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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호주 양 정당의 기후변화 정책 충돌 소식을 접하며

오늘날 호주 정치는 그 날씨만큼이나 뜨겁다. 기후변화 정책 탓이다. 지난 2월 3일, 이 정치의 온도를 한층 상승시킨 사건이 일어났는데, 기후변화 정책을 둘러싼, 양 정당의 국회 내 대격돌이 그것이다. 이 격돌은 야당 연합의 총수인 애보트가 현 러드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인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ETS, Emission Trading Scheme)에 맞서는 새로운 안인 직접행동 안을 국회에 내놓으면서 촉발된 것이다. 기후변화 쟁점이 아직 한참 뒷전에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는 ‘남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아주 남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기에 그 상세한 내막을 소개하고자 한다.

ETS의 골자는,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 상한선을 정하고, 이 상한선을 넘기는 기업이 배출권을 구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환경세(탄소세)를 통해서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기업의 활동을 통제·지도하는 것이 온실가스 감축의 관건이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그러나 현 호주 정부의 ETS는 이러한 채찍뿐 아니라 당근도 제시한다. 석탄 기반 전력 공급자가 ETS를 따르도록 하는 데 지원하는 보조금 (73억 달러), 석탄 산업 부문 보조금 (15억 달러), 배출권을 구입할 필요는 없지만 고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채광업계와 제조업계에 주는 보조금 (11억 달러), 국제 무역에 종사하는 온실가스 고 배출 산업 부문에 대한, 시행 첫 5년 동안 94.5퍼센트 면제 조처, 무역에는 종사하지 않으나 그러한 섹터에 대한, 같은 기간의 66퍼센트 면제 조처 등이다. 그러니까 기업을 통제하고 끌어가되 부담을 줄이는 형태로 하겠다는 뜻이 ETS에는 있다.

짐작할 수 있듯, 이 안은 기업계로부터 큰 환영을 받지 못했다. 이에 맞서 제출된 직접행동 안은 이러한 세태에 착안한 듯하다. 기업의 의무를 감면해 주고, 대신 기업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면 상을 주겠다는 것이니 말이다. 이 안에 따르면, 현 수준보다 온실가스를 감축한 기업은 되레 CO₂ 감가분을 정부에 판매할 수 있고, 지금보다 배출량이 늘어나는 기업은 일정한 벌금을 내게 된다.(이 벌금 액수는 발표되지 않았다.) 동시에 이 안은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방법으로, 태양 에너지 등 재생 에너지 사용, 탄소의 토양 내 저장 증대, 다량의 수목 심기(식목)를 채택한다. 우리는 역시 얼핏 그럴싸하게 보이는 이 정책의 이면에서 현 온실가스 고 배출 기업의 활동에 크게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읽을 수 있다.

현 정부의 ETS는 녹색당과 녹색 운동 그룹으로부터는 충분치 못한 안이라고 비판받아 왔지만, 저 탄소 배출 산업체제로 전환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 거기에는 이 전환을 거스르려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지도 의지가 있다. 반면, 야당 측의 안은 온실가스 고 배출 기업 보호주의 원칙을 지녔다. 지금까지의 ‘범죄’를 눈감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가볍게’ 벌금으로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다. 또 이 안은 현 산업 활동과 신 산업 활동의 공존을 말하는 ‘부분 수정론’이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야당의 이 안이 발표되자, 네가 게서 불을 지피면 나는 예서 부채를 부치겠다고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기업계는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미네랄 위원회, 소매상연합, 호주 통상산업회의 등 관련 단체가 이 안을 환영하며 내세운 논리란, 지금처럼 국제사회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가운데, 호주 내 기업들만 정부에 환경세를 내라는 ETS의 논리란 비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 소식을 전하는 것은 물론 이 사건과 러드 정부의 행보가, 소위 저탄소 녹색성장을 한다는 정부 하에 있는 우리 사회에도 몇 가지 심중한 시사점을 던지는 탓이다. 그것은 첫째,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한, 그 행동 주체를 그 실체가 모호한 ‘전 국민’으로 여겨선 안 되며, 오직 산업 부문 전체의 전환만이 근원적 해법이라는 점을 우리가 또렷이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이 문제에서 시민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제 집 전력을 절약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며 본질을 흐리는 정부의 ‘강력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다.

둘째, 고 탄소 배출 기업이 탄소 배출량을 자발적으로 감축하리라는 것은 일종의 망상이라는 점을 이 사건은 알려 준다. 야당 안을 지지하는 호주 산업계의 의지는, 고 탄소 배출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탄소 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기업들은 한국에도 호주에도 존재하지만, 이러한 움직임을 근본적으로 추동하는 것은 기업의 이윤 추구지, 지구 생태계에 대한 염려는 아닐 것이다. 설사 그들이 그러한 염려를 할지라도, 전체를 통찰하는 거시적 시각에서 실천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정부뿐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차기 정부를 만드는 과정에서, 온실가스 고 배출 산업 자본의 저항과 싸우고 그 산업 자본의 행보를 이끌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 강력한 탄소 감축 의지를 보여 주는 정당을, 우리가 (만일 우리가 녹색 세상을 원하는 시민들이라면) 선택해야만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셋째, 야당 안을 지지한 호주 내 산업계의 ETS 반박 논리에서 드러나듯, 러드 정부의 앞길을 막는 것은, 비단 산업 자본만이 아니라 세계의 둔한 움직임 그 자체라는 것이다. 코펜하겐 회의에서 합의가 실패한 이후, 현재 한국 등 55개국이 자체 감축안을 기후회의 측에 제출한 상태다. 하지만, 기준 년도와 감축 목표치가 제각각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최대 배출국 다섯 나라(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미국)의 [제시된] 목표치가 필요에 비해 턱없이 낮은 상태라는 점에서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그래서 온실가스에 관한 한 일국의 앞선 행보가 큰 의미가 없지만, 동시에 호주 사례가 보여 주듯, 이것이 행동을 지연시키는 한 논리가 돼 일국의 행보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다들 떠드는데 나 혼자 조용히 해 봤자 교실을 조용하게 할 수는 없다’는 책임 회피 논리가, 언제든 어디서든 책임을 방기하려는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돼 전체의 걸음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거꾸로 이것은, 지금 우리는 ‘전체’를 통솔할 ‘선생님’ 같은 존재가 필요한 시점에 산다는 점 역시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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