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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공대 참사는 무엇을 보여 주었는가

우파와 주류 언론들에 따르면,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본질”은 단순하다. “극히 비뚤어진 과대망상자가 벌인 참극”(〈중앙일보〉)이라는 것이다.

이런 설명은 새롭지 않다. 8년 전 컬럼바인 고교에서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을 때도 우파들은 똑같은 얘기를 떠들었다. 그 때도 폭력적 비디오와 게임이 문제라는 얘기가 유행이었다.

이런 설명에 따르면, 조승희 씨가 남긴 동영상은 기껏해야 그가 “정신착란”과 “과대망상”에 빠져 있음을 보여 줄 뿐이다.

조 씨가 남긴 동영상의 내용이 다소 혼란스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가 동영상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또렷하다.

동영상에서 그는 어눌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의 끔찍한 “고통”과 “너희들”(“속물들”, “기만적 허풍쟁이들”)의 “방탕”을 극명하게 대조한다.

“너희들은 나를 궁지로 몰아 넣었고 … 내 심장을 파괴했고, 내 영혼을 유린했고, 내 양심을 불태웠다. … [반면] 너희들은 평생 동안 단 1온스의 고통도 느껴본 적이 없다. … 너희들은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졌다.”

동영상을 압도하는 정서는 그가 겪었던 소외와 억압에 대한 사무치는 증오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나”와 “너희들” 사이의 [계급] 분단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가 놓여 있다. 그는 “메르세데스[-벤츠]”, “금목걸이”, “코냑”, “펀드”로도 만족하지 못하는 “너희들의 쾌락주의적 욕망”을 거세게 비난한다.

“자기 잘못을 세상 탓으로” 돌리는 “피해망상”일 뿐이라는 우파들의 주장과 달리 이런 조 씨의 증오와 분노는 바로 자신이 사는 사회 ― 자본주의 사회 ― 에서 겪은 ‘현실’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방탕

조 씨는 8살 무렵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의 부모는 “세탁소에서 일자리를 얻었고 매우 장시간 일했다. … 물론 목표는 그들 자신의 가게를 여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승태 씨[조승희 씨의 아버지]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하는 압착 담당 직원으로 시작해서 오늘날까지 그 일을 하고 있다.”(〈뉴욕타임스〉4월 22일치)

두 부부가 “일벌레”처럼 악착같이 산 덕분에 그들은 워싱턴 DC 부근의 중산층 거주 지역(센터빌)에 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계급 처지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또, 그처럼 아등바등 살아가다 보니 지역 주민들은 물론 가족들끼리도 여유있게 대화를 나눌 기회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조 씨는 학교 생활도 순탄치 않았던 듯하다. 주변 지인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아마도 수줍은 성격과 어눌한 말투 때문에 학교에서 “따돌림과 놀림을 당했다.”

조 씨를 가르쳤던 영문과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내게 너무 외롭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부정적이고 자포자기한 상태여서 그와 얘기할 때면 마치 구멍에 대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부자집 아이들”과 함께 대학을 다니며 계급 분단에 대한 자각은 아마도 더 분명해졌을 것이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사건 몇 년 전 조 씨의 아버지는 몸이 아파 세탁소 일을 그만둬야 했고, 이 때문에 경제 사정이 더욱 어려워졌다.

조 씨의 경험과 “고통”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이 겪은 보편적 경험이라는 더 넓은 맥락과 맞닿아 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가 추진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정책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더욱 강화됐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신경제’ 호황은 상당 부분 신자유주의 정책에 기반한 착취율 증대에 힘입은 바 컸다.

구조조정과 시장주의 확대는 억압과 소외의 강화를 수반했다. 노동자들은 위축됐고,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괜찮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더 극심한 경쟁에 내몰렸다.

미국대학건강협회가 지난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미국 대학생의 8.5퍼센트가 자살 시도를 심각하게 고려한 경험이 있고 15퍼센트가 우울증 진단을 받은 바 있다. 이는 2000년 10퍼센트보다 크게 오른 것이다.

이 점에서 조 씨가 저지른 사건이 재미 한인(또는 이주자) 사회의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상당수 언론들의 보도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조 씨의 동영상에는 그가 이주자로서 겪었던 특수한 억압이 대한 언급이 없다. 대다수 미국 언론들도 조 씨 사건은 “한국과는 무관한 미국의 문제”라고 말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증한 학교 또는 직장 내 총기 사건의 압도 다수는 백인들이 저질렀다. 이전의 다른 총기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조 씨 사건의 핵심도 계급 사회가 낳은 억압과 소외이다.

전쟁

199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은 세계 도처에서 군사주의적 개입을 강화했다. 이는 미국 국내의 극단적 계급 불평등과 함께, 유독 미국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자주 발생 ― 1996년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절반 이상이 미국에서 일어났다 ―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또 다른 핵심 요인이다.

1990년대 말 미국은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전쟁을 벌였고, 2001년 9·11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점령했다. 지금 미국은 이란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제국주의 전쟁이 부추긴 군사주의적 문화의 만연은 절망과 증오로 가득 찬 ― 그러나 동시에 대체로 고립되고 매우 보수적인 의식을 지닌 ― 개인들이 매우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그러한 증오를 표현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인디펜던트〉의 지적처럼, “미국 문화가 개인적 문제에서 지정학적 문제까지 모든 갈등을 폭력적 수단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낡고 오래된 메시지를 되풀이하는 한, 이번 [참사 같은] 일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은 국내에서도 억압과 소외를 강화하는 법이다.

물론 조 씨가 느낀 좌절감과 분노만으로 대량 살인이라는 행동을 설명할 수는 없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 씨와 비슷한 좌절감과 분노를 느끼며 살아가지만 조 씨와 같은 극단적 행동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조 씨가 저지른 참상은 자본주의 사회가 조장하는 억압과 소외가 얼마나 왜곡된 방식으로 폭발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징후이다.

억압과 소외, 착취와 전쟁을 끝내기 위한 대중 저항과 그와 연관된 진정한 대안만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절망과 다른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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