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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기후변화의 진범을 폭로한 코펜하겐 협약

지난해 12월 UN 기후변화 회담은 역사에 길이 남을 행사였다. 회담의 성과물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른바 ‘협약’은 회담장에 모인 각 나라 대표단들이 ‘인식’만 했을 뿐이고, 의무적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 목표를 담지도 않았다. 이는 사람들이 회담에 걸었던 기대를 철저히 배반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코펜하겐은 지구온난화의 해결을 가로막는 주범이 누구인지 분명히 폭로하는 계기였다. 기후변화가 재앙을 가져올 것이 뻔한 상황에서도 각국 정부들은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부담을 피하려 애썼다. 오히려 그들은 경쟁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바빴다.

그들은 또한 다른 나라의 실패를 핑계로 자신들의 책임도 회피하려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은 코펜하겐 회담 전 2020년까지 배출량을 20~30퍼센트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다른 나라 대표들이 호응하지 않자 바로 접었다.

코펜하겐 회담의 분위기를 지배한 것은 나라와 기업 들을 서로 다투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였다. 이것은 회담을 주도한 두 열강(미국과 중국)의 관계에서 가장 뚜렷이 볼 수 있다.

두 나라는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다. 중국은 2006년에 21.5퍼센트를 배출했고 미국은 20.2퍼센트였다. 물론 중국이 인구가 훨씬 더 많고 더 가난하다. 미국은 매년 일인당 18.67톤을 배출하며 중국은 4.57톤이다.

조지 부시는 1997년 교토 협정에 중국 등 남반구의 대국들이 포함되지 않은 것을 핑계 삼아 그 협정에 가입하지 않았다. 반면, 버락 오바마는 전 세계적 협정을 원한다. 그러나 그는 미국 의회의 승인을 얻으려면 중국을 끌어들이는 모양새를 취해야 한다.

그래서 코펜하겐에서 오바마가 중국 총리 원자바오와 인도·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정상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해괴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었다. 오바마는 심지어 네 정상의 비공개 모임에 불쑥 나타나서 “저랑 얘기 좀 할까요?” 하고 말하고는 미어터지는 탁자에 자리를 잡으려고 정상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무시

이 모임에서 타결된 것이 이른바 ‘코펜하겐 협약’이 됐다. 창피하게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서 선두주자를 자임했던 유럽연합은 무시당했다.

언론인 마크 리나스는 고든 브라운[영국 총리]과 에드 밀리반드[영국 기후변화부 장관]를 따라 코펜하겐의 실패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려 했다.

“중국은 자신이 초강국이 되고 있다고 믿는다. 중국은 코펜하겐에서도 이런 강력한 자신감을 뽐내고 싶어 했다.

“중국 경제에서 석탄에 의존하는 부분의 규모는 10년마다 갑절로 커지고 있고, 중국은 그에 비례해 자기 힘을 키울 수 있었다. 중국 지도부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이상 이 비법을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순진하고 과장된 주장이다. 리나스는 미국 대표단이 처음부터 중국을 노렸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오바마가 중국에게서 원하는 것을 얻었을 거라 생각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를 보면, 오바마와 원자바오의 양자회담에서, 원자바오는 배출량 감축이 국제적으로 실증 가능해야 한다는 미국의 핵심 요구에 타협했다.

게다가, “이제 앞으로 나타날 모든 세계적 기후변화 협정의 운명은 사실상 두 최대 배출국의 손에 달리게 됐다.”

미국과 중국은 이런 상황에 만족할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의 지적처럼, 코펜하겐은 “국제 외교 관계가 갈수록 미국과 신흥 강국, 특히 중국에 의해 결정될 새로운 세계 질서의 모습을 언뜻 보여 줬다. 사실, 기후 회담에서 벌어진 일들은 미국과 중국 간 관계가 아직은 불안정하고 복잡하며, 건설적이면서도 적대적임을 증명했다.”

이 분석은 다소 과장됐다. 유럽 열강이 코펜하겐에서처럼 계속 무시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코펜하겐 회담은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간 관계를 규정하는 대립적 협력 관계 ―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경쟁적인 관계 ― 를 보여 주기는 했다.

이것은 “새로운 세계 질서”라 부를 만한 것이 못된다. 기후변화 문제를 정말 해결하려면 자본주의 경쟁 논리에 단호하게 도전해야 한다.

번역 김용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