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나쁜 사마리아인들》, 장하준, 부키:
신자유주의 거짓말을 명쾌하게 논박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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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는 여러 권의 저서와 글들을 통해 신자유주의 ‘정설’을 비판하고 나름의 대안을 확고하게 제시하면서,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에 분노하며 새로운 대안을 찾는 한국의 진보적 대중에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대중의 삶에 악영향을 줄 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이루는 데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론이라는 점을 역사적 사례와 구체적 증거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
장하준은 일단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불가항력적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세계화는 인간의 의지와 결정, 즉 정치의 문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에 맞선 대안이 없다는 주장 자체가 틀렸다. 대안은 있으며, 그것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무역으로만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역사에서 선진국들은 자신들이 불리할 때는 자유무역을 고수하지 않았다. 오히려 높은 관세장벽을 치고 유치산업을 보호했다. 현재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만이 정답이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유무역과 시장경제로 성공했다고 칭송하는 대표적 사례인 칠레, 남한 등은 모두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했다가 일찍이 금융 위기를 겪었거나, 반대로 적극적인 국가 개입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사례에 해당한다.
최근 선진국들은 너도나도 특허 제도와 지적재산권을 강화하지만 과거에 그들은 다른 국가와 기업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적극 ‘차용’해 부자가 됐다. 또한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과 달리 특허와 지적재산권이 강화될수록 해당 분야의 발전이 더딜 수 있다. 그만큼 이전 기술과 지식에 많은 로열티를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민영화’
신자유주의자들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면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공기업은 필연적으로 부실해지기 때문에 공기업을 사유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저자는 공기업의 장점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비효율 같은]부실 요인은 민간 기업에게도 똑같이 존재한다. 민간 기업도 회계조작, 부당 내부 거래 등 부정부패 문제를 안고 있다. 심지어 공적 영역을 민간에 넘기는 과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기업들 때문에 부정부패가 더 늘어났다.
‘자유시장이 민주주의를 촉진한다’는 이론도 신자유주의 정설 중 하나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오히려 “시장과 민주주의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충돌한다.” 민주주의는 ‘1인 1표’의 논리로, 자유시장은 ‘1달러 1표’의 논리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자유주의는 경제의 ‘탈정치화’ 운운하면서 선출된 의회와 정부 대표가 아닌,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에게 많은 권한을 주면서 민주적 과정을 후퇴시켰다.
물론, 이 책에 담긴 저자의 견해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과거에 정부의 강력한 개입으로 성공한 개발도상국들이 왜 지금은 신자유주의를 능동적으로 추진하는지 저자는 명쾌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한다. 잘못된 조언을 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탓할 뿐이다.
장하준은 개발도상국 정부가 시장에 대항해 적절한 개입정책과 산업정책을 세워 국제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개발도상국들이 정부 개입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세계시장에 뛰어든다면, 세계 시장의 경쟁이 격화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낙오·퇴출되는 국가가 생길 수밖에 없다.
또한 “장기적으로 생산능력을 구축하기 위해 단기적인 희생을 감수하는” 방식이 노동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야 한다. 한국경제가 비약했던 박정희 정권 때 노동자들은 ‘미래를 위해’ 엄청난 희생을 강요받았다. 오늘날에도 세계시장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국가는 사적 자본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억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자의 대안이 저자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유용할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는 주체를 국가로 보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대중이 신자유주의에 맞서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노동자·민중이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해야 한다는 관점이 결여돼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시각이 갖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정말 읽어 볼 만한 가치 있는 책이다. 대안을 찾는 진보적 대중의 생각을 이해하고, 이들과 함께 신자유주의와 그 폐해에 맞선 투쟁을 효과적으로 건설하고 싶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