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알려지지 않은 북미관계사:
미국의 적대가 낳은 북한 핵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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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협상도 핵무장도 평화의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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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김하영의 이 글은 ① 미국의 대북 적대와 ‘북한 위협’ 이용이 북한의 핵무장을 촉진했고, ②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장·대미 협상 전략이 반제국주의적 대안이나 한반도 평화의 길인 것도 아니며, ③ 대안은 노동계급의 국제주의적 반전·반제국주의 투쟁이라는 논지를 제시한다.
최근 김여정 조선노동당 총무부장은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정책은 변하지 않아 왔[다]”면서도 “조미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의 훌륭한 관계”를 강조했다. “우리 국가수반이 트럼프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좋은 추억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데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두 지도자들의 관계는 의연 훌륭하다. 이는 세상이 다 알고 있으며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트럼프가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납치하고, 이란 전쟁을 일으키고, 쿠바를 기아로 내몰고, 국내에서 이주민 사냥에 열을 올리는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은 듣기가 거북하다. 설사 겉치레 말일지라도 이런 말은 미국의 횡포로 고통받는 전 세계의 억압받는 사람들(가령 지금 이란 국민들)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그러나 조선(이하 통칭대로 북한)의 반미 국가 이미지 이면에서 벌어져 온 지난 수십 년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김여정 총무부장이 북미 두 나라 지도자들의 “훌륭한 관계”를 뿌듯해하면서 북미 관계를 개선할 소중한 실마리로 여기는 것이 “별로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그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도 “미국에 가 낚시도 하고 친구도 사귀고 싶다”(1992년)고 했고, 그의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부시 대통령과 밤새 목이 쉬도록 노래 부르고 춤추고 싶다”(2002년)고 했다. 어쩌면 트럼프와 세 번 만난 김정은 위원장이 삼대의 꿈에 가장 근접한 것인지도 모른다. 운 좋게도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와는 다른 좀 더 유리한 역내 세력관계 속에 서게 됐지만 말이다.
냉전 종식 이후 북미 관계를 보면, 북한의 반미 국가 이미지는 북한 자신의 태도 때문이기보다는 주로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부터 왜 그랬는지, 그 결과는 무엇인지 살펴보려 한다.
냉전 종식 뒤 미국에 필요했던 ‘새로운 위협’
적대적 북미 관계의 기원은 한국전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 북미 관계는 냉전 해체 이후 형성된 질서와 직접 닿아 있다. 1990년대나 2000년대에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의 긴장을 “냉전의 유산”으로 설명하곤 했다. 그러나 오히려 냉전 종식 이후의 국제질서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세계 전략은 경쟁국들의 부상에 대한 깊은 우려에 기반하고 있었다. 일본과 독일의 경제 성장도 여전히 걱정거리였지만, 특히 중국이 요주의 대상이었다. 미국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아시아 패권을 유지하려면 동맹과 군사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그런데 소련의 도발로부터 우방을 지킨다는 냉전 시기의 명분이 사라진 상황에서, 미국은 무슨 근거로 아시아에 계속 주둔할 것인가?
뭔가 “새로운 위협”이 필요했다. 그리고 북한은 아주 알맞은 대상이었다. 당시 북한은 소련의 통제마저 벗어난 고립된 은둔의 나라, 예측 불가능한 시한폭탄으로 비쳤다. 소련은 1990년 9월 한국과의 수교 소식을 북한에 알렸고, 중국도 1992년 8월 한국과의 수교를 선언했다. 소련 외무장관 셰바르드나제가 한국과의 수교 추진을 알리러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당국은 소련의 배신을 비난하며 분노에 차 이렇게 선언했다.
“쏘련의 남한 승인은 1961년 체결된 조-쏘 안보조약의 근간을 무너뜨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조선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독자적인 행동을 취할 수 있고, 정책 수립에 있어 쏘련과 협의할 의무에서 벗어날 것이다. 조선과 쏘련의 동맹조약이 파기되면 조선은 희망하는 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약속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희망하는 무기란 핵무기(와 투발 수단인 미사일)일 공산이 컸다. 소련은 마치 미국이 남한에 대해 그랬듯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용인하지 않았다. 1950년대 말 미국이 남한에 전술핵을 배치한 이후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원했다. 북한은 1963년 소련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1964년 중국에도 지원을 요청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소련은 평화적 이용을 조건으로 북한에 경수로를 제공하면서 1985년 북한을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하게 했다. 강대국의 핵 위선은 소련과 중국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미국은 소련 붕괴에 따른 연방 해체로 소련 핵무기가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일 것을 우려했다. 소련의 핵우산을 잃은 국가들의 핵무기 개발과 그 파장도 걱정거리였다. 가령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에는 소련 핵탄두가 2000기 가까이 남아 있었는데,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비핵화를 요구해 안전 보장과 경제 지원을 대가로 핵무기를 러시아로 반환시켰다.(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안전 보장 약속이 공문구였음을 보여 준다.)
미국의 1991년 9월 전술핵무기 철수 발표는 이런 문제에 대응하는 지렛대였다. 그 뒤 미국은 북한에 핵개발 의혹을 강하게 제기했다. 미국은 그전 수십 년 동안 남한에 핵무기를 배치해 왔는데, 이제 갑자기 한반도 비핵화의 골칫거리가 북한으로 뒤바뀌었다.
고립된 북한은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했다
그러나 북한은 예의 퉁명스러운 표현을 쓰면서도, 실제로는 미국의 압박에 매우 부드럽고 융통성 있게 대응하며 대미 관계에 공을 들였다. 소련과 중국이 남한과 수교한 상황에서, 고립무원의 북한은 미국·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절실히 바랐다.
김일성 주석은 1992년 1월 미 국무부 차관 아놀드 켄터를 만나러 뉴욕에 가는 조선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비서 김용순의 손에 ‘주한미군의 한반도 주둔 용인’이라는 선물을 쥐어 보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사실을 남한 대통령 김대중에게 직접 확인해 줬다.
“제가 대통령께 비밀 사항을 정식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미군 주둔 문제입니다. 1992년 초 김용순 비서를 미국에 특사로 보내 ... ‘미군이 계속 남아서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댔습니다. ... ‘동북아시아의 역학관계로 보아 반도의 평화를 유지하자면 미군이 와 있는 것이 좋다’고 말해줬어요.”
그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통일이 돼도 미군이 있어야 한다’는 본인의 의견도 덧붙였다. ‘그런데 왜 언론매체를 통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느냐’는 김대중의 질문에 김정일은 이렇게 답했다.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은 우리 인민들의 감정을 달래기 위한 것이니 이해해주기 바랍니다.”
그러나 1992년 김용순을 만난 아놀드 켄터의 답변은 오직 핵사찰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고립과 붕괴만이 있을 것이라고 협박했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노동신문〉을 통해 이 회담에 “만족”을 표했다. 핵사찰도 받아들였다. 북한의 협조 속에 사찰을 마친 IAEA 사무총장 한스 블릭스는 “북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은 사찰 결과와 북한이 제출한 보고서가 서로 맞지 않는다는 또 다른 트집을 잡으며, 특별 사찰이라는 무리한 요구로 사태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북한은 미국이 특별 사찰을 요구한 시설들이 군사시설이라며 거부했다. 북한은 유엔 무기사찰단이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국이 이라크 공격 목표물을 정하는 데 사용할 정보를 넘겨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갈등은 결국 1994년 6월 전쟁 코앞까지 치달았다. 클린턴은 영변 핵시설 폭격 계획을 검토했다. 한반도 주변에 항공모함 등 군사력을 증강 배치했고, 주한미군 가족 철수령까지 내렸다. 당시 미 국방부가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개전 90일 이내에 미군 5만 명, 한국군 49만 명이 사망하고, 수백만 명의 민간인 피해와 1조 달러가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해결하려 하지 않았다
북한을 상대로 전쟁하기는 이라크보다 훨씬 만만치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미국은 그 뒤에도 거듭 위기를 증폭시키는 불장난을 했고, 군사적 위협도 마다하지 않았다. 2002년 미국 조지 W. 부시 정부는 이라크·이란과 함께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선제 핵공격 대상에도 올렸다. 2017년 트럼프는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한 나라를 말살하겠다는 전례 없는 위협”이라고 논평했다.
미국은 ‘북한 위협’을 소리 높여 비난했지만 결코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는 않았다. ‘북한 위협’ 해소는 미국의 목표가 아니었다. 미국의 진정한 관심사는 ‘북한 위협’을 부풀리고 유지·관리하면서 동맹 강화와 아시아 패권 유지에 이용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이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할 태세가 돼 있었지만, 미국은 그 손을 번번이 내쳤다. 미국 주도 질서에 북한이 편입되는 것을 꺼린 것은 미국이었지, 북한이 아니었다. 북한은 WTO에 가입하고 평양에 미 대사관도 두고 싶어 했지만, 미국은 북한에 경제·안보 출구를 열어 주지 않았다.
미국의 패턴은 이랬다. 모종의 의혹을 제기하며 ‘북한 위협’을 부각하고, 북한이 반발해 어찌어찌 협상이 시작되면 기싸움으로 시간을 끌고, 결국 난항 끝에 합의에 이르지만 약속 불이행으로 파탄 내고, 그러다 미국이 필요한 시점에 새 의혹을 제기하면서 원점으로 돌아가기.
합의와 파기, 새 의혹의 반복
플루토늄 추출 의혹으로 시작돼 전쟁 코앞까지 갔던 1차 북핵 위기는 제네바 합의(1994년 10월)로 일단락된 듯했지만, 미국은 경수로 제공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 대신 1998년 8월 금창리 지하 핵시설이라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사찰 결과 금창리 지하시설은 빈 동굴로 드러났고, 새로운 대화 국면 속에서 북미는 적대 관계 청산을 약속하는 공동 코뮈니케(2000년 10월)를 발표했다.
그러나 2001년 취임한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전 북미 합의를 모두 무시했다. 북한은 9·11 테러를 비난하고 미국의 편이 되겠다고 선언했지만, 소용없었다. 미국은 북한을 이라크·이란과 함께 3대 적으로 규정했고, 국무부 차관 존 볼턴은 공격 순서까지 떠벌렸다. “악의 축 세 나라 가운데 첫 군사공격 목표는 이라크, 그다음은 북한, 세 번째가 이란이다.”
그리고 미국은 2002년 새 의혹을 들고 나왔다.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미국 특사 제임스 켈리에게 당시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강석주는 ‘미국이 선제공격 하겠다는 마당에 우리도 핵무기는 물론 더 강력한 것도 가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그러자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을 인정했다”고 발표했다. 의구심을 가진 한국과 일본 정부가 ‘켈리-강석주 대화록’ 공유를 요청했지만 부시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그렇게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다.
2003년 북한은 NPT를 탈퇴하고 영변 원자로를 재가동하기 시작했고, 2005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그러자 미국은 늘 그랬듯 기존 패턴대로 다시 협상장에 앉았고 난항 끝에 6자회담 9·19 합의를 했다. 북한의 핵 포기 대가로 관계 개선, 경제 지원, 평화체제 협의 등을 하겠다는, 별로 새로울 것 없는 또 하나의 합의문이 작성된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합의문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을 겨냥한 금융제재인 BDA 제재를 가동해, 다시금 합의를 파탄 냈다. 마침내 북한은 2006년 10월 핵실험으로 응답했다.
‘북한 위협’과 미일 동맹, 중국 견제
6자회담 등에 참여한 각국 협상 담당자들은 회담 테이블의 진정한 문젯거리가 미국임을 숨기지 않았다. 미국은 왜 이렇게 행동했을까? 냉전 종식 이후 미일 동맹 강화 과정을 보면, 미국이 ‘북한 위협’을 왜 부풀리고 어떻게 이용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미국은 냉전의 양극화 압력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일본이 정치·군사적으로 미국의 날개 아래 계속 머물러 줄지 걱정이었다. 만약 일본이 아시아에서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 부상하는 중국과 손을 잡기라도 한다면 미국의 아시아 패권은 끝장일 것이다. 미국은 일본이 냉전 종식 이후에도 미국 중심의 아시아 질서를 뒷받침하고 중국 견제용인 MD(미사일방어체제) 구축에 동참하기를 바랐다.
냉전 종식 즈음 원래 일본은 북한과 국교를 맺으려는 입장이었다. 동아시아 질서 변동의 주도권을 잃지 않기 위한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그런 조짐이 있을 때마다 미국은 북한 핵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핵과 미사일 위협을 부풀렸다.
1990년 일본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하고 사죄와 보상 얘기가 오가자, 미국은 노골적인 견제에 나서며 ‘북한 핵문제 우선 해결’을 대북 접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결국 일본이 핵사찰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북일 수교 협상은 물 건너갔다. 다른 한편, 미국은 1999년 마침내 일본을 TMD(전역미사일방어체제) 공동 개발에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2002년 일본이 다시금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했을 때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졌다. 일본 총리 고이즈미가 평양을 방문한 직후 부시 정부는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제기하며 2차 북핵 위기를 촉발했다. 대통령 퇴임 후 김대중은 부시 정부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네오콘 그 사람들은, 말하자면 중국을 미래 가상의 적으로 생각하고, 지금 미사일방어(MD) 체제 같은 군비확장을 하려고 하는데, 그럼 뭔가 구실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 그게 바로 북한이오.”
이런 과정에서 미일 동맹 강화가 착착 추진됐는데, 그것은 일본의 재무장과도 맞물리는 것이었다.
미국이 키운 위협이 실제 핵무장으로
그러나 북핵 위협 부풀리기와 이용이 모두 미국의 의도대로 됐다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지나치게 불거지지도 사라지지도 않도록 적절하게 관리하며 이용하고 싶었지만, 상황을 통제하지 못했다.
미국의 약속 불이행과 합의 파기가 회를 거듭하는 동안 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착착 진행해, 2005년 핵무기 보유 선언에 이어 2006년에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결국 미국은 자신들이 부풀려 온 모습의 북한, 즉 핵무장한 북한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북한이 핵실험까지 했는데도 미국은 아무런 응징도 하지 못했다.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부시 정부는 두 개의 전선(이라크와 북한)에서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승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쳤지만, 이라크에 발목이 잡혀, 대드는 북한을 손봐 줄 수 없었다.
미국은 두 측면에서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촉진했다. 하나는, 이라크가 미국의 침공 대상이 된 것은 대량살상무기의 존재 때문이 아니라 부재 때문이었다는 교훈을 북한에 준 것이다. 게다가 미국은 다음 순번은 북한이라고 위협하기까지 했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북한에 핵무장을 추진할 틈을 줬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이 이라크에서 고전하는 동안 기동의 여지를 넓히면서 핵무장을 강화했다. 사실, 북한만 그런 게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세계 곳곳에서 여러 국가들이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의 힘의 한계를 시험하고 이용했다.
부시 정부는 스스로 파탄 낸 6자회담으로 돌아와 새로운 합의로 시간을 끄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바마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오바마 정부 재임 동안 북한은 무려 네 차례나 핵실험을 했지만(2009년, 2013년, 그리고 2016년 2회), 미국은 그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보여 주지 못했다.
오바마는 자신의 대북 정책을 “전략적 인내”라고 거창하게 불렀는데, 그가 ‘인내’한 것은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순전히 여력이 없어서였다. 이라크 철군을 약속하며 집권한 오바마는 2011년 이라크 철군을 실행하긴 했지만, 고작 3년 만에 다시 이라크로 돌아갔다. 그런 미국에 북한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와 핵무장 고도화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대화 제의를 무시한 채 이전 정부들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했다. 3차 핵실험 이후 괌에 사드를 전진 배치하고, 4차 핵실험 이후 한국의 사드 배치를 합의하는 식이었다. 오바마 정부는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주일미군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바깥으로 이전시키려는 하토야마 정부의 계획을 철회시키기도 했다. 당시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은 “일본 국민도 북한 공격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압박했다.
중국 견제에 힘을 집중하려고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한 오바마 정부는 ‘북한 위협’ 이용하기가 여전히 유용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조건에서 오히려 북한의 핵무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는 효과를 냈다. 오바마 임기 말 5차 핵실험을 마친 북한은 이렇게 선언했다. “핵탄두가 표준화, 규격화됨으로써 ···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보다 타격력이 높은 각종 핵탄두들을 마음먹은 대로 필요한 만큼 생산할 수 있게 되였[다.]”
2017년 8월 미국 국방정보국(DIA)도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탑재해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소형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DIA는 해외 군사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미 국방부 직속의 중앙 정보기관이다.
그 유명한 트럼프의 “화염과 분노” 발언은 이 비밀보고서에 대한 반응이었다. 그 한 달 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하자 트럼프는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위협을 쏟아냈다. 김정은이 ‘미국을 공격할 수 있는 핵무기 버튼이 항상 내 책상에 놓여 있다’고 하자, 트럼프는 ‘내 책상에 있는 핵무기 버튼이 훨씬 더 크고 강하다’고 받아쳤다. 한반도는 급속히 전쟁 위협 속에 놓이는 듯했다.
‘화염과 분노’에서 정상회담으로
그러나 비록 어디로 튈지 모를 인물이기는 해도 트럼프가 ‘끝없는 전쟁’ 종식을 공언하며 취임한 지 몇 달 만에 새로운 전쟁에 뛰어들 처지는 못 됐다. 곧이어 부산한 물밑 접촉이 이뤄지면서 전쟁 위협은 급속히 협상 모드로 전환했다.
2018년 3월 말에는 미국 CIA 국장 폼페이오가 비밀리에 평양을 방문했다. 서로의 의사를 탐색하는 이 만남에서 김정은은 중국과 주한미군에 대해 놀랍게도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한반도를 티베트나 신장처럼 다루기 위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에 이은 주한미군 주둔 용인 발언이자, 북·중 사이에 미국이 파고들 틈이 있다고 대놓고 말한 셈이었다.
얼마 뒤 북한은 “북미 협상이 지속되는 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당분간 중지하겠다”고 선언했고, 마침내 그해 6월 싱가포르에서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화기애애한 만남과 스물일곱 통의 친서로 브로맨스를 보여 줬다.
그러나 두 차례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은 결국 노딜로 끝났다.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쇄와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양보안을 제시했는데, 트럼프는 이를 거부했다. 그리고 북한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최종적이고 완전하며 검증 가능한’ 선(先)비핵화를 고집했다.
그해 6월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열린 깜짝 회동도 사진 말고는 아무것도 남긴 게 없었다. 김정은은 “좋지 않은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좋은 관계를 개척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남다른 용단”을 치켜세웠지만 말이다.
트럼프는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북한과 전쟁으로 갈 수 있었는데 엄청나게 많은 진전을 이뤘다”고 자화자찬했다. 문재인도 “[트럼프는] 한반도 평화를 이뤄낸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미 관계도, 한반도 평화도 진전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트럼프가 2년 동안 김정은을 북미 협상에 묶어 두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실험을 중단시킨 것이 고작이었다. 김정은은 트럼프에게 보낸 마지막 친서에서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지” 따지며 항변했다. “어떠한 조치들이 완화되었다든가 제 국가의 대외 환경이 개선되기라도 했습니까? 군사훈련이 중단되었습니까?”
트럼프의 ‘브로맨스’가 남긴 것: 북한 핵무장 강화
트럼프가 한 짓은 북한을 협상장에 불러내 발목 잡고 있다가 뒤통수를 친 것이었다. 이전 미국 정부들의 흔한 수법처럼 말이다. 차이가 있었다면 협상장에 트럼프가 직접 나왔다는 것뿐이었는데, 그것은 북한 측이 대접받는다는 착각에 빠지도록 홀리는 구실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김정은 자신의 표현대로 “오직 트럼프에게만 득이 되는 디딤돌”로 이용되고 “주기만 하고 아무런 반대급부도 받지 못하는 바보” 취급당한 이후, 북한은 핵 무장을 매우 단호하고 빠르게 강화했다. 트럼프는 오바마와 이전 정부들을 맹비난했지만 그 전철을 그대로 밟은 것이다.
트럼프가 1기 임기를 마칠 즈음 열린 조선노동당 8차 당대회(2021년 1월)에서 김정은은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표준화, 전술화” 능력을 발전시키고 “초대형 수소탄” 개발을 완료했다고 주장했고 이 방향으로 일로매진할 것을 다짐했다.
트럼프와 마주 앉았을 즈음(2018~2019) 북한은 핵탄두와 미국 본토 도달이 가능한 ICBM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실제 전쟁 수행 능력은 불확실했다. 그러나 그 회담이 결렬된 뒤 북한은 핵탄두를 늘렸을 뿐 아니라 전술핵과 고체연료 미사일과 각종 투발 수단을 결합한 ‘사용 가능한 핵전력’을 강화했다.
그리고 북한은 2022년 핵무력정책법을 통해 핵을 실전에 사용하는 방침을 구체화했다. 그전까지 북한은 핵 억제력 측면을 강조했지만, 이제 전략핵과 전술핵을 이용한 선제공격을 명시하고 그 사용 조건을 폭넓게 정했다. 남한을 핵 공격 대상에 포함했다는 뜻이다. 한반도는 평화는커녕 핵전쟁 가능성에 한 걸음 더 다가간 것이다.
트럼프 2기에도 정상회담에 기대할 수 없는 이유
이와 같은 역사를 돌아보면,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북미 정상회담이 재개돼 얼어붙은 한반도에 온풍이 불지 않을까 기대를 품은 게 놀라울 뿐이다. 이재명 정부 내 인사들(대표적으로 정동영 통일부 장관)뿐 아니라 좌파 민족주의 성향의 정당·사회단체 인사들도 적잖이 그랬다.
이런 분위기를 간파했는지 지난 6월 통일부가 주최한 〈2026 국제 한반도 포럼〉에 참석한, 미국의 대북 정책 수립과 분석에 오랫동안 깊이 관여해 온 인물 조엘 위트는 이렇게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관여 정책과 관련해 구원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는 “통제 불능 상태”인 트럼프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엘 위트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의 핵심 실무자였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 책임자였으며, 현재는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스팀슨 센터의 수석 연구원이다.
사실, 지난 몇 년간 가속화된 지정학적 상황 변화 때문에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은 점점 낮아졌고 설사 성사되더라도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될 만한 협상 결과를 기대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지난번 북미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북한의 처지는 많이 달라졌다. 아시아 세력관계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계 지배력은 점차 약화된 반면 중국의 경제력과 지정학적 위상은 강화됐고, 둘 사이의 경쟁과 갈등은 격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밀착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경제적·지정학적 이점을 누리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은 고립무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미 관계 개선에 매달렸지만, 미국은 제재와 위협으로 응답했다. 북한은 국경을 맞댄 중국과의 무역에 크게 의존해 왔다. 비록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단순하지 않고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의 부상은 여러 면에서 북한에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도 밀착하고 파병까지 했는데, 이는 경제적·군사적 이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몸값을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경제 협력, 중국과의 무역 증가 등으로 2023~2025년 3년 연속 3퍼센트대 경제 성장을 이뤘다(한국은행 추계). 지금 북한은 중국·러시아 곁에 머물 강력한 동기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 측의 확실한 양보가 보장되지도 않는데 대미 관계 개선에 매달리며 중국·러시아와의 관계를 위험에 빠뜨리려 하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 존 페퍼 미국 외교정책포커스 소장은 “지금 김정은은 워싱턴과 서울에서 나오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정책보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예측 가능성을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몸값 높이기
물론 김정은 위원장은 대화의 가능성을 닫고 있지는 않다. 그는 지난 2월 조선노동당 9차 당대회에서 이렇게 밝혔다. “헌법에 명기된 우리 국가의 현 지위[핵보유국]를 존중하며 대조선 적대시정책을 철회한다면, 우리도 미국과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김여정 총무부장도 최근 트럼프의 러브콜에 대해 “조미 두 나라 지도자들 사이의 훌륭한 관계”를 언급하며 여지를 남겼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의 러브콜을 평판과 지위 상승처럼 여기면서 국내외적으로 이용하려 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북한은 강대국 간 갈등을 이용하면서 나름의 국익을 추진할 공간을 확보하곤 했다. 북한이 여느 동유럽 국가들처럼 소련의 위성국이 되지 않고 “주체” 노선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존재를 고려하지 않고는 설명할 수 없다. 김일성은 중국과 소련의 갈등 속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양쪽 모두로부터 상당히 독립적으로 북한을 이끌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은 1950~60년대 집권당 내부에서 소련파(친소)와 연안파(친중)를 제거하는 내부 파벌 투쟁과 맞물렸다.
김정은 위원장이 2018년 폼페이오에게 했던 말(‘중국으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주한미군이 필요하다’)은 의미심장했다. 트럼프 정부는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내어 안보 부담을 덜고 중국에 집중하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만약 러시아를 중국에서 떼어내는 ‘역 키신저’ 전략이 성공했다면, 이런 방향은 탄력을 받았을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와 중국을 밀착시키는 효과를 냈고, 두 국가가 북한에 대해 갖는 견인력도 커졌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 끈을 아예 놓지는 않음으로써 미·중 사이의 힘겨루기 틈에서 몸값을 높이려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길이 결코 못 된다. 설사 트럼프가 북한에 대한 안보 부담을 덜려고 일부 양보를 한다 해도(가령 한미연합훈련 축소), 그것은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에 집중하기 위한 맥락 속에서 트럼프가 남북한을 이용하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또, 미국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공식 인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설사 중단-감축 협상이 시작된다 해도 그것은 끝없는 갈등으로 이어지기 십상일 것이다. 주변국 핵 확산 파장을 불러올 이 문제는 미·중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 이미 이란 전쟁 이후 미국이 동맹국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지 회의가 커지면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전술핵 배치를 고려하고 있는 마당이다.
트럼프의 러브콜과 남북한 민족주의
사실,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의 러브콜을 거부하지 않는 것 자체가 트럼프가 그것을 의도대로 이용할 수 있게 돕는 효과를 내고 있다. 북한이 진정한 반미 국가라면,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부당한 침략 전쟁을 벌이는 이때 대화를 거부해야 마땅할 텐데 말이다.
김정은을 향한 러브콜로 트럼프가 이란 전쟁에서 구긴 체면을 만회하고 중간선거에 도움을 받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톡톡히 효과를 내는 것이 하나 있으니, 바로 남한 정부에 대한 압박이다. 트럼프는 북미대화 추진 카드를 이용해 이재명 정부에 이란 전쟁 파병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남한은 상종하지 않겠다면서 미국과의 관계는 열어둔 탓에 이재명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트럼프에게 매달리는 상황을 트럼프가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의 김정은 러브콜이 의도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트럼프를 돕는 꼴이 되든 말든, 오직 자국 이익만 생각하며 러브콜을 환영하거나 여지를 열어 두는 남한과 북한 당국의 태도는 민족주의가 얼마나 협소한 자기중심주의(이기주의)이고 노동계급의 이익과는 거리가 먼지 잘 보여 준다.
북한의 ‘반미’는 반제국주의가 아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의 적대와 위협이 핵무장한 북한을 낳았다. 갈수록 핵무장을 강화한 북한은 그것을 지렛대로 미국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다. 남한의 반미 자주파들은 북한의 핵 무장력을 지렛대로 한반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입장은 제국주의 질서 자체에 도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 뿐 아니라 미국에 일관되게 맞서는 것도 아니다. 북한 당국은 미국에 거친 말을 쏟아내며 반미·반제를 표방하지만, 언제나 미국과의 협상과 양보에 열려 있다. 주한미군 주둔 용인은 그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미국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꿔 중국을 겨냥하려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것은 미국의 아시아 패권 유지를 돕는 것이다. 또, 그것은 중국 노동계급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자 미군 주둔으로 고통받고 전쟁에 휘말릴 수 있는 남한 노동계급을 외면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 북한 지도자들의 반미적 언사는 막대한 자원을 군사 부문에 쏟아붓는 동안 희생을 강요당하는 북한 노동계급이 고통을 감내하도록 만드는 구실도 한다.(주한미군 철수가 북한 인민 달래기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을 떠올려 보라.)
북한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파병한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에 도전하기는커녕 제국주의적 경쟁과 침략의 하위 협력자 구실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한과 반미 자주파들은 파병을 반미로 포장하지만, 민족 자주를 외쳐 온 북한이 옛 식민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일 뿐 아니라 지정학적 위기를 심화시키는 일이다.
이는 핵을 포함한 북한의 무장력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으로 인한 불가피하고 방어적인 수단으로 출발했을지라도 이제는 지정학적 위기 심화의 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그리고 국가 간 갈등 구도 속에서 상대국 노동자·민중은 그 지배자와 도매급으로 취급되면서 북한 무장력의 위협 대상이 된다. 전에 북한 당국은 민족의 생존과 자위를 위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민족의 일부인 남한의 노동자·민중을 향해 핵무기 사용을 공언하고 있다. 이것은 상호 적대를 부추기고, 미 제국주의와 이를 지원하는 자국 정부에 대한 남한 노동자·민중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저해하고, 핵무기 개발을 주장하는 우익 정치인들에게나 정당성을 주기 쉽다.
한반도 평화의 길 — 국가 간 협상이 아니라 국제 연대
오늘날 한반도 평화는 심화하는 제국주의 갈등과 별개로 성취할 수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니다. 한반도의 두 국가는 미·중 갈등에 깊이 얽혀 있고, 그 유력한 전장인 대만 사태에 휘말릴 가능성이 크며, 제국주의 주요국들의 하위 협력자로서 밀착돼 있다. 북한과 남한이 지금 진행 중인 두 개의 전쟁(우크라이나 전쟁과 이란 전쟁)에 무기와 병사를 대고 있거나 그럴 요량이라는 사실은 이를 잘 보여 준다.
한반도 평화를 원한다면 제국주의 체제 자체에 반대해야 한다. 강대국 간 갈등에서 한쪽 편을 드는 대가로, 또는 갈등을 이용하거나 무장력을 지렛대로 협상력을 높여서 안전 보장이나 평화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이유들로) 제국주의 갈등의 일부가 되는 길일 뿐이다.
물론 좌파는 미국이 북한을 군사적으로 위협한다면 그것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나 그것을 매개로 한 북미 협상에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 그것은 평화를 가져오지 못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힘인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본가들의 경제적 경쟁이 전쟁과 전쟁 준비에 길을 내어 주고 있는 지금, 반전·반제국주의 운동을 확대하고 국제적 경쟁 시스템 자체에 도전해야 한다. 반제국주의의 힘은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있다. 국가 간 협상이 아니라 노동계급의 국제 연대가 대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