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평 〈참교육〉:
〈참교육〉이 간과하는 매우 사회적인 진실들
〈노동자 연대〉 구독
이 드라마는 에피소드마다 실제 사건들에 바탕하고 있다.
2023년 서울 강남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의 괴롭힘 끝에 젊은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이초 사건’도 있다.
드라마에선 비극이 일어나기 직전, 교권보호국 감독관들이 먼저 도착한다. 시청자들은 당연히 그들이 교사를 구하길 바랄 것이다.
현실에서 교사들은 대중 행동을 일으켰다. 그해 여름 내내 매주 서울에 모여 절박한 시위에 나섰다.
학교 폭력
이제 TV 드라마는 인기 있는 웹 기반 서사 컨텐츠(웹소설·웹툰)의 최종 산출 단계가 되곤 한다.
웹소설·웹툰 산업은 글로벌 생태계를 구축했고 그 전달력은 드라마로 나올 때 가장 커진다. 숏폼과 유튜브 요약본도 많이 유포된다.
〈참교육〉도 웹툰이 원작이다. 원작은 2020년대 최고의 히트작 중 하나다.
웹툰 최대의 장르 자체가 학원물, 일진물이다. 공간과 신분은 학교와 학생이지만 실상은 액션물로 기능해 자극적 폭력과 극단적 전개가 주를 이룬다.
〈참교육〉은 원작 웹툰의 세계관과 줄거리를 따른다. 다만, 너무 노골적인 우익적 설정은 없애거나 옅게 했다.
원작 웹툰은 교권 추락 원인을 2011년 체벌이 금지된 탓이라고 시작부터 못박아 놓는다.
야구 방망이, 당구 채, 죽도, 떡갈나무 회초리가 교사들에게 지급되고 학생들 매 타작이 부활한다. 삼청교육대처럼 통나무 드는 학생 체벌도 등장한다.
이 부분이 드라마에는 없긴 하지만 의도는 남아 있는 듯하다.
가장 선한 역의 교사가 학생을 매질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안 되면 이렇게 때려서라도. 나를 위한 게 아니야. 너희를 위한 거야.”
교권보호국은 “교육 방식에 그 어떤 제한도 없다”는 설정 역시 웹툰과 동일하다. 교권보호국 감독관(군 출신)들의 ‘일진’ 학생 ‘참교육’ 하기 즉, 학생 구타가 쾌감 있게 나온다.
이렇게 국가 폭력이 학교 폭력을 방지하고 학교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발상은 전혀 새롭지 않다.
확인된 인원만 4,701명, 만 12세부터 중고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생용 삼청교육대’가 1981년 5월에 시작해 1988년까지 실제로 운영됐다.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을 직접 차출했지만 학교 폭력 가해자나 이른바 ‘불량학생’도 아니었다. 단지 항의할 가능성이 없는 힘없는 가정의 학생들을 보냈다.
총기로 무장한 군인들은 이 학생들에게 구타와 고문, 성폭력까지 가했지만 이는 국가의 ‘사회정화운동’, ‘학생순화교육’이었다.(2026년 5월 5일 방영 MBC 〈PD수첩〉)
권력의 목적은 분명했다.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고 교사와 학생을 철저히 순응시키고 굴종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폭력은 불평등(민주주의의 감소)과 함께 동반 상승하고 동반 하락한다.
촉법소년
이 드라마에도 ‘촉법’을 방패로 범죄를 한껏 저지르는 촉법소년들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다. ‘촉법’은 돈과 권력을 대신하지 못한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의 경우가 현실적이다. 극빈한 촉법소년 이지안은 유일한 보호자인 할머니를 “상습적으로” 폭행하는 사채업자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 “보호처분 10호(소년원 2년 송치)”를 받는다. 과잉방위와 처벌면제가 인정될 만한데 ‘무전유죄’를 피하지 못한 것이다.
현행법상 만 10세면 소년원(보호처분 8,9호) 또는 보호시설(보호처분 6,7호) 송치가 가능하다. 소년원과 달리 보호시설은 민간기관이다. 보호시설 측의 상습적 (성적)학대, 폭력이 폭로되곤 했지만 “사각지대”가 돼 있다. 국가는 ‘보호’관찰, ‘보호’시설에 관심이 없고 신경쓰지 않는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소년원 민영화를 추진했다(국회에서 부결).
과밀하고 방치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런 보호시설에는 정서장애나 가정형편으로 양육하기 어려운 만 10세 아동들(즉 범죄와 아무 상관없는 취약한 아동들)까지 위탁된다.
이런 상태의 사회에서는 어떤 제도든 실상이든 불공정하고 불평등하게 작동하기가 쉽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 게다가 아이들이라면 특혜는커녕 더한 위기로 내몰리기 쉽다.
현실은 가해자와 피해자, 흑과 백으로 환원되는 세계가 아니다.
현실에서 격리되는 가해자 소년은 그때까지 살아온 십여 년 삶의 대부분을 사회와 가정에서 아동학대 피해자로 살아온 소년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발달과 가소성은 인간 본성이고 자질이다.
유년기 특유의 회복력, 변화하고 발달할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마저 원천 봉쇄돼 있거나 출발부터 지독하게 불평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체득하게 되는 순간부터 좌절, 포기, 절망, 분노, 탄식이 자라나 무기력과 엇나가는 정서·행동의 추진력이 될 수 있다.
지금처럼 학교가 치열한 갈등의 현장이 된 것도 실수나 사소한 잘못, 평가와 평판이 낙인이나 결함처럼 돼버리는 사회 분위기, 제도와 관계가 깊다.
교권 보호
교사들의 열띤 투쟁을 거쳐 2023년 9월 이후 교권 보호 5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개선을 체감할 수 없다는 게 교사들의 평가다.
주된 이유는 분명하다. 국가가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는 왜, 오히려 교육 인력과 예산을 줄이려 할까?
자본주의적으로 생각해 봐도,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국가의 입장이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국가 경쟁력은 자본가들의 권력체인 국가가 다른 국가들과 경쟁하는 능력이다. 군사 능력이나 반도체에 투자하는 게 결과가 빠르고 효과도 실물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다수 노동자, 소수 엘리트를 양산하는 교육이다. 교육 예산은 국가 입장에서 줄이고 싶은 ‘비용’이다. 지금처럼 세계적 경쟁이 피말리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국가는 법으로 정해 놓은 특수교사 정원마저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그래서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 역사상 교사와 학생의 투쟁 없이 저절로 개선된 교육 현장은 없다.
새로운 교육
러시아 혁명기에 활동한 아동학·손상학·심리학자 레프 비고츠키는 인격을 “역사적 통합체”로 봤다.
신자유주의가 학교와 사회를 공격하면서 저항도 있었지만 세상과 세대 감각이 변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투쟁은 연대를 부르고 투쟁과 연대의 경험은 인간의 자질(변화 가능성)에 가닿아 세상을 변화시키면서 인간 자신들도 변화시킨다.
진정 새로운 교육은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에만 가능하다. 사회를 운영하는 핵심 원리, 중심 가치가 뒤바뀌어야만 이윤과 경쟁의 논리가 아니라 개성과 협력이 조화로운 새로운 교육, 새로운 학교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