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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차 카이로 국제 반전 회의:
핵을 빌미로 한 전쟁 위협에 대처하기

저항하는 아랍 민중에게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시는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깡패 국가들이 세계 평화를 위협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위협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고 지난해 10월에 핵 실험을 했습니다. 어제 이곳 회의장에서 만난 한 분이 북한 핵무기가 위협적이지 않느냐고 물으시더군요. 네. 물론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핵무기도 지지해선 안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북한 핵무기는 부시가 북한을 위협해 온 결과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북한 당국은 2005년 초에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는데, 그 때 그들은 이라크 전쟁의 교훈에 따라 핵무기를 만들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이라크 전쟁의 교훈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못하면 미국의 침략을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시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고, 북한을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공연히 주장해 왔습니다. 북한의 핵무기가 괴물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 괴물은 다른 누가 아니라 바로 부시가 만든 괴물입니다. 이 점을 분명히 해야 부시의 위협에 제대로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핵무기를 많이 가진 국가일수록 북한 핵실험에 대해 더 신경질적이었습니다. 미국이 가장 신경질적이었죠. 하지만 미국은 누구에게 핵을 폐기하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북한은 5∼8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미국은 1만 기가 넘는 핵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핵무기를 실전에서 사용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미국은 1945년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를 투하했습니다. 그 5년 뒤 한국전쟁에서 미국은 또다시 핵무기 사용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북한이었습니다. 그 뒤 미국은 북한과의 정전협정을 위반한 채 남한에 핵무기를 들여왔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핵공격 위협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도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란과 북한의 핵무기를 문제 삼지만 이것은 위선적인 이중잣대일 뿐입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해 국제적 제재를 받기 몇 달 전에 미국은 인도의 핵을 인정했습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를 미국의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것입니다.

또, 미국은 자신의 경비견인 이스라엘의 핵무기 수백 기에 대해서는 비난한 적이 없습니다.

모순

지금 미국은 북한과 핵 협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부시 외교노선의 변화를 보여 주는 것이고, 이를 통해 외교적 성과를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북미 협상은 오히려 미국의 모순들을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째,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일관성도 정당성도 없습니다. 부시는 북한과는 대화로 해결하겠다면서, 왜 이란에 대해서는 공격 위협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개발해 지난해 10월에 실험까지 했고, 반면 이란은 IAEA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말했듯이 5년 안에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것은 이란 공격 위협이 완전히 부당함을 보여 줍니다. 점점 높아지는 이란 공격 위협이 사실은 핵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시는 이라크 수렁에 빠진 책임을 이란으로 돌리고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기 위해 이란을 위협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부시가 북한과 핵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미국이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시는 북한의 최고 지도자 김정일을 “피그미”라고 부르며 경멸해 왔습니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해 왔습니다. 그런데 왜 부시가 갑자기 마음을 바꿔 북한과 마주 앉게 됐을까요?

이라크 수렁에 빠진 미국이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동북아시아로 전선을 확대할 여력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북미 협상은 중동에서 패배하고 있는 부시의 처지를 반영합니다. 따라서 한반도 전쟁 위협이 잠시 약화된 것은 이라크 저항 세력과 중동을 비롯한 세계 반전 운동이 부시를 깊은 수렁에 빠뜨린 덕분입니다. 남북한 민중은 여러분들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제국주의

한반도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평화를 바라고 있습니다. 남한은 미국의 충직한 동맹으로 유명하지만, 남한 국민의 90퍼센트는 부시의 전쟁에 반대하고 이라크에 한국군 2천3백여 명을 파병한 것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미 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저는 미국과의 협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투쟁에 우리의 평화가,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습니다.

첫째, 미국이 경계하는 것은 동아시아의 최빈국인 북한이 아니라 지역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입니다. 따라서 설사 북미관계가 개선된다 해도 동아시아의 긴장은 해소되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 한국, 인도 등과 동맹을 강화하고 동아시아의 미군을 재편하고 있는데, 이것이 동아시아의 긴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군사적·지정학적 경쟁 격화는 경제적 경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에 도전함으로써만 진정한 평화를 쟁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한반도 평화는 현재로선 중동 정세에 달렸습니다. 중동에 대한 지배력을 확립하려는 미국의 전쟁이 성공을 거둔다면, 피 맛을 본 야수는 다시금 한반도를 노릴 것입니다.

따라서 한국 반전 운동은 중동을 포함한 전 세계 반전 운동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라크 점령과 이란 전쟁 위협을 종식시키고 이 야수를 중동 전선에서 패퇴시키는 것입니다.

이라크 파병 한국군을 철군시키고 미국 제국주의를 물리치지 않고서는 한반도를 포함한 세계 어느 곳도 결코 평화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미국 제국주의를 물리치기 위한 투쟁에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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