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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와 진보진영 선거연합:
운동 속에서 선거연합을 건설하기

열우당 붕괴가 정치적 공백 상태를 낳고 있다. 〈맞불〉은 지난해 말부터 이 공백을 메울 광범한 진보진영 결집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구체적으로, 반전·반신자유주의 운동을 바탕으로 선거 대안, 즉 반전·반신자유주의·반주류정치 진보진영 선거연합을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해 왔다.

한편, 최근 심상정 의원은 “광범하게 형성된 한미FTA 전선의 성과를 진보진영 재편으로 안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미FTA 반대 운동에 근거해 “진보진영 재편”을 해야 한다는 제안은 적극 지지할 만하다. 첫째, 심 의원이 주장했듯이, “단지 상층 정치세력의 정치공학적 결합이 아니라 한미FTA에 반대하는 광범한 실천 속에서 나오는 아래로부터 재편”이라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 한미FTA 반대 운동은 커다란 진보를 이룩했다.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는 대중의 반신자유주의 정서에 정치적 표현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와 보수 언론들이 연합해 한미FTA 찬성 여론 공세를 퍼붓고 있는데도 한미FTA 반대 여론은 30퍼센트를 넘는다. 한미FTA 협상문이 공개될 경우 이 수치는 더 늘어날 것이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특정 정세 속에서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한 쟁점을 중심으로 한 단일쟁점 연합체 ― 고전적 공동전선 ― 가 대중의 참가와 행동을 북돋는 데서 결정적임을 입증한다. 이런 운동의 장점은 비교적 단순한 쟁점을 둘러싸고 공동 활동을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대중 행동을 건설할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총체적 강령은 다를지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특정 쟁점을 중심으로 정치 활동의 제1라운드에 실제 참가할 수 있고 자신들이 내딛은 보폭만큼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2005년 프랑스에서 승리한 유럽헌법 반대 운동과 2004년 독일에서 슈뢰더 정부를 뒤흔든 복지 ‘개혁’ 반대 연합체의 특징이었다.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도 똑같은 원리에 근거해 있다. 프랑스는 두고볼 일이지만, 독일과 영국에서는 각각 ‘좌파’(Die Linke)와 리스펙트라는 새로운 좌파 정당들이 탄생했다.

그러므로 진보진영 선거연합이 한미FTA 반대 운동 같은 대중운동 속에서 등장해 그 운동과 관련 맺을 수 있다면 그것은 소중한 미덕이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보다 더 넓은 스펙트럼의 세력들에 기반할 수 있을 것이고, 부르주아 ‘개혁’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정치 대안을 대중운동에 제공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3백 개가 넘는 매우 다양한 단체들 ― 민주노동당과 각종 좌파 단체들, 사회운동적 NGO들, 학생 단체들, 종교 단체들, 소비자 단체들 등 ― 이 포함돼 있는 ‘범국본’을 민주노동당과 민중운동 진영이 실질적으로 주도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한미FTA 반대 운동은 신자유주의 모델, 빈부격차 심화,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보건의료와 공공서비스의 악화 등에 대한 엄청난 반감에 근거해 있다. 이 운동이 광범하면서도 동시에 급진적일 수 있는 까닭이다.

이 때문에 진보진영 선거연합이 한미FTA 반대 운동으로부터 출발하더라도 그것이 곧 온건화 압력 수용을 뜻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천정배

그런데, 한미FTA를 반대하는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문제가 있다. 이들도 선거연합의 대상이 돼야 하느냐는 문제이다.

심상정 의원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발의해 결성한 ‘한미FTA 졸속 타결에 반대하는 국회의원 비상시국회의’(‘시국회의’)에는 50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밥 숟가락만 올려놓고’ 있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런 자들이 진보진영 선거연합에 참여할 리 만무하다.

문제는 단식 농성까지 해 가며 한미FTA를 반대했던 천정배·임종인·김근태 등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일각(과 ‘미래구상’의 ‘좌파’)에서는 이들과 민주노동당의 연합을 희망한다. 당 안에는 이런 연합에 반대하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진보진영 선거연합에 대해 당 지도부가 보이는 신중하다 못해 답답하기까지 한 행보도 이런 양극단이 가하는 압력 때문이다.

한때 열우당에 있다 지금은 탈당해 운동의 언어를 구사하는 이들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또, 민주노동당과 이런 자들의 연합을 강력히 희망하는 ‘미래구상’에 대해서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노동계급의 정치적 대표체와 지배계급의 정치적 대표체 간의 연합은 체제에 맞서 투쟁할 수 있는 힘을 갉아먹을 뿐이므로 반자본주의자들은 이런 연합을 반대한다.

그러나 먼저, ‘미래구상’은 열우당이 아니다. 그들이 범여권 ‘개혁파’의 결집을 희망할지라도 이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예컨대, 반전 연합체 안에는 ‘다함께’처럼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장 저항을 지지하는 쪽과 그것을 지지하기를 꺼리는 평화주의 세력이 공존한다. 이라크 저항세력의 무장 저항에 대한 태도가 공동 행동의 전제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꼭 마찬가지로, 천정배 등 한미FTA에 반대하는 열우당 이탈파에 대한 태도가 선거연합의 전제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한미FTA에 반대하는 열우당 이탈파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천정배 등의 한미FTA 반대를 기회주의라고 비판하며 그 진정성을 의심한다. 일리 있는 비판이자 의심이다.

그러나 심상정 의원이 적절하게 지적했듯이, “실제 일선에서 실천을 하면 우리 스스로도 변화하고 상대도 변화한다는 것을 전제로 봐야지 기존 주장만 갖고 기계적으로 나누려 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천정배 등이 향후 사태 전개 과정에서 어느 방향을 향하게 될지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선거연합을 위해 천정배 등에 결코 무비판적이서도 안 되지만, ‘미래구상’의 구상에 대한 의심 때문에 선거연합 논의 자체를 반대하거나 주저하는 것도 잘못이다. 마치 프랑스에서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LCR) 등 혁명적 좌파들이 사회당에 대한 공산당의 모호한 태도(사회당-공산당 연립정부 가능성)를 의심해 선거연합 논의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바람에 결국 좌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한 경험을 새겨볼 필요가 있다.

열우당이 아닌 정치 대안을 원하는 사람들은 순수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자신들 앞에 펼쳐진 정치 지형을 재편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소극적

사실, 운동이 대규모로 성장하게 되면 정치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리고 좌파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는 선거를 뜻한다. 선거운동은 좌파 활동가들이 광범한 대중과 체계적으로 관계 맺을 공간이자 기회다.

이미 세계 곳곳에서 운동은 정치적 주장을 제기하고 사회적 자유주의 정부나 부르주아 ‘개혁’ 정부의 배신에 도전하는 방법들을 강구하도록 요청받고 있다.

독일에서는 복지 삭감 프로그램인 ‘하르츠Ⅳ’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이 집권 사회민주당(SPD)을 분열시켰고 이 과정에서 새 좌파 정당인 ‘좌파’가 막 탄생했다.

영국에서는 전쟁과 반전 운동 때문에 블레어의 노동당이 아닌 선거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반전·반제 운동은 그 대안으로 리스펙트를 건설했다. 브라질에서 ‘사회주의와 자유당’(P-SoL)은 좀더 분명한 반자본주의 방향으로 새로 급진화하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에서는 운동이 가장 멀리 나아가 혁명적 정치의 문제가 의제에 올라 있다.

운동들이 단순히 새 정치 구조물 건설로 환원될 수는 없겠지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시하는 정치적 둔감함과 만만디는 지금처럼 정치적 역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스스로 무용지물임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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