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기후정의 시위 참가기:
“전 세계 시민의 직접행동이 지구를 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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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덴마크에서 뭘 하고 왔니? 어떻게 성과가 있긴 한 거야?” 이번 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한 공식등록자 4만 7천 명은 이 대목에서 할 말이 없다. 회의에서 이룬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2007년 발리 로드맵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선진국과 개도국을 한자리에 앉혀 놓고,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대한 논의를 2009년까지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가장 간단한 40년 뒤인 205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 합의조차 쉽지 않았다.
결국 회의는 ‘코펜하겐 합의문’을 만들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데다가 교토의정서보다도 못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지구 평균온도 상승을 ‘2도 이내’에서 안정화시키며, 지구의 허파인 숲을 보전하는 데 힘을 모으고, 선진국이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는다는 것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UN 틀 안에서 논의되는 기후변화협약 체계가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국제 회의라는 공간은 대의를 의논하지만 여전히 국익이 최우선이다. 각국 정상들은 자국 국민과 특히 산업계가 기후변화에 대해 갖는 인식과 합의 수준만큼을 회의장에서 발표할 뿐이다. 이번 회의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구실을 기대했지만(심지어 NGO들도), 그 역시 미국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더 정확하게는 산업계의 강력한 로비를 받는 의회에 발목 잡혀 있다.
협상은 미국, 중국, EU가 주연하는 결론이 나와 있는 드라마였다. 핵심은 교토의정서를 버릴 것인가 고수할 것인가에 달려 있었다. 교토의정서 체제를 유지하면 지금의 선진국, 개도국을 이분화한 것이 유지되면서 개도국이 온실가스를 의무적으로 줄이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낼 경우에는 개도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미국과 EU는 새로운 체제를 통해 중국을 끌어들이길 원하고, 중국은 어떻게든 교토의정서 체제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지구를 위한 선택은 무엇이 돼야 할까? 바로 새로운 의정서의 탄생이다. 교토의정서에서 제시한 1990년 대비 5.2퍼센트 감축은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지킬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과 개도국이 모두 참여하는 의정서가 나와야 하고, 그 속에서 당연히 선진국이 개도국보다 더 많은 감축 목표를 받아들이고 실행해야 한다. 선진국들이 2020년까지 적어도 1990년 대비 40퍼센트는 줄여야 한다.
9일, 코펜하겐에 도착했을 때 회의는 혼돈 속에 빠져 있었다. 8일 덴마크, 미국, 영국 정부가 선진국끼리 논의해 작성한 의장 합의서 초안이 영국 〈가디언〉지를 통해 보도됐기 때문이다. 소위 덴마크 문서라고 불리는 이 합의서는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을 1990년 대비 50퍼센트 줄이도록 돼 있다. 개도국도 선진국과 동일하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지는 방식이고, 1인당 배출량의 한도에 있어서 현 추세를 반영해 선진국의 배출 권리를 더 허용하고 있었다. 중국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그 갈등은 회의 내내 지속됐다. 풀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결국 18일 정상회의가 열렸고, 그날 밤 미국이 EU를 제외한 채 중국,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 정상회의를 통해 ‘코펜하겐 합의문’을 완성했다.
덴마크와 EU가 개도국을 배제한 채 작성한 덴마크 문건이 결국 중국의 반발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덴마크 문서가 파장을 일으키면서 현재 교토의정서 수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한 미국과 교토의정서 틀을 유지하고자 하는 중국이 회의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도저도 아닌 결과가 나왔다. 협상이 바닥을 향한 경쟁으로 치닫자 개도국의 ‘자발적’ 감축을 주장해 온 한국은 수혜자가 됐다. 자연스럽게 개도국 지위를 그대로 인정 받게 된 것이다.
사다리 걷어차기
이번 회의 실패의 책임은 선진국의 개도국 “사다리 걷어차기” 때문이다.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는 망각한 채,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명제 하나로 개도국을 몰아붙였다. 그것도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특히 미국은 ‘중국’이 감축국가가 돼야 자신들도 동참한다는 식의 발목 잡기를 했고, 결국 미국과 중국의 타협이 지구를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은 셈이다.
정상회담 회의장에서 베네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연설이 옳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회의에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한다. 그렇게 중요한 회의라면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지 자기 말만 하고 저기 쪽문으로 사라져 버리는 것이 올바른 태도인가? 미국이 파산 직전의 은행에 쏟아 부은 수천억 달러에 비하면, 연간 1천억 달러를 개도국에 지원하는 것에 그저 ‘동의’한 것을 자랑하는 것은 농담하는 것으로밖에 안 들린다.”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의 새로운 공적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다. 이번 협상의 훼방꾼이라는 것이다. 중국의 태도도 바뀌어야겠지만 현재의 세계경제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중국을 압박하는 소위 선진국들은 중국의 ‘세계 공장’ 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의 끊임없는 물질소비와 소비욕망을 제어하지 않고서는 어떤 식으로든 제대로 된 협상은 불가능하다.
이 회의에서 제대로 된 구실을 한 나라들은 남태평양군소도서국연합(AOSIS)뿐이었다. 그들은 선진국의 책임을 촉구하면서도 개도국 또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 국가는 이번 회의에 국민들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호소했다. 투발루는 AOSIS와 기후변화에 가장 취약한 국가군(V11) 48개국의 지지를 받아 지구 온도 상승 목표를 1.5도, 대기 중 CO2 농도를 3백50ppm으로 각각 안정화해야 한다는 공식의견서를 제출했다. 지금까지 회의에서 수석대표 발언을 통해 ‘도움’을 절절히 호소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지구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장은 안타깝게도 UN협상장에서 진지하게 논의될 만큼의 힘이 없었지만 회의장 밖에서는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전 세계 수많은 NGO들이 이들의 주장을 퍼뜨렸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바로 ‘350’과 ‘기후정의’를 외치는 목소리들이다. 12월 14일,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대통령은 코펜하겐에 도착하자마자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장으로 가지 않고 비정부기구(NGO)들이 마련한 클리마포럼을 찾았다. “지금 지구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세 단어밖에 없습니다. 바로 스리(3), 파이브(5), 오(0)입니다. 기후변화 재앙의 최전선에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우리는 350을 결정해야 합니다.” 연설이 끝나자 포럼장을 가득 채운 1천 명의 군중은 다 함께 “쓰리(3), 파이브(5), 오(0)”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350’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 농도를 3백50ppm으로 낮추자는 세계적인 기후변화 캠페인이다.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에서는 2050년까지 CO2 농도를 4백50ppm에서 안정화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지만 ‘350’은 이러한 선택은 너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목표를 4백50ppm으로 설정하면 그때는 이미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도서국에서 가뭄과 해수면 상승으로 수백만 명이 죽고 난 뒤라는 것이다. 몰디브의 나시드 대통령은 수중 국무회의를 통해 몰디브가 처한 위기를 전 세계에 알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기후변화 의제를 주도하던 지도자로 ‘앨 고어’가 꼽혔다면 이젠 새롭게 ‘모하메드 나시드’가 떠오른 것이다.
12월 12일 코펜하겐 시내는 ‘기후정의’와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라는 구호 아래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시위를 했다. ‘기후정의’는 기후변화의 원인이 된 거대 온실가스 배출자와 그 결과로 인한 희생자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에 주목한다. 아프리카, 북극, 아시아, 남태평양 섬나라와 같이 화석연료를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았는데, 기후변화에 취약해 당장 생존의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전망’이 아닌 하루하루의 ‘현실’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으며, 세계 NGO와 진보세력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화답하고 있다.
기후가 아니라 시스템을 바꾸자
코펜하겐 회의 이후, 올해 12월 16차 멕시코, 내년 17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이제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논의해야 하는지 방향도 잃고 내용도 잃어 버린 유엔 회의에 기대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전 세계 시민들의 직접행동이 지구를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번 회의를 통해 왜 지금까지 세계 빈곤 문제와 기후변화 문제를 연결시켜 생각하지 못했는가에 대해 반성했다. 세계 빈곤과 기후변화는 하나로 바라봐야 한다. 빈곤이 확산되고, 해결점을 찾지 못하는 것이 기후변화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그리고 단지 국가의 문제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중국 안에서도 가난한 이들, 한국에서도 에너지 빈곤과 석유피크에 영향 받을 이들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영향 받고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역시 희망은 절망 끝에 있었다. 해수면 상승으로 가라앉을 위기에 처한 남태평양 섬나라 국가들과 아프리카, 지구상의 가난하고 힘없는 나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기후정의’를 외치는 세계 시민사회가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 애초부터 화려한 회의장에서 ‘지구’와 ‘환경’에 대한 온갖 정치적 수사만 언급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기후변화 이슈를 조직하고, 실천하는 세계 시민들에 기대를 걸었어야 했다. 이들은 지금 ‘지구의 파국’을 막기 위한 ‘새롭고도 전 지구적이며 담대한’ 흐름을 만들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한국 정부는 이 담대한 흐름에서 한참 비켜서 있다는 점이다. 국제 무대에서 모두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 혼자 ‘4대강’을 이야기하는 한국 정부였다. 심명필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장’이 직접 진행한 기자회견장은 기자들의 참석 부족으로 파리만 날리고 예산만 낭비했다. 전 세계 기자들의 관심 사항은 온실가스 감축이지 한국의 4대강 사업이 아니었다. 벨라센터에 설치된 4대강 홍보 부스는 ‘동아시아 기후변화 파트너십’ 기금으로 운영된 것으로 드러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개도국 지원금으로 쓰겠다고 홍보한 돈을 녹색성장 홍보에 썼으니,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게다가 한국이 18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를 유치한다고 신청했다. 2012년 12월은 한국의 대선 시기와 정확하게 맞물린다. 그 어수선한 정국에 인류의 미래를 결정지을 회의가 제대로 진행이나 될 것이며, 안 그래도 언론 통제에 능하고, ‘녹색 이미지’ 홍보에 열 올리는 지금의 정부가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조차 정치적인 활용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그러기에 한국 사회 내에서 기후변화를 둘러싼 풀뿌리 운동이 중요하다. ‘그린워시’ 전략을 한껏 활용하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 동시에 아래로부터 대안을 만들어 가는 활동이 중요하다. 현재 기후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몇몇 환경 NGO들의 활동으로 범위가 좁혀져 있다. 노동도 농민도 문화도 여성도 기후운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 이렇게 풀뿌리 기후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보진영 내부에서 기후운동 확산 방식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