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자 투쟁:
지배계급 전체가 쌍심지 세우며 반대하고 나서는데도 노동계급 기반 좌파는 굼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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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경제6단체(한국경영자총협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그들은 파업이 강행되면 긴급조정권을 발동해야 한다고 정부에 요구했다.
재계는 “파업 강행 시 생산 차질로 글로벌 공급망 내 신뢰 훼손, 고객사 이탈, 국가 신용도 하락이라는 막대한 피해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삼성전자 파업이 그토록 파괴력이 있다는 주장은, 뒤집어 말하면,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그래서 기업주들은 파업이 실제로 벌어질까 봐 두려움과 적대감을 드러낸다. 삼성 회장 이재용이 대국민 사과와 “삼성 한 가족” 발언을 한 것도 그래서다.
반도체 노동자들이 죽어나갈 때 모르쇠로 일관하던 이재용이 “삼성 한 가족” 발언을 하는 것은 역겹기 짝이 없다. 이재용의 발언은 반드시 파업을 막아 달라는 대정부 압박이기도 하다.
지배계급은 ‘슈퍼 사이클’에 올라 있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 라인이 중단되고, 삼성전자 투쟁에 자극받아 다른 사업장 임금 투쟁들이 확산될까 봐 걱정한다.
〈조선일보〉 등은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네이버, 카카오, 유플러스 등에서 영업이익에 대한 “N퍼센트 성과급” 요구의 빗장이 풀리기 시작했다며 우려했다.
사용자·정부·법원 삼각 편대: “파업은 안 된다”
노사 모두에 협상 타결을 촉구하지만, 파업만은 안 된다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분명한 입장이다.
14~15일 노동부 장관 김영훈은 노조와 사측을 오가며 교섭을 중재했다.
그러자 17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긴급조정권 발동은 정부가 파업과 협상을 강제로 종료시키는 노골적인 국가 탄압이다. 재계의 공동성명은 긴급조정권 발동 쪽으로 가라고 쐐기를 박으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SNS에 글을 올려 사용자를 편들었다.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 “헌법상 모든 기본권은 보장돼야 하지만,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공공복리 등을 위해 제한될 수 있다.”
같은 날 수원지방법원 민사합의31부(재판장 신우정)도 삼성전자 사용자 측이 제기한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사용자 편을 들었다. 파업에 들어가도 중요 공정은 정상 조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 노조 지도부는 법원 판결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기가 어렵다.
대통령 말과 달리, 긴급조정권이나 법원 판결은 파업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한다.
아무튼, 정부와 법원, 국내외 사용자들이 5월 18~19일 마지막 협상을 앞두고 파업을 막을 이중삼중의 잠금 장치들을 쏟아 냈다.
그런데 이처럼 지배자들 전체가 ‘계급 대 계급’ 전선을 형성해 총공세를 펴고, 정부와 법원이 이를 노골적으로 지원하고 있는데, 불행히도 민주노총·진보당·정의당 등 노동운동과 좌파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을 분명하게 편들지 않고 있다.(이에 대한 비판은 4면에 실린 ‘[성명] 삼성전자 노동자 투쟁 정당하다 — 이재명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검토 규탄한다’를 보시오.)
긴급조정권 검토는 개혁 배신의 신호탄
긴급조정권은 1961년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더 정확하게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1963년 도입한 권위주의적 노동 통제 제도다.
그후 긴급조정권은 딱 4차례 발동됐다. 박정희는 1969년 국영기업이었던 대한조선공사(현 HJ중공업) 78일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두 번째 긴급조정권은 1993년 김영삼 정부가 현대자동차 파업에 발동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노무현 정부가 행사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한 해에 두 차례나 강제로 파업을 종료시켰는데, 각각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조종사 파업이었다.
네 가지 사례는 공통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잘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파업을 분쇄함으로써 본보기를 보이려 했다는 점, 또 하나는 민주적 권리 억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신호탄이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1969년 이후 사회 통제를 더 강화했고, 3년 만에 폭압적인 유신 체제를 수립했다.
임기 초 하나회 해체 등 몇몇 개혁 조치와 포퓰리즘적 언사(“어떤 동맹[한미동맹을 가리켰음]도 민족보다 우선할 수 없다”)로 높은 지지를 받았던 김영삼 정부는 현대차 파업을 파괴하면서 개혁적 외양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부터 지지층 배신을 노골화하고 탄압을 강화했다. 두 차례의 긴급조정권 발동 사이에 전용철·홍덕표 농민이 경찰의 살인 진압으로 사망했다. 평택미군기지 이전과 한미FTA 강행 과정에서 반대 운동을 군대까지 동원하며 탄압했다. 노동악법을 추진했고, 한국노총 김태환,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등이 사측과 경찰에 의해 살해됐다.
이재명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협박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삼성전자 노조는 신생 노조이지만, 경제의 장기 침체 속에서 고성과를 내는 몇 안 되는 대기업에서 급성장한 초대형 노조다.
성과급 인상 요구의 도화선은 SK하이닉스의 노사 합의였지만, 삼성전자 노동자들은 사용자의 거부 때문에 투쟁으로 SK에 버금가는 임금 인상을 이뤄 내려 한다.
삼성전자 투쟁의 성패는 성과가 좋은 IT 업종, 조선 업종 등으로, 또 반도체 산업의 하청·협력 업체 등의 임금 인상 요구로 번질 수 있다. 이미 그러기 시작했다(기아차 노동자: 성과급은 특혜 아니다 , 삼성전자발 성과급 투쟁, 현중 노동자도 30퍼센트 요구한다 참조).
이렇게 생각한다
노동자 투쟁이 확산되면, 이재명 정부의 포퓰리즘(윤석열 친위 군사 쿠데타 지지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의 계급 협력) 노선과도 충돌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노란봉투법, 유가 통제 등 일부 친노동 개혁과 친기업 정책을 실용주의적으로 조화시키며 비교적 안정적인 지지를 유지해 왔다.
이재명 정부의 포퓰리즘은 노동자-사용자 간 ‘산업 평화’에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이재명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는 주식시장 활황이 큰 도움이 됐는데, 국내외 주주들이 주식 호황을 이끌고 있는 반도체 업종의 파업에 결코 호의적일 리 없다.
더욱이 기업주들은 불안정한 경제적·지정학적 상황 때문에 노동자 파업에 극도로 적대적이다.
그 반대 편에는 경제 침체기에 고물가로 생계비 위기가 만연해 임금과 관련한 노동계급의 불만이 크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불리한 협상 타결을 촉구하면서 삼성전자 노조 겁박에 나선 것이다.
지난 1년간 이재명 정부와 원만하게 지내 온 재계가 한입으로 정부의 강경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재계의 오랜 ‘베프’ 국민의힘이 이재명 정부의 “친노동 기조”가 국가 경제를 말아먹을 위험 상황을 초래했다며 호들갑을 떠는 배경이다.
이재명 정부의 긴급조정권 검토 발언이 시사하는 것은, 개혁 정부라는 외양이 결국은 심화하는 위기 속에서 노동자 투쟁으로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