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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퇴진 운동 2023~24년 팔레스타인 투쟁과 중동 트럼프 2기 이주민·난민 우크라이나 전쟁

왜 민주주의 요구와 반자본주의 요구는 결합돼야 하는가

운동의 전략이 반독재 민주주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가장 핵심적인 전선은 반독재 민주주의 전선이므로 현 상황을 계급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주장의 요지는 이명박 정부라는 커다란 적과 싸우기 위해 ‘이명박 빼고 다 모이자’는 것이다.

다소 과도하긴 하지만, 리영희 명예교수가 “이명박 통치 시대는 비인간적, 물질주의적,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 파시즘 시대의 초기”라고 우려했을 만큼 이명박 정부의 정치적 역진(逆進) 시도는 노골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공격하는 민주주의의 핵심은 그것의 사회적 내용, 즉 노동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조직과 운동과 행동이다. 그러므로 반자본주의 좌파는 일관된 민주주의자로서 이명박 정부의 민주주의 공격에 저항하는 운동과 함께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탄압은 지배 계급이 느끼는 경제 위기 공포감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다. 이명박을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은 자유시장 말고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을 더는 대놓고 하지 못한다. 자본주의를 정당화했던 주장들이 모두 의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단기 처방이 통할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정부가 하는 ‘복잡한’ 일들이 모두 위기를 낳은 상층 계급의 탐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이 거듭 드러나면서 사람들의 분노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경제학’이 거대한 규모로 ‘정치학’으로 변모할 수 있다. 마치 2001~2002년에 아르헨티나에서 경제 붕괴 때문에 거대한 정치 위기가 발생해 사람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네 명의 보수적 대통령을 몰아냈던 것처럼 말이다.

이명박 정부의 반민주적 공격은 이런 상황을 사전 예방하려는 것이다. 그것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요컨대, 오늘날 민주주의 문제의 부상은 자본주의의 위기와 관계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진보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주제는 ‘빵’이나 ‘계급’보다 ‘가치’[민주주의]”(고원 상지대 교수, 〈프레시안〉, 2009년 7월 2일치)라는 식으로 민주주의와 계급 문제를 대립시켜 후자를 기각하는 것은 잘못됐다.

이 점에서 1990년대 혁명적 격변들이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0년대 혁명적 격변들의 경험

1998년 동아시아 경제 위기 당시 독재자 수하르토를 물러나게 만든 인도네시아 민중항쟁

1989년에, 부분적으로는 아래로부터 대중 운동에 의해 동유럽의 스탈린주의 정권들이 붕괴했다. 그 비슷한 시기에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가 대중 운동에 의해 철폐됐다. 1998년에는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정치화한 학생 운동이 선봉에 선 대중 봉기에 의해 수하르토 장군의 32년 독재가 타도됐다.

이 사회들의 혁명적 위기들은 모두 자본 축적의 위기였다. 전후에 형성된 특정한 형태의 국가 주도 자본 축적이 1970년대 말 장기 호황 끝무렵에 등장한 세계적 규모의 자본 축적이라는 새로운 조건들에 들어맞지 않다는 점이 입증됐다.

그러나 혁명적 격변들은 자본주의적 사회 관계에 도전하는 것으로까지 최종 나아가지 못했다. 이 나라들에서 운동의 지도자들이 미완의 민주주의 과제가 이론과 실천에서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프로젝트와 융합하지 못하게 방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동유럽에서는 제한된 형태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이뤄졌지만, 대중은 자기 삶을 결정적으로 결정하는 경제 문제에 대해 전혀 통제하고 있지 못하다. 남아공에서는 정치적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ANC 정부가 15년 동안 통치하고 있지만 흑인과 백인을 갈라놓는 물질적·사회적 분리는 여전하다. UN에 따르면, 남아공 수도 요하네스버그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도시다. 인도네시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유럽, 남아공, 인도네시아는 산업화한 사회였고, 지배 계급은 자본가 계급이었으며, 노동계급은 인구의 상당수를 차지할 뿐 아니라 자주적 조직과 발전한 계급 의식의 역사를 갖고 있었다.

산업 발전 수준, 노동계급의 제한된 규모·조직·의식 때문에 혁명 진영 내부의 투쟁에서 사회주의가 해결책이 되지 못했던 영국(1649년), 미국(1776년), 프랑스(1789년)의 혁명과는 달랐던 것이다.

실로, 폴란드와 남아공 투쟁의 결정적 국면에서 조직된 노동계급이 그 반란의 핵심 요소였다.

그러나 운동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안착으로 귀결되는 것이라면, 그 운동에서 노동계급의 구실은 부차적이 될 것이다.

실제 이 나라들에서 운동의 지도부(폴란드의 노동자방어위원회; KOR, 남아공공산당; SACP, 인도네시아의 민중민주당; PRD)는 노동계급의 의식과 활동을 당면한 민주주의 과제에 가뒀다.

운동의 지도자들은 노동계급의 발전을 방해했고 노동계급의 열망을 구체화하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달성할 수 있는 것에 못 미치는 목표를 위해 계급의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러나 노동계급은 투쟁할 때 노동계급적 방식을 사용할 수 있다: 파업, 총파업, 노동자 평의회 등등. 이 투쟁 방식들은 권위주의 정권만만이 아니라 자본가도 정면으로 겨눈다. 그들은 “누가 국가를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물음만이 아니라 “누가 공장을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물음도 제기한다. 따라서 운동의 전략은 정치적 민주주의를 경제적 민주주의로까지 확장시키는 근본적 사회 변혁(즉, 경제적·정치적 변혁)이 돼야 했다.

그러나 KOR와 SACP, PRD는 운동이 실제 이룰 수 있는 것에 훨씬 못 미치는 목표 달성에 안주함으로써 투쟁을 사실상 무장해제했다.

정치적인 네트워크

이 패턴이 오늘날 한국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실수로부터 배운다면 내일의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예컨대, 민주당과 전략적 동맹을 위해 노동계급적 요구를 배제하거나 삭감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 잠재력을 실현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와 갈등을 빚지만, 그것은 계급 분단이 아니라 정치전략의 차이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 둘은, 비록 지배계급 내 다수파와 소수파라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동일한 계급배경(자본가 계급)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 당이 17~18세기 봉건 왕정과 맞서 싸웠던 선조 부르주아 혁명가들의 혁명적 과거를 재현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 민주주의 문제에서조차 일관성이 없는 까닭이다. 이로부터 생겨나는 정치적 공백을 노동계급이 메우면서 민주주의 과제와 반자본주의 과제를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이때 결정적인 것은 정치적·이론적으로 명료한 정치적인 네트워크, 즉 근본적 사회 변혁 정치 단체의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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