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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전단 문제:
해방은 외부 개입이 아니라 북한 인민 스스로 쟁취하는 것

지난 한 달 넘게 전단과 오물이 풍선에 달려 남북을 오가는 일이 벌어졌다. 남한의 우익 단체들이 대북 전단 풍선을 북한에 날려 보내자, 북한 정부가 보복 차원에서 오물이 달린 풍선을 잇달아 내려보낸 것이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 휴전선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의 대규모 군사 훈련을 재개했다.

이런 조처들은 나중에 남북 간에 갑작스런 충돌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윤석열 정부는 자유북한운동연합 등 우익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를 “표현의 자유”라며 두둔한다.

그동안 윤석열은 ‘자유민주주의를 북한으로 확장하는 것이 통일’이라고 대놓고 말해 왔다. 또한 4월 5일에는 북한에 대한 “심리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대북 전단 풍선을 내버려 두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우익 단체들은 북한 인민이 ‘해방’될 때까지 풍선으로 ‘진실’을 북한 내부에 알리겠다고 한다.

대북 전단 풍선을 보내는 우익 단체들의 행태는 조금씩 다르다. 공개적으로 풍선을 보내어 존재감을 과시하려는 단체가 있고, ‘조선개혁개방위원회’처럼 북한 정부의 방해를 받지 않으려고 은밀히 대북 전단을 뿌리는 단체도 있다.

그럼에도 이런 단체들의 활동에는 ‘외부로부터 제공되는 정보만이 북한을 변화시킬 촉진제’라는 생각이 공통으로 깔려 있다. “[북한은] 정보 통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주민이 스스로 각성하기 어려운 체제 … 그래서 대북 전단 살포가 중요하다.”(이민복 대북풍선단 단장)

이들에게 북한은 남한 사회보다 질적으로 후진적인 “잔인한 봉건적 수령 절대 독재” 사회다(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 그래서 북한 인민은 스스로 의식을 성장시키기 어렵고, 이를 위해선 외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남한 사회와 본질이 다르지 않은 자본주의 사회다. 다만, 민간 자본가가 거의 없고 국가가 집합적 자본가 구실을 할 뿐이다.

북한은 1950~60년대에는 역동적인 경제 성장(즉, 자본 축적)을 구가했고, 지금은 핵무기와 잠수함 등의 무기를 만들어 낼 만큼 상당한 중공업 기반을 갖고 있다. 다만, 인민 대중의 생활수준과 소비재 경공업은 낙후해 있다.

그럼에도 이는 북한에 대규모 노동계급이 형성돼 있음을, 그리고 북한 사회도 자본주의의 모순과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뜻한다. 즉, 착취와 축적의 현실 때문에 북한에서도 계급 갈등이 불가피하고 노동계급은 지배 관료를 상대로 “때로는 공공연한 또 때로는 은밀한” 충돌을 스스로 벌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북한에서 노동계급의 반란이 일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북한 노동자들이 오랜 국가 억압에 의해 원자화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지배 체제를 유지해 온 북한 관료도 근본적 모순을 피할 수는 없다. 그것은 바로 지속적인 자본 축적을 위해 생산수단을 끊임없이 혁신해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이 바로 경직된 관료 지배 체제를 위기에 빠뜨리는 내부로부터의 근본 동력이다.

이런 위기가 일어날 때 아래로부터 반란이 터져나올 빈틈이 열릴 수 있는 것이다.

대북 전단에 담긴 정치는 북한 노동계급이 자력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결코 보지 않는다. 이 단체들 중 상당수는 북한에 대한 개입을 위해 미국 등 서방의 자금 지원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리고 남한 유명 노래와 드라마가 담긴 USB를 풍선에 잔뜩 실어 보낸들 북한 인민이 진실을 깨닫고 반란에 나서게 될까? 북한은 조지 오웰의 《1984》가 묘사하는 듯한 완벽하게 통제되고 획일적인 사회가 아니다. 평소 외부의 대중 문화를 접하는 북한 주민이 이미 많고, 다른 나라 소식을 이러저러한 경로로 아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탈북민들의 여러 증언으로 익히 알려진 바다. 가수 임영웅이나 BTS의 노래가 담긴 USB는 북한 노동계급이 투쟁하는 데 필요한 무기가 못 되는 것이다. 더 일반으로 K-문화의 개인주의가 아니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사회주의적 전통이 북한 노동계급 속의 선전가·선동가 구실을 할 수 있다.

대북 전단이든 확성기 방송이든 북한 인민 자신의 해방에 도움되는 것은 없다

시장 개혁·개방은 북한 노동계급의 대안이 못 된다

대북 전단 단체들은 북한이 “개혁·개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거기서 “개혁·개방”은 자유민주주의(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북한에서 그런 변화는 노동계급에게 진보가 아니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에서 시장 자본주의로 가는 게걸음질일 뿐이다. 노동계급은 여전히 착취받고 차별받을 것이다.

이 점에서 1989/1991년 옛 소련 블록 붕괴의 경험은 북한 노동계급에게 반면교사다.

1989~91년 이후 동유럽/소련 사회는 시장 경제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환은 동유럽과 러시아 대중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지령 경제가 붕괴한 폐허 위에서 노동자들은 계속 희생을 강요받았다.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옛 지배자들(국가 관료)은 그대로 살아남아, 올리가르히 등 사적 자본가들로 카멜레온처럼 변모했다. 반면 1990년대 중반경 러시아 인구의 3분의 1에서 2분의 1이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1990~1995년 사망률은 1000명당 11명에서 15명으로 증가했고, 기대 수명도 크게 줄었다.

북한에서도 시장 지향적 개혁·개방은 노동자들의 삶을 결코 개선시켜 주지 못할 것이다.

북한 노동계급은 국가자본주의도 아니고, 시장 자본주의도 아닌 진정한 대안(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을 추구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 대안은 자유민주주의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진정 민주적인 사회일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그런 투쟁이 벌어진다면 진정한 사회주의자는 이를 적극 지지해야 한다.


북한의 오물 풍선은 남한 대중에 대한 모욕

북한 김정은 정권이 오물 풍선을 남쪽으로 보낸 후, 김여정 조선로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잇달아 담화를 내어 자신들의 오물 풍선 살포를 대북 전단에 대한 상응 조치라고 정당화했다.

그런데 오물 풍선의 피해는 윤석열 정부 정치인들과 부유층이 아니라 남한의 평범한 사람들이 당해야 했다. 북한이 보낸 풍선은 서민들이 사는 주택가와 집 마당에, 농민들의 논밭과 과수원에, 학생들이 공부하는 학교 교정 등지에 떨어진 것이다. 김여정 부부장은 이런 사람들을 “당할 만큼 당해야” 하는 “대한민국 족속들”로 본 셈이다.

6월 9일 담화에서 김여정은 탈북민들을 “쓰레기”라고도 표현했다. 대북 전단을 날리는 일부 탈북민 단체를 문제 삼아, 탈북민 전체를 저주한 것이다. 탈북민 대부분은 남한에서 노동계급의 일부로 — 그것도 가장 천대받는 일부로 — 살고 있는데도 말이다.

김여정 등 북한 지배 관료들의 언행에서는 남한 민중에 대한 존중과 연대 의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올해 초에 ‘남한은 동족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으니, 남한 대중도 그런 모욕을 당해도 싸다고 보는 듯하다.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스탈린주의 지배 관료답게 남한 피지배 대중과 그 운동에 연대할 생각은 전혀 없는 것이다.


대북 전단 막으라고 남한 정부에 요구해야 할까

남한 내에서 때때로 표현의 자유를 유린하는 우파 정부와 우익들이 대북 전단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대는 모습은 역겹다.

그런데 6월 11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대북 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행정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날 민주당의 김동연 경기도지사도 대북 전단을 단속하려고 접경지에서 특별사법경찰의 순찰 활동을 지시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이런 언행에는 위선이 깔려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에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했지만, 대규모 군비 증강과 한미연합훈련 실시 등 대북 전단 살포보다 훨씬 더 위험한 일을 벌였다.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문재인 정부 시절의 남북 관계에 대해 제대로 돌아본 적이 없다.(똑같은 사회적 기반 때문에 그럴 능력이 없다.)

진보당과 정의당은 모두 경찰 등 국가기관들이 나서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당 국회의원들은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촉구하는 국회 결의안도 제안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에는 대북 전단 살포가 휴전선 일대에서 남북 간에 불필요한 긴장을 부를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진보당과 정의당 등이 대북 전단 살포 중지를 국가에 요구하는 것은 좌파에게 부메랑이 돼 돌아올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그런 요구에 잘 응하지도 않겠지만, 우익 단체들은 풍선 말고도 새로운 대북 선전 수단들을 얼마든지 찾아낼 것이다. 반면 그런 통제 강화 논리는 국가가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도 된다는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강화시켜 줄 것이다.

가령 자민통계 언론인 〈민플러스〉 6월 15일 자 기사에서 장창준 객원기자는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그리고 공공복리”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는 헌법 37조 2항을 근거로, 대북 전단 살포는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해당 조항은 국가보안법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돼 왔다(전 국무총리 황교안의 《국가보안법》(2011년, 박영사) 8쪽 참조). 이렇게 대북 전단을 민주적 권리의 예외로 두고 국가 제재를 가하자고 하면, 노동계급을 비롯한 피억압 대중의 표현의 자유를 일관되게 옹호하기 힘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