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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전진’)의 북한론

들어가며: 같은 결론, 다른 길. 왜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만으로는 부족한가

북한에 대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하 전진)의 입장과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결론이 상당히 겹친다. 북한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1945년 이후 북한에서 아래로부터의 혁명은 없었다, 김일성은 소련군 장교라는 이유로 낙점됐다, 북한 관료는 노동자를 착취하는 집단적 자본가(총자본가)다, 핵무장은 반제국주의가 아니다, 러시아 파병은 제국주의의 하위 협력자 역할이다, 대안은 노동계급의 국제 연대다. 어휘까지 겹친다. 전진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축적을 위한 축적”, “집단적 자본가”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는 국제사회주의 전통에서 수십 년 넘게 써 온 용어다. 1

그러므로 이 글은 ‘북한을 사회주의로 보는 좌파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같은 결론에 이르는 두 경로의 차이에 대한 논술이 될 것이다. 그리고 필자가 제기할 핵심 논점은 단순하다. 전진은 ‘국가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채택했지만,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설명하려는 바로 그것, 즉 왜 그 체제가 그렇게 작동했는가라는 역학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전진의 북한 서술은 이름은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이지만 실제 설명 구조는 주류 북한학과 별로 다르지 않은 다음 세 개의 명제로 짜여 있다. (1) 관료적 명령경제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다, (2) 지배집단의 유일한 목표는 체제 유지다, (3) 북한은 모험주의적 도박을 거듭했다. 이 세 명제는 각각 노동자연대가 김하영(노동자연대 운영위원)의 저작을 통해 명시적으로 비판해 온 설명 방식이다. 2

1. 이론적 토대: 유예된 논증 위에 세운 결론

1.1 “추후에 다른 문서를 통해”: 국가자본주의 이론 없는 국가자본주의

전진 강의의 주 43은 이렇게 적는다. “소련에 대한 전진의 ‘국가자본주의’ 규정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른 문서를 통해 체계적으로 논증하고자 한다.” 그리고 북한 장의 주 107은 이 장 전체가 전진의 반제반전 소책자를 “바탕으로 작성되었다”고 밝힌다. 이는 단순한 미완성이나 순서 도치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에서 ‘국가자본주의’는 결론이 아니라 설명 장치다. 클리프가 소련을 국가자본주의로 규정한 것은 도덕적 낙인을 찍기 위해서가 아니라, 소련 관료가 왜 노동자를 쥐어짜며 중공업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 왜 소비가 축적에 종속됐는지, 왜 ‘계획’이 실제로는 계획이 아니었는지를 세계 체제 내 군사적·경제적 경쟁이라는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김하영의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는 바로 이 원리를 북한에 적용해, 생산수단 생산과 소비재 생산의 비율 변화(〈표1〉·〈표2〉·〈표5〉), 국민총생산 대비 투자 비중(〈표3〉), 중공업 투자 비중(〈표4〉),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괴리(〈표6〉·〈그림1〉), 자본생산성 하락(〈표7〉)까지 통계로 추적한다. 3

전진의 북한 장에는 이 역학에 대한 논의가 없다. 단 하나의 통계표도, 북한 문헌 인용도, 투자 우선순위에 대한 분석도 없다. ‘관료적 국가자본주의’는 1980년대 위기를 서술하는 문단에 갑자기 등장해(“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였다”) 정의되지도 논증되지도 않은 채 쓰인다.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주의 분석을 진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 체제가 국가자본주의라면 축적의 강박은 어디서 왔는가? 전진의 답은 “체제의 축적논리”라는 한 구절뿐이고, 그 논리의 원천은 설명되지 않는다.

1.2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요구하는 최소 요건: 무엇을 보여 줘야 ‘국가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

국가자본주의 규정이 충족해야 할 기준을 차례로 세워 보자. 생산양식은 생산력과 생산관계로 구성되며, 생산관계는 사회의 성격을 규정한다. 생산관계의 핵심은 계급이며, 계급은 착취 관계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착취에는 직접적 착취(노예제·봉건제)와 간접적 착취(자본주의)가 있고, 간접적 착취는 보편적인 상품생산과 분리될 수 없다. 간접적 착취하에서 노동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자유’롭다. 생산수단 소유자에게 매여 있지 않고, 노동력 말고는 아무 재산(여기서는 생산적 재산을 뜻한다)도 없다. 잉여는 잉여가치로 생산되고, 잉여의 처분은 소비가 아니라 축적이다. 축적은 경쟁 압력하에 생산수단의 부단한 혁신을 동반하며, 자본은 물건이 아니라 사회관계다. 그리고 결정적 명제는 이것이다. 축적이 생산양식의 중심에 있는 생산양식은 자본주의적이다. 노동계급이 경쟁하는 개별 자본가들에 의해 착취받든, 자본주의적 법인이나 과점적 결합체에 의해 착취받든, 정부 관료가 관리하는 국유 산업에 의해 착취받든, 노동과 자본의 기본적 사회관계는 바뀌지 않는다.

노동자연대의 북한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이 기준에 대어 보면 항목마다 대응물이 있다.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고 “노동력을 재생산할 최소한의 비용을 임금(북한에서는 ‘생활비’라고 부른다)으로” 4 받는다는 서술은 노동력 상품과 그 가치에 대응한다. “노동자들에게 지불되는 ‘생활비’를 뺀 나머지 부분(잉여노동시간)을 국가와 지배계급이 전유했다” 5 는 서술은 잉여가치의 전유에 대응한다. 마르크스의 “생산을 위해 생산하도록 무자비하게 강요한다” 6 를 북한 관료에 적용하는 대목은 ‘축적을 위한 축적’ 기준에 대응한다. 대외무역 규모가 국내 경제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를 “국내 생산비용을 다른 나라들의 생산비용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뒤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기 때문” 7 이라고 설명하는 대목은 가치의 국제적 비교와 경쟁에 대응한다. 즉, 노동자연대의 분석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열거하는 기준을 하나씩 북한에서 확인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전진의 북한 장에는 이 가운데 어느 항목도 논증되지 않는다. 노동력이 상품인지, 잉여가 가치 형태를 취하는지, 축적이 중심 역학인지, 경쟁이 혁신을 강제하는지에 대해 아무 말이 없다. 전진이 제시하는 것은 국유화된 소유 형태와 정치적 억압, 그리고 “사회적 자원의 엄청난 부분을 계속해서 군사비로 투입했다”는 관찰이다.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의 기준에서 소유 형태는 (생산수단이 개인, 법인, 국가 중 누구 소유인지와 무관하게) 자본주의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며, 억압은 착취 양식이 아니다. 전진은 정의(定義)의 문제라고 할 첫 단계에서 멈춘다. 이것은 ‘국가자본주의 이론 없는 국가자본주의’라고 부를 만한 것이다.

우리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남겨 둔 한 가지 물음이 이 비교에서 특히 중요하다. 우리의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축적의 강제를 경쟁 압력에서 도출한다. 개별 자본은 경쟁자보다 싸게 생산하지 못하면 밀려나므로, 끊임없이 생산비를 낮추려 한다. 그렇다면 내부에 경쟁하는 자본가들이 없는 국가자본주의 경제에서 그 압력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답변은 세계 체제 내 군사적 경쟁이었다. 김하영은 이를 북한에 적용했다. “특히 군사적 경쟁은 비록 북한 내부에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이란 것은 없지만 북한이 세계 체제 내부에 존재하면서 경쟁 압력을 받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데, 이것은 북한 경제의 작동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8 전진은 이 물음을 제기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진의 텍스트에서 북한 관료의 축적은 원인 없는 강박, 또는 ‘체제 유지’라는 동기의 표현으로 남는다.

1.3 1928년인가 1937년인가?: 노동자국가의 ‘잔재’론

전진의 소련 서술은 월터 돔(Walter Daum, 《스탈린주의의 생과 사》)에 크게 기대고 있고, 그에 따라 반혁명의 완수를 “1937년 대숙청”에 둔다(“1937년 대숙청 이후 스탈린과 관료들이 지배하는 소련은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였다”). 그리고 소련이 시장자본주의와 다른 특징들(국유화, 해고의 어려움, 파산하지 않는 기업)을 “러시아혁명이 남긴 노동자국가의 잔재”로 설명한다.

반면 우리는 국제사회주의 전통에 따라 전환점을 1928년 제1차 5개년계획에 둔다(“토니 클리프가 1928년 이후 소련 관료에 대해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9 이 10년 차이는 사소하지 않다. 노동자연대의 관점에서 소련이 서방 자본주의와 다르게 보이는 특징들은 노동자국가의 ‘잔재’가 아니라, 후발국이 세계적 군사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국경 안의 모든 자원을 국가 강제력으로 집중시킨 국가자본주의의 고유한 형태다. 소련이 서방 자본주의와 달라 보인다는 사실만으로 자본주의라는 규정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 차이 역시 혁명의 흔적이 아니라 소련이 걸어간 국가자본주의 발전 경로의 산물로 설명해야 한다.

이 점이 북한 분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북한에는 애초에 노동자국가가 없었다. 잔재론으로는 북한의 국유화, 노동수첩, 배급제, 파산하지 않는 기업소를 설명할 수 없다. 전진 스스로도 북한이 “소련 스탈린 관료체제를 그대로 이식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소련의 특징을 ‘잔재’로 설명하는 이론과 북한의 동일한 특징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전진의 텍스트는 이 모순을 인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국가 주도의 급속한 공업화 전략은 스탈린주의만의 길은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1929년 대공황부터 1970년대까지 취약한 국민경제들에서 국가 통제로의 경향은 “자본주의 세계 전체에 걸쳐” 발전했고, “당시 ‘제3세계’에서 경제 성공담은 시장에 모든 것이 맡겨졌던 나라에서가 아니라 국가 개입이 강력했던 나라들에서 나오고 있었다.” 10 이 관점에서 북한은 소련의 복사판이기 이전에 1950~60년대 남한 박정희 체제와 같은 시대의 같은 문제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었다. 전진의 서술은 북한을 ‘스탈린주의의 이식’이라는 계보 안에만 가둠으로써 이 세계사적 맥락을 놓친다. 그 결과 북한의 특수성(가장 반동적인 형태)만 부각되고, 남북한이 공유하는 국가자본주의적 축적 논리의 동형성은 사라진다.

2. 역사 서술: 추상적 ‘위로부터’와 구체적 ‘위로부터’

2.1 사라진 1945년: 억압당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전진은 이렇게 쓴다.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자기조직화 기관은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한 채 질식당했고”, “형식적으로는 소련의 소비에트를 본따 만든 인민위원회가 존재했지만”.

우리는 두 가지를 바로잡고자 한다. 첫째, 인민위원회는 소련을 본떠 만든 기구가 아니라 해방 직후 조선 각지에서 좌우익을 망라해 아래로부터 형성된 연립 기구였다. 소련 점령 당국은 형식상 행정을 인민위원회에 넘겼지만 실질적 권한은 허용하지 않았고, 각 도 인민위원회 연합 회의로 구성된 행정 10국은 소련 당국의 지시를 무조건 집행하도록 돼 있었다. 둘째, 자기조직화는 “제대로 등장하지도 못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등장했다가 진압됐다. 김하영의 서술은 구체적이다. 노동자들이 일본인을 내쫓고 ‘공장위원회’를 구성해 접수·통제하던 것을 소련 점령 당국이 “조합주의”라며 중단시켰고, 국내 공산주의자들의 적위대까지 해산했으며, 한글 신문들을 폐간·검열했다. 해방 직후 조사에서 77퍼센트가 “좌익 이념을 선호한다”고 답했다는 사실도 인용된다. 11

이 차이는 서술의 정확성 문제를 넘어선다. 전진처럼 “등장하지도 못했다”고 쓰면 조선 노동자에게는 처음부터 주체적 역량이 없었던 것이 되고, ‘위로부터의 체제’는 빈 공간에 이식된 것이 된다. “등장했으나 진압됐다”고 김하영처럼 쓰면 1945~46년은 노동계급의 자체 활동과 소련 관료의 이해관계가 충돌한 계급투쟁의 국면이 된다. 후자만이 “북한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투쟁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12 관점과 부합한다. 전진의 텍스트는 자신이 결론에서 호소하는 바로 그 잠재력을 서두에서 지워 버린다.

2.2 소련의 ‘전리품’과 국유화의 순서

전진은 소련의 북한 점령을 “스탈린주의 관료체제의 세계적 팽창을 위한 도구”라는 일반 명제로 처리한다. 김하영은 그 팽창이 무엇으로 구성됐는지를 보여 준다. 일본인 소유 공장·설비의 접수와 소련 반출, 1946년 4월까지 철도 수송량의 절반이 소련 수요 충족에 복무했다는 소련민정청 보고서, 그리고 “중요 산업 국유화 조처는 소련의 ‘전리품’ 챙기기가 어느 정도 충족된 뒤에야 실시됐다”는 시간 순서. 13 여기에 메레츠코프의 “북한의 공업은 우리[소련]에게 이로운 방식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슈티코프의 “극동의 우리 공업의 수요를 고려해야 한다”가 더해진다. 14

이 세부 사항들은 장식이 아니다. 이것들은 북한 국유화가 ‘사회주의적 개조’가 아니라 점령국 자본축적의 하위 부문으로 시작됐음을 증명하는 물증이며, 동시에 뒤에 올 북·소 균열(김일성의 ‘주체’)을 설명하는 열쇠다. 우리의 용어로 말하면, 이것은 잉여가 어떤 형태로 누구에게 이전됐는가를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없으면 ‘점령’은 정치사의 사건에 그친다. 김하영의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은 1964년 〈로동신문〉이 소련의 불공정 거래를 폭로한 대목까지 인용하며, 주체사상을 “독자적인 민족적 국가자본주의를 건설하려는 김일성의 시도”와 “북한을 위성국 지위로 격하시키고자 하는 소련의 의도”의 충돌에서 도출한다. 15 전진의 강의에는 주체사상에 대한 이런 유물론적 설명이 전혀 없고, 그 자리를 “개인숭배 정책은 결국 동양의 유교문화와 결합해 대를 이어 세습하는 수령체제에 이르게 되었다”는 문장이 채운다.

2.3 ‘유교문화’라는 설명

우리가 가장 날카롭게 비판하는 대목이 바로 여기다. “동양의 유교문화”로 세습을 설명하는 것은 서구 언론과 남한 우익이 북한을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로 묘사할 때 쓰는 문화주의적 설명이다. 김하영의 결론은 정반대다. “국내 자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폐쇄적 국가자본주의 모델을 밀어붙인 결과 군중노선이나 수령제 같은, 얼핏 보기에 광기처럼 보이는 일들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의 이런 모순은 북한이 편입돼 있는 세계 체제의 압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6

전진은 곧바로 괄호를 열어 수령체제가 “세습적 군주체제가 발 딛고 있는 역사적 토대와는 다른 기초 위에서 작동한다”고 단서를 달지만, 이는 앞 문장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설명을 병렬해 놓은 것이다. 역사유물론적 분석은 ‘유교’를 원인으로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유물론은 김정일의 “주체적 요인” 강조(1967)를 갑산파 숙청 국면에서 물질적 자극 확대 요구를 억누르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위치시킬 것이다. 17 즉, 수령론의 형성 시점과 기능을 관료 내부의 축적 전략 투쟁과 연결한다. 전진은 반대파 숙청을 “책임을 대신 짊어질 희생양”과 “관료적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권력 논리로만 설명한다.

2.4 숙청의 내용: 무엇을 둘러싼 싸움이었나

전진의 서술에서 박헌영 처형과 연안파 숙청은 김일성 분파의 권력 장악 과정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절반의 진실이다. 김하영은 1956년 8월 전원회의에서 윤공흠이 무엇을 말했는지 기록한다. “당이 중공업에 치중하여 인민 생활 향상을 무시했기 때문에 인민의 불만이 고조돼 있다”, “노동자·농민은 너무 가혹한 대우를 받는 반면, 인민군 장교의 급료는 지나치게 높다.” 18 1960년대 중후반 갑산파(박금철·이효순)의 쟁점도 “경제 발전의 속도와 균형 문제, 그리고 가치법칙의 이용에 관한 문제”, “과도한 국방비를 줄여야 한다”였다. 19 직업동맹위원장 서휘는 “조건 없이는 증산경쟁운동을 하지 말라”며 직업동맹 권한 강화를 시도했으나 숙청됐다. 20

이렇게 보면 북한의 파벌 투쟁은 단순한 권력 투쟁이 아니라 축적률과 소비의 배분, 즉 노동계급으로부터 얼마나 쥐어짤 것인가를 둘러싼 지배계급 내부의 분열이었고, 그 분열은 스탈린 사후 소련의 정책 변화와 북한 민중의 불만을 동시에 반영했다. 우리는 잉여의 처분, 즉 착취 계급이 잉여를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가 착취 양식과 불가분하게 연결돼 있다고 강조한다. 숙청의 쟁점이 바로 그 처분(축적 대 소비)이었다는 것은, 북한 관료 내부의 투쟁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논리 안에서 벌어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이런 분석 틀로만 ‘숙청’은 노동계급의 처지와 연결된다. 전진의 독법에서 숙청은 노동자와 무관한 상층부 사건이다. 이 차이는 마르크스주의 역사 서술이 무엇을 계급 분석이라 부르는가의 문제다.

3. 한국전쟁: “총을 누가 먼저 쏘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3.1 ‘북한의 선제공격’과 ‘혁명 수출’이라는 프레임

전진은 한국전쟁을 이렇게 규정한다. “북한의 선제공격으로 1950년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남북 노동자 민중의 단결을 통한 한반도 혁명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모험주의적 도박이었다. 남한 노동자 민중의 자주적 혁명 가능성에 대한 비관주의에서 출발해, 혁명을 군사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오판 속에서 전개된 한국전쟁은 비극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남한 좌익이 궤멸된 이유를 “남한의 노동자 민중의 눈에는 한국전쟁이 단순히 북한의 침략전쟁으로 비춰졌기 때문”으로 든다.

김하영의 2002년 글은 정반대의 출발점에서 시작한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북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해 북한측이 먼저 총을 쏘았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조금만 이해해도 총을 누가 먼저 쏘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는 1949년부터의 38선 무력 충돌, 이승만의 공공연한 북진통일론, 전쟁 한 달 전 이승만의 대북 방송을 열거한 뒤 “북한이 남침하지 않았어도 곧 남한의 이승만이 북침했을 것”이라고 쓴다. 21 2014년 소책자에서도 “1940년대 말 북한 당국은 공공연히 ‘매국적 괴뢰정부’(남한 정부)의 분쇄와 ‘국토 완정(통일)’을 외치고 있었다.(남한의 이승만 정부 역시 ‘북진 통일’을 외쳤다.)”고 대칭적으로 적는다. 22 결론은 “이승만(남한)과 김일성(북한), 트루먼(미국)과 스탈린(소련)과 마오쩌둥(중국) 모두 한국전쟁의 책임자요 전범들이다.” 23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전진의 서술은 남한 주류 역사학의 ‘남침 서사’를 재생산한다. 물론 전진은 김일성을 ‘침략자’라 부르지 않고 ‘모험주의자’라 부르지만, 원인의 주어는 일관되게 북한이고, 미국·소련은 배경에 머문다. 노동자연대의 관점에서 한국전쟁은 “한반도를 전장으로 해서 벌인 미국과 중국·소련의 제국주의 간 전쟁”이며, 그 전에 분단 자체가 미·소의 ‘일반명령 1호’로 강요됐다. 24 전쟁을 두 국가자본주의 라이벌의 ‘국토 완정’ 경쟁과 그 배후 제국주의의 대리전으로 볼 때에만, 왜 남한 사회주의자가 북한을 옹호하지 않으면서도 전쟁 책임을 북한에만 묻는 우익의 요구를 “역사 왜곡이요 위선”이라 반박할 수 있는지가 설명된다.

둘째, “혁명을 군사적으로 ‘수출’할 수 있다는 오판”이라는 표현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틀에서 이론적으로 부정합하다. 국가자본주의 체제는 수출할 ‘혁명’을 갖고 있지 않다. 김일성의 남진은 혁명 수출이 아니라 두 국가 사이의 영토·자원·정통성 경쟁이었고, 만주파 김일의 말(“발동기 생산에 있어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쪽이 전쟁을 승리할 것”)처럼 중공업 축적과 전쟁 준비가 하나였다. 25 전진이 ‘혁명 수출’이라는 어휘를 쓰는 순간, 북한 체제에 어떤 혁명적 내용이 있었다는 가정이 텍스트 안으로 몰래 들어온다. 이는 전진이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변형된 노동자국가’론의 잔여물처럼 읽힌다. “국가자본주의”라는 규정과 “혁명 수출”이라는 서술은 같은 문서 안에 공존할 수 없다.

3.2 남한 좌익은 언제, 누구에 의해 궤멸됐나

전진은 남한 좌익의 궤멸을 전쟁의 결과로, 그것도 대중의 인식(“침략전쟁으로 비춰졌기 때문”) 때문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순서를 다르게 본다. 남한 좌익은 전쟁 이전에 미군정과 이승만에 의해 이미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있었다. 제주 4·3(최소 3만 명), 여순(1만 명), 보도연맹(20~25만 명).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당한 민간인 숫자는 100만 명이 훨씬 넘을 것”이며 “이들을 학살한 학살자들이 바로 냉전 우익 세력의 뿌리다.” 26 우리의 기준에서 남한 좌익 궤멸의 일차적 행위자는 미국과 이승만 정권이지 북한의 ‘오판’이 아니다. 전진의 서술은 이 학살을 언급하기는 하되(“좌익 혹은 좌익으로 의심되는 세력들에 대한 대학살”), 그것을 전쟁 이후의 결과로 배치함으로써 인과의 방향을 뒤집는다.

3.3 사실관계에 대한 의문

전진의 역사 서술에서는 사건의 시점, 국제적 합의의 내용, 점령통치의 방식을 구별해 검토할 대목들이 있다. 이 대목들은 조약문과 회담 기록, 점령기 행정조직에 관한 연구에 비추어 수정하거나 설명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27

  • 전진은 한국전쟁 발발 이전의 정세를 설명하면서 중국 정부 수립에 이어 북·중 상호방위조약도 체결됐다고 서술한다. 그러나 상호 군사원조 의무를 규정한 「조·중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은 1961년 7월 11일 체결됐다. 1949~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조선인 부대의 입북과 1961년의 조약 체결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28
  • “얄타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대한 신탁통치를 결정”했다는 전진의 서술은 논의와 구체적 합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1945년 2월 얄타에서 루스벨트와 스탈린은 한국 신탁통치의 구상과 기간, 참여국 문제를 논의했지만, 구체적인 실시 방안까지 확정하지는 않았다. 같은 해 12월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한국 임시민주정부 수립, 미·소 공동위원회 설치, 최장 5년의 4개국 신탁통치 협정안을 마련하는 절차가 공식 합의문에 담겼다. 신탁통치의 구체적 내용은 한국 임시정부와의 협의 및 4개국의 후속 합의를 거치도록 돼 있었다. 29
    김하영도 얄타회담에서 “한반도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쓴다(《한반도》 235쪽).

4. 경제 위기: ‘비효율’ 대 ‘경쟁적 축적’

4.1 전진의 설명은 노동자연대가 비판하는 바로 그 설명이다

전진의 위기 설명은 명확하다. “노동자계급의 능동적 참여와 통제 하에 이뤄지는 민주적 계획과 무관한 관료적 명령경제는 합리적으로 경제를 조직해내지 못하면서 갈수록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관료적 명령경제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었고, 지배계급은 권력유지를 위해 결국 시장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이루게 된다.”

김하영의 2014년 소책자에는 이 설명 방식을 정면으로 겨냥한 절이 있다. “많은 연구자들은 북한 경제의 문제로 비효율과 낭비를 지적한다. 실제로 북한 경제에는 엄청난 비효율과 낭비가 있다.” 그는 자재 비축, 생산능력 축소 보고, 기관본위주의, 돌격식 생산의 기계 혹사 등을 김일성 자신의 발언을 인용해 상세히 열거한다. 그러고 나서 방향을 튼다. “북한에서 비효율과 낭비가 만연한 것은 계획경제이기 때문이 아니라 경제가 세계 체제 속 경쟁 논리에 종속돼 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낭비가 나타난 직접적 원인은 계획 수립자들이 생산 목표를 과도하게 높게 책정해서였다. … 그런데 북한 관료가 과도하게 높은 목표를 책정하는 것은 국제적 경쟁(특히 남한과의 경쟁) 압력 같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요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요컨대 비효율과 낭비는 경쟁적 축적 체제 자체로부터 비롯한 것이다.” 30

전진의 설명(“관료적 명령경제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은 노동자연대의 관점에서 두 가지 문제를 낳는다. 첫째, 그것은 미제스–하이에크 이래 우파의 계획경제 비판과 원리가 같다. 계획이 노동자 통제 없이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명제는, 관료적 명령경제의 실패 원인을 명령경제 내부에서 찾는다. 둘째, 그것은 북한이 한때 놀랍게 성장했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4.2 사라진 ‘경제 기적’

김하영은 이 점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북한 경제의 모순을 낭비와 비효율로 설명하려는 사람들의 문제는 북한이 전후에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이다.” 3개년계획(1954~56) 연평균 30퍼센트, 1차 5개년계획 20퍼센트 이상, 1964년 조앤 로빈슨의 ‘경제 기적’ 찬사, “1970년대 중후반까지도 미국 CIA는 북한이 거의 모든 경제 부문에서 남한을 앞지르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클리프를 따라 “관료의 부실 경영과 공업의 대약진 사이에는 긴밀한 변증법적 통일이 존재한다”고 쓴다. 성장을 가능케 한 바로 그 방식(소비 희생, 외연적 축적)이 나중에 성장의 걸림돌이 됐다는 것이다. 31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이 ‘성장’이 왜 자본주의의 표지인지를 분명히 해 준다. 노예제나 봉건제처럼 축적이 체제를 움직이지 않는 사회에서는 생산이 늘더라도 대개 노예·농노나 경작지를 더 늘리는 양적 확대에 그쳤다. 이와 달리 자본주의에서는 끊임없는 성장이 체제가 굴러가는 방식 그 자체다. 북한이 1950~60년대에 보인 성장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기준에서 북한을 자본주의로 분류하는 근거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전진처럼 성장을 유산과 원조로 환원하고 위기만 체제의 본질로 돌리면, 이 논리는 사라진다.

전진의 설명에서 북한의 초기 우위는 두 가지 외생 요인으로 환원된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 하에서 주요 중공업 생산시설이 한반도의 북쪽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 그리고 “소련과 중국의 균열 속에서 줄타기 외교를 통해 양국 모두로부터 상당한 지원”. 김하영은 이 두 요인을 부정하지 않지만(일제 유산이 “중공업을 우선 육성하려는 북한 관료에게 안성맞춤인 기반을 제공했다”고 쓴다 32 ), 성장의 주된 원천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 노동자와 농민을 쥐어짠 것이다. 현물세 25~27퍼센트, 시장가보다 30~35퍼센트 낮은 수매가, 생산성 증가율의 6분의 1에 불과한 임금 인상 계획, 1960~64년 실질소득 하락, 대중소비품에 매겨진 고율 거래수입금. 33 이것이 ‘사회주의적 시초 축적’의 실체이며, 성장은 유산이나 원조의 선물이 아니라 착취의 산물이었다. 전진이 착취를 강조하면서도 성장을 유산과 원조로 설명하는 것은, 착취가 무엇을 생산했는지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착취론을 공허하게 만든다.

4.3 외연적 성장에서 내포적 성장으로

국가자본주의 이론은 경쟁 압력하에서 축적이 생산수단의 혁신을 동반한다고 강조한다. 혁신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노동력 가치를 떨어뜨리고, 그럼으로써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린다. 마르크스의 분석에서 자본은 경쟁 압력 아래 생산수단과 생산방법을 혁신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려 한다. 특히 노동자의 생활수단과 그 생산에 필요한 원료·설비 등을 생산하는 부문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주어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노동시간이 줄어 노동력 가치가 낮아질 수 있다. 노동일의 길이가 같은 상태에서 필요노동시간이 줄고 잉여노동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상대적 잉여가치 생산의 핵심이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이 제약받는 조건에서도 자본은 노동일 연장, 노동강도 강화, 실질임금 억제 등을 통해 착취를 강화하려 할 수 있다. 이때 노동일 연장에 따른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 노동강도 강화, 임금 삭감은 각각 구별해 분석해야 한다. 특히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직접 낮추는 것을 생산성 향상에 따른 노동력 가치 하락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34

김하영의 북한 분석은 이 논리를 북한에 적용한다. 북한 산업화의 첫 국면은 “자원을 최대로 투입하고 이제 막 도시로 밀려든 미숙련 노동자들을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일 시키는 것”이었다. 노동시간 연장(“2~4시간 이내의 시간외노동”의 합법화), 노동강도 강화(천리마, ‘5백삽 뜨고 허리쉬기’), 저임금 정책과 실질임금 하락 — 즉 절대적 잉여가치와 생활수준 압박이 축적의 주된 원천이었다. 김하영은 이것을 “외연적” 성장이라 부르고, 1960년대 들어 북한 당국이 “기계와 설비, 원료와 자재, 노력과 자금을 더욱 합리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기 시작한 것을 “내포적” 발전의 필요, 곧 상대적 잉여가치로의 전환 필요로 읽는다. 김일성 자신이 1961년 강철 생산에서 선진국보다 코크스 2배, 전력 1.5배, 내화물 3배를 쓴다고 인정했다. 35

문제는 그 전환이 실패했다는 것이다. 생산수단의 혁신은 세계 수준의 기술 도입을 요구했고, 북한은 1970년대에 그것을 시도했다가 1976년 채무불이행으로 좌절됐다. 1980년 김일성의 “콕스탄이 잘 들어오지 않으니 황해제철연합기업소가 서게 되었소”는 혁신 실패의 육성이다. 36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틀로 말하면, 경쟁 압력은 혁신을 강제했으나 국경 안의 자원으로는 혁신을 수행할 수 없었고, 체제는 절대적 잉여가치 추출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1980년대 침체의 메커니즘이다. 전진의 “본질적 비효율”은 이 메커니즘 전체를 부정확한 구조로 대체한 것이다.

4.4 언제 무엇이 잘못됐나: 시점과 메커니즘

전진은 “1980년대에 들어서자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역관계가 역전되었다”고 쓰고, “본격적인 위기”를 1990년대 초 소련 붕괴와 1994년 이후 자연재해로 설명한다. 이는 “그동안 북한 체제에 환상을 품고 있던 사람들”이 택했다고 노동자연대가 비판한 바로 그 외부 원인론에 가깝다. “물론 동구권 몰락과 홍수의 여파는 적지 않았다. … 그러나 이미 1980년대에도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고 식량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소련·동유럽의 몰락과 자연재해는 이미 누적된 위기에 마지막으로 올려진 지푸라기였던 것이다.” 37

우리의 시간표는 다르다. 1960년대 성장 둔화, 1차 7개년계획의 3년 연장, 1962년 코메콘 통합 거부와 소련 원조 중단, 경제-국방 병진노선과 국방비 30퍼센트 초과, 1970년대 서방 플랜트 수입과 1976년 채무불이행, 1980년대 초 임춘추의 “지금 인민이 굶고 있다”, 2차 7개년계획 성장률 3~4퍼센트, 1983년 이후 공업 성장률 발표 중단, 3차 7개년계획 마이너스 2.9퍼센트. 38 여기에 이론적 설명이 붙는다. 첫째, 이윤율 저하 경향의 국가자본주의적 버전: “축적 과정에서 노동력보다 총투자가 더 빨리 증가함에 따라 투자 대비 평균이윤이 하락”, 자본생산성 증가율이 1966~70년 0.1퍼센트에서 1978~86년 마이너스 6.3퍼센트로(〈표7〉). 39 이것은 축적의 결과인 ‘살아 있는 노동에 대한 물질적 생산수단의 역할 증대’가 낳는 고전적 귀결이다. 둘째, 하먼을 따른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 변화: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 들어 국가자본주의 방식보다 ‘세계화’가 더 유력해졌기 때문에, 국가자본주의적 길을 고수하는 국가들은 뒤처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40

이 두 번째 설명은 전진의 “관료적 명령경제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과 결정적으로 다르다. 우리의 설명에서 국가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비효율적이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한 시대에는 성공적이었으나 생산의 국제화라는 세계 자본주의의 변화 속에서 낡은 모델이 된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소련·동유럽의 시장 전환도, 북한의 폐쇄 고수도 노동자에게는 대안이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41 전진의 설명에서는 시장으로의 전환이 명령경제의 ‘본질적’ 비효율에 대한 논리적 귀결처럼 읽히고, 그것은 의도와 무관하게 시장에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할 수도 있다.

4.5 개혁 시도의 역사가 없다

전진의 북한 장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위기로 곧장 건너뛴다. 김하영의 서술에서 그 사이는 개혁 시도와 반동의 반복이다. 1960년대 초 소비재 부문을 돌아본 “완충기”와 그 종료, 1969년 김일성의 “가치법칙의 형태적 이용” 테제(갑산파 숙청 후에도 그들의 문제제기를 흡수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1970년대 초 계획의 일원화·세분화 완화, 1972년 이후 서방 플랜트 도입, 1984년 합영법(중국 중외합작기업법 모델), 1986~87년 냉각, 1991년 나진-선봉. 김하영은 이를 “개혁 조처를 시도하기는 하되 지배 체제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매우 조심스럽고 제한적인 방식을 취하는 줄타기”로 요약한다. 42

이 역사는 “북한은 왜 시장자본주의 대신 핵무장과 고립주의로 나아갔는가”라는 전진의 질문 자체를 바꾼다. 북한은 시장 ‘대신’ 핵을 택한 것이 아니라, 1970년대부터 세계시장을 향해 문을 열려다 채무불이행으로 데인 뒤 “세계시장을 향해 조금 연 빗장으로 밀어닥친 엄청난 공포”가 “보수적 타성을 자극”한 국가였다. 43 즉, 폐쇄는 선택이 아니라 실패한 개방의 결과였다. 전진의 이분법(시장 전환 vs 핵무장·고립)은 이 30년의 진동을 간과한다.

5. 노동계급: ‘72년간 파업 없음’이라는 주장과 숨은 계급투쟁

5.1 전진 서사의 계급투쟁 부재

전진은 이렇게 쓴다. “2024년 중국 지린성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임금체불 해결을 요구하며 자생적인 파업을 벌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것은 6.25 전쟁 이후 아마도 유일하게 확인되는 북한 노동자들의 파업인데, 72년간 다른 파업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극심한 노동통제에 시달리고 있다.” 결론부에서는 “안타깝게도 북한에서 우리는 유의미한 노동자들의 자주적 조직화 시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김하영의 소책자에는 〈북한 노동계급의 처지〉라는 독립된 장이 있다. 노동수첩, 시간외노동 합법화, 결근 시 배급 삭감, 불합격품에 대한 물질적 책임, 직장 이탈 시 6개월~1년 교화노동, 도급제·누진도급제, 스타하노프식 증산경쟁, 단체계약제의 사실상 폐지(1964), 형법의 직무집행방해죄·집단적소요죄. 이 장의 결론은 전진과 같은 방향이지만 논리가 다르다. “이처럼 노동자들의 자주적 활동을 금지한다는 것은 북한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북한 관료의 그것과 어긋난다는 것을 방증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북한 관료는 노동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참여를 체계적으로 차단하고 억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4

5.2 ‘자유’ 노동자

마르크스주의 역사유물론은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가 두 가지 서로 연관된 의미에서 ‘자유’롭다고 정의한다. 소유자에게 소유되거나 묶여 있지 않으며(법적 자유), 노동력 말고는 아무 (생산적) 재산도 없다(생산수단으로부터의 자유). 이 이중의 자유가 간접적 착취의 전제다. 우리는 북한 노동자를 정확히 이 규정으로 포착한다. “북한 노동자들은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하거나 또는 그에 속박돼 있지 않은 ‘자유’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이 규정을 검증하려는 듯 김하영은 곧바로 덧붙인다. “그러나 북한 노동자들이 직장 이동마저 철저히 금지된 노예 같은 존재였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북한 당국은 엄격한 노동법으로도 노동력의 이동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노동력 부족 속에서 노동자들은 직장 선택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었다.” 45

이 대목은 이론적으로 중요하다. 만약 북한 노동자가 직장에 법적으로 완전히 묶인 존재라면, 우리의 분류에서 그 착취는 ‘직접적 착취’(농노제에 가까운 형태)가 되고 북한은 자본주의가 아니게 된다. 김하영은 노동수첩과 교화노동 조항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노동력 부족 때문에 실제로는 이동이 이뤄졌음을 보임으로써 북한 노동자가 노동력 상품의 판매자로 존재했음을 확인한다. 반면 전진의 서술 — “노동자계급의 자기 조직화를 봉쇄하고 노동자계급을 원자화시키는 관료적 행정기구의 거대한 톱니바퀴”, “촘촘한 그물망” — 은 노동자를 완전히 속박된 존재로 그림으로써,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자본주의 기준에서 북한을 벗어나게 만든다. 즉, 전진의 억압 서술은 그 자체로 전진의 국가자본주의 규정과 모순된다.

5.3 착취는 도덕적 개념이 아니다

역사유물론은 이렇게 단언한다. 착취란 단순히 생산계급으로부터 비생산계급이 무보수 노동 또는 노동생산물을 전유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이 용어를 도덕적 의미로, 즉 노동자를 잔혹한 조건에 굴복시키거나 초과(‘공정한’ 것에 대비되는) 이윤을 생산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쓰지 않는다.

전진의 북한 장은 “북한은 중국보다 더하다”로 시작해 노동통제의 극심함, 민주적 권리의 “최악” 수준, 파업의 부재를 논거로 든다. 이것은 역사유물론이 배제하는 도덕적 의미의 ‘착취’다. 잔혹함은 착취의 증거가 아니라 착취의 한 조건일 뿐이며, 잔혹하지 않은 착취도 착취다. 김하영의 분석은 이 구분을 지킨다. 그의 논거는 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괴리(〈표6〉), 임금 인상률을 생산성 증가율의 6분의 1로 잡은 7개년계획, 거래수입금이라는 간접세 — 즉 무보수 노동의 양이지, 그 조건의 잔혹함이 아니다. 46 잔혹함은 김하영의 텍스트에도 나오지만, 착취를 ‘증명’하는 문맥이 아니라 축적의 방법(절대적 잉여가치)을 설명하는 문맥에서 나온다.

5.4 파업 없음 = 계급투쟁 없음?

우리는 ‘파업 없음 = 계급투쟁 없음’이라는 등식을 거부한다. 김하영은 억압 아래서 계급투쟁이 취하는 형태를 간파한다. 공장 관리자들의 노동력 비축이 만성적 노동력 부족을 낳았고, 그 틈에서 노동규율 위반이 묵인됐다. 김일성 자신이 “무질서, 무규율, 무정부 상태”를 개탄했다. 농민은 양곡을 숨기고 가축을 도살하고 협동조합에서 탈퇴했다. 임금 평준화 경향에 대한 김일성의 “가열찬 투쟁” 선언은, 노동자들이 임금 격차에 저항했음을 역으로 증언한다. 47 이것들은 파업이 아니지만, 클리프가 소련 노동자에 대해 읽어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숨은’ 계급투쟁이다.

김하영은 2005년 글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북한 사회를 조지 오웰의 《1984년》처럼 여기는 사람들(전체주의 이론가들)은 북한 내부에서 어떤 변혁 시도도 불가능하다고 여길 것이다. 소련과 동유럽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 … 주관적 조건은 매우 취약한 게 틀림없지만, 북한 노동자들이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 투쟁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의 동력을 외부로부터 또는 위로부터 찾게 될 것이다.” 48

전진의 서술 — “노동자 민중의 자기 조직화의 모든 숨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아버렸고”, “유의미한 자주적 조직화 시도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 는 이 경고가 겨냥하는 방향으로 기운다. 전진이 결론에서 “북한의 억압적 체제 아래 노동자민중의 분노의 에너지가 상당하게 축적되어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고 쓰는 것은, 앞의 서술이 그 에너지의 어떤 표현도 보여 주지 못했기 때문에 희망사항처럼 들린다. 김하영은 그 예상을 김일성의 한탄과 형법 조문과 노동력 부족 통계로 뒷받침한다.

‘72년간 파업 없음’이라는 단정 자체도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2009년 화폐개혁과 뒤이은 시장 폐쇄 조처에 맞선 주민들의 반발 49 , 김하영 자신이 기록한 1950년대 농업 집산화 저항 50 등, ‘파업’이라는 이름을 갖지 못한 집단적 저항의 보고들이 있다. 전진의 단정은 확인된 파업만을 계급투쟁으로 간주하는 협소한 기준의 산물이고, 그 기준은 억압적 체제에서 노동계급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과소평가한다.

5.5 사료의 문제: 《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와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

전진의 북한 경제 서술에서 인용되는 사료는 주 108~113의 주성하(《평양 자본주의 백과전서》)와 다니엘 튜더(《North Korea Confidential》)가 전부다. 이 사료 선택 자체가 문제다. 두 책은 저널리즘이고, 특히 전자는 탈북 언론인이 남한 보수 신문에 기고한 기록이다. 이 사료들이 거짓이라는 말은 아니다. 문제는 전진이 이 사료들에서 사실만이 아니라 ‘평양 자본주의’, ‘조선 자본주의 공화국’이라는 프레임까지 함께 들여왔다는 점이다. 그 프레임의 함의는 북한이 ‘이제야’ 자본주의가 됐다는 것이며, 이는 북한이 1946년부터 자본주의였다는 국가자본주의 이론과 충돌한다.

전진의 텍스트는 “관료적 국가자본주의에서 나타났던 ‘축적을 위한 축적’에 복무하는 ‘집단적 자본가’로서의 관료집단과 나란히, 그것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신흥 자본가’ 집단”이라고 쓰면서 둘을 구분하려 하지만, 이 문단의 서사적 무게중심은 ‘신흥 자본가’의 등장에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강조하려는 원칙은,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계급과 계급 사이의 관계이며 한 계급 안의 분화는 그보다 부차적이라는 점이다. 노동계급이 관료에 의해 착취되든 돈주(자본가, 특히 신흥 부유층을 가리키는 북한 용어)에 의해 착취되든 착취의 사회관계는 같다. 관료와 돈주의 구분은 지배계급 내부의 구분이고, 그것이 사회의 성격을 바꾸지는 않는다. 전진이 이 구분에 한 절을 할애하면서 착취 관계 자체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은 역사유물론의 우선순위와 정반대다.

김하영은 다른 사료 기반을 갖고 있다. 북한 당국의 공식 문헌(《인민》, 《경제건설》, 《근로자》, 김일성·김정일 저작집, 《조선로동당략사》), 국가계획위원회 통계, 그리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한 남한 학계의 연구. 그는 북한 문헌을 “북한 관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으면서 그 안에서 계급 관계를 추출한다(예: “수매가격은 가치 이하로 제정되면서 농민들이 생산한 순소득의 일부가 공업의 발전을 위하여 인입되어야 한다”). 51 이 방법이 역사유물론적 분석의 요건이다. 지배계급의 자기 진술에서 착취의 구조를 읽어내는 것. 전진의 방법은 외부 관찰자의 인상기에서 착취의 풍경을 옮겨 오는 것이다.

6. 핵과 북미관계: 능동적 행위자는 누구인가?

이 부분은 김하영이 가장 상세하고 단호하게 반박해 온 대목이다. 그의 최근(2026년 9월) 기고문은 사실상 전진식 서술에 대한 반박문으로 읽힌다.

6.1 전진의 서사 구조

전진의 서사를 요약하면 이렇다. (1) 1992년 비핵화 공동선언으로 북한의 오랜 요구가 관철됐는데 “오히려” 북한이 핵개발을 시작했다. (2) 소련 붕괴로 “독자적인 군사적 생존 전략”이 필요했고, “남북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단결이라는 진정한 해법은 … 당연히 배제할 수밖에 없었기에” “모험주의적 도박정책”으로 핵개발을 택했다. (3) 핵을 철회하는 대가로 안전보장과 경제지원을 얻으려는 “양다리 걸치기 전술”이었고, “핵개발의 가속페달을 최대한 밟아 몸값을 높이는” 것이 핵심 카드였다. (4) 그러나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카드가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 거래가 불발됐다. (5) 대기근의 책임 전가 필요와 개혁개방의 체제 위협 때문에 핵개발 모험주의가 가속됐다. (6) 2000년대 초중반 “미국을 실질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수준에 최대한 빠르게 도달해야 한다는 파국적 결론”. 괄호 안에서 미국이 군산복합체 유지를 위해 적대국을 필요로 했다는 언급이 있다.

김하영의 서사는 주술관계가 반대다.

6.2 “미국의 적대가 낳은 북한 핵무장”

김하영의 이 기고문 제목 자체가 인과의 방향을 못 박는다. 그의 서술에서 냉전 종식 후 능동적 행위자는 미국이다. 중국 견제와 아시아 주둔 유지를 위해 “새로운 위협”이 필요했고 북한은 “아주 알맞은 대상”이었다. 1991년 미국의 전술핵 철수 발표는 이런 문제(냉전 종식 후 핵 확산 위험)에 대응하는 지렛대였으며, 그 뒤 “이제 갑자기 한반도 비핵화의 골칫거리가 북한으로 뒤바뀌었다.” 52

전진의 명제 (1) — 자기 요구가 관철됐는데 북한이 “오히려” 핵개발을 시작했다 — 에 대해 김하영은 두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북한은 1950년대 말 미국의 남한 전술핵 배치 이후 줄곧 핵을 원했고 1963년 소련, 1964년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소련이 경수로 제공 조건으로 1985년 NPT에 가입시켰다. 즉, 북한의 핵 열망은 1992년의 ‘배신’이 아니라 30년 된 것이며, 그동안 그것을 억제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강대국의 핵 위선은 소련과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둘째, 1992년 이후 실제로 일어난 일은 비핵화 선언의 평화로운 이행이 아니라 핵 공격 위협을 포함한 미국의 압박이었고, 북한의 핵 가속은 그 결과였다. 김용순은 1992년 1월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용인”을 선물로 들고 뉴욕에 갔고, 캔터의 답은 “오직 핵사찰”과 “고립과 붕괴” 협박이었다. 북한은 사찰을 받아들였고 블릭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미국은 “특별 사찰이라는 무리한 요구로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갔고, 1994년 6월 영변 폭격을 검토했다. 53

전진의 명제 (4) — 미국에게 북한 핵은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 는 적절한 설명이 못 된다. 미국은 1994년 항모를 증강 배치하고 미군 가족 철수령을 내리며 전쟁 직전까지 갔다. 문제는 미국이 북핵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북한 위협’ 해소는 미국의 목표가 아니었다.”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는 ‘북한 위협’을 부풀리고 유지·관리하면서 동맹 강화와 아시아 패권 유지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전진은 이 논점을 괄호 안에서 언급하지만(“가상 적국을 반드시 필요로 했던 미국”), 우리는 그것을 주 서사로 삼는다. 그리고 미국의 ‘패턴’을 정식화한다. “모종의 의혹을 제기하며 ‘북한 위협’을 부각하고, 북한이 반발해 어찌어찌 협상이 시작되면 기싸움으로 시간을 끌고, 결국 난항 끝에 합의에 이르지만 약속 불이행으로 파탄 내고, 그러다 미국이 필요한 시점에 새 의혹을 제기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기.” 금창리(빈 동굴), 2002년 고농축우라늄(대화록 공유 거부), BDA 제재(9·19 합의 직후)가 그 사례다. 54

6.3 사라진 사건들

전진의 서사에서 빠진 것들이 눈에 띈다. 1994년 전쟁 위기. 1998년 금창리. 2000년 북미 공동 코뮈니케. 부시의 “악의 축”과 선제 핵공격 대상 지정. 볼턴의 “첫 군사공격 목표는 이라크, 그다음은 북한”. 2002년 켈리-강석주 회담과 미국의 ‘자백’ 발표. 9·19 합의와 BDA.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와 “완전히 파괴”. 하노이에서 김정은이 제시한 영변 폐쇄-제재 완화 교환안과 트럼프의 거부. 김정은의 마지막 친서(“군사훈련이 중단되었습니까?”). 55 이 사건들이 없으면 북한의 핵 가속은 “파국적 결론”이라는 북한 내부의 심리적 결단으로 보인다. 이 사건들이 있으면 북한의 핵 가속은 각 단계에서 미국의 행동에 대한 응답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는 이라크의 교훈을 강조한다. “미국은 두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촉진했다. 하나는, 이라크가 미국의 침공 대상이 된 것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부재 때문이었다는 교훈을 북한에 준 것이다. …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북한에 핵무장을 추진할 틈을 줬다는 것이다.” 56 전진은 2003년 NPT 탈퇴와 2006년 핵실험을 언급하지만 이라크 전쟁과의 연결이 없다. 2003년이 무엇의 해였는지 말하지 않는 북핵 서사는 제국주의론의 기준에서 결정적으로 불완전하다.

6.4 ‘모험주의’라는 단어

전진은 북한의 핵 정책을 일관되게 “모험주의”, “도박”, “벼랑 끝”, “가속페달”, “파국적 결론”으로 기술한다. 우리도 북한 핵을 옹호하지 않는다. 김하영은 북한 핵이 “이제는 지정학적 위기 심화의 한 요소가 되고 있”고, 2022년 핵무력정책법이 “남한의 노동자·민중을 향해 핵무기 사용을 공언”한 것이며, 우익 핵무장론자에게 정당성을 준다고 분명히 쓴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얘기를 끝맺지 않는다. “핵을 포함한 북한의 무장력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한 불가피하고 방어적인 수단으로 출발했을지라도 이제는 지정학적 위기 심화의 한 요소가 되고 있음”. 57 출발점의 방어적 성격을 인정하고, 그것이 현재 어떤 기능을 하는지를 비판하는 것이다. 전진의 ‘모험주의’ 서사는 출발점부터 북한을 도박꾼으로 그린다. 이 차이는 사회주의자가 남한에서 어떻게 말하는가와 직결된다. “북한 체제를 지지하느냐 여부와는 관계없이, 북한 관료가 얼마나 나쁜 짓을 해 왔는지에 상관없이, 우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압박에 반대해야 한다.” 58 ‘모험주의’ 프레임은 남한 대중에게 북한이 한반도 위기의 원인이라는 지배계급의 상식을 재확인시켜 주고, 미국의 압박에 반대할 근거를 약화시킨다. 이것을 “양비론”이라 불러도 될 것이다. 김하영은 계급적 관점이 “북미 관계에서 양비론을 취하거나 회피함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못 박는다. 59

6.5 북한의 반미는 반제국주의가 아니다. 그러나 이유가 다르다

여기서 두 텍스트는 다시 수렴한다. 김하영은 “북한 당국의 입장은 제국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미국에 일관되게 맞서는 것도 아니다”라고 쓰며, 주한미군 주둔 용인(1992 김용순, 2000 김정일, 2018 김정은)을 그 대표 사례로 든다. 전진도 북한의 목표가 “북한 지배체제 유지에 대한 확고한 보장”이라고 본다.

그러나 김하영의 비판은 더 구체적이고 더 계급적이다.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한 발언을 인용하며, 북한의 반미 언사가 “막대한 자원을 군사 부문에 쏟아붓는 동안 희생을 강요당하는 북한 노동계급이 고통을 감내하도록 만드는 구실”을 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주한미군 용인이 “미국의 아시아 패권 유지를 돕는 것”이자 “중국 노동계급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자 미군 주둔으로 고통받고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남한 노동계급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60 즉, 북한 관료의 대미 정책을 북한·남한·중국 노동계급 각각에게 미치는 효과로 평가한다. 전진의 평가 기준은 ‘체제 유지’라는 단일 동기이고, 그 동기가 노동계급에게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은 약화됐다”는 일반 명제로 처리된다.

7. 지정학: ‘중·러·북 동맹’과 진영론의 위험

7.1 전진의 진영 구도

전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를 이렇게 정리한다. “중국 주도의 견고한 중·러 동맹이 미국과 서방에 맞서 구축”,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은 압도적으로 미·중 제국주의 대결 구도가 지배”, “[북한은] 중·러 제국주의가 미·일·한 군사동맹과 직접 부닥치지 않게 하는 완충망”, “필요하다면 미 제국주의 진영과의 전쟁에서 북한이 대리전을 치르게 하면서 중·러 본국을 보호”, “북한은 1990년대 이후 오랜 고립에서 벗어나 중·러·북 동맹을 구축”, “북한 지배집단은 이제 독자생존이 아닌, 중·러·북 동맹이라는 경제적·군사적 우산 밑에서 생존을 추구할 것이다.”

우리도 북한이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고 본다. 3년 연속 3퍼센트대 성장, 파병의 경제적·군사적 이익, 중국에 대한 “몸값” 상승도 인정한다. 그러나 김하영의 문장에는 전진에 없는 단서가 있다. “비록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는 김정은이 2018년 폼페이오에게 한 말 — “중국은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처럼 다루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합니다” — 을 “의미심장”하다며 두 차례 언급한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강대국 간 갈등을 이용하면서 나름의 국익을 추진할 공간을 확보”해 왔고, 이는 소련파·연안파 숙청과 맞물린 것이었다. 즉, 북한은 진영의 부속물이 아니라 진영 사이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자본주의 국가다. 61

7.2 ‘동맹’과 ‘대리전’이라는 규정의 문제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세 가지다. 첫째, ‘중·러·북 동맹’이라는 규정은 북한 관료의 자율성을 과소평가하고, 북한을 다시 소련 위성국 시절의 이미지로 되돌린다. 김하영의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 전체가 북한이 위성국이 되기를 거부한 역사다. 62 북한은 소련과 중국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음으로써 생존했다. 그 관료가 지금 “중·러의 품에 다시 깊숙이 안기고 있다”는 서술은 가능하지만, “동맹”과 “우산”이라는 어휘는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 끈을 놓지 않는 이유(미·중 사이에서 몸값 높이기)를 설명하지 못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틀로 말하면, 국가자본주의 국가는 세계 체제 안에서 자기 자본의 축적 조건을 추구하는 하나의 경쟁 단위이지 다른 국가의 도구가 아니다. 이 점은 전진이 소련의 북한 점령을 서술할 때(“도구로 자리매김”)와 오늘의 북한을 서술할 때(“완충망”, “대리전”) 같은 어휘를 반복한다는 데서 드러난다. 두 시기 사이에 북한 관료가 독자적 축적 주체로 성장했다는 역사가 전진의 텍스트에는 없다.

둘째, ‘대리전’ 서사는 미국 지배계급의 ‘신냉전 진영론’과 구조가 같다. 북한을 중·러 진영의 전초기지로 보는 순간, 한미일 동맹 강화는 그 위협에 대한 ‘대응’이 된다. 우리의 서사는 순서가 반대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북한 위협을 부풀렸고, 그 결과 북한이 핵무장했으며, 그 결과 북한이 중·러에 밀착했다. 이 순서에서 진영 대결은 미국 패권 전략의 산물이지 그 원인이 아니다. 전진은 미국의 사드 배치와 중국 포위 전략을 언급하지만, 북한 장의 결론에서는 “향후 중·러의 묵인 속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더욱 과감해질 것이다”라는 북한 위협 예측으로 끝난다.

셋째, 실천적 결과다. 두 진영이 대칭적으로 ‘제국주의’라면, 남한 사회주의자의 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답은 분명하다. 남한 노동계급의 “자국 정부”와 그것을 지원하는 “미 제국주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투쟁. 김하영은 이란 전쟁 파병 압박, 한미연합훈련, 한국·일본 전술핵 배치 검토를 현재의 쟁점으로 든다. 63 전진의 북한 장은 국제 연대를 결론으로 제시하지만 남한 정부와 미국에 대해 지금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 대북 제재 반대, 사드 철거 — 이 요구들 중 어느 것도 이 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북 제재는 “북한에서 식량 부족으로 고통 받는 것은 관료가 아니라 노동자·민중” 64 이라는 이유로 반대해야 할 것이고, 그 입장의 부재는 ‘가짜 사회주의’ 비판이 남한에서 어떤 정치적 효과를 내는가와 직결된다.

7.3 트럼프 재등장에 대한 판단

전진 강의는 2025년 12월에 쓰였으므로 그 뒤에 전개된 트럼프의 대북 러브콜과 이란 전쟁 국면을 다루지 못한다. 그러나 전진의 틀(북한은 미국에게 몸값이 낮아졌다)과 김하영의 틀(미국은 북한을 이용할 새로운 계산을 할 수 있다)은 예측에서 갈린다. 김하영은 트럼프가 북한을 중국에서 떼어내려는 “역 키신저” 계산을 할 수도 있고, 북미대화 카드로 이재명 정부에 이란 전쟁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고 본다. 65 즉, 미국은 북한 위협을 ‘관리’하는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도 ‘이용’한다. 전진의 “북한의 몸값을 미국에게는 낮췄지만”이라는 판단은 2026년의 사태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는 사후적 지적이지만, 미국을 수동적으로 그리는 분석틀의 예측 실패다.

8. ‘가짜 사회주의’ 프레임과 남한에서의 정치적 효과

8.1 목표에 대한 동의

우리는 전진의 목표 — 사회주의를 북한과 중국의 그림자로부터 구출하는 것 — 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김하영의 첫 저작부터 최근 기고문까지 일관된 주제다. “그렇게 사회주의가 좋으면 북한 가서 살아라”에 대한 답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이론도 같은 출발점에 선다. 국가가 생산수단을 소유하거나 통제한다는 사실만으로는 사회주의라고 할 수 없다. 사회주의가 되려면 노동자를 비롯한 생산자 다수가 생산수단을 통제해야 하고, 그러려면 국가 권력 자체가 그들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소련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었다. 전진의 “노동자국가” 정의(주 1)와 노동자연대의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정의는 이 점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일치한다. 66 세 텍스트 모두 사회적 통제 없는 국가 소유는 사회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8.2 그러나 어떻게 말하는가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는 전진 강의의 서사적 배치다. 강의는 “북한은 중국보다 더하다”로 시작해 “스탈린주의의 가장 반동적인 형태”라는 제목을 달고, 미국의 역할은 괄호와 종속절에 배치한다. 김하영은 정확히 이 배치의 위험을 경고한다. 북한 인권 상황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면 “마치 미국의 대북 압박 또는 한나라당의 반북 공세 편에 서는 것처럼 느껴지”는 진보진영의 곤혹은 실재하지만, 그 해법은 북한의 문제를 부정하는 것도, 북한의 문제를 미국의 문제와 분리해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해법은 “북한 피억압 대중과의 연대 관점”에서 둘을 동시에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점의 시금석은 “미국이 핵과 미사일과 인권을 들이밀며 북한을 압박하는 것은 완전한 위선”이라는 명제를 어디에 두는가다. 67

전진의 강의는 ‘가짜 사회주의 폭로’와 ‘반제국주의’를 두 개의 과제로 병렬한다. 김하영은 둘을 하나의 분석으로 통합한다. 북한이 가짜 사회주의인 이유(세계 체제의 경쟁 압력에 종속된 국가자본주의)와 미국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그 경쟁 압력의 최대 원천이 미국 패권)가 같은 원리에서 나온다. 이 통합이 없으면 ‘가짜 사회주의’ 비판은 남한 우익의 반북주의와 형식적으로 구별되기 어렵고, 반제국주의는 도덕적 부록이 된다.

여기서 역사유물론이 다시 필수적이다. 착취를 ‘잔혹한 조건’의 의미로 쓰지 않는다는 원칙은, 사회주의자의 북한 비판이 우익의 북한 비판과 어디서 갈라지는가를 정한다. 우익은 북한의 잔혹함을 비판하고, 사회주의자는 북한의 착취 관계를 비판한다. 잔혹함을 논거의 앞자리에 두면 두 비판은 겉보기에 같아진다. 전진의 강의가 “북한의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수준은 최악”이라는 문장으로 북한 분석을 여는 것은, 역사유물론의 기준에서 ‘착취’를 도덕적 의미로 쓴 것이다. 김하영이 인권 문제를 별도의 글(‘북한 인권 — 북한 피억압 대중과의 연대 관점에서 보기’)에서, 그것도 미국의 인권 공세 비판과 함께 다루는 것은 이 구분을 지키기 위해서다. 68

8.3 ‘체제 유지’라는 설명의 공허함

전진 강의의 북한 장은 이렇게 요약된다. “북한 지배층이 선택하는 모든 어지러운 정책에도 불구하고, 그 정책들을 관통하는 일관된 목표는 결국 북한 지배체제의 유지에 있다. … 북한 지배체제의 유지라는 오직 하나의 실제적 목표가 외교정책을 관통한다.”

이것은 동어반복이다. 모든 지배계급은 지배 유지를 원한다. 남한 지배계급도, 미국 지배계급도 그렇다. 설명해야 할 것은 왜 ‘이’ 지배계급이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이런’ 정책(중공업 우선, 국방비 30퍼센트, 천리마, 수령제, 핵)을 택했는가이며, 그 답은 지배계급의 의지가 아니라 그것이 놓인 구조적 압력에서 나와야 한다. “외부의 강제적인 경쟁 압력이 북한 지배 관료의 계획을 결정짓는 주요 요인이었다.” 69 ‘체제 유지’를 설명의 종착점으로 삼는 것은 주류 북한학의 ‘정권 생존론(regime survival)’과 같은 구조이며, 그것은 북한을 다시 이해 불가능한 예외로 만든다. 마르크스주의는 정반대의 일을 해야 한다. 북한의 겉보기 ‘광기’를 세계 자본주의의 정상적 작동으로 설명하는 것.

다시 역사유물론의 언어로 이 문제를 말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자본가에게 축적은 개인적 소비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이것은 자본가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경쟁 압력이 강제하는 체제의 논리라는 설명이다. 자본가에게 ‘이윤 추구’가 동기이듯 관료에게 ‘체제 유지’는 동기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 분석은 동기에서 멈추지 않고, 왜 그 동기가 특정한 행동(축적)으로 번역될 수밖에 없는지를 체제의 강제에서 찾는다. 전진은 동기에서 멈춘다.

9. 방법론적 총평: 정치경제학 없는 정치사

우리의 평가를 하나의 명제로 압축하면 이렇다. 전진의 북한 서술은 정치사이지 정치경제학이 아니다. 그것은 누가 권력을 잡았고, 누가 숙청됐으며, 누가 어떤 결단을 내렸는지를 서술한다. 축적률, 투자 배분, 임금과 생산성, 농업 잉여 추출, 무역의존도, 국방비 비중, 자본생산성 — 국가자본주의 이론이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범주들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가자본주의’는 이 체제가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이 체제가 나쁘다는 것을 표시하는 라벨이 된다.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기준을 점검표로 삼으면 이 차이는 더 분명해진다. 70

국가자본주의 이론의 기준

노동자연대

전진

노동력이 상품으로 판매되는가 (이중의 ‘자유’)

‘자유’ 노동자 규정, 노동력 이동의 실재 확인

노동자를 완전히 속박된 존재로 서술 — 기준과 충돌

잉여가 잉여가치의 형태로 전유되는가

‘생활비’를 뺀 잉여노동시간의 전유, 거래수입금, 수매가격의 가치 이하 책정

언급 없음

잉여의 처분이 소비가 아니라 축적인가

〈표3〉·〈표4〉·〈표5〉, “우선 필요한 축적을 공제하고 나서 인민의 소비량을 정하도록”

“축적논리”라는 한 구절

축적이 경쟁의 압력 아래 강제되는가

군사적 경쟁, 남한과의 경쟁, 무역의존도, 생산비용의 국제 비교

언급 없음 — 축적은 ‘체제 유지’ 동기로 환원

축적이 생산수단의 혁신을 동반하는가

외연적→내포적 전환의 시도와 실패, 1976년 채무불이행, 1984년 합영법 등

“본질적 비효율”

착취를 도덕적 의미로 쓰지 않는가

불불노동의 양으로 논증

잔혹함·권리 수준을 논거의 앞자리에 배치

소유 형태가 아니라 사회관계로 판단하는가

국유화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통제의 주체가 관건

국유화 + 억압 = 국가자본주의라는 도식

이 결핍은 우연이 아니다. 전진의 ‘국가자본주의’론은 자기 고백대로 아직 논증되지 않았고, 월터 돔의 ‘노동자국가 잔재론’과 〈레프트 보이스(Left Voice)〉/CPR-FI 분파의 문헌, 그리고 남한 저널리즘 사료의 혼합을 바탕으로 한다. 이 혼합은 북한에 대해 일관된 설명을 산출할 수 없다. 잔재론은 노동자국가가 없었던 북한에 적용되지 않고, 트로츠키주의 분파의 ‘연속혁명’ 어휘(“민족해방혁명이 사회주의 노동자 혁명으로 전진하는 연속혁명의 전망은 제대로 시작도 못한 채 닫혀버렸다”)는 1945년 조선에 그런 전망이 실제로 어떻게 존재했는지(공장위원회, 인민위원회, 77퍼센트)를 보여 주지 않으면 공허하며, 저널리즘 사료는 ‘평양 자본주의’라는 잘못된 시대 구분을 들여온다.

김하영의 분석이 더 낫다면 그것은 그가 더 옳은 결론을 내려서가 아니라(결론은 대체로 같다), 결론에 이르는 길을 검증 가능한 자료와 하나의 일관된 원리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원리 — 국제적·군사적 경쟁이 국가자본주의 관료의 축적을 강제한다 — 는 북한의 성장과 위기, 숙청과 주체사상, 핵과 시장, 반미 언사와 주한미군 용인을 하나로 꿴다. 전진의 강의는 이 모든 것을 ‘체제 유지’와 ‘모험주의’와 ‘본질적 비효율’로 각각 설명하며, 그 세 설명 사이의 연결은 없다. 그러나 지금의 텍스트만 놓고 보면, 국가자본주의 규정은 노동력 상품, 잉여가치, 축적, 경쟁이라는 네 항목을 논증해야 하고, 노동자연대는 그것을 하며, 전진은 아직 하지 않았다.

10. 실천적 함의: 무엇이 걸려 있는가

끝으로, 이 분석의 차이가 남한 좌파의 실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야 한다.

첫째, 한국전쟁에 대한 서술은 국가보안법 체제와 우익의 ‘과거사 사죄’ 요구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북한의 선제공격’과 ‘모험주의’로 시작하는 서사는 그 요구에 답할 근거를 스스로 약화시킨다.

둘째, 핵에 대한 서술은 대북 제재, 한미연합훈련, 전술핵 재배치 논쟁에서 어떤 위치를 취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미국을 수동적 행위자로 그리는 서사는 이 쟁점들에서 침묵하거나 양비론에 빠지기 쉽다.

셋째, 노동계급에 대한 서술은 탈북자, 개성공단 노동조건, 식량 지원, 북한 노동자와의 연대 형식에 대한 입장을 결정한다. 노동자연대의 실천적 제안 — 탈북자의 이주 자유 옹호, 북한 정부의 처벌·중국의 송환·남한의 수용 제한 모두 반대, 개성공단 노동조건 투쟁, 식량 지원 지지, 직업동맹과의 공동 성명 거부 — 은 북한 노동계급을 실재하는 주체로 전제할 때만 나온다. 71 전진의 “분노의 에너지가 축적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은 아직 이런 실천으로 번역되지 않았다.

넷째, 지정학에 대한 서술은 미·중 갈등에서 남한 사회주의자의 우선 타깃을 결정한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원칙은 명료하다. 반제국주의의 힘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있고, 그 투쟁의 일차 대상은 자국 지배계급과 그것을 후원하는 미국이다. “국가 간 협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제 연대가 대안이다.” 72

전진의 강의는 이 마지막 문장에 동의할 것이다. 노동자연대의 평가는, 그 문장에 이르는 길이 그 문장을 지탱할 만큼 튼튼한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답은, 아직 아니라는 것이다.


참고 문헌

  •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책벌레, 2002) — 특히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 ‘김정일 답방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 《북한은 어떤 사회인가? — 북한 체제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비판》(노동자연대, 개정증보판) — 특히 ‘계급적 관점에서 북한 보기’(2005), ‘주체사상의 등장 배경’, ‘북한 인권’
  •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노동자연대, 2014)
  • ‘알려지지 않은 북미관계사: 미국의 적대가 낳은 북한 핵무장 — 북미 협상도 핵무장도 평화의 길이 아니다’(〈노동자 연대〉 598호, 2026년 9월 12일)

이 글은 국가자본주의 이론을 잣대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전진)의 〈사회주의 기초학습 #7: 사회주의 바로알기 — 중국, 북한은 가짜 사회주의〉(돌멩, 2025년 12월) 가운데 북한 서술을 평가한 것이다.
북한 사회 성격에 대한 노동자연대 측의 글은 거의 다 김하영이 썼으므로 이 글은 전적으로 그에 의존한다. 김영익 〈노동자 연대〉 신문 기자도 종종 신문에 기고했으나 이 글에서는 통일성을 위해 김하영의 저작만 원용한다. 김하영에 대한 언급과 인용에는 모두 후주 번호를 달았으며, 후주는 문서 말미에 있다. 후주에서 네 편은 각각 《형성과 위기》(2014), 《어떤 사회인가》, 《한반도》(2002), 〈핵무장〉(2026)으로 줄여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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