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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은 외환 위기 위험국이 됐는가

지난해 외환 위기설과 원화 폭락을 경험한 데 이어, 올해에도 ‘3월 위기설’ 등으로 한국 금융시장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제2의 외환 위기는 없다고 거듭 밝혔지만, 환율이 크게 출렁이는 등 외환위기의 위험은 여전하다.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인 한국이 지난해부터 계속 외환 위기 위험국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한국의 외환 위기설이 제기된 것은 전 세계 금융 위기가 심화하는 때였다는 점을 봐야 한다.

한국이 ‘외환 위기설’로 어려움을 겪은 지난해 9월도 미국 정부가 거대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을 용인하면서 세계경제가 완전히 혼란에 빠진 때였다. 금융시장은 마비됐고 미국과 서유럽 정부들은 몇몇 거대 금융기관을 국유화하는 등 대규모 구제금융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비금융권 기업의 위기까지 가시화했는데, 예를 들어 미국의 거대한 자동차 산업이 거의 파산 상태에 빠졌다.

정부 개입으로 지난해 말부터 상황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금융권과 비금융권의 위기가 상호 결합·강화하면서 이제 위기를 진정시키려는 각국 정부들의 위기로 확대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한 듯하다.

아이슬란드·아일랜드·두바이처럼 해외 차입에 크게 의존해 급성장하며 ‘신자유주의 모델’로 알려졌던 작은 국가들이 가장 먼저 부도 상태에 빠졌고, 최근에는 동유럽 통화 위기, 러시아 제2 모라토리움(국가채무 불이행) 등으로 다양하게 위기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핵심은 역시 세계경제의 중심부인 미국과 서유럽 등의 상황이다. 서유럽은 동유럽에 1조 6천억 달러나 대출해 줬기 때문에 동유럽 위기로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 있고, 미국은 악성 부채가 계속 늘어나면서 씨티은행 같은 핵심 은행마저 국유화했다.

그런데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이번 위기의 시발점인 미국으로 전 세계 자금이 흘러들고,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는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미국에서 금융 위기가 고조되고 재정·경상수지 적자가 지속되는 등 경기가 침체하는데도 달러화가 강세인 이유는 유럽·일본 경제가 미국보다 더 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전 세계 자금이 기축통화인 달러를 확보하려 몰리고, 미국 기업들은 발등의 불을 끄려고 외국에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화스와프

그럼 유독 한국 원화 가치가 폭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2천억 달러가 넘어 그 절대적 규모는 작지 않지만, 유동외채를 고려하면 아시아의 다른 신흥공업국에 비해서도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발표를 보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2천15억 달러로 만기가 1년 미만인 유동외채 1천9백40억 달러와 비슷하다.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유동외채의 2~3배 정도로 외환을 보유한 것과 비교하면 외환보유액이 매우 부족한 것이다.

게다가 〈파이낸셜타임스〉나 김광수경제연구소 등은 한국의 외환보유액 중 즉시 사용할 수 있는 금액은 외환보유액보다 훨씬 적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되면 외환보유액이 유동외채보다도 적은 셈이 된다.

씨티은행은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된 외국 자금 1천1백10억 달러와 채권에 투자된 2백70억 달러도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자본’으로 간주하는데, 이렇게 계산하면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더욱 부족해진다.

미국·일본·중국과 맺은 통화스와프는 만기가 되면 결국 갚아야 하는 빚인 데다가, 한미 통화스와프 자금의 절반가량은 이미 소진한 상태다.

동유럽발 금융 위기도 한국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데, 은행들의 단기 차입금 중 유럽 자금이 절반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유럽 위기로 다급해진 유럽 은행들이 앞다퉈 자금을 빼 가면 외환위기는 현실이 될 수도 있다.

한국 국내 금융 부실도 매우 위험하다. 한국 은행들의 예대율은 금융 위기 위험이 매우 높은 헝가리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집값 하락과 미분양 주택 증가 등으로 주택담보대출과 건설사 대출이 부실해질 가능성도 높고, 소득·소비 감소로 가계·기업 대출의 연체율 등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늘릴 뾰족한 수가 없는 이명박 정부는 외국인에 세금 혜택을 줘 달러를 유치한다는 방안을 내놨다. 경제 위기가 심화하는 마당에 이런 식으로 달러를 끌어올 수 있을지도 미지수지만, 일시적으로 달러를 모을 수 있다 해도 세계경제의 변동에 한국 경제가 더 연동되는 위험한 방안이다.

이명박 정부는 금융기관들 지원에만 신경을 쓸 뿐, 경기 침체에다 환율 폭등으로 물가까지 올라 더욱 힘들어진 대중의 삶은 나몰라라 하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자리와 삶을 지키는 데 정부가 더 큰 책임을 지라고 요구하며 싸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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