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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21세기에 전염병이 창궐하는가?

제1차세계대전 직후 디프테리아와 유행성 독감으로 2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죽은 뒤 거의 반세기동안 범유행성 전염병은 사라질 듯했다.

1969년 미국 공중위생국장 윌리엄 스튜어트는 “전염성 질병은 이제 대부분 끝이 보인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세기 말부터 다양한 신종 전염병을 목격해 왔다. 조류독감, 사스, 광우병, 에이즈는 가장 최근 사례일 뿐이다. 수십 가지 악성 전염병들이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 생겨나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게다가 결핵, 홍역, 이질, 말라리아, 장티푸스, 콜레라, 유행성 독감 등 이미 사라졌거나 치료제가 개발돼 급속히 사라져가던 전염병들이 세계 곳곳에서 부활하고 있다.

인간복제가 논란의 대상이 될 만큼 과학 기술이 발전한 21세기에 지난 세기의 악몽들이 도처에서 고개를 치켜드는 이유는 뭘까?

시한폭탄

새로운 전염병은 특히 1980년대 이후, 그러니까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폭발적으로 생겨났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규모 축산 농가들이 거대 자본에 의한 기업형 축산업으로 대체되는 과정은 생물학적 시한폭탄을 만드는 과정과도 같았다.

축산업자들은 제한된 토지에 수천∼수만 마리의 가축을 몰아넣었다. 당연히 전염병이 돌 기회가 늘어났고 이를 막기 위해 대량의 항생제가 사용됐다.

경제학자 찰스 벤브룩을 비롯한 ‘우려하는 과학자들의 연합’의 연구팀은 2001년 1월 8일 발표한 연구보고서에서 “연간 미국 전체 항생제 생산량의 70퍼센트인 2천5백만 파운드의 항생제가 가축사육에 사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과다한 항생제 사용은 여러 가지 균의 항생제 내성을 키웠고 이제 한두 가지 신약을 제외하고는 이런 균들을 죽이기 어렵게 됐다.

마법사 사루만이 지하에 잠들어 있던 괴물들을 불러내듯이, 거대 기업들은 강한 독성과 항생제 내성으로 무장한 이질과 콜레라, 결핵, 장티푸스를 30년 만에 부활시켰다.

에드워드 후퍼는 1999년 《강》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에이즈가 1959년 미국 과학자들이 아프리카인들에게 소아마비 백신을 투여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했다.

처음 만들어진 소아마비 백신은 침팬지의 혈액에서 추출됐고 그 혈액에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새로운 바이러스, HIV도 들어있었다. 예측할 수 있었던 위험에 비해 실제 검역은 형편없었다.

백신을 만든 필라델피아의 한 연구소는 이 한 묶음의 백신을 미국의 정신지체장애 아동과 뉴저지 교도소의 여성들이 출산한 아기들에게 실험 투여했다. 그리고 나서 콩고와 르완다, 브룬디의 약 1백만 명의 흑인들에게 주사약을 접종했다.

최초의 에이즈 환자들이 발견된 곳과 이 백신이 투여된 장소는 놀라울 만큼 일치한다!

대량 생산을 위해 공급되는 막대한 양의 사료는 타이슨, 코나그라, 카길, 스미스필드, 에이디엠 등의 다국적 사료 회사가 공급한다. 이들은 빠른 시간 내에 가축들을 살찌우기 위해 유전자조작(GM) 곡물이나 동물성 사료를 이용했다. 그 결과 바이러스들이 돌연변이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이 만들어졌고 광우병의 원인이 되는 “프리온”이 빠른 속도로 전염됐다.

이제 모든 준비가 갖춰졌고 흡사 공장과도 같은 목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리와 닭, 돼지와 소에게 병을 일으키던 균과 바이러스는 그 안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과 그 고기를 먹은 사람들에게도 감염됐고, 그것은 이전의 어떤 것들보다도 치명적이었다.

조류독감, 사스, 변형크로이츠펠트­야콥병(인간 광우병)이 등장했다.

엥겔스

“도시의 오래된 지역에는 더럽고 방치된 그리고 고인 물웅덩이와 오물더미로 가득 차 있는 구역[이] … 2천 개나 되는데 도시 노동자 대다수가 여기에 살고 있다. … 그 더러움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이 쌓여 있다. … 가장 가난한 자, 가장 타락한 자, 가장 쓸모없는 자들이 살고 있으며 또한 이 지역은 무시무시한 전염병의 근원으로 여기서 전염병이 시작해 … 퍼져나간다고 생각된다.”

1844년 영국의 공업 도시들을 묘사한 엥겔스의 《영국 노동계급의 상태》는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는 중국 광둥 지방이나 인도 뭄바이의 현재 모습과도 일치한다.

남아시아의 5개 도시에만 무려 2천만 명 이상이 이런 빈민가에서 살고 있다. 뭄바이와 다카에는 2천 명당 단 한 개의 변기만이 마련돼 있다.

이런 환경에서라면 굳이 신종 바이러스나 “프리온”이 아니라도 상관없다.

영양실조는 사람을 모든 종류의 질병에 대처할 수 없게 만든다. 유엔개발보고서에 의하면 잠비아, 콩고, 에티오피아 등 저개발국의 45퍼센트가, 그리고 중등 개발국가인 타지키스탄, 짐바브웨, 모잠비크 등의 40퍼센트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는 1990년대에만 무려 12억 명이나 늘어났다. 미국에서도 매년 40만 명이 기아와 알콜중독으로 죽어간다.

불결한 환경과 최저 수준의 식사, 모든 위생시설과 의료시설로부터 소외된 이들은 언제든 터질 준비가 돼 있는 시한폭탄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가을 유엔인간정주프로그램은 보고서에서 저개발국의 공업 도시들이 이런 이유로 “전염병의 온실” 노릇을 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 대행자 IMF는 지난 20여 년간 이 과정을 극도로 가속시켰다.

IMF의 내핍 정책은 저개발국의 보건의료 체계를 붕괴시켰다. 예컨대 콩고와 가나에서 “구조조정”은 곧 수만 명의 공공보건의료 노동자들과 의사들을 휴직시키는 것을 의미했다. 케냐와 짐바브웨에서도 IMF는 보건복지 예산의 대폭 삭감을 요구했다.

가장 최근의 예로, 2002년에 IMF는 말라위 정부에 비상 저장 식량을 내다팔아 외채를 상환하라고 요구했다. 그 결과 말라위는 1949년 이래 가장 참혹한 기아 상태에 놓여 있다.

해적

또 다른 세계화 추진 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는 전염병의 창조자이자 보급자이다.

WTO를 통해 거대 기업들이 추진한 자유무역은 관세장벽뿐 아니라 유전자조작 사료와 각종 고기에 대한 검역 절차도 걷어치워 버렸다.

그래서 한 지역에서 생겨난 전염병이 종종 화물선과 비행기에 실려 다른 지역으로 전파된다. 아시아의 전염병이 유럽으로, 유럽에서 남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그리고 다시 미국과 유럽으로 전파된다.

바이엘 사에게는 돈벌이를 위해 무차별적으로 항생제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사람들이 전염병의 전파를 막기 위해 백신을 충분히 사용할 ‘자유’는 없다.

메디뮨 사는 조류독감 백신이 거의 완성 단계에 들어갔지만 “손익분기점을 넘는” 만큼 감염자가 생기기 전까지는 백신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신약 개발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위험한 약물을 실험할 ‘자유’는 있지만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충분히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자유’는 없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화이자, 바이엘 같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은 값싼 에이즈 약을 대량 복제한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기업들을 “해적”이라고 부르며 이들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관련 손해배상소송을 걸었다.

거대 제약회사와 각국 정부, 그리고 WTO와 IMF 같은 국제기구 사이의 관계는 처음부터 가까웠고,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 사의 회장 리처드 사이키스는 영국 정부의 “경쟁력 자문위원회”의 위원이자 왕립기술과학대학의 명예총장이다. 바이엘 사의 이사인 헬무트 무커는 다국적 식품회사인 네슬레 사의 이사다. 또한 그는 세계경제포럼의 이사이자 국제상공회의소 회장이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계가 자본주의다. 그리고 자본주의야말로 21세기에 창궐하고 있는 전염병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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