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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처벌ㆍ통제 강화의 배경:
아이들의 비극적 죽음을 이용하는 정부

이명박 정부가 혜진이 예슬이, 두 아이의 비극적 죽음을 사회 통제 강화에 이용하고 있다. 최근 법무부와 경찰은 ‘범죄 예방’을 내세우며 그동안 인권단체들의 반발 때문에 도입하지 못했던 조치들을 한꺼번에 꺼내 놨다.

법무부는 노무현 정부 때 추진하다 무산된 성범죄자 유전자 정보 데이터베이스화를 다시 추진하고, ‘소아기호증’ 성범죄자를 형 집행이 끝난 뒤에도 구금해 치료할 계획을 내놨다. 올 10월부터 시행할 성범죄자 전자발찌 부착 제도에 이어 처벌을 더 강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는 아동을 납치해 성폭행한 뒤 살해한 경우에는 확실하게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일명 ‘혜진 예슬 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동 유괴에 대한 부모들의 공포를 이용해 감시카메라 설치 확대를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경찰은 휴대전화 위치 추적 권한도 확대하려 하는데, 법원 허가 없이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활용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중이다. 또, 사람들의 이동경로를 반경 5미터 이내까지 포착할 수 있는 위성항법장치(GPS)를 모든 휴대전화에 다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처들은 우리 사회를 감시 사회로 만들 뿐 범죄 예방과는 별 관련이 없다. CCTV나 위치 추적 등이 범죄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얘기는 전혀 근거가 없다. “CCTV의 천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내무부는 2002년 발행한 보고서에서 CCTV의 효과는 가로등 하나를 추가 설치하는 것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밝혔다.

혜진이와 예슬이 유괴·살해 사건에 이어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에서 드러난 경찰의 무능함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는데, 사실 이런 ‘민생 치안’에서 경찰이 무능한 것은 당연하다.

통제

경찰은 기껏해야 범죄가 일어난 뒤 대처할 수 있을 뿐, 범죄 발생을 미리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경찰은 범죄의 사회적 원인 ― 빈곤, 불평등, 소외 등 ― 에는 무관심하다. 오히려 빈곤과 불평등, 소외를 낳는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함으로써 범죄 양산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경찰에 강력한 범죄 대책을 기대하는 것은 무망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 위기에 시달리는 정부의 통제력 회복을 위해 범죄 대책을 내놓는 것만큼 효과적인 것도 드물다. ‘민생 치안’은 집회와 시위를 탄압하는 경찰이 자신의 정당성을 부여받는 좋은 구실이기도 하다.

대중의 공분을 사는 아동 대상 성범죄는 특히 좋은 소재다. 지배자들은 아동 대상 성범죄를 이용해 사회 전반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쉽게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는 정책이 성범죄를 없앨 수는 없다. 성범죄가 일어나는 이유는 단순히 사악한 개인들의 ‘추잡한’ 욕망 때문이 아니다. 아이나 여성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하는 비뚤어진 소수가 탄생하는 근본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가 성을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가 곳곳에 눈요깃거리로 전시되고 팔리고, 여성 비하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적 공격과 추행이 끊이지 않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곳곳에 성적 이미지가 넘쳐나지만 성에 대해 솔직하고 개방적인 토론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위선적인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성을 인간 본연의 일부가 아니라 뭔가 ‘음탕’하고 심지어 더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여기게 된다.

억압적 성도덕은 성학대를 낳는 주요 원인이다. 서구의 많은 연구들을 보면, 강간범과 아동 치한들은 억압적 성도덕을 지닌 종교를 가진 경우가 많았다.

가톨릭 교회에서 아동 성학대가 그토록 자주 일어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예로, 지난해 미국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아동성학대 소송 합의금 등으로 무려 6억 5천5백만 달러를 썼다. 미국의 가톨릭 성직자 4만 2천 명 중 5천 명 이상이 아동 성학대로 고소됐다.

왜곡

아이들은 약하기 때문에 쉽게 성범죄의 표적이 된다. 성학대를 당해도 아이들은 겁에 질려 자신이 받은 학대를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난과 소외에 따른 좌절 역시 성학대를 낳는다. 사람의 가치가 그가 지닌 부와 지위에 따라 평가받는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멸시받기 일쑤다. 유대보다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고립감과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가난과 고된 노동, 형편없는 집 등 나날의 삶에서 겪는 고통은 사람들이 원만한 대인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앗아 간다. 아동 성학대자 중 많은 수는 그 자신이 어린 시절 학대와 성폭행의 희생자였다. 어린 시절에 학대받은 모든 사람들이 커서 아동 성학대자가 되지는 않지만, 어린 시절부터 폭력적 관계만을 경험한 사람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성을 왜곡시키고 인간관계를 파탄내는 자본주의 체제의 작동방식을 멈추지 않고서 성범죄를 뿌리뽑을 수는 없다. 평등과 우애, 상호협력에 기초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때만 끔찍한 아동 대상 성범죄를 유물로 만들 것이다.

아이들이 처한 주된 위험

많은 언론이 혜진이 예슬이 납치·살해 사건을 대서특필하면서 전국의 부모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뒤이어 일어난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 사건도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물론 이 사건들은 모두 매우 끔찍한 사건이다. 그러나 언론 보도처럼 우리 아이들이 처한 주된 위험이 낯선 사람에게 납치돼 살해당하는 것인양 말하는 것은 명백한 과장이다.

우리 나라 어린이들이 사망하는 최대 원인은 안전사고이고, 그 중에서도 1위는 교통사고다. 2004년 14세 이하 어린이 사망자 10명 중 4.7명이 안전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중 교통사고가 4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살인 사건으로 죽는 아이 수는 이보다 훨씬 적고, 그 중에서도 낯선 사람에게 유괴돼 살해당하는 사건은 더욱 드물다. 서구의 연구를 보면, 아동 살해의 대부분은 부모나 가까운 친척이 저지른다. 한국에서도 아동학대의 대부분(80퍼센트)이 친부모가 저지르는 것인 만큼, 사실 아이들이 살해되기 가장 쉬운 곳은 집 밖이 아니라 오히려 가정이다.

아이들이 처한 또 다른 심각한 위협은 빈곤이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미숙 아동복지팀장과 배화옥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을 보면, 2003년 기준으로 ‘절대빈곤’에 처한 아동(18세 미만)이 1백1만 6천4백21명(8.9퍼센트)에 달했다. 중위소득의 절반에 못 미치는 소득 수준인 ‘상대빈곤’에 처한 아이들은 1백70만 1천6백59명에 달한다.

양육 부담이 개별 가정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빈곤 증가는 버려지는 아이나 아동학대를 증가시키기 십상이다. 좌절한 부모들은 종종 아이를 화풀이 대상으로 삼는다. 많은 아동학대 연구는 아동학대가 실업자 등 극빈층에서 자주 일어난다고 지적한다.

가정의 억압적 분위기는 많은 청소년들의 가출을 초래하는데, 가출 청소년들은 열악한 처지 때문에 각종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또, 입시 경쟁 격화에 따른 스트레스도 많은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경제 상황 악화는 갖가지 억압을 강화해,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살 청소년 수가 급증했다. 2004년 생활보호대상 청소년이 93만 명으로 1997년보다 무려 2백88퍼센트나 증가하는 동안, 자살 청소년 수는 1997년 9백8명에서 2004년 2천5백60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이야말로 아이들을 치명적인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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