는 오해를 공유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국가가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은 국가자본주의 조처이지 진정으로 노동계급이 사회를 운영할 권력을 가지는 사회주의적인 조처는 아니다.

그럼에도 국유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거품 붕괴 과정에서 그 고통이 노동자들에게 떠넘겨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맞서려면 정부가 책임지고 국유화해 일자리와 임금을 지키라고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는 국민의 삶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을 뿐 아니라 이에 필요한 자원을 동원할 능력이 있다.

위기가 확산돼 은행이나 금융권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마찬가지 요구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 위기 시기에 임금, 고용 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키고,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등의 서민 지원 조처를 마련하려면 정부와 권력자들에 맞서 아래로부터 투쟁과 연대를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위기의 근본 원인인 자본주의 체제에 맞선 대안을 추구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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