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서평] 존 리즈 지음,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 책갈피(2008):
냉전 해체 이후의 세계질서를 풍부하게 분석한 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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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뒤면 조지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침략한 지 5년이 된다. 이라크 점령의 위기는 끝날 줄 모르고 있고, ‘테러와의 전쟁’의 핵심 동맹들은 심각한 정치 위기에 빠졌다. 그러나 부시는 전쟁 책동을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이란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부시 정부의 행동을 ‘제국주의’로 묘사하는 다양한 입장의 책들이 출판돼 있지만, 그 중에서도 존 리즈의 새 책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존 리즈는 고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계승·발전시키고 있는데, 특히 냉전 종식 이후 새로운 제국주의 체제의 특징을 풍부한 사례를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옛 소련처럼 미국 제국주의에 직접 도전하는 국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국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고 중국 같은 신흥 강국들이 나타났으며, 냉전 당시 양대 진영의 경쟁이 부과했던 속박이 사라지면서 국민국가들 간의 경쟁은 더 복잡하고 치열해졌다는 것이다.
석유
리즈의 이런 분석은 좌파 내에서 고전 마르크스주의 제국주의론을 부정하는 입장이 유행하는 요즘 더욱 의미가 크다.
최근 좌파 내에서는 제국주의에 관한 두 가지 대조적 해석이 유행하는데, 하나는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제국》에서 발전시킨 입장이다. 하트와 네그리는 국민국가의 소멸과 “초국적 자본가 계급의 등장”을 말하면서 “세계시장의 완전한 실현은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의 종말”을 뜻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부시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략하는 등 현실에서 제국주의적 모험이 계속되자 이 입장은 좌파 내에서 약화됐다.
다른 하나는 현재 좌파에서 가장 각광받는 입장으로, 이른바 ‘미국 유일 제국주의’론이다. 레오 파니치와 샘 긴딘이 이런 주장을 하는 대표적 이론가들이다. 긴딘과 파니치는 하트·네그리와는 달리 국민국가의 소멸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자본들 간 이익을 조율하는 “일반적 조정” 기능을 담당하면서, 제국주의적 경쟁의 필요가 사라졌다고 말한다. 그들은 제국주의 체제보다 “비공식적 미국 제국”이란 단어를 선호한다.
이런 입장은 다른 열강의 독자적 이익을 무시하고 그들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 있다. 예컨대, 프랑스 우파 대통령 사르코지는 한편으로 미국과 관계 개선을 시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경제적·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백승욱 교수가 《역사적 자본주의 강의》에서 적극 차용한 좌파 이론가인 지오바니 아리기도 기본적으로 ‘미국 유일 제국주의’론을 수용하면서 그것의 반편향으로 미국의 잠재적 경쟁자들을 이상화하는 오류를 범한다. 아리기는 최근 출간한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에서 “중국은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문명들 사이의 상호 공존 체제가 등장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중국의 타이완 위협, 아프리카 자원 쟁탈전 참가는 고사하고 신장이나 티베트 같은 공인된 ‘내부 식민지’ 문제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많은 좌파들이 이렇듯 제국주의 열강 간 경쟁을 무시하기 때문에 이라크 침략의 원인으로 네오콘들의 비합리성과 판단 실수를 들면서 미국 제국주의와 미국 자본주의의 이익을 분리시키는 오류를 범하곤 한다. 최근 주목받는 ‘유대인-이스라엘 로비론’이 대표적 사례다.
《신좌파 평론》의 편집자 페리 앤더슨은 “이스라엘 팽창주의에 대한 지지는 미국 자본 일반의 그 어떤 논리적 이익과 상관없이 이스라엘 로비의 결과였다”고 말하면서 이라크 침략도 이스라엘의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리즈는 이라크 침략이 냉전 종식 이후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한다. 이라크 침략은 경쟁자들에 대한 “미국 경제력의 상대적 쇠퇴”를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를 통해 만회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다. 중동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확보함으로써 “동맹과 경쟁자들을 모두 단속”하는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리즈는 이 책의 3장 ‘석유와 제국’에서 역사적 배경과 국가들 간 세력 관계의 변화를 분석하며 오늘날 중동 불안정의 근원을 파헤친다. 이 장을 읽으면 새로운 제국주의 경쟁 체제에서 석유자원, 특히 중동 석유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 혐오주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과제와 전략을 다룬 부분도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에서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오늘날 반전 운동의 중요 쟁점들인 미국의 이란 확전 문제와 이슬람주의/이슬람혐오주의 문제에 대한 논의를 주목할 만하다.
리즈는 미국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과 이란 같은 지역 소열강이 충돌할 때 양비론적 입장을 취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전쟁[의 경우], 만약 제1차세계대전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 간 충돌 때와 같은 태도를 취해 교전중인 국가를 동등하게 반대한다면, 세계 최강대국과 최약소국을 동등하게 취급하게 된다. 그런 ‘공평한 태도’는 현실에서는 훨씬 더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들을 옹호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슬람혐오주의는 전 세계 반전 운동에서 제기되는 첨예한 문제 중 하나다. 한국 정부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고,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공격으로 한국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하면서 이 문제는 한국에서도 중요한 쟁점이 됐다.
그런데 국제적으로 일부 좌파들은 중동 저항 세력의 이슬람주의 이데올로기를 근거로 들이대며 과거 민족해방 운동에 적용했던 ‘비판적 지지’를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슬람혐오주의 입장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의 반제 저항의 의의를 완전히 기각한 것이다.
반자본주의 저술가 사미르 아민은 “정치적 이슬람은 근본적으로 반동적이기 때문에 민중해방을 위한 과정에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제4인터내셔널 이론가이자 중동 문제 전문가인 질베르 아슈카르는 가톨릭 같은 ‘유연한’ 종교와 달리 이슬람은 태생적으로 경직된 이데올로기라고 주장한다.
이들과는 달리, 리즈는 이슬람주의 조직들의 모순되고 다양한 성격을 지적한다. “이슬람주의 운동의 성격을 단순히 진보적이라거나 반동적이라고만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팔레스타인 하마스 투사들[의] … 이슬람은 반동적인 사우드 왕가가 가르치는 이슬람과 다르다.”
그러면서 리즈는 반제 민족주의 투쟁의 실패로 형성된 공백을 이슬람주의 조직들이 차지했기 때문에 이슬람주의 문제를 민족해방 운동에 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슬람주의와 좌파의 관계는 민족주의자와 좌파의 관계와 비슷해서 특정 시기와 상황에서는 좌파의 동맹이 될 수도 있고, 다른 시기와 상황에서는 좌파와 노동운동을 공격할 수도 있다. 좌파는 공산당의 영향을 받은 민족주의 좌파를 포함한 민족주의 운동을 대하는 태도로 이슬람주의 운동에 접근해야 [한다.] … 이슬람주의자들이 제국주의와 국내 지배계급을 반대하는 한, 좌파는 그들과 함께 활동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는 언제나 조직적·정치적 독립을 유지해야 한다.”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풍부한 이해와 냉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민주주의 혁명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바탕으로,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의 정당화 이데올로기인 민주화를 위한 개입 논리의 허구를 파헤친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장점이다.
《새로운 제국주의와 저항》은 매우 방대한 내용의 책이다. 필자는 여기서 이 책의 몇 가지 장점을 소개했을 뿐이다. 존 리즈의 책은 오늘날 제국주의 체제의 야만성에 분노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