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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위구르 자치구 유혈 사태:
중국은 왜 소수민족을 억압하는가?

7월 5일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에서 ‘유혈 사태’가 발생했다. 사건의 발단은 위구르인 수천 명이 광둥성 공장에서 위구르 노동자 2명이 집단 구타당해 숨진 사건을 조사해 달라며 평화롭게 행진한 것이었다. 목격자들은 중국 경찰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공격했고 심지어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위구르인의 분노가 폭발했고 한족 이주민과 충돌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이 과정에서 1백84여 명이 죽었고, 사망자의 대다수가 한족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지난해 티베트 항쟁에서 희생된 티베트인 수를 대폭 축소 발표한 전례를 볼 때, 이를 무턱대고 믿을 수는 없다. 중국 정부는 국제인권단체들이 요구한 객관적 조사를 거부했다.

지금 중국 정부는 위구르족 1천5백 명 이상을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고, 세계위구르위원회와 ‘알카에다와 연결된 무슬림 테러리스트’ 등 외부세력이 개입해 평화로운 신장을 어지럽히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신장에서는 1954년부터 거의 60년간 중국 정부 통치에 반대하는 행동이 반복돼 왔다. 대규모 카자흐 난민 사태로 연결된 1962년 일리 항쟁, 1969년 말 동투르키스탄 민중혁명당의 활동, 1천 명 이상이 다친 1980년 악수 지역 소요 사태, 1985년 베이징 중앙민족대학 위구르 학생들의 시위 등등. 1990년대 들어서는 5만 명 넘게 참가한 대규모 시위도 있었고, 1995년 4월에는 노동자·교사·상인 10만 명이 파업을 단행하기도 했다. 위구르족이 행동의 중심에 있었지만 카자흐족 등 이 지역의 다른 소수민족들도 중국의 통치에 항의했다.

문제의 시작, 1949년 중공군의 점령

오늘날 중국 관변 역사가들의 주장과 달리, 역대 한족 왕조들은 신장 지역을 국가의 일부로 통제한 적이 없다. 만주족이 세운 청왕조에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신장의 일부를 정복하고 통치하려 했다. 이 시도는 1911년 청조가 몰락하면서 중단됐다. 이후 위구르족 지식인들이 주도해 동투르키스탄공화국을 세웠지만 군벌과 국민당, 스탈린 치하 소련의 방해로 오래가지 못했다.

1949년 중공군이 신장 지역으로 진격하자 위구르족 등 소수민족은 중공군을 국민당과 군벌의 잔학한 통치를 끝내 줄 해방자로 환영했다. 1950년대 초 토지개혁은 소수민족 농민들의 환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홍군이 영구적 점령을 위해 이 지역에 진출한 것으로 드러나자 실망감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더구나, 신장 지역은 1950년대 말 농업 강제집산화와 대약진 운동,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 가져온 혼란과 이슬람 사원 파괴 등 중국 정부의 재앙적 경제 정책과 중앙의 유혈낭자한 파벌 싸움에까지 휘말리게 됐다. 중국 정부가 한족을 대규모로 이주시키면서, 1949년 위구르 인구의 5퍼센트에 그쳤던 한족 비율은 1970년대 초반에는 거의 40퍼센트로 늘었다.

위구르족과 다른 소수민족은 한족 이주민에 비해 언어, 교육, 종교 활동, 고용 등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차별받았고, 이에 항의하는 집단 행동은 탄압을 받았다. 신장은 어느 모로 보나 전형적인 식민지였고, 중국 정부는 제국주의 점령군이었다.

중국공산당은 왜 소수민족을 억압하는가?

그렇다면 중국 민중을 제국주의 압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싸웠던 중국공산당이 왜 다른 민족을 억압하게 됐을까?

1949년 중국공산당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 중 하나를 성공시켰다. 그러나 이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닌 제3세계 민족해방 혁명이었다. 이것은 1920년대 스탈린의 재앙적 지령으로 중국 노동자 혁명이 패배를 겪으면서 중국공산당이 노동자·민중의 국제적 연대와 단결을 추구하던 정당에서 민족주의 정당으로 변신했기 때문이었다.

초기 중국공산당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정부의 정책을 본따 소수민족들에게 민족자결권을 보장했다. 그러나 1949년 마오쩌둥의 소수민족 정책은 자결권을 부정하는 중국의 다른 부르주아 민족주의 정치인들과 비슷했다.

중국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서방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반발하는 반제국주의적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궁극적 대안은 강력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제국주의 열강을 증오했지만, 제국주의를 극복하려면 제국주의를 모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중국에 강력한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고 안보를 보장받으려면 “멍청하고 미개한” 변경의 소수민족들이 제국주의에 이용당하지 않도록 강제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 ‘계몽된’ 한족들을 소수민족 지역으로 이주시키고 중앙정부가 정치·군사·경제 정책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지난 5천 년 동안 소수민족들은 원래 중화(한족 왕조)의 일부였다’는 한족 우월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국민당 창시자 쑨원은 소수민족의 견해는 들어보지도 않고 “오늘날 몽고, 서장, 신장 등 [소수민족] 지역은 모두 우리 중화민국의 영토다” 하고 선언했다.

1949년 마오쩌둥의 생각은 이런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티베트 문제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록 티베트의 인구가 많지 않으나, 이곳의 국제적 [전략적]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곳을 점령해야 한다.” 이런 원칙은 티베트만이 아니라 중국 내 모든 소수민족에게 적용됐다.

중국 정부는 점령과 한족 이주민 유입을 정당화하려고 한족 우월주의를 부추겼다. 따라서 최근 신장에서 한족 공산당 간부가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것은 중국 정부 정책의 논리적 귀결이었다. “신장이 수천 년 동안 중국의 일부였다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하기 전인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신장은 중국의 일부였다. 당시 한족 원숭이들이 신장으로 와 위구르 원숭이들에게 복숭아를 먹고 나뭇잎을 따는 법을 알려 줬을 거다.”

중국 소수민족 문제의 대안은?

옛 소련의 몰락으로 신장과 인접한 중앙아시아에 독립 국가들이 형성돼 중국이 이 지역의 우두머리가 될 가능성이 생기고, 중앙아시아와 신장을 연결하는 송유관 사업이 진행되고 대규모 유전이 개발되는 등 1990년대 이후 중국 지배자들에게 신장 지역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그리고 중국 지배자들의 우월한 군사력을 고려할 때 신장 위구르족이 민족자결권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티베트 등 억압받는 다른 소수민족의 처지도 다르지 않다.

따라서 신장 위구르족과 다른 중국 내 소수민족의 운동은 지금 중국 지배자들의 착취와 억압에 맞서 싸우는 한족 노동자·민중 투쟁과 결합돼야 승리할 수 있다. 이 투쟁은 아직 파편적이지만 횟수와 규모는 매우 크다. 이른바 ‘집단 행동’이 2008년에 18만 건, 2009년 상반기에만 6만 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1920년대 중국 혁명기 이후 최대 규모다. 중국 역사에서 소수민족 자결권이 최초로 제기된 것이 바로 1920년대였다.

중국 지배자들이 한족 민족주의를 이용해 피억압 민족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고 있지만, 오늘날 중국의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 한족 민족주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오히려 ‘중화 제국주의’의 부상으로 주변 정세가 불안정해지고 장기적으로는 전쟁이 일어난다면 총알받이가 되고 전비 부담을 져야 하는 것은 한족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다. 또, 민족주의를 통해 계급 체제의 모순을 감춤으로써 저임금과 관료의 부패로 고통받는 것도 노동계급과 피억압 민중이다.

1989년 톈안먼 항쟁은 한족 노동자 민중 항쟁과 소수민족 투쟁이 결합될 가능성을 언뜻 보여 줬다.

1989년 5월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시작했을 때 신장에서도 위구르족 대학생들이 지지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는 곧 신장 지역의 민주화, 즉 소수민족의 자결권을 요구하는 운동으로 발전했다. 당시 톈안먼 광장에서는 위구르족인 우어카이가 광장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되기도 했다.

비록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톈안먼 항쟁이 좌절됐지만, 최소한 한족 노동자·민중과 소수민족이 공동의 적에 맞서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오늘날 한족 노동자·민중 투쟁이 다시 한번 1920년대나 1989년 같은 대규모 항쟁으로 발전하고 중국 사회의 진정한 민주화의 길이 열린다면, 신장 위구르족 등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훨씬 유리한 조건이 형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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