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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칼럼- 메스를 들이대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한미FTA에 맞서 거리로 나서자

6월 항쟁 20주년이다. 동시대를 살았던 필자도 “만감이 교차”한다. 당시 날마다 다음날 쓸 “삐라”를 만들던 필자는 6월 내내 시위가 계속되자 유인물 초안에 “오늘도 거리 투쟁은 계속됐다”고 첫 문장을 시작한 적이 있다.

선배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오늘도’라니? 투쟁이 끝나야 하는데 ‘오늘도’ 계속됐다고?” 할 말이 없었고 첫 문장은 “투쟁이 더 확산되고 있다”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 “오늘도”는 몇 달이나 계속돼 9월까지 노동자 대투쟁으로 이어졌다. 내가 살고 있던 공단도 파업 물결에 휩쓸렸다.

그 해 여름, 출근길의 여성 노동자들이 “니네 공장도 데모했니? 요즘 데모 안 하면 병신이래” 하면서 공장으로 가던 그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그 공단의 공장이 모두 파업을 했고 10명 미만 규모의 이른바 ‘마찌꼬바’까지 파업을 했다. 이런 노동자와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로 지금의 민주주의나마 이루어졌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6월은 그렇다.

그런데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올해 6월 10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고 노무현 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6·10 민주항쟁을 승리한 투쟁의 역사였다며 그 증거로 “이후 20년 간 우리는 민주주의를 꾸준히 발전”시켰고 “관치경제(를) 청산하고 완전한 시장경제를 실현하고,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었다는 것을 들었다.

“민주주의가 꾸준히 발전”됐다? 물론 그렇다. 그러나 그것은 1987년 이후 정부들이 한 일이 아니라 그 정부들에 대항한 꾸준한 투쟁 때문이었다. 더욱이 “완전한 시장경제,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바로 그 “완전한 시장경제”를 추구하는 한미FTA에 대항해, 6월 항쟁의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범국민운동본부”가 지금 투쟁하고 있다.

시장경제

한미FTA는 ‘완전한 시장경제’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준다. 금융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 조치]를 보자. 정부는 이를 미국이 한 번도 허용하지 않았는데 이번 협정문에 넣었다고 자랑했다. 그러나 막상 공개된 협정문을 보니 그 세이프가드는 구멍이 나 있는 정도가 아니다.

IMF 외환 위기 때 보듯이 이 세이프가드는 투기자본의 장난질을 막기 위한 정부의 필수적 조치다. 그러나 직접투자, 경상거래 등 예외가 8가지나 붙은 데다가 ‘투자자­정부 직접 소송제’의 대상이다. “2조 원을 먹고 튀려 한 론스타 같은 미꾸라지는커녕 잔챙이들마저 가두기 어렵게 됐다”.

농산물 가격이 폭락할 경우 긴급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선전했지만 드러난 사실은 그 조치를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권투 선수에게 시합 도중 가드는 한 번만 올리는 게 말이나 되나? 의약품 가격도 “경쟁적 시장 도출 가격”을 기준으로 하라고 한다. 정부가 간섭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당장 신약 가격이 2배 이상 올라간다. ‘왜 이런 협정을 체결하는가’ 하고 묻지 마시라. 정부 개입 없는 “완전한 시장경제”가 6월 항쟁의 계승이란다.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 한미FTA 협정은 곳곳에서 “투명성”을 강조한다. 누구에 대한 투명성인가? 예를 들어 약값 결정 과정의 모든 단계에 기업의 접근이 보장돼야 한다고 한다.

현재 의약품 가격 결정 위원회는 그 회의록도 비공개다. 그런데도 이미 제약회사의 개입은 노골적이다. 제약회사가 ‘김앤장’[한국 최대의 법률회사]에게 약값 결정 과정을 맡기는 데 쓰는 공식 가격이 3∼5억 원이고 이렇게 하면 ‘이상하게도’ 약값이 ‘잘 나온다’는 것이 제약업계의 ‘상식’이다. 이것을 더 투명하게 하자? 기업 개입을 합법화하자는 이야기다.

한미FTA 협정의 곳곳에 강조된 ‘투명성’이란 이미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자본에게 아예 합법적인 민주주의 파괴 권한을 부여하자는 것이다.

투명성과 공정성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한미FTA에 따라 설치되는 17개의 위원회와 작업반이다. 이 위원회들은 정부내 각 부처와 정책 ‘협의’를 하는 기구다. 한국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실행하려면 미국 정부와 사전 협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실명제 실시에서 보았듯이, 기업 규제 정책은 비밀 작전처럼 시행해도 제대로 될까 말까 하다. 그런데 아예 미국 정부나 기업과 정책 사전 협의를 하자고?

이 17개 위원회들은 한미 양국의 통상교섭본부장이 공동의장이 되는 한미FTA 공동위원회의 감독을 받는다. 정부가 아예 하나 더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한미FTA가 말하는 민주주의다.

자본에게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권한을 주는 것은 한미FTA의 독소조항이 아니라 한미FTA의 핵심이다. 신자유주의의 기구인 WTO나 FTA는 “각 국가의 국회 결정이나 제도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제 기구의 창설”을 그 목적으로 한다. 이것이 WTO의 분쟁 조정 기구이고 FTA에서는 아예 기업이 정부를 직접 제소해서 민주적 감시에서 벗어난 제3지역에서 재판을 하도록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각국의 사회적 공공 규제 정책과 제도를 심판하고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미FTA에서는 북미자유무역협정보다 더 악화된 ‘기업­정부 직접 소송제’를 규정했다.

한미FTA의 미국 정부 민간자문단 보고서는 미국 정부가 따낸 이러한 “중대한 진전”에 대한 찬양, 더 나아가 아무런 예외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자본들의 주문 사항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바로 한미FTA다.

허세욱

6월 항쟁이 있었던 1987년에 택시노동자가 된 허세욱 씨는 그의 유서에서 “한미FTA 토론한 적 없다”며 “반민주적 협상을 중지하라”고 말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받은 월급은 상여금 13만 2백50원을 포함해 70만 6천4백28원이었다. 철거민 투쟁과 노동운동에 참여했던 허세욱, “16년 간 지각도 결근도 없이” 노동을 했던 이 땅의 모든 허세욱이 지금의 민주주의와 이 나라를 만든 것이지 노무현 정부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6월 항쟁 20주년인 오늘, 이 정권은 민중의 투쟁 성과인 지금의 민주주의와 사회적 권리를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자본에게 민주주의를 파괴할 권리를 부여하는 한미FTA가 6월 항쟁의 계승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허세욱 씨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그리고 6월 항쟁의 이름으로 말하건대, 한미FTA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반민주적 협상”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적 권리는 오직 거리와 공장에서 민중의 직접적 투쟁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6월 항쟁의 교훈이다. “오늘도” 투쟁은 계속돼야 한다. 항쟁의 계절, 6월에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다시 거리로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