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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갈수록 비열해지는 클린턴 부부

질문 : 승리가 사실은 패배를 의미하는 경우는 어떨 때?
답 : 지난주 토요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을 때

오바마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주요 경쟁 상대인 힐러리 로댐 클린턴을 55퍼센트 대 27퍼센트로 물리쳤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황당한 논리에 따라, 사우스캐롤라이나 주(州)에서 흑인 유권자 약 80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승리함으로써 오바마는 주로 흑인들의 후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됐다.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이 그런 주장을 넌지시 퍼뜨리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선거 결과 발표 뒤 빌 클린턴은 1980년과 1984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민주당 예비선거에서도 흑인 공민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승리했다고 지적했다. 클린턴의 말인즉슨, 오바마는 가장 최근에 오바마 지지를 선언한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가 말한 희망을 실현하거나 “인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이 아직도 얼마나 뿌리깊은지 잘 보여 준다. 인종 문제는 지난 2주 동안 오바마가 클린턴 부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하면서 선거 쟁점으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클린턴 부부는 정치적으로 매우 거칠고 역겨운 팀이다. 그들은 서로 역할 분담을 하는 듯하다. 힐러리는 싸움에서 비켜나 고고한 여성 정치인인 양 행세하고, 빌은 밑바닥에서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으며 날마다 이전투구를 벌인다.

이것은 교활한 전술이다. 빌 클린턴은 여전히 인기가 매우 높은 인물이다. 여론조사에서 드러났듯이, 그는 미국 헌법의 제한이 없었다면 2000년에 3선 연임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또, 미국의 흑인 권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 놓았다. 그래서 소설가 토니 모리슨[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흑인 여성 작가]한테서 터무니없게도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라는 찬사를 듣기도 했다.

빌 클린턴은 지금 이런 정치적 자본을 이용해 힐러리를 백악관에 보내려 한다. 민주당 평당원들 사이에서 엄청나게 명성이 높은 전 대통령의 공격을 오바마가 정면으로 맞받아 치기는 힘들다.

이제 대선후보 경선은 2월 5일의 ‘슈퍼 화요일’을 앞두고 있다. 그 날 22개 주에서 프라이머리[개방형 예비경선]나 코커스[당원 대회]가 열린다. 그 중에는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 등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좌우할 주요 접전지들이 포함된다.

내가 보기에는 다가오는 경선에서 클린턴 진영이 유리할 듯하다. 그 이유는 그들의 경험과 가차없는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지난 30여 년 동안 민주당 지지자가 될 수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맺은 연계 덕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2주 전에 힐러리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였던 네바다에서 여성과 라틴계의 지지 덕분에 승리할 수 있었다. 그 전의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도 신중하게 계산된 이미지, 즉 1970년대 페미니즘의 기수 이미지가 힐러리의 승리에 한몫했다. 힐러리는 뉴햄프셔 예비선거 승리 덕분에, 오바마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둔 뒤에도 경선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하수인

지금 상황이 윈윈 구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작가이자 블로거인 패트리스 에번스는 지난 1월 25일 〈가디언〉에 다음과 같이 썼다. “흑인! 여성! 두 사람이 동시에 나왔다! 누가 이기든 획기적 사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상징적 정치일 뿐이다. 사실, 두 후보가 모두 주장하는 ‘변화’는 결코 진정한 변화가 아니다.

힐러리와 오바마는 모두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의료보험 제도를 대충 땜질하려 한다. 둘 다 미국 경제가 불황으로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방정부가 돈을 조금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둘 다 자신이 대통령이 되더라도 첫 임기 동안 이라크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시 말해, 힐러리와 오바마는 둘 다 과거의 주요 민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 제국의 충실한 하수인 노릇을 하고 있다. 부자들이 미국의 정치 체제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민주당은 석유업계의 조지 W 부시 친구들한테서는 기부금을 많이 못 받았을지 모르지만, 월스트리트와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에서는 거액을 받아 왔다.

힐러리나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당선하면 미국의 노동계급 여성과 흑인 대중의 처지가 상당히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공상이다. 모름지기 미국의 진정한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데를 봐야 할 것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런던대학교 킹스칼리지 교수이고,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이다. 국내 번역된 주요 저서로는 《칼 맑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미국의 세계 제패 전략》(책갈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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