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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지난 호 독자편지에 대한 의견:
무비판적으로 호주 정부를 지지해서는 안돼

우석영 님의 독자편지를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을 좌초시키려는 기업들의 노력을 워낙 생생하게 소개해 주셔서 혹시 호주에서 글을 보내신 것인지 궁금해질 정도였습니다.

이 기사가 재미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 대상이 호주였기 때문입니다. 원래 호주는 교토의정서를 거부하고 이라크 파병에 동참할 정도로 미국의 충직한 우방이었지만, 약 2년 전에 이라크 파병과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대중의 분노 때문에 보수당이 선거에서 참패하고 노동당이 집권했습니다. 당시 보수당의 선거 결과가 어찌나 참담했던지 보통 정치인들은 선거결과가 안 좋아도 ‘표정관리’를 하기 마련인데 보수당 총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습니다. (‘전쟁·신자유주의 정권 또 하나가 쫓겨나다’ 그 사진이 없는게 안타깝군요) 이렇게 집권한 노동당 정부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바로 교토의정서 비준에 동의한 것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했습니다.

호주 정부가 기업들의 반발을 무릅쓰면서까지 탄소배출권 거래제를 시도하는 원동력도 바로 이같은 아래로부터의 엄청난 압력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현재 호주 정치권이 배출권 거래제를 받아들이냐 마느냐를 두고서 논쟁하고 있다니, 저는 아쉬움이 먼저 듭니다. 특히 파병과 신자유주의의 책임을 물어 11년 장기집권한 우파 정권을 날려버린 대중의 정서를 업고서 등장한 정부이기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적의 적이라고 다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배출권 거래제에도 해당됩니다. 본디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들에게 법적 규제를 가하는 것을 피하려고 제안된 것입니다. 원래 정부는 환경을 지키려고 기업들에게 이러저러한 규제를 가해 왔습니다. 수질 오염을 막으려고 일정 수준 이하로 폐수를 정화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그런데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법으로 기업들을 규제하던 것을 가격 경쟁으로 대체하겠다고 제안된 것입니다. 가격 경쟁을 통해 기업들의 자발적인 감축을 이끌어 낸다는 것이죠.

그러나 현실에서 배출권 거래제가 그러한 자발적 감축에 성공한 사례는 없습니다. 미국에서 산성비를 막으려고 1990년대에 시행한 아황산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같은 목적으로 법적 제재를 가한 독일보다 아황산가스를 10년이나 더 배출하는 것을 기업들에게 허용했습니다.1

설상가상으로 배출권 거래제는 수고스럽게 시장을 만들어 놓더라도 저절로 효과를 발휘하지 않습니다. 현존하는 가장 거대한 탄소 시장인 유럽연합의 배출권 거래제가 최근 겪는 문제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약 보름 전인 2월 8일, 영국 하원은 유럽연합의 탄소 배출권 가격(15유로)이 너무 낮아서 녹색 산업 투자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지적하면서, 각국 정부들이 인위적으로 세금을 물려서 가격을 1백 유로로 끌어 올려야만 실효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 그리고 산업계는 즉각적으로 그러한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이것이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잘 자리잡았다는 배출권 거래제의 현실입니다.2

앞서 설명했듯이 법을 통한 규제는 배출권 거래제처럼, 지나치게 복잡하지도 않고 효과도 더 빠릅니다.

호주에서 집권당의 배출권 거래제가 강행되더라도 앞으로 끊임없는 실효성 논쟁에 시달릴 것이라 예상됩니다. 또 배출권 거래제가 결국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모두 배출권 거래제를 강행한 쪽에 돌아갈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독자편지에서 소개해 주신 집권당의 ‘당근’ 중 석탄에 대한 보조금이 유난히 눈에 거슬리는데, 석탄이야말로 석유와 천연가스보다도 더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 연료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가장 시급한 온실가스 대책은 고유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석탄 사용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을 규제하는 것인데, 호주의 배출권 거래제는 그처럼 중요한 핵심 분야에 대해 ‘당근’을 내놓는 것 입니다.

우석영 님께서 전달해 주신 호주 소식을 통해 제가 확인한 것은, 대중의 강력한 요구가 있더라도 정치가 이를 제대로 받아 안지 못하면 호주처럼 갑갑한 논쟁 구도에 갇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제가 소개한 2년 전 호주 선거 결과를 다룬 기사는, 선거에서 승리한 노동당 정부가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가, 반전 활동가, 녹색당 지지자들에게 정부에게 기대할 것이 아니라 진정한 대안을 건설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마무리 짓는데 그 결론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오늘 호주에서 기업들이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최소한의 굴레조차 거부하는 것을 좌파는 날카롭게 비판하며 운동을 건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때문에 호주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지지해서는 안 되며 독자적인 진정한 대안을 만들려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1 Jonathan Neale, 〈Stop Global Warming-change the world〉(2007), p213. [↑본문]

2 2월 8일자 가디언 보도. 무역환경정보네트워크에 가면 축약번역문을 볼 수 있다. [↑본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