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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 노정협의 스페인 내전사 다시 쓰기를 반박한다

이 기사를 김인식의 기사 ‘스페인 혁명과 반혁명: 1936~1939년’과 함께 읽으면 유익할 것이다.

전국노동자정치협회(노정협) 등 스탈린주의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말해 역사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세운 것이다. 그들은 스페인 혁명의 패배를 프랑코를 도운 히틀러·무솔리니의 개입, 영국·프랑스의 배신적 비개입, 그리고 “트로츠키주의자와 아나키스트의 내부 혼란”이 결합된 결과라고 설명한다. 1 특히 켄 로치의 영화 〈땅과 자유〉를 “부르주아 선전물”, “반공주의 비방과 왜곡”이라고 주장하며, POUM과 아나키스트가 공화국 후방을 교란해 파시즘의 승리에 기여했다고 주장한다. 2

그러나 이 설명은 결정적인 것을 보아 넘긴다. 스페인에서 문제의 핵심은 ‘전쟁이냐 혁명이냐’가 아니었다. 실제 문제는 ‘혁명을 억누른 채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는가’였다.

혁명적 좌파의 대답은 단호하다.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프랑코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하게 일관된 사회 세력은 노동자와 빈농이었고, 그들의 힘은 공장 점거, 토지 몰수, 민병대, 노동자·농민 위원회 같은 혁명적 동력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3 이 동력을 억누르고 부르주아 공화국의 낡은 국가기구를 복원한 것이야말로 패배의 핵심 원인이었다. 4

스탈린주의자들은 “먼저 전쟁에서 이기고, 혁명은 나중에”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구호는 현실에서는 “먼저 혁명을 해체하고, 그 결과 전쟁도 진다”는 뜻이 됐다. 5 스페인의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지는 파시스트보다 노동자와 농민을 더 두려워했다. 프랑코의 군사반란이 시작됐을 때 공화국 지도자들은 노동자 무장을 거부하거나 지연시켰고, 바로 그 때문에 노동자와 수병, 민병대가 스스로 행동에 나서 상황을 구했다. 6

스탈린주의자들의 첫 번째 왜곡은 스페인 혁명의 실제 성격을 은폐·축소하는 것이다. 그들은 스페인이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공화국 방어”의 단계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스페인 내전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를 부정하고 곧장 프롤레타리아 독재로 나아가려 했다고 비난한다. 7

그러나 바로 같은 책의 다른 글이 이 논리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그 문서는 프랑코의 공격 이후 “스페인 내전의 성격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격으로 변화했다”고 인정한다. 8 또, 새 정부가 “내용과 형식에서 기본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것”이었고, 유약하고 우유부단했다고도 인정한다. 9 여기서 도출돼야 할 결론은 무엇인가?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공화국을 추수(追隨, 뒤쫓아 따름)할 것이 아니라 독립적 권력기관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들은 정반대 결론을 이끌어 냈다. 그들은 부르주아 공화국을 “새로운 유형의 인민공화국”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실제로는 낡은 국가기구의 복원을 도왔다. 10

둘째 왜곡은 민중전선(이하 인민전선)을 레닌주의적 통일전선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이다. 트로츠키주의가 비판한 것은 파시즘에 맞선 공동 행동 자체가 아니었다.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들이 파시즘에 맞서 함께 행동하는 것은 필요했다. 문제는 노동자 조직들이 부르주아 공화주의자들에게 정치적으로 종속된 것이었다. 인민전선은 노동자 정당들 사이의 행동 통일이 아니라 노동자 정당들을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에 종속시키는 계급협조 정책이었다. 11

스탈린주의자들은 이것을 “광범위한 반파시스트 단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 “단결”은 누구의 주도권 아래 있었는가? 노동계급의 주도권 아래 있었는가, 아니면 소유권과 부르주아 국가를 보존하려는 공화주의자들의 주도권 아래 있었는가? 현실은 후자였다. 프랑코에 맞서 싸울 실제 세력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있었지만, 정치적 통제권은 부르주아 공화국을 보존하려는 세력에게 넘겨졌다. 12 이 모순이야말로 스페인 내전 패배의 핵심이었다.

셋째 왜곡은 노동자·농민의 혁명적 조처를 “혼란”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 문서는 POUM과 아나키스트가 규율을 거부하고 일부 지역에서 무분별한 토지 집산화를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13 그러나 1936년 7월 이후 스페인의 여러 지역에서 노동자와 농민이 공장과 토지를 장악한 것은 책상머리 모험주의의 결과가 아니었다. 그것은 프랑코 반란과 부르주아 국가의 붕괴에 대한 대중 자신의 대응이었다. 당시 정부는 신뢰할 군사력을 갖지 못했고, 노동자·농민의 혁명위원회와 시민군(이하 민병대)이 실질적 권력을 행사하는 이중권력 상태가 형성됐다. 14

이것을 “무질서”라고 부르는 것은 부르주아 질서의 관점이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접수하고 농민들이 토지를 몰수한 것은 프랑코에 맞설 사회적 기반을 넓히는 조처였다. 파시즘은 단지 군사 반란이 아니라 지주, 자본가, 장교단, 고위 성직자 계층, 식민주의적 군대의 반혁명적 결집이었다. 따라서 그 물질적 토대를 건드리지 않고 파시즘과 싸운다는 것은 환상이다. 토지·공장·상점을 인민의 손으로 넘기는 사회주의 혁명 강령만이 파시스트 군대의 병사들을 흔들 수 있었다. 15

넷째 왜곡은 POUM을 곧 트로츠키주의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즐겨 쓰는 전형적 수법이다. 노정협은 POUM이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의 영향을 받았다면서도, 같은 문서에서 트로츠키가 POUM 창당 방식과 노선에 반대했고 POUM을 비판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16 이것은 결정적이다. 트로츠키주의는 POUM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 않았다. 오히려 트로츠키는 POUM이 너무 급진적이어서가 아니라 (혁명과 개혁 사이에서) 중도주의적이고 우유부단해서, 즉 인민전선의 왼쪽 꼬리 노릇을 했기 때문에 비판했다. 17

트로츠키는 POUM이 아나키스트 지도자들과 정면 대결하지 않았고, 아나키즘 노동조합인 CNT 내부에서 혁명적 경향(분파)을 건설하지 않았고, 독자적 노동자 권력기관을 일관되게 세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POUM이 말로는 사회주의 혁명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카탈루냐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해 노동자들을 혼란시키고 사기를 꺾었다고 보았다. 18 따라서 스탈린주의자들이 “POUM의 오류 = 트로츠키주의의 오류”라고 말하는 것은 반쪽 진실 말하기 방식의 왜곡이다.

다섯째 왜곡은 1937년 5월 바르셀로나 사태를 “POUM의 쿠데타”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스탈린주의 문서는 POUM이 공화 정부와 군사적으로 충돌했고 사실상 제5열(아군 내부의 적 지지 세력) 차원으로 전락했다고 주장한다. 19 그러나 실제 발단은 스탈린주의자들이 장악한 경찰이 CNT가 통제하던 바르셀로나 전화교환소를 장악하려 한 사건이었다. 노동자들은 이 도발에 맞서 총파업과 바리케이드로 대응했다. 20

이것을 “POUM 쿠데타”라고 부르는 것은 완전한 역사 조작이다. 노동자들이 반응한 것은 후방 교란 욕구 때문이 아니라, 1936년 7월 자신들이 피로 쟁취한 권력과 무장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랑코와 싸우지 않으려 한 것이 아니라, 프랑코와 싸울 수 있게 해 준 혁명적 추동력을 방어하려 했다. 21

여섯째 왜곡은 국가와 군대의 문제를 “규율 대 무질서”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POUM 민병대와 노동자 민주주의를 조롱하고, 단일 지휘와 전문 군대를 전쟁 승리의 조건으로 내세운다. 물론 혁명 전쟁에는 규율과 중앙집권이 필요하다. 그러나 질문은 언제나 “어떤 계급의 중앙집권인가”이다. 노동자 권력에 기초한 (러시아 혁명 때의) 적군식 중앙집권인가, 아니면 부르주아 장교단과 경찰기구를 복원하는 중앙집권인가? 22

스페인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추진한 군대 재편은 단순한 군사 효율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민병대, 병사위원회, 노동자 통제를 해체하고 낡은 장교단과 부르주아 국가 규율을 복원하는 과정이었다. 23 흥미롭게도, 노정협 문서 중 하나도 사실상 같은 문제를 인정한다. 그 문서는 스페인 공산당이 공화정 합법주의에 묶여 대중 속에서 생겨난 새로운 권력 형태를 이용하지 못했고, 인민혁명위원회 같은 새로운 대중 권력 형태가 자발적으로 생겨났지만 당이 그것을 통일·발전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24 또, 제5연대조차 공화국 군대 지휘 아래 무조건 놓였다고 인정한다. 25 이것은 트로츠키주의적 비판의 역설적 방증이다.

일곱째 왜곡은 소련의 지원을 “국제주의”로 미화하는 것이다. 물론 소련 노동자들과 국제여단 병사들의 용기와 희생은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희생을 스탈린 관료집단의 정책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소련만이 형제적 물질·정치·도덕 지원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26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적 비판은 “소련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가 아니다. 핵심은 소련의 지원이 혁명 승리를 위한 충분한 군사 지원이 아니라, 공화국 정부와 스페인 공산당이 낡은 국가기구를 재건하고 노동자·농민 혁명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의 정치적 지렛대가 됐다는 점이다. 27

스페인 혁명을 억누르면 영국과 프랑스가 소련과 동맹할 것이라는 계산은 완전히 빗나갔다.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지는 “민주주의”를 공경해서가 아니라 혁명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비개입(불간섭)이라는 기회주의적 회피 정책 뒤에 숨었다. 독일과 이탈리아는 프랑코에게 무기와 병력을 보냈고, 영국·프랑스는 합법 정부의 무기 구입조차 가로막았다. 28 노정협 문서도 공화국 정부와 당이 서구 “민주주의국가들”에 의존하려 한 것이 헛된 노력이었다고 인정한다. 29 그런데 바로 이 환상을 국제 정책의 축으로 삼은 것이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노선이었다.

여덟째 왜곡은 탄압과 암살을 “반파시스트 방어”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POUM을 제5열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안드레우 닌 등 POUM 지도부에 대한 “파시스트 간첩” 혐의는 조작이었다. 피에르 브루에와 에밀 테미메는 닌이 소련 보안경찰 NKVD의 알렉산데르 오를로프에게 넘겨졌고, 모스크바 재판식 공개재판에 필요한 “자백”을 얻으려 했으나, 닌이 고문에도 굴복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30 닌의 실종을 설명하기 위해 “국제여단 병사로 변장한 나치 게슈타포 요원들이 닌을 탈출시켰다”는 시나리오가 꾸며졌다는 설명도 나온다. 31

1937년 메이데이와 POUM 탄압은 이후 소련 문서고 공개로 실증적으로 확인됐다.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국가문서고(RGVA, RGASPI 등)가 부분 개방되면서 연구자들이 접근할 수 있게 된 자료들이 위 브루에/테미메 역사서술을 뒷받침한다. 문서고에서 발굴된 자료들은 NKVD 요원들이 스페인에 파견돼 독자적 신문 시설과 비밀 감옥을 운영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오를로프가 지휘한 작전의 세부 내용들이 확인됐다. 오를로프는 훗날 서방으로 망명해 일부를 증언했지만 전부를 밝히지는 않았는데, 소련 문서들이 그 공백을 채워 줬다.

안드레우 닌의 운명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논쟁이 있었다. 공화국 정부는 “프랑코 첩자”로 체포했다고 주장했고, 이후엔 파시스트들이 구출했다는 설도 유포됐었다. 그러나 소련 문서고 자료를 통해, 닌이 NKVD가 운영한 비밀 수감 시설에서 고문 끝에 살해됐다는 것이 확인됐다. 고문 과정에서 모스크바 재판식 “자백’을 받아 내려 했으나 닌이 끝내 거부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소련 문서고에서 공개된 코민테른 관련 문서들은 스페인 공산당이 모스크바의 직접 지령을 받아 움직였음을 보여 준다. 특히 POUM을 “트로츠키-파시스트” 조직으로 규정하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왔다는 점이 문서로 확인됐다.

후에 Ronald Radosh, Mary Habeck, Grigory Sevostianov가 공동 편집한 Spain Betrayed: The Soviet Union in the Spanish Civil War(2001)은 소련 문서고에서 발굴한 원문 자료들을 직접 수록했는데, 이 책은 다음을 보여 준다:

  • 소련이 스페인 공화국의 금 준비금을 이전받은 것과 정치적 통제 사이의 연계.
  • 스탈린이 스페인 혁명의 급진화를 의도적으로 억제하려 했던 이유는 서방 국가들과의 집단안보 구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
  • 스페인 공산당과 소련 NKVD가 POUM 탄압을 조율한 구체적 방식.

POUM 탄압은 전쟁 수행이 아니었다. 혁명적 좌파의 물리적 제거였다. 파시즘에 맞서 가장 헌신적으로 싸운 활동가 일부를 “파시스트의 하수인”으로 몰아 감옥에 넣고 고문하고 살해한 것이 어떻게 반파시즘인가? 이런 방식은 모스크바 재판의 국제판이었다. 증거가 아니라 조작 문서, 정치 논쟁이 아니라 경찰 음모, 노동자 민주주의가 아니라 보안경찰이 동원됐다. 32

아홉째 왜곡은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전쟁의 가장 영웅적 세력”이었다는 주장이다. 공산당 평당원들과 국제여단 전사들의 용기는 부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계급적 역할은 별개 문제다. 노정협 문서는 스페인 공산당을 “내전에 참가한 모든 정당 중 가장 영웅적이고 희생적인 전쟁의 영웅”이라고 칭송한다. 33 그러나 스페인 공산당과 PSUC(카탈루냐통합사회당: 카탈루냐 지역의 스탈린주의 정당)는 전쟁 중 급성장하면서 질서, 사적 소유, 부르주아 국가 재건의 보증인 노릇을 했다. 34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탈린주의 정책이 바로 그런 사회계층을 끌어당겼기 때문이다. 공장위원회와 집산농장, 노동자 민병대와 혁명위원회를 두려워한 세력에게 스페인 공산당은 “법과 질서”의 보증인으로 보였다. 따라서 “공산당이 성장했다”는 사실은 그 당이 노동자 혁명의 정당이었다는 증거가 아니라, 정반대로 노동자 혁명을 두려워한 자산 소유 계급과 중간 계층들의 피난처가 됐다는 증거로 봐야 한다. 35

열째 왜곡은 패배의 책임을 기층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말한다. 아나키스트가 무질서했다, POUM이 분열을 일으켰다, 노동자들이 너무 급진적이었다, 농민들이 집산화에 준비되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 혁명을 패배케 한 것은 대중의 급진성이 아니라 지도부의 보수성이었다. 프랑코의 승리는 대중이 너무 멀리 나아갔기 때문이 아니라, 지도부가 대중이 간 곳까지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36

피에르 브루에와 에밀 테미메는 자신들의 저술 목표가 무지, 방치, 왜곡에 맞서 스페인 혁명과 내전의 진실한 역사를 복원하고, 그것을 덮어버린 전설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라고 썼다. 37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스탈린주의 역사 서술의 핵심은 바로 이 “전설”이다. 즉, 스탈린과 스페인 공산당은 영웅적으로 싸웠고, 트로츠키주의자와 아나키스트가 후방을 교란했으며, 혁명을 억누른 것은 전쟁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는 전설 말이다. 38

그러나 진실은 반대다. 스페인 노동자와 농민은 1936년 7월 파시스트 쿠데타를 무장 행동으로 저지했다. 그들은 공장과 토지를 장악했고, 민병대를 조직했고, 낡은 국가기구를 무력화했다. 바로 그 힘이 프랑코를 막을 수 있는 힘이었다. 39 그런데 인민전선 지도부와 스탈린주의자들은 이 힘을 정치적으로 집중시켜 노동자 권력으로 발전시키기는커녕, 부르주아 공화국의 권위와 이름으로 해체했다. 40

트로츠키의 비판은 낭만적 회고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스페인 혁명 내부의 모든 지도부를 냉정하게 평가한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자들뿐 아니라 사회당, 아나키스트, POUM도 비판했다. 아나키스트 지도자들은 권력 장악을 거부함으로써 권력을 부르주아 국가에 넘겨줬다. POUM은 혁명적 구호와 인민전선 실천 사이에서 동요했다. 41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트로츠키는 이 오류들을 노동자 권력의 관점에서 비판했다. 반면 스탈린주의는 노동자 권력 자체를 범죄로 만들었다. 42

따라서 스탈린주의자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하자”고 말할 때, 우리는 이렇게 답해야 한다. 좋다. 그러면 먼저 다음 사실부터 기록하라. 스페인 혁명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것은 켄 로치나 조지 오웰이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니었다. 노동자와 농민은 현실에서 권력을 향해 나아갔다. 공화국 정부는 그들을 두려워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그 공포에 정치적 표현을 제공했다. 소련의 무기와 국제여단의 영웅주의는 노동자 혁명의 목을 조르는 정책에 종속됐다. POUM은 트로츠키주의 정당이 아니었고, 트로츠키는 POUM의 중도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1937년 5월 바르셀로나는 POUM 쿠데타가 아니라 노동자 권력 해체에 맞선 방어적 분출이었다. 닌은 프랑코의 첩자가 아니라 스탈린주의 경찰 음모의 희생자였다. 43

스페인 내전의 교훈은 “혁명을 미루면 전쟁에서 이긴다”가 아니다. 교훈은 정반대다. 혁명을 미루면 전쟁도 진다. 노동자와 농민에게 토지와 공장, 권력과 무장을 주지 않고 파시즘을 이길 수는 없다. 파시즘은 의회적 호소나 부르주아 동맹으로 패배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계급의 독립적 권력, 병사와 농민을 흔드는 사회혁명, 국제 노동계급의 행동으로만 패배할 수 있다. 44

스탈린주의자들은 스페인 혁명의 무덤 위에 “질서”라는 비석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 질서는 프랑코의 승리로 이어졌다. 트로츠키는 그 비석을 걷어내고 그 아래 묻힌 진실을 드러냈다. 스페인 혁명은 패배했지만, 그 패배의 책임은 노동자와 농민의 과도한 혁명성에 있지 않았다. 책임은 그 혁명을 끝까지 밀고 나아갈 혁명적 지도부의 부재, 그리고 혁명을 의식적으로 억누른 스탈린주의 인민전선 정책에 있었다.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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