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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의 반박에 대한 재반박

전국노동자정치협회(이하 노정협)가 발표한 반박문은 나의 비판에 대한 반론을 표방했지만, 실제로는 쟁점에 답하기보다 기존 도식을 더 공격적으로 되풀이하는 데 머문다.

그 반박문은 내 비판과 노동자연대 노선을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명목 하의 양비론”이라고 규정하고, 그것이 결국 옛 소련과 동유럽, “조선”(북한)과 쿠바, 그리고 여러 “반미자주 국가들”에 대한 적대로 흘러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에 공명한다고 주장한다. 또, 트로츠키주의가 프랑크푸르트학파나 구조주의 등이 전파한 “전체주의 반대 이데올로기”를 설파해, “미제를 위시한 제국주의의 인권, 인도주의를 빌미로 한 레짐체인지 공작에 이용된다”고 몰아간다.

이런 반박의 목적은 분명하다. 노정협은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사회주의 운동 내부의 진지한 논쟁으로 다루지 않고, 처음부터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적대와 제국주의와의 공명이라는 틀 속에 가둔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노정협의 반박은 출발부터 진정한 쟁점을 비켜간다. 나의 비판이 문제 삼은 것은 노정협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한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나는 노정협 책이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좌파, 정체성 정치, 트로츠키주의를 지나치게 넓은 하나의 적대 진영으로 포괄하고 그 반대편에 계급, 민족, 국가, 권력, 혁명, 국유화의 언어를 세우며 도식화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핵심 쟁점으로 “차이와 특수성을 자본주의 총체성과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의 문제로 다시 연결할 것인가, 아니면 총체성과 보편성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국가주의(nationalism)와 관료 지배(bureaucracy)를 복권할 것인가”를 제시했다. 즉, 사회주의 운동 내부에서 국가주의와 관료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었는데, 노정협은 이 진정한 쟁점을 회피하고 거기에 “미제국주의 공명”이라는 중상을 하고 있다.

이 허수아비 때리기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하나씩 짚어 보겠다.

1. 진영론의 관점에서 “양비론”이라고 재단하다

노정협은 내 비판이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명목 하에 양비론으로 일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왜 미국과 옛 소련 또는 미국과 현 중국 사이에 어느 하나가 더 낫다고 봐야 하는가?(북한과 관련해서는 일찍이 2002년 우리 단체 운영위원 김하영이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에서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패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니 백철현과 노정협은 우리의 견해를 뭉뚱그려 곡해하고 있는 것이다.)

먼저,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중도 양비론과 다르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우리는 혁명적 입장에서 제기하는 양비론이다. 미국 제국주의를 반대하며, (논리적으로) 이어서 스탈린주의 관료 체제에도 반대한다.

만약 “미국 등 서방에 반대하되 스탈린주의 체제에도 반대한다”는 것이 양비론이라면, 노정협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에 반대하기 위해, 옛 소련의 공식 통계로도 강제노동수용소에서 1936~1938년 대숙청 기간에만도 68만 1,692명이 처형되고 11만 6,000명이 죽은 스탈린의 대숙청에 눈감으라는 것인가? 북한의 민주적 권리 일체 억압을 외면하라는 것인가? 중국의 위구르인 탄압에 침묵하라는 것인가?

이것은 양비론 비판이 아니라, 어떤 국가든 미국과 대립하면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진영논리일 뿐이다. 진영논리는 제국주의 비판을 특정 국가에 대한 지지와 혼동한다.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옳고 지당하다. 하지만 미국 국가에 반대한다고 해서 러시아의 푸틴 정권이나 중국의 시진핑 정권, 이란의 권위주의적 정권을 지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적의 적은 친구”라는 단순화의 오류다. 공동의 적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이해관계나 가치관이 일치한다고 보는 건 논리적 비약이다.

“양비론” 비난을 통해 노정협이 얻어 내려고 하는 것은 합리적 토론이 아니라, 특정 국가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다. 비판하면 “적의 편”이고, 지지하면 “우리 편”이라는 식이다. 흑백논리의 오류이자 거짓 딜레마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 아니라 신앙 고백의 요구다.

2. “국가자본주의론”에 대한 무지와 왜곡

노정협은 노동자연대가 “현실사회주의를 타도해야 하는 국가자본주의로 본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우리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1928년 이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전환됐다고 본다. 그러나 노정협이 이를 두고 서방 자본주의 타도와 동일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왜곡이다. 1947년 이래 국제사회주의경향의 구호는 “워싱턴도 모스크바도 아니다”였지, “모스크바도 워싱턴도 아니다”가 아니었다. 순서가 중요하다.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주적이 국내에 있다”고 강조한 것과 공명해서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인 제1차세계대전 속에서 러시아 혁명가들은 러시아 타도를 논리적으로 앞세우고 독일 혁명가들은 독일 타도를 논리적으로 앞세우는 혁명적 ‘양비론’을 강조했다.

팔레스타인계 마르크스주의자 이갈 글룩슈타인(이하 토니 클리프)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소련 사회의 내적 구조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그 이론은 소련 관료가 국가 기구를 통해 생산수단을 집단적으로 통제하면서 국가 기구를 통해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억압했다는 점이다. 물론 관료 개인들은 서방의 자본가들처럼 생산수단을 법적으로 소유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간접적으로 국가를 통해 생산수단을 지배했고, 개별적으로는 노동자들에 비해 엄청나게 특권적인 삶을 누렸다.

옛 소련과 관련해 우리는 부하린이 20세기 초에 이미 파악했던 자본주의의 변화를 상기할 수 있다. 국제적 경쟁이 심화될수록 자본주의 국가들은 더 긴밀하게 국민경제를 조직하게 된다. 이것은 자본주의의 극복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새로운 형태다. 클리프는 이 통찰을 소련에 적용했다.

크리스 하먼은 《좀비 자본주의》에서 이 논리를 더 발전시켰다. “소련 내부 생산의 조직은 서로 다른 사용가치들(특정 양의 노동, 물리적으로 구분되는 원자재, 특정 종류의 기계)을 조합해 추가적인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배 관료에게 중요했던 것은 이런 사용가치들이 서방 대기업 내부에서 생산된 비슷한 사용가치 조합체와 어떻게 비교되는가였다. 그리고 그것은 소련에서 사용된 노동량을 서방 기업에서 사용된 노동량과 비교하는 것을 의미했다.” 달리 말하면, 소련은 고립돼 존재한 것이 아니라 군사적·경제적 경쟁이라는 형태로 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통합돼 있었고, 바로 그 때문에 가치법칙이 세계적 규모로 소련에 작용했다.

노정협은 이런 분석을 전혀 다루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을 “현실사회주의에 대한 중상”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 그러나 생산의 노동자 통제 없는 국유화와 계획경제가 곧 사회주의라면, 사회주의의 정의는 무엇인가? 마르크스가 말한 “노동자 자신의 행위로서의 노동자 해방”은 어디로 갔는가? 스탈린 치하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일터를 통제했는가? 그들은 경제 계획에 참여했는가? 그들은 정치적 자유를 누렸는가? 노정협은 이 질문들에 답해야 한다.

3. 스탈린주의 체제 비판이 “반공주의”라는 주장에 대해

노정협의 반박에서 가장 위험한 논리는 스탈린주의 체제를 비판하면 제국주의의 “레짐체인지” 공작에 이용된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를 따라가 보자. 스탈린의 대숙청을 비판하면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것인가? 굴라크 수용소를 언급하면 CIA의 첩자인가? 수백만 명이 굶어 죽은 우크라이나 대기근 사실(1932-33년의 ”홀로도모르”)을 인정하면 미국의 프로파간다를 퍼뜨리는 것인가?

스탈린은 1917년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의 모든 업적을 피바다 속에 익사시켰다. 1939년 3월 1일 공산당원 158만 8,852명 중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볼셰비키였던 사람은 고작 1.3퍼센트, 1920년 내전 종료 시점에 당원이었던 사람은 8.3퍼센트에 불과했다. 1917년 볼셰비키 당원 14명 중 1명만이, 1920년 당원 6명 중 1명만이 1939년에도 공산당에 남아 있었다. 볼셰비키와 혁명 러시아 국가 지도부의 약 90퍼센트가 나중에 “파시스트”와 “반역자”로 숙청됐다.

이것이 사회주의인가? 혁명을 실제로 이끈 사람들의 90퍼센트를 학살한 체제가 노동자 국가인가? 트로츠키는 1937년에 이 숙청이 “볼셰비즘과 스탈린주의 사이에 단순한 피의 선이 아니라 온전한 피의 강을 긋는다”고 썼다. 이것은 반공주의 진술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인정이다.

특히, 노동자들은 스탈린 체제 하에서 어떤 통제권도 갖지 못했다. 1929년 9월 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의안은 관리자의 명령이 “그의 부하 행정 직원과 모든 노동자에게 무조건 구속력을 갖는다”고 명시했다. ‘내부 여권(프로피스카 Propiska)’ 제도는 단순한 통행 허가를 넘어 신분 증명, 거주 이전의 자유 제한, 사회적 신분 분류(도시인 대 농민) 등 복합적인 통제 수단이었다. 국가가 노동자의 이동을 통제하고 직업 이력을 관리하는 수단인 ‘노동수첩(Trudovaya Knizhka)’이 도입돼 노동 규율이 강화됐다. 노동조합은 국가의 부속물(말 그대로 어용)이 돼 임금 협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것은 서방 자본주의 공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노정협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외면한 채 “현실사회주의”를 옹호한다. 그러나 그들이 옹호하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 지배다. 그들은 국유화를 곧장 사회주의와 동일시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즉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라는 원칙을 폐기한다.

4. 노동자연대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설파”?

노정협 반박문에서 가장 눈에 띄는 왜곡은 노동자연대가 “반미자주 국가들을 전체주의 국가로 비난한다”고 주장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본지에서 노정협이 문제 삼는 “전체주의” 규정이 제시된 적은 없다. 그저 노정협 총노선의 성격을 “스탈린주의의 복권 시도”로 규정하고 있다. “전체주의” 규정은 노정협 측의 우연한 오해가 아니라 논쟁 방법 문제다. 노정협은 상대방이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지 따라가면서 비판하기보다, 먼저 “전체주의 반대 공명,” “제국주의 공명,” “양비론” 같은 판정을 내려 놓고 상대방의 언술을 그 틀에 맞춰 재구성한다. 지난번 내 비판이 노정협 주장들의 특징으로 지적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니 논쟁이 논쟁다워질 수 없다. 처음부터 판결이 내려져 있기 때문이다. 노정협 반박문이 노동자연대에게 “전체주의”라는 개념을 억지로 끼워 넣은 것도 그 습관의 연장선에 있다.

내가 서평한 노정협 책 자체를 보면 왜 이런 왜곡이 나오는지 더 분명해진다. 그 책은 여러 곳에서 “민주주의 대 독재,” “다원주의 대 전체주의” 같은 인식이 서방 제국주의가 유포하는 최신 프로파간다라고 말하고, 여성과 성소수자를 억압하는 이란, 러시아, 중국, “조선”(북한) 등을 “전체주의 국가”로 규정하는 인권·민주주의 담론이 제국주의의 색깔혁명에 활용된다고 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칼 포퍼가 파시즘과 소련 사회를 동일하게 비판했다고도 비난한다. 다시 말해, 노정협에게 “전체주의”는 이미 자신들의 핵심적 대항 서사 속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상대방이 실제로 그 개념을 중심으로 사고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스탈린주의 비판 일반을 곧바로 “전체주의” 이론의 자리로 밀어넣는다. 이것은 상대방을 이해한 결과가 아니라, 도식화의 관성이다.

그러나 노정협의 “전체주의” 개념 비난은 또한 심각한 함정을 품고 있다. 클리프는 《소련 국가자본주의》의 부록에서 소련을 자본주의가 아닌 별도의 신종 “전체주의” 사회로 보는 입장을 정면 비판한다. “전체주의”는 국가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완전한 통제를 행사한다는 뜻이다. 클리프는 특히 맥스 샥트먼이 소련을 “전체주의적 관료 집산주의”로 보는 대목을 소개한 뒤, 그런 관점이 계급투쟁을 지워 버릴 뿐 아니라, 논리적으로 결국 자본주의를 스탈린주의보다 덜 반동적인 것으로 보게 돼, “자본주의를 스탈린주의로부터 방어”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미끄러질 것이라고 꼬집는다(이는 정확히 미래를 내다본 것이다). 클리프는 그 대신 자본주의의 한 변형으로 소련을 인식한 것이다.

클리프는 부연한다. 전체주의는 국가(와 관료)가 사회를 전면적으로 통제하려는 사상, 원리, 통치 방식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데, 단지 독재인 것만은 아니다. 정치만 장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하나의 중앙 권력 아래 두고, 개인과 집단의 자율성을 억누르며, 국가 기구의 절대적 통제를 관철하는 체제와 그 원리다. 독재와의 차이를 덧붙이자면, 독재는 권력이 소수나 1인에게 집중된 상태를 넓게 가리키고, 전체주의는 그 집중된 권력이 사회 전체(사상, 언론, 교육, 문화, 조직 활동, 때로는 사생활까지)를 남김없이 조직하고 통제하는 더 강한 지배 형태를 뜻한다. 그래서 “전체주의” 규정은 애초부터 소련 사회 내부의 변화 가능성을 부정하는 함의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함의가 클리프가 “전체주의”라는 소련 사회 성격 규정을 거부한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그 규정이 소련 사회의 계급 성격, 축적의 동력, 내부 모순, 노동계급의 존재와 역할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전체주의” 규정이 체제를 너무 닫힌 것으로 그려서, 혁명적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내부 모순과 주체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부한 것이다.

따라서 노정협이 노동자연대가 소련을 “전체주의로 규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또다시 의도적 왜곡이다. 앞으로 우리 중 누군가가 스탈린 체제가 전체주의적이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의 통치 방식에 관한 말이지, 소련 사회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규정은 아닐 것이다. 클리프 저작을 실제로 읽었다면 이 점을 모른 척할 수 없다. 노정협의 비난은 클리프를 인용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샥트먼류의 논리를 클리프에게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왜곡에는 논리가 있다. 이 논리대로라면 어떤 국가든 미국과 적대하면 내부 억압에 대한 비판에서 면제된다. 그런 국가의 억압 문제 자체를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인가? 이것은 실제로는 억압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논리다.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반대 활동가들(지금 아사드는 모스크바 외곽의 부유층 거주 구역인 루블료프카 내 빌라와 시내 중심가의 고층 아파트를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이란의 여성들, 중국의 위구르인 등이 자신들의 고통을 호소하면, “당신들은 제국주의에 이용당하고 있다”고 말할 것인가?

그런데 스탈린주의 노선이 세계의 혁명을 매장한 역사가 있다. 이는 반공주의자들의 창작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일찍이 1967년 크리스 하먼은 당시 《신좌파평론(NLR)》 편집위원인 헝가리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크러쇼 니촐러시(Krassó Nicolas)와 논쟁하면서 이런 문제를 다뤘다. “1920년대 중국, 1930년대 독일·프랑스·스페인, 1940년대 이탈리아·그리스에서 동일한 총노선이 득세했다. 모스크바의 영감을 받은 이런 노선이 없었다면 이 나라들에서 혁명이 성공했을 것이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성공 가능성이 더 컸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1948년 소련은 시온주의 준군사조직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종청소할 때 이스라엘 국가 건설을 지지했다. 체코슬로바키아는 곧 이스라엘 군대(IDF)의 핵심이 될 시온주의 하가나 민병대에 결정적인 무기를 공급했다. 이스라엘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은 나중에 이렇게 술회했다. “체코슬로바키아 무기가 이스라엘 국가를 구했다, 정말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그 무기 없이는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 알제리 독립 전쟁도 들 수 있다. 1956년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 총리 기 몰레가 알제리 영토를 “수호”하기 위해 “특별 권한”을 장악했을 때 이를 지지했다. 당시 프랑스 공산당의 원내 대표 자크 뒤클로는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의 정치적·경제적·문화적 유대의 영속성”을 주장하며 프랑스 공산당의 지지를 정당화했다.(당시 프랑스 공산당 자체의 대표는 모리스 토레즈였다. 그러나 토레즈가 건강 악화로 소련에서 장기 요양을 하거나 활동에 제약이 많았기 때문에, 뒤클로가 사실상 당의 일상 업무와 원내 전략을 총괄하는 실권자 역할을 했다.)

이 투표와 프랑스 공산당의 태도에 절망한 마르티니크 출신의 흑인 시인 에메 세제르(Aimé Césaire)는 모리스 토레즈에게 공개 서한을 보내어, “유럽의 공산주의가 식민지 민중의 고통을 외면하고 있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프랑스 공산당의 이런 행보는 스탈린주의 정당이 국가(민족)주의적 이익을 위해 국제주의적 원칙을 저버린 배신 행위였다. 또한 신좌파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

노정협은 이런 역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소련의 이스라엘 건국 지지도 반제국주의였나? 프랑스 공산당의 알제리 식민 지배 지지도 민족해방 투쟁의 일부였나?

5. 트로츠키주의자들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설파?

노정협 반박문의 한 가지 약점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비롯한 상이한 사회이론들을 우악스럽게 뭉뚱그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거기에 트로츠키주의도 욱여넣는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나 프랑스의 구조주의 등 포스트모더니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이데올로기가 구사하는 전체주의 반대 이데올로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학파와 구조주의는 계보가 전혀 다르며,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인 트로츠키주의와 노동자연대는 이들 모두와 국가, 계급, 혁명, 역사, 민주주의 문제를 놓고 기본적으로 다른 입장이다. 이 차이를 무시한 채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앙상한 공통 표지 하나로 전부 일괄 처리해 버리면 사유의 궤적이나 이론적 엄밀함은 사라지고 낙인만 남는다.

캘리니코스의 《사회이론의 역사》(한울, 2021)는 이런 식의 도매금 취급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프랑크푸르트학파를 결코 우호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 핵심 인물들이 1939~1940년의 재앙 이후 “당분간 사회주의 변혁 전망에 작별을 고했다”고 말한다. 또, 호르크하이머가 스탈린주의든 파시즘이든 그 국가를 국가자본주의의 형태로 보면서도, 미래의 혁명을 더는 사회적으로 닻을 내린 실천이 아니라 한낱 희망으로 축소했다고 지적한다. 더욱이 그들의 전망은 로스앤젤레스 망명기에는 더욱 절망적으로 강화됐고, 문화산업 비판도 결국 후기 자본주의 구조 안에서 탈출구를 제시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급진화됐다고 분석한다. 이것은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제국주의의 벗”이라든가 “반전체주의 진영”의 일부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론적 공헌과 정치적 후퇴를 함께 비판적으로 읽는 태도다. 캘리니코스는 그들을 존중할 만한 사회이론 전통으로 다루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날카롭게 비판한다.

노정협이 이런 사실들을 무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프랑크푸르트학파와 트로츠키주의를 도매금으로 넘기는 것은 사상의 스펙트럼을 모조리 지워 버리는 거칠고 우악스러운 태도다.

노정협의 혼동 때문에, 잠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전체주의” 용어 사용을 언급하고 넘어가야겠다. 그들의 그 용어 사용은 자유주의자들이 사용하는 방식과는 그 궤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전체주의를 단순한 독재 체제로 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회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통제 메커니즘으로 변하는 과정으로 이해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공저인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전체주의를 인류 문명 전체의 비극으로 확장했다. 그들은 나치의 가스실이 단순히 광기의 결과가 아니라, 모든 것을 계산하고 효율화하려는 “도구적 이성”이 극단화된 결과라고 봤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미국의 대중 문화와 문화 산업도 일종의 “부드러운 전체주의”로 봤다. 나치가 물리적 폭력으로 개인을 통합했다면, 소비 자본주의는 문화적 조작을 통해 개인의 비판 의식을 마비시켜 체제에 순응하게 만든다는 것이었다.

1960년대 헤르베르트 마르쿠제는 이를 “일차원적 사회(One-Dimensional Society)”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했다. 그는 선진 산업 사회가 기술 진보를 통해 대중의 욕망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저항의 가능성을 거세했다고 주장했다. 현대 사회는 겉으로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술적 합리성이 모든 사유를 지배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라는 것이었다. 결국 프랑크푸르트학파는 “전체주의”라는 용어를 수용했지만, 이 용어를 소련과 독일을 비난하는 도구로만 쓴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 문명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내포한 억압성을 폭로하는 칼날로 사용했던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이런 접근이 자본주의의 토대보다는 ‘이성’이나 ‘문화’ 같은 상부구조에 치중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구조적으로 낳는 야만성(전쟁, 파시즘 등)을 그들은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6.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중상

노정협은 트로츠키주의를 (심지어 포스트모더니즘과 같은 범주에 놓고는 둘 다) “제국주의 프로파간다”라고 규정한다. 이것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다.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스탈린의 반혁명에 맞서 혁명의 유산을 지키려 한 유일한 조직적 세력이었다. 크리스 하먼은 내가 위에서 언급한 1967년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스탈린주의 기구가 국내에서 혁명을 파괴하고 국외에서 혁명을 가로막는 것에 맞서 매일같이 투쟁한 세력은, 전 역사적 시기를 통틀어 오직 반대파뿐이었다.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 운동에 가한 왜곡에 맞서 홀로 저항하며 그 전통을 지켜 온 것도 그들뿐이었다.”

크러쇼가 참여한 1956년 헝가리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 정권에 맞서 자신들의 민주적 조직을 세웠고, 이것들은 새로운 ‘혁명적 지배 기관’이 될 수 있었다. 당시 특파원으로서 진실을 말하고자 했던 영국인 기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 피터 프라이어가 목격한 것처럼, “헝가리 노동자들은 마르크스·엥겔스·레닌의 책에서가 아니라 실제 삶에서 혁명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혁명은 소련 탱크에 의해 분쇄됐다.”

노정협의 논리대로라면, 헝가리 노동자들의 봉기도 “제국주의 프로파간다”인가? 1968년 프라하의 봄도 CIA의 음모인가? 1980-81년 폴란드 솔리다르노시치도 서방의 공작인가? 이런 식으로 미국과 갈등 빚는 나라들의 노동자 저항을 모두 제국주의의 조종으로 치부하면, 노동계급의 자체 활동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계급 사회로서 소련과 동구권도 서방과 마찬가지로 위기와 계급 투쟁으로 점철됐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1953년 체코슬로바키아와 동독, 1956년 폴란드와 헝가리,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1980~1981년 폴란드에서 봉기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에 소련과 우크라이나 탄광, 벨라루스에서의 파업은 소련 붕괴를 촉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봉기들은 외부 조종의 산물이 아니라 지배 관료가 자본 축적을 위해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쥐어짜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1953년 베를린 노동자 봉기 전에 동독의 집권 사회주의통일당(SED)은 건설 부문의 새 노동규범(사실상 10퍼센트 임금 삭감)이 필요한 이유가 “축적이 오직 노동생산성의 지속적 진전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기” 때문임을 인정했다.

7. 제국주의 이론 결여

노정협의 반박에서 가장 심각한 이론적 약점은 제국주의론의 부재다. 그들에게 제국주의는 오직 미국과 서방 자본주의 국가들만의 일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또다시 부하린의 통찰을 상기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국제화가 심화될수록 역으로 기업과 국가의 상호의존과 유착 경향이 증대한다. 이것은 국가자본주의의 시대를 열었다. 소련은 이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였을 뿐,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은 어떤가? 1949년 중국 혁명은 봉건제와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했다. 그러나 1917년 러시아와 달리, 그것은 노동자들이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운영하기 시작하는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민족주의 혁명이었다. 중국 공산당과 인민해방군이 베이징에 입성했을 때 환호하는 노동자 군중이 거리에 늘어섰지만, 이 노동자들은 혁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노동자 평의회나 코뮌이 사회를 통제하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공장을 운영하지 않았다.

노정협은 중국을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국가”로 규정하면서 유럽 공산당들이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여기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면, 중국의 억만장자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억만장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중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독립 노조의 부재, 파업 탄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위구르인들에 대한 대규모 수용소는 어떻게 정당화할 것인가?

오늘날 중국의 국유기업은 제조업 생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지만, 민간 자본도 아주 엄격한 국가 통제를 받는다. 모든 기업체는 2015년 국가안전법에 따라 국가안보의 일부로 정의되며, 모든 기업은 기업의 전략적 결정과 채용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공산당 세포를 둬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의 생산 통제(사회주의의 싹)인가?

8. “노동자연대는 정치적 대안 없는 패배주의와 청산주의”?

노정협은 우리 단체의 입장이 “정치적 대안 없는 패배주의와 청산주의, 무정부주의에 빠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완전히 틀렸다. 노동자연대가 제시하는 대안은 분명하다. 그것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다.

네팔은 스탈린주의 2단계 혁명론의 난점을 잘 보여 준다. 쿠날 차토파댜이에 따르면, 네팔 노동계급은 해외 이주 노동자를 포함해 상당한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들의 송금이 국내 산업 생산 전체를 넘으며, 이들은 네팔 경제 재생산의 중심에 있다. “혁명적 잠재력은 집중된 중공업이 아니라 전략적 경제 위치를 점하는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노동자들에게 있다. 네팔의 제한된 산업 부문이든, 국내 경제를 지탱하는 국제 노동 회로에서든.” 차토파댜이가 강조하듯이, 진정한 대안은 노동계급의 독자적 조직화에 있다.

그러나 네팔의 공산당들은 의회 제도에 통합됐고, 무장 투쟁을 했던 마오주의자들도 (단계혁명론에 따라) 결국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목표로 삼았다. 네팔의 마오주의 이론가이자 정치학자로, 2011~2013년 총리까지 지낸 바부람 바타라이는 2001년에 한 언론인에게 이렇게 강조한 바 있다. “우리가 ‘공산주의 공화국’이 아니라 부르주아 민주공화국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 주십시오.” 결국 무장 투쟁이든 의회 노선이든 목표는 같았다. 소위 ‘민족 자본주의’의 준비 단계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향해 무장 투쟁을 하다가, 결국 부르주아 의회 정치에 흡수되는 네팔의 사례는 스탈린주의 2단계 혁명론의 막다른 골목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이것이 노정협이 말하는 “정치적 대안”인가?

9. “사상투쟁의 역사성과 진보성,” “과학적 이데올로기와 실천의 무기”

노정협은 “제국주의의 강력한 프로파간다와 레짐체인지 공작” 속에서 이데올로기 투쟁이 이뤄졌음을 강조하며, 이 점을 도외시하면 “사상투쟁은 역사성과 진보성을 잃어버린다”고 말한다. 여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다. 냉전 시기 서방이 문화 전선에서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CIA가 문화자유회의를 지원했고, 각종 재단과 기금이 특정 사상의 확산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왜 특정 사상이 공명을 얻는지 설명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은 1968년 운동의 최종 패배와 노동운동의 후퇴, 옛 동구권 체제에 대한 환멸, 대학과 문화산업의 재편, 신중간계급의 확대 같은 역사적 조건과 연결시켜 설명해야 한다. 외부 조종설은 이런 분석을 회피하게 만든다.

하먼이 1967년 논설에서 말했듯이,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정당들과 개인들의 정치적 활동은 오직 경쟁하는 사회 세력들의 틀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 크러쇼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에르네스트 만델의 인식 부재를 비판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정치 행동과 사회 세력의 상호관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노정협도 마찬가지다. 노정협은 포스트모더니즘을 CIA의 음모로, 스탈린주의 비판을 제국주의의 프로파간다로 치환함으로써 실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노정협은 또한 이렇게 말한다.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현학적 지적담론이 아니라 현실의 투쟁 속에서 나왔고 실천의 무기이자 혁명의 나침반이 되어야 한다.” 이 점에 당연히 동의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정직한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노정협이 말하는 “과학적 이데올로기”가 스탈린의 범죄를 은폐하고, 관료 지배를 사회주의로 분식하고, 노동자 봉기를 제국주의의 음모로 치부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교리일 뿐이다. 그런 이데올로기는 실천의 무기가 아니라 억압의 무기다. 하먼이 말했듯이, “현실을 총체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려는 과정에서만 현실을 파악할 수 있다. 스탈린과 좌익반대파 사이의 투쟁에서 한쪽은 그런 변화를 위해 투쟁했고, 한쪽은 그에 반대했다. 비록 효과가 없었을지라도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상대편에게 가장 유능한 지도자들 전체를 숙청할 압도적 자원과 능력이 있었다는 것과, 세계 사회주의 운동의 연이은 패배라는 전반적 맥락을 감안해야 한다.”

과학적이기는커녕 노정협 반박문은 나의 비판이 제기한 “국가주의와 관료 지배 복권”이라는 문제에 답하지 못한 채 그 비판을 다시 “반미자주 국가들에 대한 ‘전체주의’ 비난”으로 둔갑시킨다. 그러나 관료 지배와 노동자 민주주의 부재를 비판하는 것은, 어떤 국가를 자유주의적 척도로 낙인찍는 것(“전체주의”)과 전혀 다른 문제다. 본지는 거듭 계급을 차별과 억압을 지우는 상위 진리가 아니라 현실 변혁의 전략적 범주로 재정립해야 하고, 관료 지배와 국가주의를 해방의 본령처럼 제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 논점에 대해 노정협은 답하지 않는다. 답하지는 않고, 자신들에게 훨씬 익숙한 진영론과 환원론으로 논쟁의 장을 옮겨 버린다.

우리는 정체성 정치 일체를 자유주의라고 보지 않는다. 우리는 차별받는 집단의 자기조직화와 자기명명의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자유주의적 대표성 정치와 제도 내 포섭으로 굳어지는 경우를 비판한다. 계급도 다른 차별들을 덮는 상위 범주가 아니라, 다른 차별 문제를 자본주의 구조와 집단적 힘의 문제로 연결하는 전략적 범주로 설명한다. 이처럼 우리의 입장은 정체성 정치를 모두 자유주의라고 도매금으로 매도하기를 거부하면서도, 자유주의적 형태의 정체성 정치를 비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정협은 이런 뉘앙스를 지워 버리고, 인권과 차별 담론 전체를 제국주의가 계급투쟁을 해체하려고 퍼뜨린 신좌파 다원주의로 통째로 처리한다. 이렇게 하면, 자유주의적 포섭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 반대 투쟁 일반에 대한 냉소로 미끄러질 위험이 크다.

게다가 성질이 다른 사상들을 너무 동질화해서 파악하는 바람에 노정협의 논의는 정밀하지 못하게 되고, 서로 다른 이론적·정치적 논점들이 모두 “계급 부정” 또는 “제국주의 동조”라는 낙인 아래 뭉개진다. 이것은 단지 이론적으로 부정확할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해롭다. 무엇이 자유주의적 포섭이고, 무엇이 차별받는 집단의 정당한 저항이며, 무엇이 국가주의적 반동이고, 무엇이 해방적 마르크스주의의 내부 비판인지 구분할 능력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이론이 어떤 질문에 답하려 하는지, 그것이 어떤 역사적·지적 맥락에서 형성됐는지를 중시해야 한다. 그러나 노정협은 먼저 정치적 판결을 내리고, 그 판결에 맞춰 대상을 재구성한다. 그러니 설명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10. 누구를 위한 이론인가?

노정협의 반박은 결국 하나의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누구를 위한 이론인가?

노동자연대가 견지하는 입장은 분명하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위한 이론을 추구한다. 이는 미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포함한다. 동시에, 스탈린주의 관료 지배에 반대하는 것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둘 다 노동계급의 해방에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 정치 대신에 우리에게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정치가 필요하다. 이것은 노동자 착취를 폐지하고 여성과 성소수자 차별, 인종차별을 근절시킨 사회를 위해 싸우는 정치다. 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마르크스 자신의 말대로)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계급 자신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는 노동계급 사람들이 자기 삶을 통제하고 스스로 사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노정협이 옹호하는 것은 이런 사회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관료의 지배, 국제주의 아닌 국가주의, 당의 대리주의적 지배다. 노정협의 “국제주의”는 특정 국가들(중국, 북한, 러시아 등)에 대한 무비판적 지지로 대체된다. 그 국가들에게 노동자는 해방의 주체가 아니라 통제의 대상이다. 그 국가들에게 비판은 허용되지 않고, 충성만 요구된다.

이것이 사회주의인가? 이것이 노동계급 해방인가?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인가?

노동자연대는 소련에 대한 트로츠키 결론의 일부에는 동의하지 않아도(계승하되 맹신하지 않는다), 그가 평생 싸웠던 스탈린주의와의 투쟁과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수호라는 과업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확신한다. 이 점에서 스탈린주의 비판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 없이, 관료 지배에 대한 비판 없이, “현실사회주의”라고 불린 사회 체제의 실제 성격에 대한 정직한 평가 없이는,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또다시 막다른 골목에 빠질 것이다. 노정협의 반박은 이 오래된 함정으로 우리를 이끌려 한다. 우리는 그 초대를 거부한다.

11. 결론: 반박이 아니라 자기 신조(信條)의 재확인

결국 노정협의 반박문은 내 비판에 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가 실제로 제기한 비판에 답하지는 않고, 내가 하지 않은 비판을 덧씌웠다. 논쟁 회피의 수단으로서 지엽적 쟁점으로 곁가지 치기다. 게다가 조야한 도매금 논리로 대응했다. 사상을 다루는 바람직한 태도는 서로 다른 색조를 구분하고, 각각의 강점과 약점, 역사적 조건과 정치적 효과를 따지는 것이다. 노정협의 반박문은 정반대로 차이를 지우고 싸잡아 규탄한다. 그러니 그들의 글은 반박이라기보다 혼동의 재연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선명한 낙인이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자유주의적 형태의 정체성 정치의 약점을 비판하되, 그것을 스탈린주의의 복권으로 이어 가지 않는 반포스트모더니즘이 필요하다. 차별 반대 투쟁을 계급 정치의 바깥으로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자유주의적 포섭을 비판해야 하고, 국유화와 계획의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노동자 민주주의와 아래로부터의 통제를 사회주의의 기준으로 세워야 하며, 제국주의 반대를 국가 숭배가 아니라 국제주의로 끌고 가야 한다. 내 비판이 열어 놓은 쟁점은 바로 이것이었다. 노정협의 반박은 그 쟁점에 답하기는커녕, 왜 그런 쟁점 제기가 필요한지를 다시 한번 입증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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