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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의 불안정한 세계 질서

[편집자 주] 카프카스에서 일어난 7일간의 유혈 낭자한 전쟁이 끝난 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존 리즈가 냉전 후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 전쟁이 빈번히 일어나는 이유를 살펴본다. 존 리즈는 영국 전쟁저지연합의 사무국장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자본주의를 유별나게 폭력적인 체제로 만드는 근본적 특징이 하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의 하찮은 또는 우연한 일부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매우 핵심적인 일부다. 그것은 바로 경쟁이다.

칼 마르크스부터 마거릿 대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경제적 경쟁이 자본주의의 핵심이라는 데 동의한다. ‘자유’ 시장이 뜻하는 바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거대 다국적기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시장에서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고객을 더 많이 확보하고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또, 값싼 노동력과 값싼 원료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에서 승리한 기업은 번창하고 패배한 기업은 경쟁업체에 밀려 업계에서 퇴출된다.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그렇다.

현실은 상당히 다르다. 흔히 독점 기업과 카르텔이 시장 경쟁을 크게 제약한다.

국가가 흔히 경쟁의 규칙을 바꾸고, 이런저런 정치적 이유로 파산을 방치할 수 없는 기업들을 구제하거나 후원한다. 노던록[지난해 9월 파산 위기에 몰렸던 영국 제5위의 모기지 은행]을 사실상 국유화한 사례를 보라.

국가는 국내의 노동운동과 해외의 경제적 경쟁자들을 위협하고 협박하기 위한 경찰과 군대의 힘을 사용해서 경쟁의 규칙을 강제로 바꾼다.

그러면 마찰이 일어난다. 기업 간의 경제적 경쟁은 항상 국민국가 간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경쟁을 부른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는 국가의 무쇠 주먹이 필요하다.

17세기 이래로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쟁은 더 체계적이고 파괴적인 과정이 됐다. 공업의 발전으로 국민국가는 전보다 훨씬 더 유혈낭자한 전쟁을 벌일 수 있는 무기를 확보했다. 그리고 경쟁 때문에 국민국가는 전보다 더 체계적으로 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됐다.

17세기에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혁명으로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들이 출현하자마자 그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국가의 후원을 받은 기업들 ─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와 영국 동인도회사 ─ 은 근대적 식민 사업을 시작했다.

그때 출현한 최초의 ─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조그마한 ─ 육군·해군·다국적기업 들이 만들어 놓은 패턴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가장 강력한 산업 강국들은 자신의 경제적 부를 이용해서 군사력을 증강해, 경쟁자들을 협박하거나 꺾고 그래서 경쟁자들을 지배할 능력을 강화하려 한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주요 열강이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은 없지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들을 지배하거나 ‘제국의 결단’을 과시하는 행동을 감행한다는 것이다.

이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 과정은 언제나 저항 ─ 1650년대에 올리버 크롬웰의 아일랜드 ‘평정’에 맞서 싸운 사람들부터 20세기의 위대한 식민지 해방 운동을 거쳐 오늘날의 이라크 저항세력에 이르기까지 ─ 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자본주의

자본주의 체제는 초기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성장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의 각 국면마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지배하는 양상은 조금씩 달랐고 주요 국가들 사이의 경쟁 패턴도 달랐다.

주요 열강이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식민지를 통치하는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 체제는 19세기에 가장 급속하게 확산됐다.

식민지 지배 체제는 1914년에 거대 열강을 세계대전으로 몰아넣었다. 이 전 세계적인 대참사는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8년 독일 혁명 뒤에야 끝이 났다.

[제1차세계대전 후의] 불안한 평화는 1939년에 다시 산산조각났다. 끝나지 않은 유럽 열강 간의 경쟁이 인류에게 제2차세계대전을 가져다준 것이다.

러시아 혁명가 니콜라이 부하린은 당시의 체제를 정확하고 간명하게 요약했다. “세계 자본주의의 무계획적 구조는 두 가지 사실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한편으로는 세계경제 위기,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이다. … 자본주의 사회의 전쟁은 자본주의 경쟁의 한 방법일 뿐이다. 즉, 자본주의 경쟁이 세계경제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때 전쟁이 일어난다.”

냉전

제2차세계대전 후에 완전히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가 등장했다.

영국·프랑스 같은 승전국이든 독일·스페인·이탈리아 같은 패전국이든 유럽의 옛 식민주의 열강은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그들을 대신한 것은 소련과 미국이었다. 소련은 나치를 물리쳤을 뿐 아니라 군사력을 이용해 자신의 제국을 유럽 중심부까지 확장시켰고, 미국은 단연 세계 최강의 경제·군사 대국으로 떠올랐다.

이 양극화된 세계, 냉전의 세계는 1945년부터 동구권이 붕괴한 1989년까지 지속됐다.

이 시기에 발전한 두 가지 현상이 냉전 종식 후 오늘날의 제국주의 단계를 결정했다.

첫째, 소련과 동유럽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들(서방에서 사적 자본가들과 국가가 하는 구실을 소련과 동유럽에서는 국가가 도맡아 했다)은 비록 냉전 초기에는 서방의 경제 성장을 앞질렀지만 1950년대와 60년대의 장기 호황기에 확장된 세계 시장에서 배제된 탓에 결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마침내 냉전의 경제적·군사적 대결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둘째, 승리의 비용을 미국이 거의 혼자서 부담했다.

미국의 군비 지출이 서방의 시장을 지탱하고 1930년대식 공황의 재발을 막는 동안, 군비 지출 규모가 미국보다 작았던 다른 서방 국가들, 특히 독일과 일본의 국내 경제가 세계 시장의 성장 혜택을 누렸다.

미국은 냉전에서 맞서 싸운 적에게는 승리했지만 냉전에서 자신의 우군이었던 동맹국들에게 패배한 것이다.

새로운 제국주의

냉전 종식 후의 세계에서도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군사 강국이다. 사실, 지금 미국의 군비 지출 규모는 미국 이하 군비 지출 상위 10개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 경제임에도 제2차세계대전 직후의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예컨대 당시는 미국의 제조업 생산이 세계 제조업 생산의 50퍼센트 이상을 차지했다. 이제 그 수치는 20퍼센트 안팎이다.

따라서 미국은 압도적으로 우월한 군사력을 사용해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제력을 만회하려는 경향이 있다. 당근보다는 채찍을 사용할 생각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인 것이다.

이것이 조지 부시가 주창한 선제 공격 독트린의 속뜻이고, 1989년 이후 잇따르고 있는 전쟁의 근본적 원인이다. 그런 전쟁에서 미국은 경쟁국들을 위협하고 동맹국들을 굴복시켜, 세계에서 미국의 경제적 이해관계, 특히 석유 지배권을 지키려 해 왔다.

물론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지금 우리는 미국이 외교 정책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짧은 기간에 많은 적들을 만들어 내고 많은 동맹국들을 만든, 다극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냉전 종식 후 지금까지 벌어진 전쟁은 모두 주요 열강과 약소국 사이의 전쟁이었다. 세계 체제에서 미국이 상어라면 이라크·세르비아·아프가니스탄은 피라미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런 전쟁들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았고 미국과 옛 동맹국들은 분열했다.

이런 분열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프랑스·독일 ─ 도널드 럼스펠드가 “낡은 유럽”이라고 부른 ─ 과 미국·영국의 분열이었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의 우월한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에 의존해서 세계 체제의 구조를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결정하기를 원하는 유럽 열강을 대변했다.

그루지야 전쟁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제국주의의 현재 국면에서 주요 열강이 자신들끼리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냉전 종식 후에 미국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을 추진했다. 그래서 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헝가리·체코공화국·슬로바키아공화국뿐 아니라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의 발트해 연안 국가들도 나토에 가입시킴으로써 옛 소련 영토의 상당 부분까지 잠식했다.

게다가 옛 소련 소속이었던 중앙아시아 공화국들 ─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 에도 미군 기지들이 들어섰다.

이런 이유만으로도, 러시아가 “가까운 외국”[옛 소련의 일부였던 여러 독립 공화국의 총칭]이라고 부른 곳 어디서든지 나토의 대리인들 가운데 어느 하나와 러시아가 충돌할 가능성이 상존했다.

나토의 이런 확장은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서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지만, 프랑스와 독일의 반대로 두 나라의 나토 가입은 지연되고 있었다.

어쨌든, 그루지야는 이미 미국의 해외 원조를 받고 있었고, 미국과 영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고 있었다.

미국이 원했던 대로 그루지야가 나토에 가입한 상태였다면, 러시아가 그루지야의 남(南)오세티아 침공에 반격했을 때 서방의 동맹국들은 모두 나토 조약에 따라 군대를 파병해야 했을 것이다.

러시아가 더는 초강대국이 아닐지라도 지역 열강인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 경제는 1990년대의 심각한 불황에서 회복되고 있다. 주로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 덕분인데, 유럽이 바로 이 자원들을 수입하고 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핵 강대국이고, 상당한 재래식 군사력도 보유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중국·이란에 이르기까지 세계 도처에서 그루지야 전쟁의 여파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제국주의] 세계 체제에서 국가들은 알 카포네 시대의 시카고 갱들과 비슷하다. 그들은 [상대의] 약점에서 기회를 본다. 그루지야 전쟁으로 고무된 러시아는 다른 “가까운 외국”에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할 것이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러시아의 도전에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은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세계의 알 카포네에 맞설 수 있다는 희망을 갖도록 부추길 것이다.

냉전 종식과 함께 시작된 새로운 제국주의는 이제 더 위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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