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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붕괴는 피했지만 더블딥 위험성은 사라지지 않아

자동차,선박,IT 수출 추이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급락하던 세계경제가 올해 2분기부터 하락세를 멈췄다. 한국도 2009년 경제 성장률은 0퍼센트 전후를 기록할 듯하다.

2009년에도 세계경제 위기가 지속됐지만 대규모 국가 개입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고 말할 수 있다.

우선, 이번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과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유럽에서 정부들이 금융기관에 대규모 구제금융을 투입함으로써 금융 위기를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고,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으로 경기 하강 폭을 줄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대략 50조 원의 경기부양책을 사용해 소비 감소를 막으며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렸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자동차 보조금을 지급해 경제 위기임에도 2009년 자동차 내수 판매는 2008년에 비해 16퍼센트가량 증가했다.

특히 중국의 고성장(GDP 대비 8퍼센트대 성장 예상)으로 대(對)중국 수출이 많은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상황이 2009년 하반기 들어 다른 지역보다 더 나았다.

중국 정부는 가전제품과 자동차를 구입할 때 보조금을 지급해 내구재 소비를 촉진했고, 중국 은행들은 9조 5천억 위안 이상의 자금을 신규 대출했는데 이는 2008년에 비해 갑절이 넘는 양이다. 그리고 대출 금액의 95퍼센트 이상이 부동산, 에너지, 인프라 등에 투자하는 국영기업 등 대기업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의 대규모 투자 증대와 내구재 소비 촉진은 한국 기업들의 수출 감소분을 줄여 줬다. 2009년 상반기 수출은 2008년 상반기에 비해 22.8퍼센트 감소했지만 하반기에는 5.1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보여 2009년 연간 수출은 14퍼센트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물론 2008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급감했으므로 2009년 하반기 수출 실적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니다).

게다가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환율 상승으로 큰 혜택을 봤다. 가격 경쟁력 강화로 수출 감소폭을 줄일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원화 수익률이 높아진 것이다.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1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등 주요 대기업들이 수조 원의 순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 위기에서도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던 것이다.

경기 부양과 국가 부채

IMF나 OECD 등은 2010년에 미국 경제가 2퍼센트 내외로 성장하는 등 세계경제가 3퍼센트 성장해 회복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명박 정부와 친기업적인 경제연구소들도 2010년 한국 경제 성장률을 4∼5퍼센트대로 전망해 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할 것을 기대했다.

이들은 2009년의 선방이 정부의 경기부양책 덕분이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2010년에는 그동안 위축됐던 경제가 본격적으로 살아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앙일보〉조차 “‘5퍼센트 성장’은 그저 전망일 뿐이다. 97~99년에 그랬듯이 경제 위기 때의 전망은 더더욱 믿을 수 없다. 지난달 KDI가 5.5퍼센트 전망을 내놓은 직후 두바이 사태가 터진 데서 알 수 있듯 세계경제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하고 경제 전망에 대해 낙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사실 2009년 하반기부터 경기 하락이 멈췄지만 이번 경제 위기로 드러난 부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세계경제가 급속히 붕괴하지는 않더라도 경기 회복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우선, 세계 각국이 대규모 구제금융과 경기부양책을 사용하면서 국가 부채가 급증해 국가 부도 위기로 전이되고 있다.

올 들어 미국과 유로 지역, 영국, 일본이 발행한 국채 규모는 3조 9천4백50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일본은 1946년 이후 63년 만에 처음으로 국채 발행량(53조 엔)이 세수(36조 9천억 엔)를 초과했다.

급증하는 국가 부채 때문에 미국·영국조차 몇 년 안에 현재의 최고 신용 등급이 박탈될 위험이 있다고 무디스가 경고할 정도다.

두바이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 베네수엘라와 아르헨티나, 멕시코, 유로 지역에서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와 라트비아 등의 동유럽 국가들, 베트남,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부도 위험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지배자들은 늘어나는 국가 부채에 대응하려고 공무원 임금 삭감을 비롯해 교육비·연금 삭감 등 공공부문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서고 있고, 담뱃세·탄소세·부가가치세 등 간접세 인상을 추진하는 등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려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도 ‘공기업 선진화’와 공무원노조·전교조에 대한 공격, 공적 보험료 인상, 연금 삭감 등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2010년에도 공공부문 구조조정 문제가 주요한 투쟁 사안으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둘째, 전 세계 금융 부실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미국에서 주택 가격이 모기지 대출금보다 낮은 ‘깡통주택’ 비중이 23퍼센트(1천70만 가구)에 달하고, 전체 주택의 7분의 1이 비어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최근 대형 모기지 회사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대해 무제한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미국 주택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음을 보여 준다.

게다가 미국 상업용 부동산(호텔, 병원, 빌딩, 쇼핑몰 등) 가격은 정점에 비해 44퍼센트 넘게 하락해, 그동안 상업용 모기지 투자에 집중해 온 미국 중소은행들의 연쇄 파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올해에 파산한 미국 은행이 1백30개를 넘어섰는데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의장은 “은행 파산은 내년에도 계속 가속화할 것”이라며 FDIC의 예산을 50퍼센트 증액했다.

유럽 은행들은 경제 위기로 미국보다 더 큰 손실을 입었다. EU 지역 국가들은 이미 금융권에 2조 달러를 투입해, 미국(7천억 달러)보다 많은 돈을 금융권에 투입한 상태다.

특히, 서유럽 은행들은 대규모 동유럽 대출로 큰 부실을 안고 있다. 최근 발칸 지역에 집중적으로 대출해 온 오스트리아의 대형 은행 HGAA가 국유화한 것은 유럽 은행들의 위험을 보여 준다. 이 때문에 2010년에 유럽발 2차 금융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많이 나오고 있다.

구조조정과 고통 전가

셋째, 세계 주요국에서 투자 부진으로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로 지역의 공식 실업률은 10퍼센트 정도 되는데, 2007년 12월부터 미국에서만 총 7백30만 명이 일자리를 잃은 셈이다. 〈뉴욕타임스〉는 “구직 활동을 포기한 사람과 파트타임 근무자를 포함하면 미국의 10월 실질실업률은 17.5퍼센트”라고 보도했다. 2010년에도 세계 각국에서 실업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중국은 투자가 과도하게 증가하고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등 거품 붕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지난 11월 중국 70개 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전년보다 5.7퍼센트 상승해 2008년 7월 7퍼센트 상승을 기록한 이후 최대폭으로 뛰었고, 철강, 자동차, 조선, 비철금속, 건자재 등의 부문은 과잉투자로 부실이 점점 커지고 있다.

대외의존도(GDP 대비 수출입 비중)가 큰 한국 경제 특성상 2010년에도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경제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만약 수출이 급락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양호한 상황인 주요 대기업들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특히 한국의 조선·해운·건설업체 상황은 매우 나쁘다. 건설업체들은 여전히 미분양 등으로 고전하고 있고, 조선·해운업은 세계 교역량 감소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해운업계 1위인 한진해운의 2009년 영업적자가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소 해운업체들의 부도는 이미 시작됐는데, 1백80여 해운사 중 이미 22곳이 폐업했고 워크아웃 절차를 밟는 업체가 4곳이다.

전 세계 해운업 위기로 조선업체들도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 2008년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은 합계 4백억 달러가 넘는 물량을 수주했지만 2009년에는 간신히 40억 달러를 넘겼다. 제법 규모가 큰 중소 조선사 8곳 중 6곳이 긴급 지원, 워크아웃, 채권단 공동관리 상태다.

조선·해운·건설업체들의 부도 위기는 고스란히 금융권에 타격을 줄 것이다. 조선업 관련 대출, 보증, 유가증권 매입 등에 들어간 은행권 자금이 70조 원에 이르고, 해운업에는 50조 원 이상 들어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 보금자리주택 건설, 선박펀드 조성 등으로 조선·해운·건설업 지원에 나서는 한편, 해운·조선 중소업체 통폐합을 추진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편, 수출이 40퍼센트 넘게 감소하고 내수까지 10퍼센트 가까이 감소한 GM대우는 GM 본사나 산업은행이 지원하지 않는다면 2010년에 부도가 날 가능성이 매우 크고, 동부·유진·두산·애경·금호 등 위기 직전에 대규모 투자를 벌인 기업들의 부도 가능성도 큰 편이다.

2010년에 조선·해운·건설업과 위험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노동자 해고가 급증할 수 있다. 이는 2009년에 자영업 부문에서 특히 일자리 감소가 많았던 상황과 다른 것이다. 이런 변화로 2010년에는 격렬한 노동조합 투쟁이 더 많이 벌어질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위험 산업에 대한 지원을 늘리면서 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한편, 급증하는 재정지출을 줄이려고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서민에게 떠넘기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위기 책임 전가에 맞선 투쟁을 적극 지원해야 할 필요뿐 아니라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생활수준을 지킬 수 있는 요구들을 제시하는 것이 2010년에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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