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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의 신화와 진실:
뉴딜이 노동자들에게 이득이 됐는가?

국가가 경제에 성공적으로 개입한 사례를 꼽으라면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 미국의 뉴딜 정책을 떠올린다. 그러나 조니 존스는 뉴딜 정책이 대공황 시기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해결책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이 기사는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워커〉 2124호에 실렸다.

지난달 벌어진 일들로 인해 국가의 시장 개입 문제가 뜨거운 논쟁점이 됐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지난 30년 동안 지배자들 사이에서 자유시장은 불변의 진리 같은 것이었다.

물론 현실은 그와 상당히 달랐다. 국가는 무역 협상을 하거나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세금을 부과하는 식으로 시장에 지속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나 지난 9월 8일, 미국 정부가 거대 모기지 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을 국유화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시장의 지배는 옛말이 됐다. 미국 경제학자 누리엘 루비니는 이것을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국유화”로 묘사했다.

그 뒤로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국가 주도의 대규모 구제책이 나왔다. 오늘날 경제에 대한 국가의 엄청난 개입을 지켜본 몇몇 논평가들은 이것을 1930년대 미국 정부의 뉴딜 정책과 비교하곤 한다.

민주당 출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33년부터 추진한 뉴딜 정책은 1929년 월가의 파산과 뒤이은 대공황에 국가가 대처하라는 대중의 요구에 호응한 것이었다.

경제사학자 갤브레이스는 자신의 책 《대폭락 1929》에서 경제 위기 직전의 분위기를 “하나님이 미국 중간계급을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란 확신[이 가득했다]”고 묘사했다.

그러나 당시 경제 상황이 모두 좋았던 것은 아니다. 위기 직전 6개월 동안 미국과 유럽의 산업 생산은 심각한 침체에 빠졌다. 새 차 생산량이 약 3분의 1가량 떨어졌고 기계·석탄·철강 생산도 곧 같은 운명을 맞았다.

기업은 비생산적 지출(예컨대 광고)을 줄이려 애썼지만 그런 노력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대공황 3년 동안, 전체 노동자 3분의 1이 실업 상태에 빠졌고 세계 무역량은 3분의 1로 줄었다.

1933년, 루스벨트는 총투표자 중 57퍼센트의 지지를 얻고 6개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이기는 압도적 차로 대통령에 당선했다. 그는 경제 회생 프로그램으로 뉴딜 정책을 채택했다.

경제 위기에서 살아남은 은행들은 자신이 보유한 기금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그것을 보증하게 했다. 국가산업부흥법의 일부로 가격 통제를 위한 카르텔이 만들어졌다.

실업자 약 2백50만 명을 수용할 워크캠프들이 생겨났는데, 이는 병원·학교를 짓고 하수처리장·다리 같은 사회기반시설을 개선하려고 만들어진 공공건설회사의 일부였다.

뉴딜은 또 향후 30년 이상 민주당의 든든한 원군이 되는 자유주의자·노동조합·흑인민권운동단체 들의 연합을 뜻하는 이름이었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가입을 막은 이른바 ‘황견(Yellow Dog) 계약’ ─ 노조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조건 하의 고용 계약 ─ 이 금지됐고, 국가산업부흥법은 최저임금과 최대 노동시간을 규제했다.

이런 조처 덕분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자신들의 대표를 뽑을 권리를 얻었다. 1933년에서 1935년 사이 정부는 실업급여 등 각종 보조금 지급에 2백만 달러가 넘는 돈을 썼다.

이런 조처들은 일부 지배자들의 반발을 샀다. 뉴딜 정책을 반대하는 우익 공화당원들과 남부의 인종차별적 민주당원들은 ‘보수대연합’을 만들었다. 이 연합의 지도자인 로버트 태프트는 뉴딜 정책이 “사회주의”라고 비난했다.

대기업

그러나 루스벨트는 사회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을 “이윤 체제의 둘도 없는 친구”로 소개하곤 했다. 루스벨트는 확실히 “미국의 전통을 날려 버리길 바라는 경제 귀족들”을 직접 공격했다. “그들이 불평하는 진짜 이유는 우리가 그들의 권력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민중주의는 미국 자본주의를 구출하기 위해 노동계급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수단이었을 뿐이다. 결코 자본주의에 도전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민주당과 이를 지지하는 대기업들은 학교·병원·사회기반시설을 개선하는 것이 생산성을 높이고 소비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공황 시기, 이 작업에 엄청난 실업자들이 싼값에 동원됐다.

루스벨트는 정부 지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관심을 쏟았다. 예컨대, 숙련노동자 임금을 깎고, 우체국 기금을 대폭 줄이고, 공무원들을 해고해 임금 지출을 1억 달러 가까이 줄이는 식으로 말이다.

루스벨트의 전기 작가 프랭크 프리델이 정리한 것처럼, 이것은 “1933년 봄의 몇 안 되는 예외이거나 우익을 달래려는 배신적 타협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은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이 담고 있는 핵심이었다.”

그럼에도 뉴딜 정책 기간 동안 자신감이 커진 미국 노동자들은 친노조적 법들을 활용해 파업 등 자신들의 투쟁을 더 전진시켰다.

1933년의 파업 물결은 미니애폴리스 같은 도시들에서 거대한 계급투쟁이 분출하는 데 자양분이 됐다.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아메리카공산주의자동맹의 핵심 활동가들이 트럭 운전수들의 파업인 ‘팀스터 봉기’를 이끌었다. 노동자들은 필수품 공급을 통제했고 경찰 공격에 맞서 민병대를 꾸렸다.

이 파업은 톨레도와 샌프란시스코 같은 도시들에서 투쟁이 벌어지게 자극했을 뿐 아니라 산업별노동조합회의(CIO)의 창립을 도왔다. 당시 CIO는 좀더 보수적인 미국노동총연맹(AFL)의 협소한 직능인조합적 태도에 반대해 산업 간 구분을 뛰어넘어 조합원을 모집했다.

루스벨트는 이런 파업 물결을 잠재우고 싶었지만 1936년 재선에 성공하려면 노동조합의 지지가 필요하단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일부 대기업주들은 노동자들 사이에 새로 번지기 시작한 전투성에 겁에 질린 나머지 루스벨트에 대한 지지를 둘러싸고 분열했다.

이에 대응해 민주당은 친노동자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6년 대선에서 루스벨트가 거둔 승리는 심지어 지난 대선 결과가 왜소해 보일 만큼 엄청났다. 총투표자 중 약 61퍼센트의 지지를 얻었고 메인 주와 버몬트 주를 제외한 모든 주에서 승리했다. 이제 그는 더는 친노동자 정책들을 추진할 필요가 없어졌다. 파업 파괴에 맞서 행동하길 거부했고, 경찰과 국토방위대를 투입해 노동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노동조합 관료는 파업이 금세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나 급진 좌파들의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 투쟁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전투적 전술은 무시당했고 계급투쟁의 높은 파고는 자신감을 회복한 사장들이 철강 산업에서 직장폐쇄를 단행하며 가라앉았다.

좌파 정치 단체들은 방향 감각을 잃었다. 1933년과 1934년, 파업을 선동하고 조직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 공산주의자들은 민주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전술로 돌아섰다. 이것은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 ‘진보적 부르주아’와 동맹해야 한다는 ‘국민전선’ 전략의 일부였다.

온건한 개혁

1937년에 이르러 미국의 생산력은 결국 1929년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만 이것은 기존 노동력의 생산성을 끌어올린 결과였다. 실업률은 아직도 14퍼센트나 됐다. 그 다음해부터 경제 전체가 다시 침체에 빠졌다. 루스벨트는 미국 경제를 대공황에서 구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작가 아트 프라이스가 언급했듯, “뉴딜 정책은 조직 노동자들의 전투적 대중 행동의 압력으로 인해 온건한 개혁이 실시된, 아주 짧은 시기였음이 분명해졌다.”

미국 경제를 위기에서 구출한 것은 다름 아닌 제2차세계대전이란 대살육전이었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 엄청난 군비 지출 덕분에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이 됐다.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20세기 미국 경제는 수없이 많은 각종 사기꾼들을 환대했다. 그런 사기 행각의 오랜 역사에서, 제2차세계대전은 기업의 도둑질이 최고조에 오른 시기였다.”

많은 논평가들은 오늘날 위기를 일종의 “불량 자본주의”가 빚어낸 결과로 설명한다.

그러나 진실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 위기가 늘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제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정부와 사장들은 노동자들이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뉴딜 정책은 그 자체로는 미국 노동자들을 빈곤에서 구출하는 데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노동자들이 싸우려는 의지를 되찾는 과정의 일부였다. 이 투쟁들을 발전시키는 데서 사회주의자들의 활동은 매우 중요한 구실을 했다.

오늘날 어떤 이들은 버락 오바마가 그만의 뉴딜 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주 〈타임〉에 글을 쓴 우익 언론인 윌리엄 리즈 모그는 “만일 오바마가 당선한다면, 1932년 루스벨트가 대선에서 승리한 뒤 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킬 수 있을까?” 하고 궁금해 했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낙관적인 상상이 실현될 거라 기대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전 세계 수백만 노동자들에게 비극을 강요한다. 경제 위기에 맞서 벌어질 셀 수 없이 많은 투쟁 속에, 새로운 세대를 저항의 정치로 설득하는 활동 속에 미래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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