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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민족주의를 이용한 분열지배

영국 사회주의자 사이먼 바스케터는 민족 억압, 인종차별주의와 종족 갈등이 국민국가와 식민주의의 유산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것이 낳은 투쟁들이 어떤 모순을 안고 있는지 보여 준다.

중국 서부 신장 지역에서 한 빈민 집단이 다른 빈민 집단을 공격하는 충격적 장면은 민족·종족 갈등에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원초적인 것이 있다는 인상을 강화했다.

흔히 언론은 그런 갈등을 북아일랜드, 르완다, 옛 유고슬라비아, 오늘날 중국 등 전 세계 모든 곳에 존재하는 어두운 민족적·원초적 증오가 표현된 것으로 묘사한다.

민족 간 또는 민족 내 갈등은 초역사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현대 국민국가의 탄생은 비교적 최근의 현상으로, 자본주의 등장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국민국가들은 16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이래 어디까지가 자기 영토고 누구까지가 자기 국민인가를 둘러싸고 투쟁을 벌였다.

신흥 자본가 계급은 자신을 새로운 국민국가의 지배자로 여겼고,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할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18세기 프랑스에서 봉건제 질서를 무너뜨린 혁명가들은 민족, 시민과 그들의 권리에 대한 정교한 이데올로기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에는 모순이 있었다. 그들은 국민국가가 사회를 조직하는 가장 최선의 방식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떤 집단들은 열강의 방해로 독자적 국가를 건설할 수 없었다. 보통 이 집단들은 그 사회의 주류 권력에 편입됐다.

강력한 국가가 민족, 종족, 종교적 차이를 이용해 대중을 분리통치하는 시도는 제국 건설만큼이나 오래된 통치 전술이다.

오늘날 종족 간 충돌이나 민족 간 갈등으로 홍역을 앓고 있는 나라들이 과거 공통적으로 제국주의 지배를 겪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인도에서 영국은 힌두교도와 무슬림 사이를 의도적으로 이간질해, 성장하는 반식민지 운동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런 정책이 끔찍한 종파 간 충돌을 낳자, 영국은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척했다.

단지 제국들만 그런 정책을 편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의 지배계급도 국내용으로 그런 정책을 사용했다.

사회가 위기에 빠지면, 정부는 언제나 특정 집단을 속죄양으로 만들려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 정부는 사람들의 정당한 분노를 더 약한 집단에 대한 분노로 전환시키려 했다.

19세기 유럽 제국들의 성장으로 현대 민족주의가 더한층 발전했다. 영국 지배자들은 아동에게 ‘영국 역사의 찬란한 유산’을 가르치는 국가 교육 제도를 통해 ‘위대한 [영국] 민족’을 찬양하는 새로운 운동을 개시했다.

영국 중간계급은 ‘민족’과 자신을 동일시할 물질적 이유가 있었다. 영국의 해외 제국을 운영한 관료들은 영어 사용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관료들은 주로 영국이나 스코틀랜드에서 충원됐다. 인도인이나 아프리카인, 심지어는 아일랜드 카톨릭 교도도 제국의 관료가 되기는 힘들었다.

영국 지배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일랜드 이주민에 적개심을 품는 영국의 민족우월주의를 고취하면 민족 간 분열로 노동계급이 효과적인 투쟁을 벌이기 힘들게 되는 이점도 있었다.

19세기 말에 위대한 혁명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영국 언론들이 아일랜드 이주노동자들을 영국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는 사실을 지적했다.

엥겔스는 영국 노동자들이 아일랜드 노동자들에 우월감을 느끼고, 아일랜드 노동자들은 영국 노동자들이 매수당했다고 생각하게 만들려는 것이 영국 지배자들의 의도라고 지적했다.

우리 지배자들은 단지 억압받는 집단만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을 억누르기 위해 분열을 조장한다. 이런 지배자들의 차별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인 노동자들은 막상 별로 얻은 게 없었다.

20세기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 체제에서 산 가난한 백인들은 그 체제에서 이득을 얻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지배자들의 편견을 매우 열정적으로 받아들였는데 말이다.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노동자들은 그 자신도 가난했지만, 더 가난한 카톨릭 노동자들을 깔보았다. 개신교 노동자들은 ‘카톨릭 적들’에 비해 자신이 특권을 누린다고 착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억압적인 제국조차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람들은 자기 생계를 유지하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종종 민족우월주의적·인종차별주의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게 된다. 그리고 특별한 상황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을 분열시키려는 자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끔찍한 억압의 현장마다 국가 테러와 폭도에 맞서 자기 이웃을 용감하게 보호한 사람들의 얘기가 있다. 억압하는 자의 관점에서 민족주의는 편리한 도구다. 그러나 동시에 민족주의는 억압받는 자가 반격할 때 사용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제국주의의 민족 분열지배가 낳은 참상 -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 분열 과정에서 힌두교와 무슬림 간 대학살극이 벌어져 약 1백만 명이 죽었다.

민족 억압은 특정한 언어를 사용하거나 종교를 믿는 집단을 향한 차별의 형태를 띨 수도 있다. 이 집단들은 국가가 자신을 이등시민 취급하는 것을 발견하고 민족적 분단선에 따라 자신을 조직하기 시작할 수 있다.

억압받는 집단이 차별에 맞서 싸우기 시작하면, 그 국가는 그들을 배신자로 취급한다. 그래서 종종 지배계급은 차별을 강화하고, 이것은 동시에 억압받는 집단의 소외감을 강화한다.

따라서 기존 국가 내에서 자신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온건한 저항들이 결국에는 분리독립이라는 타협 불가능한 요구를 성취하려는 운동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다. 보통 그 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중간계급이다. 그들은 정치권력·일자리·고등교육에서 배제되는 것에 가장 민감한 집단이다.

그러나 자기 국가를 통치하려는 꿈을 성취하려면 중간계급은 빈민을 포함하는 대중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원해야 하며, 모든 진정한 민족해방 운동을 지지해야 한다.

노동자 운동이 차별을 지지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반면에, 억압에 맞선 전 세계적 운동에 연대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억압이 폭발적 투쟁을 낳을 수 있지만, 그 투쟁 자체가 분열적이고 노동계급의 단결을 더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하는 모든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은 억압 국가에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그런 운동에 개입해 다른 노동자 집단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적으로 보는 것에 반대하는 주장을 할 의무가 있다.

민족해방 운동은 그것의 성공이 노동계급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제국주의의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인지의 기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인도 독립 운동, 미국 점령에 반대한 베트남 투쟁과 이스라엘에 맞선 팔레스타인 저항은 좌파가 반드시 지지해야 하는 민족해방 운동의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 투쟁들은 민주주의를 확대하며, 그들의 승리는 제국주의에 큰 타격을 입힐 것이다.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는 것이 구체적 상황에 상관없이 언제나 소규모 국가로 분리독립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또, 민족독립 운동은 때때로 경쟁 제국주의 열강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 제국주의와 연합한 폴란드 민족운동이 대표적 사례다. 1990년대 코소보 지도자들이 세르비아에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동맹한 것도 마찬가지 사례다.

민족주의에서 또 다른 문제는 해방 운동을 약화시키려고 언어와 종교의 차이를 고의로 이용하는 반동적 민족주의가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다.

아일랜드 오렌지당[개신교 우익 테러·정치 단체]은 1790년대 아일랜드 민족해방 운동을 파괴하려고 개신교 우월주의를 기치로 영국 국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직된 운동이었다. 이후에도 비슷한 목적을 위해 오렌지당은 거듭거듭 부활했다.

노동계급 내에는 민족우월주의에 맞선 끝없는 전쟁이 진행중이다. 한편으로, 우리를 우리 지배자들과 동일시하고, 우리 자신을 유약하고 수동적인 존재로 만드는 분열적 이데올로기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연대의 정신과 변화를 향한 희망이 있다.

후진적 이데올로기가 얼마나 지배적일지는 집단적 투쟁의 수준과 사회주의 조직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억압에 굳건하게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해방을 향한 길로 노동계급이 단결할 가능성을 촉진할 수 있는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번역 김용욱 기자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1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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