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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특집 ④-1:
레닌에게 배우기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을 건설하는 방식에 대해 레닌이 기여한 바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역사학자인 이언 버철이 레닌의 유산과 이 유산의 실천적 장점과 함의를 살펴본다.

우체국 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든, 파시스트 저지 활동을 하든, 아프가니스탄 전쟁 중단 운동을 하든 사람들은 이 투쟁들에 개입해 투쟁을 지원하는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WP) 당원들을 만날 것이다.

또, SWP와 관계 맺지 말라고 경고하는 사람들도 만날 것이다. 특히, 그들은 SWP가 “레닌주의 조직”이라며 경고할 것이다.

그러나 레닌주의 조직들은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1917년 10월에 러시아 노동자들은 대대로 가난·억압·전쟁을 낳은 자본주의 체제를 전복했다. 이런 행동을 통해 그들은 세계 노동자들의 희망을 일깨웠다.

1917년 혁명의 파장은 10여 년간 지속됐다. 이 기간에 다른 나라 피억압·피착취 대중은 러시아 사례를 본받으려 했다. 그 시절은 세계가 사회주의적 대안 수립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때였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역사를 지우려 애쓰는 자들은 우리가 그 시절의 가능성·희망·염원을 망각하길 바란다.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은 러시아 혁명에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현대의 역사가들은 레닌의 참모습을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 한다. 그들은 레닌이 자신의 당을 멋대로 주무르고 이오시프 스탈린의 집권으로 가는 길을 닦은, 피에 굶주린 압제자로 묘사하려 한다.

레닌의 참모습

《레닌 평전 2 :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레닌의 참모습은 이와 사뭇 달랐다. 레닌이 외골수였고 함께 어울려 놀기에는 별로 재미 없는 사람이었다는 점은 사실이다. 그러나 레닌의 외골수 기질은 세계 변혁에 투철히 헌신한 데서 비롯했다. 즉, 그런 기질은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추악한 생지옥”을 일소하는 일에 헌신한 데서 비롯한 것이다.

레닌이 마르크스주의에 기여한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조직이다.

레닌의 적들과 레닌의 일부 지지자들은 이른바 “레닌주의 당”을 운운한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단순화다.

레닌이 옹호한 당 형태는 시기와 상황에 따라 매우 달랐다. 고립돼서 탄압받던 시기에 레닌은 “안정되고 중앙집권적이고 투쟁적인 혁명가 조직”을 원했다.

그는 대중 투쟁이 분출하는 시기에는 훨씬 더 광범한 당, 즉 투쟁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하는 당을 원했다.

그렇지만 레닌은 언제나 강력한 당 조직을 원했다. 레닌은 부르주아 사상이 사회에서 지배적인 이유를 묻고 나서 다음과 같이 답했다. “부르주아(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보다 훨씬 더 오래됐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더욱 발전됐고, 이데올로기 전파 수단도 무수히 많다.”

레닌이 글을 썼던 때는 텔레비전과 ‘머독 언론’[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언론 매체들]이 등장하기 훨씬 전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기성 질서를 옹호하는 신화와 거짓말을 귀가 따갑게 듣는다. 지배적 사상에 도전하는 견해는 배척당하고 조롱거리가 된다.

물론 개별 작업장의 투사, 저술가, 방송인은 그들 나름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 활동을 격려하고 배우면서 집단적으로 단결한다면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레닌은 당이 반드시 규율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규율에 거부감을 느낀다. 학교나 작업장에서 “규율”을 지겹게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규율 없이는 가장 간단한 조직조차 결성할 수 없다. 만약 각자 마음 내킬 때 피켓 라인[노동자들이 파업할 때 대체 인력 투입과 파업 대오 이탈을 막는 파업 사수 대열]을 형성하라고 한다면, 그 피켓 라인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것이다.

평화 시위가 경찰에게 공격당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일부 시위대는 돌을 던지고 다른 시위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또 다른 시위대는 전술적 퇴각을 결정한다고 치자. 결국, 많은 사람들이 연행되면서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다.

더 나쁜 점은 전술적 교훈을 전혀 배울 수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시위대는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처럼 행동했다면 만사가 잘 됐을 거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런 주장을 입증할 수 없을 것이다.

1920년 5월 폴란드 전선으로 떠나는 병사들에게 연설하는 레닌

규율 있게 행진했다면 응집력 있게 일치단결해서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 시위 지도부가 시위대를 잘못 이끈다면, 나중에 그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러나 규율이 없다면 정책의 올바름을 현실에서 입증할 수 없다.

당 건설에 대해 레닌이 펼친 주장의 진가는 1917년에 드러났다. 2월 혁명은 자생적으로 분출했지만, 레닌의 볼셰비키 당은 이 혁명에 잘 대응할 수 있었다. [당시] 볼셰비키 당원은 2만 5천여 명이었는데, 이들은 노련한 활동가들이라서 다른 사람들을 재빠르게 조직할 수 있었다.

7월에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서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노동자 평의회)가 즉각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볼셰비키는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권력을 장악할 태세가 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볼셰비키는 노동계급 속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성급한 봉기를 막을 수 있었다.

10월에 볼셰비키는 [노동자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잘 조직했고, 그 덕분에 적어도 페트로그라드에서는 사상자가 거의 없었다.

과거에 아나키스트였던 빅토르 세르주(1919년에 러시아로 온)는 볼셰비키의 활동 방식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다음과 같이 썼다. “이 당은 노동계급의 신경계이자 노동계급의 두뇌다.”

독일의 상황과 대비해 보라. 독일 노동계급은 훨씬 더 많고 강력했지만, 공산당은 혁명이 시작된 뒤에야 비로소 결성됐다.

독일 공산당 지도부는 인적 구성이 끊임없이 바뀌어 불안정했다. 1919~23년에 독일 공산당은 좌충우돌하고 후퇴하면서 중요한 기회들을 놓쳤다.

흔히들 러시아 혁명은 스탈린의 공포 정치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역사 해석은 복잡한 역사 과정을 단 한 문장으로 설명하려는 게으른 태도에서 비롯한다.

또, 이런 해석으로는 스탈린이 1917년 전부터 볼셰비키 당을 건설한 가장 뛰어난 투사들을 대부분 살해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민주주의

《삐딱이들을 위한 레닌 가이드》, 이안 버철 지음, 이수현 옮김, 다함께, 92쪽, 2천 원

아무리 뛰어난 당이라도 실수를 저지른다. 1917년 2월에 여성 섬유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다. 볼셰비키 당에 조언을 구하러 간 노동자들은 작업에 복귀하라는 말을 들었다.

대단히 지혜롭게도 이 노동자들은 볼셰비키의 조언을 무시했고, 몇 주 안에 파업이 확산돼 차르[러시아 황제]가 타도됐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다. 1917년에 레닌은 자신이 당에서 소수파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당의 전략을 바꾸려고 호랑이처럼 싸워야 했다.

동료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는 볼셰비키 당이 대단히 민주적이었다고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비판의 자유와 사상 투쟁의 자유는 당내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다.”

“세계를 변혁하고 가장 대담한 비판가·투사·반란가 들을 자신의 깃발로 단결시켜야 하는 진정한 혁명 조직이 사상 충돌이나 일시적 분파 결성 없이 어떻게 살아 움직이며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당은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레닌은 사회주의라는 목적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레닌은 [이 목적을 밝힌] 위대한 저작 《국가와 혁명》을 10월 혁명 직전에 썼다.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세력들은(사회주의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도) 흔히 사회주의와 국가 소유를 동일시했다. 레닌은 이런 견해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는 계급들로 분열된 사회에서 국가는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는 기구”라고 주장했다.

레닌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자유는 없다”, “자유가 있다면 국가가 사라진 때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레닌은 마르크스의 다음과 같은 주장에 동의했다. “노동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의 행동으로 쟁취해야 한다.” 당의 목적은 대중 행동을 대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행동을 고무하는 것이다.

권력을 잡은 뒤에 레닌은 혁명이 “노동자들의 자주적 주도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썼다.

“우리는 이른바 ‘상층 계급들’, 부자들, ‘귀족 학교’ 출신들만이 국가를 통치하고 사회주의 사회의 조직적 발전을 지도할 수 있다는, 낡고 불합리하고 야만적이고 비열하고 혐오스러운 편견을 쓸어버려야 한다.”

SWP의 창립자 토니 클리프가 썼듯이 “세 가지 방식의 지도를 떠올릴 수 있다. 즉, 교사의 방식, 현장 주임의 방식, 투쟁 동료의 방식이 있다.”

“세 번째 방식은 파업 투쟁에서 파업위원회가 노동자들을 지도하는 방식이나 직장 위원이 동료들을 지도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혁명적 당은 당 바깥의 노동자들과 대화해야 한다. 요컨대 당은 백지상태에서 전술을 고안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대중 운동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 경험을 일반화해야 할 의무가 있다.”

당원이 된다는 것은 투쟁이 어떻게 전진하고 있는지를 훨씬 더 넓은 시각에서 본다는 것이다. 독일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썼듯이 “개인은 눈이 두 개지만, 당은 눈이 천 개다.”

SWP는 완벽하지 않다. 우리는 실수를 많이 저질렀다. 그렇지만 여러분은 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여러분은 집단에 참여하고, 전략에 대해 토론하고, 그 전략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도 여러분이 필요하다. 여러분의 아이디어와 열정과 비판이 필요하다. 우리와 함께하지 않겠는가?

번역 이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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