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 공포와 이윤 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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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두려움과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4월 26일 현재 이 질병으로 26개 국에서 3백여 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이 감염됐다. 대다수 사람들은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한편, 사장들과 각국 지배자들은 사스가 이윤을 위협할까 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두번째 두려움 때문에 각국 지배자들은 사실을 숨기기에 급급했고 대다수 사람들은 더 큰 두려움 사로잡혔다. 최근 밝혀진 바에 의하면 중국 남부 지방에서 사스가 처음 발견된 것은 약 5개월 전이다. 수개월간 은폐돼 온 사실이 밝혀지는 데는 수많은 사상자가 필요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4월 24일 보건의료노조가 격리병원 지정 등에 대한 정보 공개를 요구하자 국립보건원 권준욱 방역과장은 “[사스] 격리병원으로 지정된 사실은 사스 의심 환자를 치료할 일부 의료진들만 알면 된다”고 답변했다. 정부는 환자와 전염 상태에 대한 정보를 차단해 사람들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사스는 독감(인플루엔자)처럼 변종 바이러스에 의한 병이다. 하지만 진정한 문제는 바이러스 자체보다는 전염을 확산시키는 환경과 이윤 지상주의에 있다.
비위생적
1968∼69년에 ‘홍콩 인플루엔자’ 때문에 전 세계에서 약 1백만 명이 죽었다. 1957∼58년에도 ‘아시아 인플루엔자’로 1백만 명이 죽었다. 이런 기록도 1918∼19년에 인플루엔자 때문에 전 세계에서 4천만 명이 죽은 것과 비교하면 무색해진다.
1918년에 세계는 제1차세계대전으로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다. 가난, 굶주림, 갖가지 질병이 만연했다. 병영, 군용 수송선, 참호에 대규모로 밀집한 병사들은 더러운 환경에서 지내야 했다.
이런 곳이 바로 인플루엔자의 진원지였다. 영제국 식민지 인도와 기타 지역에서는 기근 때문에 허약해지고 면역력이 약해진 수억 명이 이 질병으로 죽어 갔다.
오늘날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새로운 질병의 확산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현재 중국 남부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성장 지역 가운데 하나다. 이 지역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변모한 모습을 보면 19세기 산업혁명기의 유럽 도시들이 떠오른다.
광둥은 새로 형성된 대도시군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시장 경제의 영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과밀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살고 있다. 세계 시장에 판매할 섬유·전자·기타 제품들을 생산하는 허름한 공장들의 위층에는 직원들을 노예처럼 수용하는 기숙사가 있다. 하수 시설이나 다른 공중 보건 시설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여기에 가금류나 돼지, 기타 식료품들을 판매하는 도심 시장의 열악한 위생 상태는 변종 인플루엔자 같은 새로운 바이러스들이 확산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조성한다.
중국의 지배 관료는 처음에 발병 사실을 숨겼다. 값싼 노동력을 찾아 움직이는 외국 자본이 이탈할 것을 염려해서다. 중국 남부의 경제가 여기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화된’ 항공 여행 때문에 질병은 과거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확산된다.
자본주의의 혼란이 만들어 낸 전염병의 공포는 사스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결핵, 콜레라, 말라리아 등 더 오래된 질병들도 되살아나고 있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비교적 간단하다. 이윤보다 보건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스를 봉쇄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 공중 보건 수단들을 사용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정보를 완전히 공개하는 것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사스의 전염 실태가 공개되고 공중 보건 수단들이 동원된 지 2주 만에 최대 진원지였던 홍콩의 전염 속도가 급격히 둔화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비위생적이고 과밀한 주거 여건을 개선하고, 상하수도 체계를 정비하고, 적절한 공중 위생 제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은 19세기 유럽의 공업 도시들에서 콜레라 같은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선구적인 노력을 펼쳤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이윤보다 인간이 먼저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결코 국민 대중의 건강과 생명 보호에 진지하지 않았다.
부시 정부는 WHO의 사스 전염 경고를 인종 차별에 이용하고 있다. 캘리포니아와 워싱턴 주변에서만 2백여 명의 환자가 발견됐는데, 미국 시민인 이들에 대한 검역과 달리 중국 국적자들을 비롯한 모든 아시아인들은 마치 생화학무기를 가진 테러리스트 다루듯 하고 있다.
중국 당국도 사스 감염 의심 환자들의 인권을 깡그리 무시하기는 마찬가지다. 수천 명을 강제 격리했다. 베이징에서는 런민대·베이징대·칭화대 등 30개 학교의 학생 10만 명을 대학 철문 안에 가둬 버렸다.
영국의 32개 사립 기숙 학교들은 고국 방문 뒤 돌아 온 중국과 홍콩 유학생 150여 명을 잉글랜드 해협의 와이트 섬 캠프에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헤로게이트 레이디스 칼리지는 43명의 아시아계 학생들을 기숙사 건물에 가둬 놓았다. 학생들은 현관에 갖다 놓은 패스트 푸드만을 먹고 생활하고 있다.
사람들의 생명보다 외국 자본 투자의 축소를 우려했던 중국 정부의 우선 순위는 세계 각국의 지배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조지 부시 정부는 석유와 미국의 패권을 위해 수백억 달러를 기꺼이 쓰지만 자국 내에서만 3천5백만 명이 아무런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있는 사실에 대해선 무관심하다. 게다가 제3세계 나라에서 값싼 약을 생산하면 다국적 제약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적재산권을 들먹이며 세계무역기구(WTO)를 이용해 무역 보복을 하기 일쑤다.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을 지원하는 데 약 2조 원의 예산을 책정해야 할 것이라고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은 전망한다. 반면에, 사스를 위해 특별 편성된 예산은 그 1백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전염병 예방을 위한 전체 예산도 3백억 원뿐이다.
세계 지배자들의 정신나간 우선 순위에 도전해 무기와 전쟁에 쓰이는 돈의 10분의 1만이라도 보건 예산에 투입한다면 사스는 공포스런 현실이 아니라 간밤의 악몽쯤으로만 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