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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팔레스타인·이란전쟁 내란 청산과 극우 이재명 정부 이주민·난민 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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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주의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독점이윤론 비판

1980년대, 혁명적 좌파의 한창때 ‘신식민지(또는 종속적)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하 국독자론)’이라는 이론이 (특히 PD계열에서) 유행했었다. 그런데, 요즘에 신자유주의가 다소 위축되고 국가자본주의가 다소 강화되자, ‘신식민지(또는 종속적)’라는 규정을 떼어 낸 채 일부 다이하드 PD 인사들에 의해 국독자론이 다시 유행할 조짐이 보인다.

옛 소련의 ‘공식’ 이론인 국독자론은 레닌의 《제국주의론》을 도그마적으로 해석해 자본주의의 ‘노쇠·기생성’을 증명하고, 이를 소련 지배 관료의 대외 정책인 ‘평화공존론’에 종속시키는 데 초점이 있었다.

이에 조응해, 서방 공산당들은 주로 국내 선거 전략인 반독점 민중전선을 합리화하기 위해 국독자론을 강조했다.

국독자론은 독점자본이 시장을 장악하고 독점이윤을 영속화하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는 더는 생산력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정체와 기생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몇 개월 전에 본지(〈노동자 연대〉 574호)에 실은 ‘제국주의란 무엇인가? — 마르크스주의 이론’이라는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쓴 바 있다.

“특히, 그[레닌]는 《국가와 혁명》과 《임박한 파국, 그것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서 제1차세계대전이 강제한 전시 경제 상황이 국가의 경제 통제를 강화시켰고, 이것이 독점 자본의 이익과 결합하면서 “국가적 독점 자본주의”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하르다하와 카라스는 공저 《사회주의 경제이론》에서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의 ‘국가독점 자본주의론’은 레닌이 특수한 전시 경제 상황과 관련해 주장했던 것을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발전 법칙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옳게 지적한다.”

좀 더 부연하자면,

1. 국독자론은 “국가독점자본주의”를 “사회주의의 완전한 물질적 준비 단계” 혹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앞둔 전 단계’로 묘사했다.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 극에 달해 국가와 결합했으니, 이제 사회주의로의 (자동적) 이행만 남았다는 함의였다. 이러한 전망은 역사적 우연성과 노동계급의 주체적 실천을 도외시하는 경제 결정론이자 기계론적 왜곡이었다. 국가와 독점의 결합은 자본주의 모순의 해결 구조가 아니라, 오히려 자본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국가 기구를 동원해 노동계급을 더 정교하게 억압·착취하는 고도화된 위기 관리 체제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을 ‘이행’을 돕는 가교로 보는 것은 국가 기구의 계급적 본질을 은폐해 착각하게 만드는 위험한 환상이었다.

2. 자본주의를 단순히 정체되고 부패·부식하는 체제로 치부하는 것은 노동계급에게 현대 자본주의의 고도화된 착취 메커니즘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을 한다. 특히,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구가하던 거의 30년에 걸친 장기 호황과 꾸준한 기술 혁신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교조주의의 발로였다.

3. 자본이 독점화돼도 자본들 사이의 경쟁과 가치법칙의 강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독점 기업들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수익성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새 기술을 도입하고, 노동과정을 재편하고, ‘상대적 잉여가치’를 착취한다.

4. 국독자론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독점자본이 후진국을 압박해 ‘독점이윤’을 얻는 방식을 지나치게 군사·정치적 약탈(강탈) 중심으로만 파악하며 독점자본의 ‘음모’와 ‘약탈’로 환원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을 세계 시장 수준으로 확장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간 노동생산성의 격차와 자본의 유기적 구성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구조적 가치 이전 메커니즘이 규명될 수 있다.

그러나 국독자론의 핵심 이론인 독점이윤론은 세계 시장의 구조적 역학을 외면한 채 문제를 ‘제국주의 독점기업의 수탈’로 단순화함으로써, 제3세계 민중이 타도해야 할 대상을 자본주의 생산관계 자체가 아닌 외세의 독점으로만 제한하는 개혁주의 정치를 정당화했다.

5. 이것은 소련의 외교적 이익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적 무기였다. 소련은 서구 자본주의 국가 전체를 ‘독점과 국가가 결합(융합)한 호전적 집단’으로 규정하면서도, 정작 정치적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진영과의 ‘평화공존’을 추구했다. 이를 위해 소련은 적을 세계 자본가 계급 전체가 아니라 오직 ‘전쟁을 일삼는 소수 군수·독점자본’으로만 한정했다.

그 결과, 독점과 무관한 서방의 중소 자본가와 제3세계 ‘민족 부르주아지’는 ‘평화 애호적인 반독점 동맹’이 될 수 있다는 민중전선 논리가 도출됐다. 이는 각국 노동계급에게 독자적인 노동자 혁명 투쟁을 포기하고, 소련 지배 관료의 안보를 위한 계급 협조주의 노선에 동참하라는 압박과 다름없었다.

상시적 독점 이윤?

‘독점 이윤’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특별 잉여가치’는 대기업이 누리는 평균 이상의 초과이윤을 다룬다는 점에서 겉보기에는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국독자론의 독점 이윤론은 생산 영역에서 일어나는 ‘특별 잉여가치’의 역학을 유통 영역의 ‘가격 조작’으로 오독한 결과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1권 12장(상대적 잉여가치)에서 정식화한 특별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의 기술 혁신과 생산력 발전을 추동하는 핵심 엔진이다. 어떤 개별 자본가가 남들보다 앞선 새 기술이나 기계를 도입해 노동생산성을 급격히 높였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그 기업이 생산한 상품 한 단위에 들어간 노동시간, 즉 ‘개별 가치’는 사회 평균적인 노동시간인 ‘사회적 가치(시장 가치)’보다 낮아진다. 시장 가격은 사회적 가치에 의해 결정되므로, 이 혁신적 자본가는 상품을 시장 가치(또는 그보다 아주 약간 낮은 가격)로 판매함으로써 개별 가치와의 차액만큼 ‘특별 잉여가치’를 획득한다. 이 초과이윤은 필연적으로 일시적이다. 다른 경쟁 자본가들이 생존을 위해 동일한 기술을 도입하면, 해당 산업 전반에서 생산성이 올라가 사회적 가치 자체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특별 잉여가치가 소멸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노동력의 가치가 떨어져 상대적 잉여가치가 증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반면, 국독자론이 주장한 독점 이윤은 가치법칙의 지배를 벗어난 제도적 특혜에 가깝다.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거대 독점기업들이 시장의 경쟁을 완전히 제한하고 진입 장벽을 구축한다. 이들은 생산성 향상과 무관하게, 단순히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상품 가격을 가치나 생산가격보다 훨씬 높게 책정하는 ‘독점 가격’을 형성한다. 이 가격 조작을 통해 자본가 계급 내부의 정상적인 이윤 분배 과정을 왜곡하고, 비독점 부문(중소기업)의 잉여가치나 노동자·소비자의 주머니를 털어 ‘독점 이윤’을 흡수한다. 국가가 법적으로 독점을 비호하거나 대자본이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이 독점 이윤은 사라지지 않고 구조적·지속적으로 상시화된다. 따라서 독점기업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며 기술 혁신(생산력 발전)을 할 유인을 잃고 기생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바로 마르크스의 특별 잉여가치 개념을 복원해 독점 이윤론의 허구를 폭로할 수 있다. 사실 현대 자본주의에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이윤을 얻는다는 것은 참말이다. 하지만 국독자론자들의 주장처럼 대기업들이 가치법칙을 무시하고 사술(詐術)로 ‘독점 가격’을 매겨서 그런 것이 아니다. 대기업들은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장 고도화된 기계와 기술을 도입한다.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높여 생산 영역에서 남들보다 훨씬 많은 ‘특별 잉여가치’를 착취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기업의 많은 이윤은 시장 전체의 자본 이동과 경쟁을 통해 일반이윤율이 균등화되는 과정에서(후주의 설명을 보라), 1 기술 수준이 높은 자본이 사회적 총잉여가치를 제도적으로 더 많이 분배받는 마르크스적 법칙의 결과일 뿐이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의 초과이윤을 생산 중심의 가치법칙(특별 잉여가치)으로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설명할 것인가, 아니면 속류 경제학적인 유통 중심의 권력 관계(독점 이윤)로 설명할 것인가?

가치법칙을 폐기하고 ‘유통 중심주의’로 넘어가다

국독자론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독점 대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상품 가격을 가치 이상으로 상향 설정함으로써 높은 ‘독점가격’을 형성하고, 이를 통해 ‘독점이윤’을 흡수한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의 가치법칙을 폐기한 부르주아 속류 경제학(또는 케인스주의)으로의 후퇴다.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이윤은 유통 과정에서의 가격 조작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의 살아있는 노동을 착취(잉여가치 추출)함으로써만 발생한다. 독점 기업이 높은 이윤을 얻는다면, 그것은 무(無)에서 창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 총잉여가치가 이윤율 균등화 과정에서 독점 부문으로 재분배된 결과일 뿐이다. 즉, 독점 기업의 높은 이윤은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높아 노동생산성이 높고(특별 잉여가치 생산됨), 이에 따라 비독점 부문(중소기업)에서 생산된 잉여가치가 일시적으로 이전된 결과다. 국독자론처럼 독점이윤을 유통 영역의 제도적 특혜나 가격 설정 권력으로 설명하면,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의 근간인 ‘생산 중심의 가치론’이 붕괴하고 만다.

이윤율 법칙 무력화

독점이윤론은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서 규정한 ‘일반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TRPF)’의 객관성과 관철 메커니즘을 사실상 부정하거나 무력화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자크 발리에르나 피에르 쌀라마 같은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들이 국독자론을 강력하게 비판한 결정적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독점이윤론이 자본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운동 법칙을 어떻게 왜곡하고 오리무중으로 만들었는지 다음과 같이 폭로했다.

(1) 일반이윤율 균등화 법칙의 폐기

마르크스의 TRPF는 자본가들 사이의 자유로운 경쟁과 자본 이동을 통해 사회 전체의 일반이윤율(평균이윤율)이 형성된다는 전제 위에서 작동한다. 개별 부문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사회 전반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이 일반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한다는 것이 법칙의 골자다.

그러나 국독자론의 독점이윤론은 거대 독점자본이 시장에 강력한 진입 장벽을 치고 일반이윤율의 균등화 과정 자체를 영속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고 본다. 독점 기업이 가치법칙과 무관하게 ‘독점 가격’을 설정해 영속적으로 높은 이윤율(독점이윤)을 고착화할 수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사회적 총자본의 운동을 규율하는 일반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은 독점 부문에서 그 효력을 잃고 만다.

(2) 객관적 가치생산에서 ‘제도적 분배’로 중심 이동

그러나 마르크스에게 TRPF는 생산 영역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모순이다. 살아있는 노동을 기계설비류(불변자본)가 대체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기초 체력 자체가 구조적으로 저하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독점이윤’론은 이윤율의 향방을 생산이 아닌 유통, 분배, 그리고 국가의 제도적 개입 영역으로 옮겨놓았다. 소련 이론의 경우, 독점자본의 정치적·군사적 강제력과 시장 지배력 덕분에 고이윤이 유지된다고 봤다. 이는 이윤율 하락이라는 자본주의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정치적 힘의 관계’라는 외재적 요인으로 치환한 것이다. 한편 프랑스 공산당은 국가가 (공공부문 자본을 스스로 ‘탈가치화” – 이윤을 내지 않거나 낮은 이윤만 취함 – 함으로써) 독점자본의 이윤율을 인위적으로 떠받쳐 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은 자본주의 위기를 객관적 모순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적 조절이나 독점의 조작 같은 통제 가능한 주체적·제도적 문제로 왜곡한다. 그리하여 국가가 세련되게 개입하고 분배 구조를 조정하면 이윤율 저하를 영구히 막을 수 있다는 개혁주의적 결론으로 이어진다.

(3) TRPF가 함축하는 역동성의 은폐

국독자론은 독점자본이 독점이윤을 고수하기 위해 생산력 발전을 억제하고 체제를 기생적·정체적 단계로 빠뜨린다고 주장했다. 즉, TRPF가 제대로 작동하기도 전에 체제가 정지해 버린다는 도식이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자본주의가 보여 준 장기 호황과 꾸준한 기술 혁신은 이를 완전 반증한다. 독점 단계에서도 자본은 이윤율 저하에 직면하며, 그것을 방어하기 위해(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유기적 구성을 고도화한다. TRPF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가들에게 더 치열한 기술 경쟁과 자본 축적을 강제하는 역학으로 작용하고 있었는데, 독점이윤론은 체제를 지나치게 정태적으로 봄으로써 이 역동성을 가렸다.

결론적으로, 독점이윤론은 “독점과 국가가 결합하여 가치법칙의 강제를 우회하고 이윤율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 줌으로써, 자본주의의 파국적 본질(TRPF)을 시야에서 지워 버리는 결정적인 도구 역할을 했다. 2

도구주의 국가론

국독자론은 국가와 독점자본이 결합해 하나의 메커니즘을 이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여기까진 문제 없다), 국가 기구를 소수 독점자본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독점이윤(보조금, 세제 혜택 등)을 안겨주는 단순한 하수인이나 도구로 묘사했다. 이 이론에는 도구주의가 내재돼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특정 독점 집단의 사적 이익을 집행하는 대리인이 아니다.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 전체의 재생산 조건을 보호하는 ‘관념적 총자본가’의 구현체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국유화, 사회간접자본 투자, 보조금 지급 등)하는 진짜 이유는 소수 독점체들에게 특혜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으로 인해 자본 축적이 위기에 처하자, 축적의 비용(불변자본이나 가변자본의 가치)을 국가가 대신 떠안아 사회 전체의 평균 이윤율을 방어하고 체제 붕괴를 유예하려는 구조적 조치다. 국가를 단순한 독점체들의 도구로 환원하면, 그들로부터 국가가 누리는 상대적 자율성과 자본주의 위기 관리자로서의 구조적 기능이 완전히 은폐된다.

극우를 ‘독점자본의 적나라한 독재’ 혹은 ‘가면 벗은 자본주의의 민낯’ 같은 것으로 보는 국독자론은 도구주의적 논리를 따라, 자본이 특정 정치 세력을 필요로 하면 그것을 동원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극우 운동이 자본의 축적 전략과 맺는 관계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자본이 직접 동원하는 경우. 둘째, 자본주의적 지배와 연관된 이데올로기적 입장을 강화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지지하는 경우. 셋째, 간접적이고 의도치 않게 불안정화시키는 경우. 역사적으로 첫 번째 유형, 즉 자본이 극우 운동을 직접 동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 자본가들은 대중 운동이 아니라 기업 압력을 통해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선호한다. 오히려 현재의 극우 포퓰리즘은 세 번째 유형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처럼, 극우 지지층의 이데올로기적 요구가 자본의 이익과 충돌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들이 늘고 있다.

국독자론을 혁명적 좌파가 비판하는 더 심층적 이유는, 그 이론이 잘못된 정치적 결론으로 이끈다는 것이다. 극우를 단순히 ‘자본주의의 민낯’으로 보면, 중도 좌파가 (자동으로) ‘덜 나쁜 것’이 돼 지지할 만한 대상이 된다는 논리가 쉽게 도출된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다르다. 가령 프랑스에서 사회당과 마크롱은 ‘사회(적)자유주의’ 4반세기를 거치면서 동일한 체제의 구성 부분들이 됐다. 그러므로 둘 중 어느 쪽이 더 작은 악인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사회민주주의적 ‘차악’ 전략(공산당이 사회당과 신민중전선을 형성한 것)의 문제는 그것이 동일한 체제의 재생산에 기여한다는 점이다. 사회당과 마크롱은 대립물이 아니라 상호 생성 관계다. 그리고 그들의 중도 정부들이 만들어 낸 조건들이 극우의 비료가 됐다. 이 관계를 보지 못하고 극우를 단지 자본의 도구나 자본의 민낯으로 규정하는 분석은, 장뤼크 멜랑숑이 이끄는 급진 좌파가 중도 좌파를 방어하는 역할에 갇히도록 만드는 정치적 함정이 된다.

국독자론의 도구주의 국가론은 나치 독일과 독일 자본의 관계를 분석하는 대목에서 결정적 결함을 드러낸다. 당시 공산당들 사이에서 널리 통용되던 국독자론의 도구주의는 특히 조잡했다. 국독자론의 도구주의에 따르면, 국가는 소수 독점자본가들의 도구다. 그러나 나치 국가는 그 반대의 과정을 보여 줬다. 괴링의 경제기구는 그 핵심 사례다. 괴링이 주도한 4개년 계획 체제 하에서, 그리고 독일의 동진(東進) 확장 중에 오스트리아·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프랑스의 생산 자산을 탈취하고 장악하는 과정에서, 나치가 구축한 것은 사기업들과 경쟁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둔 국가 통제형 다국적 기업 제국이었다. 리처드 오버리의 연구에 따르면, 독일의 경제 제국은 ‘독점자본가들을 위한 사기업 자본주의’에 의해 구축되고 유지된 것이 아니라, 괴링 경제기구의 통제 하에 있었다. 이것은 국독자론이 전망하는 바와 정반대 상황이다. 국독자론이라면 독점자본이 국가를 도구화하는 구도를 그리지만, 나치 체제에서는 반대로 나치 당이 국가 권력을 이용해 직접 자본축적 과정에 들어가 경제 권력을 획득했다. 즉, 정치가 경제로 전환된 것이지, 경제가 정치를 도구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논점은 더 심층적인 비판점으로 이어진다. 국독자론의 도구주의로는 홀로코스트를 설명할 수 없다. 울리히 헤르베르트에 따르면, 나치의 인종주의는 체제의 진짜 이해관계인 경제적 이해관계를 은폐하는 ‘잘못된 믿음’이 아니라, 체제 전체의 ‘고정점’이었다. 그리고 홀로코스트가 경제적 논리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은 실증적으로도 확인된다. 힐버그의 연구에 따르면 유대인 격리·수탈의 예비 단계에서는 재정적 이득이 비용을 초과했지만, 학살 단계에서는 수입이 지출을 더는 상쇄하지 못했다. 전쟁 수행의 관점에서 봐도 홀로코스트는 희귀한 숙련 노동자를 파괴하고 군사 물자 수송을 위한 차량 수용 능력을 낭비했다. 즉, 독일 자본의 이익과 홀로코스트는 서로 맞지 않았다. 국독자론 식의 도구주의적 환원론으로는 이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대안적 설명 틀은 무엇일까? 나치 파시즘은 독일 대자본과 ‘갈등적 파트너십’을 맺은 대중 운동이었다. 이 관계의 기초는 이해관계의 제한적 수렴이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조직 노동계급의 분쇄와 동방 확장이라는 제국주의적 프로그램이었다. 나치즘은 대자본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대자본과 서로를 필요로 하면서도 독자적인 논리를 가진 특수한 대중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인종주의적·유사혁명적 이데올로기는 독일 사회를 재편하는 데 실패했을 때 바로 그 실패의 에너지를 ‘유대인 문제’라는 ‘부정적 측면’으로 집중시켰고, 그 귀결이 홀로코스트였다. 이것은 경제적 필요에서 직접 도출된 것이 아니라, 나치즘이라는 대중 운동의 구조적 역동성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제3제국 독일 자본주의는 아우슈비츠를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나치를 필요로 했고, 나치는 아우슈비츠를 필요로 했다. 독일 자본주의의 장기적 발전이 일련의 매개를 통해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를 산출했고, 자본가들이 위기의 순간에 나치에게 의존했을 때 그 이데올로기에 내재해 있던 홀로코스트의 가능성이 실현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국독자론처럼 국가를 단순히 독점자본의 도구로 보는 관점은 국가와 자본 사이가 “구조적 상호의존” 관계임을 설명하지 못한다.

계급 모순의 희석: ‘자본 대 노동’에서 ‘독점 대 민중’으로

이 이론적 난점은 계급 구조를 바라보는 시각의 난점으로 직결됐다. 국독자론의 독점이윤론에 따르면, 독점자본은 노동계급뿐 아니라 중소기업 자본가(비독점 자본), 농민, 전문직 등 다양한 계급·계층을 수탈하는 근본 모순이다. 그러나 독점이윤론은 중소 자본가들도 노동계급을 극심하게 착취하는 자본가 계급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흐린다. 실제로 중소기업은 독점 대기업에 비해 기술 수준(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낮기 때문에,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동강도를 높이고 임금을 낮추는 식으로 노동자를 더 심하게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국독자론은 중소 자본가를 독점의 피해자로 둔갑시킴으로써(일부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해도), 자본주의의 진정한 근본 모순인 ‘자본과 노동의 모순’을 ‘독점과 비독점(인민)의 모순’으로 대체해 버렸다. 이는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계급의식 발전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치적 함의: ‘반독점 민중전선’과 개혁주의 노선

1989/91년 동유럽과 소련 및 거의 전 세계 공산당들의 파산 전에 혁명적 좌파들이 가장 격렬하게 공격했던 지점은 바로 독점이윤론이 이르는 정치적 결론이었다. 공산당들이 무리하게 가치법칙을 왜곡하면서까지 독점이윤론을 고수한 이유는 당의 전략이었던 광범한 반독점 동맹(사회민주주의 정당과의 ‘공동 강령’ 노선)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국가가 소수 독점과 유착한 상태이므로, 노동계급이 중소 자본가 및 중간계층들과 연대해 선거를 통해 국가 권력을 장악하면 국가를 ‘민주화’하고 사회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는 자본 축적 구조와 단단히 결합돼 있기 때문에 개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반드시 ‘타도되고 해체돼야 할 대상’이다. 스탈린주의의 반독점 민중전선 노선은 독점자본만 솎아 내면 자본/임노동 관계나 사적소유 체제 자체는 온존시켜도 된다는 식의 계급 협조주의이자, 결국 부르주아 국가 체제 내에 안주하려는 개혁주의적 사기극에 불과하다.


참고 문헌

  • 정운영, 편,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론연구 4: 프랑스 이탈리아편》(돌베개, 1989)에 실린 브뤼노 테레와 미셸 비비오르카(제7장), 자크 발리에르(제8장), A. D. 마갈린(제9장과 제10장), 프랑시스 앙클루아(제11장)

추천 도서

  • 피에르 쌀라마 & 자크 발리에르, 《정치경제학 입문》(창작과 비평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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