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집, 프락치 강요, 군 의문사:
국가 폭력의 책임선 200명을 철저히 조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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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7일(월) 오전 10시, 충무로에 위치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 건물 앞에서 강제징집·녹화·선도공작진상규명위원회(약칭 ‘강녹진’, 이하 진상규명위)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진상규명위는 군사독재 시절 군에 강제 징집된 뒤 고문과 가혹 행위를 겪고 프락치 활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 모여 2019년에 창립했다. 진상규명위는 김영삼 정권 시기에도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책임 규명 대상자 200명에 대한 조사를 포함한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2기 진실화해위가 확보한 ‘녹화 및 선도공작’ 대상자 명단만 2,922명이다. 진상규명위는 실제 피해자 수가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국가는 수많은 학생들을 사찰하고 강제 휴학 처리했다. 경찰은 이들을 연행, 감금, 고문하고 군으로 넘겼다. 군으로 강제징집당한 학생들은 보안사의 심사를 거쳐 녹화·선도 공작(프락치 강요) 대상이 됐다. 공작 뒤에도 피해자들은 감시받았다. 그러다 사망하면 사인 은폐와 축소·왜곡이 뒤따랐다. 현재까지 파악된 의문사만 20명이다. 그 가운데 9명이 1983년 죽음을 맞았다.
이런 과정에서 청와대, 국방부, 내무부, 문교부, 안기부, 치안본부, 경찰, 대학, 보안사를 잇는 지휘 체계가 작동됐다. 피해자가 신청한 개별 사건 조사만으로 진상을 온전히 밝힐 수 없다며 ‘구조적 국가폭력 사건군’으로 조사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다.
이은희 ‘한희철 추모사업회’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한희철 군의 죽음처럼 국가 공권력을 동원한 광범위한 조직 체계가 작동한 사건은 개별 사건 조사만으로는 밝힐 수 없다.” “전체 가해 구조를 조사해야 더 많은 피해자와 책임자도 밝혀낼 수 있다.”
그동안 1·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0~2004년), 1·2기 진실화해위(2005~2010년, 2020~2025년)에서 네 차례 조사가 이뤄졌지만 매우 불충분했다. 많은 의문사가 ‘진상 규명 불능’ 결정이 났다.
1977년부터 1991년까지 강제징집과 녹화공작에 의한 의문사로 알려진 20명 중 4명(김두황, 김용권, 이윤성, 한희철)만이 국가폭력 희생자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그조차 가해자는 특정하지 못했다.
기자회견에서 최종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의문사지회장은 이렇게 규탄했다. “네 번의 조사위원회는 가해 기관의 조사 비협조와 자료 공개 거부로 인해 진전 없이 종료됐고, 권고 사항은 아무것도 시행된 것이 없고, 국가폭력 가해 기관은 반성도 사과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일일이 조사한 200명
그래서 진상규명위는 책임 규명 대상자를 직접 찾아 냈다. 지난 5년 동안 1·2기 의문사위와 진실화해위 조사 자료, 국가기록원과 보안사령부의 개인 존안자료(프로파일링 문서), 안기부·국방부·경찰청 과거사위원회 자료, 각종 공문과 보고서를 직접 모아 교차 검증해 책임 규명 대상자 200명을 추렸다. 국가가 공개한 자료에는 책임자들의 이름이 익명 처리돼 있었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위는 200명 중 특히 심사·공작 관련 장교 36명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강제 징집된 학생들 바로 옆에서 전향을 강요하고 프락치 공작을 지시한 자들이다.
이 심사·공작 관련 장교 36명 가운데 BBS불교방송 사장을 지낸 이선재, 과천시장을 세 차례나 지낸 여인국, 주프랑스 대사를 지낸 최재철도 포함돼 있다.
또한 1988년 국회에서 의문사 진상 규명 요구가 제기됐을 때 보안사가 만든 태스크포스와 관련해 이들 200명 중 일부의 이름이 등장한다며, 이들의 임무, 받은 지시, 행위, 보고 대상을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명단에 올랐다는 것만으로 곧 위법행위나 형사책임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실체를 규명해야 할 책임은 진실화해위에 있다.
양창욱 상임위원장은 “우리에게는 수사권도, 압수수색권도 없다. 우리에게 있었던 것은 기억과 기록뿐이었다”며 “관계 기관의 원자료를 확보하고 관계자를 조사하라. 필요하다면 청문회를 열어 책임의 실체를 규명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출범한 3기 진실화해위는 이전보다 강화된 조사권을 갖게 됐다. 만약 조사 대상자가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 영장 청구를 의뢰할 수 있고 청문회도 가능하다. 직권조사 범위와 개시 권한도 강화됐다. 진실화해위는 그런 권한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8월 7일 3기 진실화해위 출범을 맞아 “국가의 책임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며, 피해자의 신청에 의존했던 조사 방식의 한계를 보완해 국가가 먼저 피해자를 찾아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8월 11일 진상규명위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국정원·국방부·경찰청이 보유한 국가폭력 관련 자료를 전수 조사하고 공개하라고 지시할 것을 요구하고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과가 말에 그치지 않으려면 진상규명위의 요구는 마땅히 받아들여져야 한다.
잔혹한 국가폭력
잔혹한 국가폭력은 청년들의 몸과 마음을 산산이 부서뜨렸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김용신 씨는 올해 1월 펴낸 《트라우마 해방일지》에서 고문 기술자들이 자신의 옷을 벗기고 몽둥이로 때린 뒤, 사지를 묶은 채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물을 부었다고 썼다. 손가락과 발가락에는 전선을 연결해 전기를 흘렸다. 잠도 재우지 않은 채로 고문은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고문 뒤 부대로 돌아간 김 씨는 환시·환청과 정신착란에 시달렸다. 전역 뒤에도 악몽과 불면, 공포와 불안이 이어졌고 자살을 시도했다. 증상이 악화되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병마와 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통 속에서도 이들은 멈추지 않고, 국가가 감춰 온 진실을 향해 질긴 걸음을 이어가고 있다.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들의 한을 풀 수 있도록 진상규명위의 요구는 성취돼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록 공개를 지시해야 한다. 그리고 진실화해위는 누가 명령하고, 누가 실행하고, 누가 보고받고, 누가 진실을 가렸는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의문사 청년 학생
현승효
- 1950.6.22. 경북출생, 71년 경북대 의과대 입학
- 1974. 의과대학 유신반대 연좌농성 주도 수배됨
- 1975.2.21. 강제징집, 5사단 27연대 의무병 복무
- 1977.6.20. 박격포 부대로 전출 후 6.30. 의문사
이진래
- 1959.2.17. 전남출생, 77년 서울대 제약학과 입학
- 1980년 5월 광주 친척집에 머물며 광주항쟁 참여
- 81년 신검에서 군면제, 병역기피 혐의로 재 영장
- 1981.11.7. 군입대, 1982.1.2. 카츄사에서 의문사
정성희
- 1962년 인천출생, 81년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 사촌이모가 인천도시산업선교회의 조화순 목사임
- 1981.11.28. 강제징집. 5사단 36연대 전입배속
- 1982.7.23. 0시 10분경 총상으로 의문사
이윤성
- 1964.1.3. 출생,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계 입학
- 1982년 인문과학연구회 회장으로 활동
- 1982.11.5. 강제징집, 83.5. 의가사 전역 예정
- 1983.4.30. 205보안대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던 중 1983.5.4. 보안사 영내에서 의문사
김두황
- 1960.6.23. 서울출생 80년 고려대 정경계열 입학
- 현대철학회와 서울제일교회 활동
- 1983.3.8. 성북서 연행, 1983.3.18. 강제징집
- 22사단 55연대 복무중 1983.6.18. 23시 35분경 3분초 인근에서 매복근무중 총탄에 맞아 의문사
한영현
- 1962.3.1. 인천출생, 81년 한양대 공대 입학
- 민속문화연구회 가입, 연합 탈 및 야학활동
- 83년 공대시위로 강제휴학, 1983.4.2. 강제징집
- 83년 4월 신병훈련 중 2차례 보안사 조사. 6월 15일~21일 보안사의 프락치 공작 휴가
- 1983.7.2. 7사단 대대ATT훈련 중 총상 의문사
최온순
- 1981년 동국대 사범대학 수학교육과 입학
- 흥사단 아카데미 활동 1983년 3월 29일 시위예비음모로 경찰에 연행되어 강제징집
- 1983년 8월 14일 선임병에 의한 총상으로 사망
유동연
- 1958년 서울출생 1978년 연세대학교 사학과 입학
- 기독학생회(SCA), 신촌장로교회(기장)대학부 활동
- 1979년 기독학생회 농촌봉사활동대장으로 활동함
- 1982년 입대 55사단 171연대 배속되어 복무
- 1983.11.23. 내무반에서 선임병의 구타로 사망
한희철
- 1961.2.11. 마산출생, 79년 서울대 기계공학과 입학
- 카톨릭학생회 활동, 성남YMCA “탄천클럽조직” 81년 야학교사 활동 성남지역대학생연합회조직 주도
- 1982.12.1. 입대, 1983.12.6. 보안사 연행조사
- 1983.12.11. 부대 복귀 후 총상으로 의문사
이창돈
- 1962.4.3. 출생, 1982년 인하대 기계학과 입학
- YMCA 자생서클 “자운영”에 총무로 활동
- 1983.8.1. 입대, 17사단 수송부 운전병으로 근무
- 1984년 5월 14일 오후 6시경 행정반에서 M16 총에 맞아 사망한 상태로 발견됨
임용준
- 1962.4.21. 서울출생 81년 연세대 심리학과 입학
- 연세방송국(YBS) 기자로 활동
- 1984년 경찰, 학교등의 협박과 강요에 휴학원제출
- 1984.4.18. 입대, ASP로 지정 관리됨
- 5군단 638포병대대배속후 1984.11.2. 총상 의문사
김용권
- 1964.6.10 출생, 1983년 서울대 경영과입학
- “사회과학연구회”에서 활동
- 1985.10.18. 입대 미8군 44공병대대에서 복무
- 1986.8.3. 208보안부대에 유인되어 고문조사
- 1987.2.20. 부대내 막사에서 의문사(진상규명결정)
노철승
- 1965.3.5. 출생, 1983년 광주상고 졸업
- 1985.6.26. 군 입대 수도방위사령부 복무
- 조선대 재학 중인 형이 85년 군사법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3년형을 선고받고 전주교도소에서 복역
- 1987.3.1. 청와대 뒷산 초소에서 총상 의문사
이승삼
- 1966년. 부산출생, 83년 송기인 신부에게 세례받음
- 86년 부산공업전문대 전기과 입학
- 카톨릭학생회 회장, 카톨릭학생회 회장단 모임에 참여하면서 시위와 집회에도 적극 주도
- 1986.12.16. 입대 36사단복무. 87.3.3. 총상 의문사
이이동
- 1966.4. 광주출생, 85년 전남대 교육학과 입학
- 학생회 활동과 교내시위 및 집회에 적극 참여
- 1987년 1월 10일 군 입대, 육군 제9탄약창 근무
- 1987.6.15. 중대 막사 서북 능선에서 총상 의문사
최우혁
- 1966.3.4. 서울출생, 84년 서울대 서양사학과 입학
- 입학후 “경제법학회”, “SCA”에 가입 활동
- 1987.4.28. 입대 20 기계화사단 60여단 전입
- 1987.7.20. 정보과로 변경 87.8.5. 비밀취급인가
- 1987.9.2.~7. 비문 분실건으로 보안대 조사
- 1987.9.8. 부대 내에서 분신한 상태로 의문의 죽음
박성은
- 1969.12. 전남광주출생, 86년 광주농업고 입학
- “무등서고” 가입 활동, 1990.4.9. 방위병으로 입대
- 충정훈련 불만표출 등으로 영창 수감 및 조사
- 1990.5.24. 새벽 집 부근에서 사체로 발견
남현진
- 1970.2.22. 예천출생, 88년 외국어대 영어과 입학
- “민족사상연구회”와 “영어과학회”에 가입 활동
- 총학생회 사회부장, 전대협 용성총련 대표
- 1990.11.19. 입대, 주특기 08보안 이었으나, 100소총수로 변경
- 1991.2.3. 부대근처 철조망 밖 야산에서 의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