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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승 교수(한국외대 이란어과)에게 듣는 오바마의 대외정책:
“오바마도 미국의 전략적 이해에 충실할 것”

‘전쟁광’ 조지 부시를 대신해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된 오바마는 ‘변화’를 약속하며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미국’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오바마는 부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테러와의 전쟁’은 진정 끝나는 것인가? 오바마는 전쟁과 학살로 점철된 한 시대를 마감하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을까?

중동 지역 전문가 유달승 교수(한국외대 이란어과)를 만나 오바마 시대 미국의 대외정책 ― 특히 가장 뜨거운 지역인 중동을 중심으로 ― 에 관해 들어 봤다.

△유달승 교수 ⓒ사진:레프트21

△유달승 교수 ⓒ사진:레프트21

오바마의 전쟁은 부시 전쟁의 표면적 유화

“‘테러와의 전쟁’의 본질은 미국이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는 전략에, 특히 자원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는 데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매우 중요한 지역인 것이죠.

“오바마의 ‘테러와의 전쟁’은 기존의 부시 정부가 했던 것을 표면적으로 유화시키는 측면은 있겠지만 본질에서는 같을 것이라고 봅니다. 즉, 부시의 전쟁이 오바마의 전쟁으로 바뀌고 있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이 가장 중요한 전략 지역이자 분쟁 지역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제로 오바마가 백악관에 입성한 뒤 내린 첫번째 대외정책 결정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을 증파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최근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과 접경한 파키스탄 지역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미군도 무자비한 폭격으로 응수하면서 전장이 파키스탄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에게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은 카스피해 유전을 아시아 시장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지정학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흥경제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인도를 견제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오바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약화시키려고 두 가지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탈레반을 알카에다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용병 출신들을 내세워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민간인들에게 부정적인 행위를 벌여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하는 데 반해, 탈레반은 전 국토의 3분의 2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강력한 정치 세력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탈레반이 차기 정권을 담당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둘째는 탈레반과 적대 관계인 이란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탈레반은 시아파가 다수인 이란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란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는 것을 위협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실제로 최근 오바마는 이란력(曆) 새해[3월 20일]에 맞춰 발표한 화상 메시지를 통해 이란에 “건설적인 협력”과 “새로운 출발”을 제안하는 등 화해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그 일주일 전인 13일에는 1995년부터 계속된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연장하기도 했다.

“최근 언론을 보면 올해 6월 12일 이란 대선 결과에 따라 미국과 이란의 관계가 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이란의 관계 개선은 이란 내부의 정권 교체와 변화보다는 미국이 이란에 어떤 태도와 정책을 취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기본적으로 미국의 이란 정책의 핵심은 이란 정권 교체입니다. 즉, 이란의 이슬람 정권을 붕괴시키고 반미 국가에서 친미 국가로 변화시키는 것이죠.

“최근 미국이 이란에 화해 제스처를 취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해결하려는 수단이지 근본에서 이란과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라크는 어떻게 될까? 오바마는 대선 후보 시절 이라크 주둔 미군을 16개월 내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고, 대통령에 취임한 뒤인 지난 2월에는 2011년 말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를 마무리 짓겠다고 선언했다.

“먼저 이라크가 미국에게 갖는 전략적 중요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가장 중심부에 있는 나라고, 따라서 이라크의 군사 기지는 중동 전역을 통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 정부와 이라크 정부 간 협정을 통해 형식적으로 미군 규모가 축소될 수는 있겠지만 특수부대, 전략부대는 계속 주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은 오바마 전쟁의 핵심 전략 지역

미국이 정치·군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중동 지역에서 구원투수를 자임해 온 것은 바로 ‘경비견’ 이스라엘이었다. 2006년에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늪에 빠진 미국을 대신해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였고, 최근에는 가자 침공으로 자기 힘이 녹슬지 않았음을 과시하려 했다. 오바마 시대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정책은 기본적으로 현상 유지입니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여 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을 통해 미국은 중동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는 데 굳이 친미 아랍국가를 통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이런 불패 신화가 깨진 것이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이었지요. 이것은 중동에서 큰 파급효과를 낳았는데,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전투력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가자 침공에서 이스라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과의 관계 복원이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기 반입과 관련해 미국·영국·프랑스·독일과 협정을 맺고는 일방적으로 휴전을 선언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뒤 나타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아랍 세계의 분열이 가속화하면서 아랍 세계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화한 것입니다. 기존 아랍 세계에서 맏형 구실을 한 국가는 이집트였는데, 이번 협상을 둘러싸고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됐습니다. 반면 시리아가 아랍 세계 재편에 가장 중요한 세력으로 급부상했고, 대표적 친미 국가였던 카타르가 기존과 다른 태도를 표명하며 돌아섰습니다. 요컨대, 이스라엘이 가자를 침공한 이후 친미 아랍국가의 위상이 약화한 반면 반미 아랍국가의 위상이 높아졌고, 더불어 아랍 세계에서 이슬람 강경파들이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 미국은 아랍 세계에 대한 통제를 유지하려고 시리아와도 대화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은 미국이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단호한 메시지였다. 최근 키르키스스탄 정부가 2001년부터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병참기지로 활용돼 온 마나스 공군기지를 폐쇄하기로 결정한 데 러시아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레이트 게임’[19세기 초 영국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벌인 정치·군사적 경쟁]이 21세기에도 재현될 것인가?

“지난해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한 배경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추진하며 중앙아시아 곳곳에 군사기지를 배치하고 MD체제[미사일방어 체제]를 확산시키는 것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봅니다.

“또 러시아는 에너지를 통해 자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고 보는데, 만약 아프가니스탄에 친미 국가가 수립되면 러시아는 치명적 타격을 입게 됩니다. 미국이 카스피해 유전의 수송로를 확보하면서 국제 석유·가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것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편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력이 증대하는 것에 반대하며 중국과 러시아의 공조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국 처지에서 자원이 무엇보다 필요하기 때문에 ‘테러와의 전쟁’을 무조건 반대할 순 없습니다. 아마도 중국은 상황 변화에 맞춰 적절히 협력과 비판을 하며 실리를 추구할 가능성이 큽니다.”

유달승 교수는 인터뷰 내내 오바마 정부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을 경계하며 미국의 전략적 이해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부시의 미국’이든 ‘오바마의 미국’이든 그들의 본질적 이해관계는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만의 시대를 끝장낼 전 세계 평범한 사람들의 저항이 멈추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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