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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마르크스주의 ③:
양과 질의 변증법

역사에서 뜻밖의 질적 비약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 존 리즈는 양질전환을 이해할 때 사회의 변화를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 위기가 갑자기 시작되는 경우를 보자. 흔히 이런 위기는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은행은 파산하고 금융시스템은 혼란에 빠지고 불황이 우리 발밑에서 깊어지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태의 흐름이 갑자기 단절된 예는 경제 위기만이 아니다. 9·11 공격과 그 결과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전환점이었다. 그 후 세계의 수많은 중요한 일들은 완전히 달라졌다.

1989년에 역사를 바꾼 또 다른 사건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였다. 이 사건은 세월이 흘러도 바뀔 것 같지 않던 사회에서 불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사건들은 본래 흔히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충분히 자주 일어나기 때문에 설명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변화를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사회를 분석하는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의 정수다. 역사에서 이런 특정 형태의 급변이 자주 반복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런 변화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을 발전시켰다.

그 수단의 하나로 변증법이 있다. 변증법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 나오는 ‘대화’다. 이 철학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대립하는 관점 사이의 충돌을 뜻하는 ‘대화’가 진실에 이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진실은 단일한 관점이 아니라 이런 토론과 논쟁의 과정이다.

논쟁에서 서로 다른 견해의 모순을 통해 사상이 발전한다는 생각에서 더 나아가 경제와 국가 같은 사회 제도들이 모순의 과정을 통하여 발전한다고 본다면, 변증법적 방법이 사회 변화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말은 무슨 뜻인가? 논쟁에서 모순이 발생하고 견해의 충돌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경제나 국가가 모순 때문에 발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이 제도들이 안정적이지 않고 고정불변의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기는커녕 모순된 추동력 때문에 이 제도들은 변하곤 한다.

예를 들어 경쟁에 기초를 둔 시장은 끊임없이 팽창할 수밖에 없다. 모든 기업은 생산을 극대화하고 시장 점유율을 최대한 높이고 비용을 깎으려 한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이런 목표를 맹목적으로 추구한 결과 상품이 주기적으로 너무 많이 생산된다. 그러면 기업은 물건이 팔리지 않기 때문에 생산을 감축하고 노동자들을 해고한다. 불황이 시작되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체제의 작동을 위해 필요한 집단적 생산과 이윤의 사사로운 축적의 모순에 의존한다. 소수의 특권층이 공장과 사무실과 은행 등을 소유하기 때문에 이윤의 사사로운 축적은 필연적이다.

더 간단히 축적하려는 충동과 시장의 본질인 맹목적 경쟁 사이에 모순이 있다. 이 둘은 자본주의에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러나 안정적으로 공존할 수는 없다.

국가도 자체의 모순이 있다. 국가는 모든 사회성원을 대표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경제적으로 강력한 계급의 이해를 대표한다. 더욱이 국가는 다른 국가와 경제적·군사적으로 경쟁한다. 그래서 세계 지도자들이 평화와 협력을 아무리 외쳐도 내정 불안이나 전쟁 또는 전쟁 위협이 국가 체제에 붙박이처럼 따라다니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이런 모순은 오랫동안 조용히 발전하다가 갑자기 폭발하는가?

모순을 바탕으로 한 제도는 오랜 기간 서서히 변하다가 갑작스런 ‘격변’의 순간을 맞이한다.

변증법은 마르크스·엥겔스의 방법론의 정수였다.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지푸라기

사실 이것은 많은 다양한 변화의 특징이다. 심지어 자연계에서도 그러하다. 물의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고 해서 두드러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온도가 끓는점에 이르면 물은 ‘갑자기’ 증기가 된다. 끓는점에 이르러야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는 것이다.

물의 온도를 1도씩 낮추더라도 어는점에 이를 때까지는 두드러진 변화는 없다. 어는점에 이르러서야 물은 액체에서 고체인 얼음으로 변환한다.

변증법적 논리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과정을 양질 전환이라고 부른다. 사물의 본질이 변하지 않을 만큼 느리고 점진적인 변화가 진행되다가 갑자기 고비점에 이르면 사물의 본질 자체가 새로운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갑자기 경제 위기가 발생하는 것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점진적으로 확대되고, 은행 산업의 규제가 서서히 완화되고, 노동계급 생활수준에 대한 공격이 오랫동안 점진적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러 체제 전체가 세계적 위기에 빠졌다.

이와 비슷하게 9·11사건 이면에도 오랜 점진적 과정이 있었다. 미국이 1980년대에 러시아가 벌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을 지원했다. 빈 라덴의 모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부패한 정권을 지원했고 1990년대 초에 벌어진 제1차걸프전[1991년 이라크 전쟁]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군 기지를 건설했다. 1989년 이후 미국은 새로운 제국주의적 정책을 추진했고 탈레반을 적대했다. 이런 점진적 과정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다가 9·11이라는 고비점에 이르러서야 질적으로 새로운 상황이 도래했음이 명백해졌다.

이러한 급작스러운 변화는 계급투쟁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오랫동안 꾹꾹 눌러 왔던 불만이 원망에 잠겨 있다 갑자기 분노로 폭발할 수 있다.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지푸라기[더는 인내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면 사소한 일격도 만만치 않다는 뜻]라는 변증법적 경구에서 보듯 최후의 모욕 한마디가 불만을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파업이나 모든 새로운 저항 운동이 이렇게 일어난다. 모든 혁명은 확실히 그렇다. 지배자들은 이것을 두려워한다. 즉, 우리가 체제의 취약성을 깨닫고 체제의 위기 상황에서 갑자기 반격할 수 있는 우리 계급의 능력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저들이 두려워하는 바다.

이런 이유에서 마르크스는 변증법을 “부르주아지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으며 레닌은 “변증법적 방법만이 모든 존재하는 것의 ‘자기 운동’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며, ‘질적 변화’와 ‘연속성의 단절’ … 낡은 것의 멸망과 새로운 것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다” 하고 말했다.

번역 천형석

출처 영국의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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