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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석 영화칼럼:
찰리 채플린 VS 버스터 키튼

가요팬들 사이에 소녀시대가 낫냐, 원더걸스가 낫냐 하는 갑론을박이 있었던 게 기억난다. 영화팬들 사이에도 이런 종류의 논쟁들이 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무성 영화의 두 거장,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중에서 누가 더 웃기느냐 하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은 전성기가 겹친다. 둘 다 1910년대 후반 인기를 얻기 시작해 1920년대 절정의 시절을 누렸다. 당시 영화팬들은 누가 더 웃기느냐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1라운드는 찰리 채플린의 승리였다. 유성영화가 대세가 된 1930년대에 버스터 키튼은 몰락했다. 찰리 채플린은 〈모던 타임즈〉(1936), 〈위대한 독재자〉(1940) 등 걸작들을 계속 내놓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버스터 키튼이 재평가되면서, 끝난 줄 알았던 논쟁은 2라운드를 맞이했다. 이번 라운드의 대결은 지금까지도 팽팽하다. 둘 다 죽었으니 순전히 작품 대 작품으로 웃음의 우월성을 따져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들이 선사하는 웃음의 종류가 다르다. 종류가 다르니 단순 비교해서 승자를 가리기가 쉽지 않다.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의 웃음은 어떻게 다를까. 찰리 채플린의 경우, 그의 웃음은 피눈물 섞인 웃음이다. 그의 영화들은 빈곤, 착취, 억압 등으로 얼룩진 사회상, 즉 비극을 배경으로 삼고 여기에 떠돌이 캐릭터, 즉 희극을 얹어 놓는다. 캐릭터와 배경은 영화 속에서 서로 어긋나고 부딪힌다. 이런 충돌에서 생기는 희극과 비극의 부조화가 단순한 개그 이상의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가령 〈키드〉(1921)에서 아이가 경찰에게 끌려가자 떠돌이(채플린)가 이를 막으려는 장면을 보자. 채플린은 아이의 클로즈 업(가까이에서 잡은 화면)과 떠돌이의 롱 쇼트(멀찍이서 잡은 화면)를 연속 교차한다. 우는 아이의 얼굴을 담은 클로즈 업은 비극적이고, 떠돌이가 아이를 구하기 위해 지붕 위를 뛰어 올라가다가 우스꽝스럽게 미끄러지는 롱 쇼트는 희극적이다. 채플린은 이를 통해 삶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영화적으로 멋지게 표현한다. 희비극의 교차가 자아내는 풍성한 감정, 즉 웃기지만 눈물이 나오고 슬프지만 배꼽을 잡게 되는 심오한 감정을 만들어낸다.

반면, 버스터 키튼의 웃음은 경탄 섞인 웃음이다. 그의 영화들은 스토리를 따져보면 너무 단순하다. 당대의 현실과도 관련이 없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그의 포커페이스는 묘한 시적 분위기를 풍긴다. 무엇보다도, 거대한 기계, 바람, 폭포 등에 맞서는 그의 연약한 몸뚱이가 선사하는 웃음은 곡예에 가까운 몸동작 연기와 결합되어 경탄을 자아낸다.

가령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인 〈제너럴〉(1927)의 기차 추격 장면을 보자. 미국의 남북 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북군은 버스터 키튼이 사랑하는 여자를 납치해 기차를 타고 도주한다. 버스터 키튼은 다른 기차를 타고 맹렬히 뒤쫓는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기상천외한 곡예들은 풍부한 시각적 상상력과 탁월한 장인 정신을 보여 준다. 그의 웃음은 찰리 채플린과 달리 온전히 시각적인 쾌감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미지를 중시하는 일부 영화광들은 버스터 키튼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어떤 웃음이 더 우월하느냐 하는 문제에 쉬운 답은 없다. 다만 나는 찰리 채플린의 웃음이 지금과 달리 외면 받는 시대가 오길 바랄 뿐이다. 그의 유머는 빈곤, 착취, 억압 등 현실의 비극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웃음이다. 그래서 그런 비극들이 없어지는 시대가 오면, 그 시대의 관객들은 그의 피눈물 섞인 웃음을 지금의 우리들처럼 뼈저리게 공감할 리 없다. 비극을 체험할 수 없는 사회의 관객들은 그의 비극적인 유머를 이해 못할 것이고, 그래서 멀리할 것이다.

현실의 비극들이 종식될 시대를 고대한다. 찰리 채플린이 외면당할 시대를 소망한다.

우원석 _ 영화감독 / 뉴욕에서 영화 공부를 했고 지금 작품을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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