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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킬 것인가?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평양에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다. 남북 간의 긴장과 대결과 충돌보다 대화가 운동에 더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반도는 지금까지도 세계에서 최고로 중무장한 지역이다. 남북 간의 군사적 긴장 때문에, 또 이를 이용한 남북 정권들의 억압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십 년 동안 고통받아 왔다.

한나라당 등의 보수 우파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 거의 본능적으로 반발하며 냉전적 대결주의를 드러낸 것은 역겨운 일이다. 비록 남북 정상회담 자체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약삭빠르게 입장을 바꿨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너무 양보하면 안 된다’, ‘만나서 할 말은 해야 한다’며 화해가 아니라 되레 싸움을 주문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광범한 정서는 이와 반대로 한반도에 진정으로 평화가 정착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바람과 정서에 깊이 공감한다. 문제는 남북 정상회담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가이다.

기대와 좌절

사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에 비해 훨씬 덜하다. 1차 정상회담 때는 분단 이후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이어서 지금과 비교하기 어려운 기대가 있기도 했지만, 1차 정상회담의 학습 효과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크게 떨어뜨린 면도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국가보안법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기대는 7년의 세월 속에서 부정적으로 입증됐다. 이산가족들조차 고향 방문은커녕 편지조차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없으니, 남북 보통 사람들의 자유 왕래는 말할 것도 없다. 2000년 당시 민주노총은 남북 정상회담의 4가지 의제 가운데 하나로 남북 민중의 생존권 보장을 제기했지만,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남북 모두에서 빈부격차가 급격히 증대했다. 남북 화해와 민중의 생활수준 향상 사이에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기대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이밖에도 남북 정상회담에 걸었던 여러 가지 기대가 무뎌졌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공동선언이 그 직후 시작된 한반도 긴장을 전혀 막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긴장은 남북 대결의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21세기에 새롭게 등장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여파였다.

부시 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켰고, “고농축 우라늄” 의혹을 제기해 남북 정상회담 2년 만에 “2차 북핵 위기”를 조성했다. 한반도 위기가 북한이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오는 게 명백했지만, 김대중의 대북 정책을 이었다는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더 충실한 대미 동맹이 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북미가 제네바 합의 방식의 틀로 되돌아갈 때까지 남북 관계는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한 돌파구 구실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남북·북미 관계와 중동 전선

2차 남북 정상회담은 2·13합의 이행 국면 속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1차 때처럼 미국 정부 강경 정책의 유탄을 맞는 일은 없을 거라고들 한다. 남북 관계가 북미 관계 개선 속에서 발전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포기하고 북미 관계 정상화로 나아갈 것이라고 낙관만 하기는 어렵다. 2·13합의는 중동에 전념하기 위한 부시의 일시적 양보였지, 부시 정부가 일관된 대북 정책을 새로 세웠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2·13 합의의 이행 수준은 정확히 말해서 미국이 북한에 보상을 해주고 핵 시설을 폐쇄시킨 것이다. 여기까지는 제네바 합의를 통해 북미 양측이 한 번 해본 일이고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일정이 지켜지지 못했다.

북한측의 핵 목록 신고·불능화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들의 연계 행동 일정이 정해져야 하는 지금부터는 난관이 훨씬 많을 것이다. 북한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적성국교역법 종료 일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 한 불능화 조치를 취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핵 위기를 일단 봉합했다고 생각해 시간 끌기로 나올 수도 있다. 클린턴 정부가 제네바 합의 이후 그랬듯이 말이다.

앞으로 북미 협상은 위기와 해소가 갈마드는 불안정한 과정이 될 수 있고, 남북 관계도 이것에 연동될 수 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양보(북핵 봉합 시도)가 어느 정도 지속될지는 북미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 중동 전선의 상황에 달려 있다. 미국이 중동 전선에서 여유를 찾는다면 다른 지역으로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 따라서 북미 사이의 협상이 순조로워 보이는 동안에도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점령 반대 운동에 힘을 빼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의 위선

의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지만, 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는 한반도 평화, 경제 협력, 군비통제, 통일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도 “4대 근본 문제”(참관지 문제, 국가보안법, NLL 재설정, 한미합동군사훈련) 등을 내놓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체제 논의가 무성한 가운데 열리고 평화 관련 의제도 꽤 있지만, 노무현 정부의 전력은 한반도 평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을 버젓이 진행할 예정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다. 노무현 정부가 연기하기로 한 것은 을지포커스렌즈 훈련 자체가 아니라 그것과 병행 실시할 계획이던 한국군 자체 훈련으로, 이것은 순전히 면피일 뿐이다.

노무현 정부는 군비도 엄청나게 증강해 왔다. 국방 예산을 2016년까지 연 11퍼센트 증액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남한은 북한의 10배에 이르는 군사비를 투자하고 있고, 주한미군을 제외하고도 재래식 군사력이 북한을 훨씬 앞선 상태인데도 말이다. 노무현은 북한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역내 불안정 증대에 대비한 “포괄적 안보”임을 강조하지만, 엄청난 무기 증강이 북한에 위협적이지 않을 수는 없다.

또, 노무현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 합의와 한미동맹 재편, ‘테러와의 전쟁’ 동참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심각하게 해치고 있다. 이것은 북한과 무관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남한이 동아시아와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 유지를 도움으로써 미국이 북한을 압박할 여력을 간접으로 키워 주는 셈이다.

노무현 정부의 위선은 국가보안법 문제와 진보 운동 탄압에서도 잘 드러난다. 노무현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 한다면서 8·15 특별사면에서 양심수를 제외하고, 심지어 남북 정상회담 발표 뒤에도 통일선봉대를 연행하는 등 활동을 탄압하고 있다.

대중 행동의 필요성

지난 남북 정상회담의 경험은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유지돼 온 국내 억압이 정상회담을 통해 저절로 완화되거나 철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한반도 평화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가 ‘테러와의 전쟁’, 동북아 군비 경쟁, 한미동맹 재편처럼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문제들과 연관이 깊어진 오늘날은 더더욱 그렇다. 한반도 평화의 필수 요소들인 이 문제들은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협상을 통해서도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인식하지 않고 북미 또는 남북 협상에 큰 환상을 품는다면 진보 운동은 자칫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 북미 또는 남북 간 협상 의제로 돼 있는 문제들 또는 우리의 바람이 협상 테이블에서 잘 해결되길 손놓고 지켜보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쥔 협상 당사자들에 비하면 우리 운동이 얼마나 작은지 절감하면서 말이다.

“현 정세의 특징은 북미 등이 정부와 정부 간의 운명을 건 총력전을 벌이고 있는 점이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핵무기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민간 진영이 개입할 여지는 크지 않다.”(민경우, 통일운동노선에 대한 문제제기)

북한 당국은 북미 협상에서 체제 안전을 보장받는 데 만족할 수 있다. 미국 제국주의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지만 않는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인정하고, 때로는 도우면서 말이다. 3월 16일 베이징에서 열린 6자회담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실무회의에서 북한측 대표는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를 통해 친구 관계를 맺고 싶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지난 3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힐 차관보에게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북한이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면, 진정한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체제 보장을 넘어, 상시적 전쟁 체제에 들어선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을 패배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민간 진영”이 대중적으로 “개입”해야만 성취 가능하다. 국제 반전 운동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 줬다.

진보 진영은 정상회담 관람석으로 물러앉기보다 대화국면이 조성하는 조건을 이용해 대중행동을 건설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