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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대선을 계기로 살펴 보는 룰라와 노동자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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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기 전에 “브라질 대선 결선 투표: 룰라가 보우소나루를 꺾다 ─ 극우에 맞선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를 읽으시오.
브라질의 사회민주주의 대통령 룰라가 극우 후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를 상대로 대선 결선 투표에서 뜻밖의 승리를 거뒀다. 이 결과는 도널드 트럼프에게 타격일 뿐 아니라, 근래 라틴아메리카 우익 정부 집권 물결(‘블루 타이드’)에 제동을 거는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안심해서는 안 된다. 룰라의 부상과 몰락, 재기의 과정을 보면 노동자당(PT)의 한계를 알 수 있다.
PT는 1980년대 브라질 군부 독재 정권 시절 상파울루 지역의 제조업 공단 노동운동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당시 금속노조 위원장이던 룰라는 PT의 지도적 인물이 됐고, 이후 여러 차례 PT 대선 후보로 출마한 끝에 2001년 61퍼센트를 득표해 당선했다.
룰라는 신자유주의로 고통받은 브라질의 다양한 사회 계층을 아우르는 정치 연합을 구축했다. 그 연합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PT의 노동계급 기반이었다.
그러나 그 연합에는 내수 시장을 노린 브라질 대기업 세력도 속해 있었다. 그들은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경쟁이 격화하는 것을 두려워했으며, PT 정부가 자신들을 보호하고 내수를 진작해 주기를 기대했다. 브라질 북부와 북동부, 낙후한 내륙 지역 유지들도 영향력을 노리고 PT에 접근했다.
이런 다양한 세력을 포괄하는 PT의 공약은 모순투성이었다.
당선하기 전 선거들에서 룰라는 “기호 3번[PT]에 한 표를, 나머지는 모두 부르주아 후보다” 하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2001년 대선에서 룰라는 우파 정당인 자유당에 속한 백만장자 기업주 주제 알렌카르를 부통령 후보로 삼았다.
PT는 복지 시행, 대학 교육 기회 확대, 빈민가 전기 공급 등을 통해 노동계급 사람들의 삶을 소폭 개선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에 정면 도전한 적은 없었고, 신자유주의를 더 ‘공정한’ 방식으로 관리하려 했다.
원자재 가격이 한창 오르던 2000년대에는 그 전략이 먹히는 듯 보였다. 농산물·에너지 수출 수익이 는 덕에 룰라는 자본가 계급과, 그들이 장악한 국가 기구와 충돌하지 않고도 부를 재분배하고 투자를 늘릴 수 있었다.
룰라의 후임자 지우마 호세프는 세계 금융 위기 직후인 2010년에 취임했다. 마침 원자재 가격 급등세가 꺾였고, 2014년부터 브라질 경제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호세프는 긴축 정책을 강행했지만 그러고도 자본가들의 요구를 온전히 충족하지는 못했다. 결국 특권을 사고판 PT의 대규모 부패가 폭로되며 호세프는 우파가 주도하는 의회에 의해 탄핵됐다.
PT의 이런 실패는 2018년 대선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승리할 길을 열었다.
보우소나루 정부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브라질인 75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고 브라질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이 때문에 유권자들은 2022년에 다시 룰라를 택했다(물론 표차는 근소했다).
룰라는 세 번째 임기 때도 원자재 가격 상승 덕분에 어느 정도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룰라는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은행과 대기업, 다국적 기업들에 철저히 도전하지 않았다. 지금도 브라질은 세계에서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 중 하나다.
이제 네 번째 임기를 맞는 룰라의 운신의 폭은 이전보다도 좁다. 브라질의 경제 성장률은 2퍼센트 미만으로 둔화해 있다. 룰라의 참모들은 벌써부터 보건·복지 예산 삭감을 검토하고 있다.
룰라는 보우소나루와 우파의 귀환을 저지하고자 했던 노동계급의 광범한 열망 덕분에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앞으로도 거리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극우 세력을 물리치고, 이윤보다 사람을 우선하는 체제를 쟁취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대중 동원이 필요하다.
이 글은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의 10월 26일자 기사 ‘Celebrate Lula’s win over far right in Brazil—but the movement is key’를 축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