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회의 맹아를 보여 준 1989년 동유럽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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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자 지프코빅과 블라디미르 운코프스키-코리카가 1989년 동유럽 항쟁이 오늘날 주는 교훈을 고찰한다.
1989년 동유럽 대중 혁명은 공산당 독재를 무너뜨렸다. 이 나라들의 실제 성격은 사회주의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사회를 지배한 국가와 당 관료들이 집단적 자본가로 행동하면서 노동계급을 착취했다.
1989년 전에 이 체제는 대단히 안정적으로 보였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비관주의를 이렇게 표현했다. “미래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사람 얼굴을 군화가 밟고 있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일당 국가의 자유주의적 반대자들도 비슷한 비관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착취 체제와 불평등을 폐지했다는 공산당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2001년 최저 임금을 인상하지 말라는 IMF ‘권고’에 항의하는 우크라이나 노동자들
나중에 체코 대통령이 된 바츨라프 하벨은 유일한 저항 수단은 “진실한 삶을 사는 것”이거나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반체제 인사들이 국가와 독립적으로 사회 내에 새로운 민주적 결사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전략은 모두 독재자나 그의 체제에 도전하려 들지 않았다. 어떤 이는 기존 국가를 통해서만이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공산당이 좀더 민주적으로 변하기를 희망했다.
이런 소망은 러시아 탱크가 1956년 헝가리 개혁 운동과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의] ‘프라하의 봄’을 진압했을 때 산산조각났다.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획일적 국가가 아니었다. 그들은 서방과의 군사 경쟁 압력으로 형성됐다. 스탈린주의 정부들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희생시키면서 무자비하게 생산을 확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주기적으로 체제를 뒤흔드는 반란을 낳았다. 자유주의적 반체제 인사들의 생각과 달리 이들 나라의 노동계급은 약하지 않았다.
1980년 폴란드 노동계급은 투쟁의 과정에서 1천만 명을 포괄하는 노조 운동, 연대노조를 조직했다. 연대노조는 공장위원회와 작업장 대의원 모임에 근거한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운영됐다.
이것은 경찰 국가의 질서를 뒤흔들었다. 노동자들이 드디어 ‘공장의 주인’이 되었건만 정부와 당 지도자들은 혁명의 전진을 가로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고 군대가 출동해 저항을 진압하고 공산당 독재를 회복시켰다.
1989년 혁명은 전체주의 국가들을 무너뜨렸고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혁명은 소수에 의한 부의 독점에 도전하지는 못했다.
국가 관료와 기업 경영자 들은 공산당 당원증을 찢어 버리고 사회를 계속 지배할 수 있었다.
불과 10년 뒤 시애틀에서 분출한 반자본주의 운동은 1989년이 ‘역사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거짓말을 산산조각냈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 지도적 활동가들의 사상은 1989년 당시 동유럽 반체제 인사들의 전략과 유사했다.
반자본주의 사상가 존 홀러웨이는 ‘권력을 잡지 않고 세상을 바꾸자’ 하고 주장했다.
그런 전략들은 부와 권력을 가진 소수의 특권층을 비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할 준비가 된 자본주의 국가에 도전하지 않는다.
대중적 압력을 넣어 기존 국가를 조금씩 진보적으로 변화시킨다는 전략도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1989년 혁명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노동자 평의회, 공장위원회와 노동자 회의 등 대의제로 운영되는 대중적 저항 조직을 결성해 투쟁을 조율했다.
이런 조직들은 계급이 폐지된 새로운 자치 사회의 맹아를 보여 주는 것이었다. 1989년의 사건들은 그런 사회가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살짝 보여 줬다.
다음 번에 우리는 혁명을 국가의 경계 너머, 민주주의 최고봉에 이를 때까지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쟁취해야 할 세계가 있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