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기업화와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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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세대로 ‘빛나거나’ 88만 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하는 20대.”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
얼마 전 대학 ‘거부’ 선언을 하고 고려대학교를 자퇴한 김예슬 씨의 말이다.
많은 학생들의 발길을 붙든 이 대자보는 ‘취업양성소’로 변해 버린 현재 대학의 모습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불안감을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숨막히는 대학의 실상.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한국 대학 교육이 사립 재단에 의존해 성장해 오긴 했지만, 사실 이런 극단적 모습은 15년 전에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지금 대학의 모습은 지난 15년 동안 교육에 시장논리를 도입하고 대학 교육을 기업의 “인재양성”에 종속시켜 온 결과다.
15년 전 김영삼 정부가 내놓은 ‘세계화·정보화 시대를 주도하는 신교육체계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5·31교육개혁안)’은 한국 대학을 ‘수술’할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고도의 창의력과 높은 품격을 지닌 인간을 요구하는 미래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 일터에서는 ‘불량품’ 인력으로 판정받는 것이 우리 교육의 실상이다.”
당시 한국 자본주의는 세계화 시대에 직면해 고도기술 산업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할 필요가 있었고 그러려면 대학을 고급 노동력을 배출할 수 있는 곳으로 바꿔야 했다.
한편, 노무현 정부 시절 교육인적자원부 차관을 지낸 김영식은 당시 이렇게 한탄했다.
“우리 나라가 GDP 규모로 보면 세계 11위[인] … 반면, 싱가폴, 홍콩, 대만, 중국 등 외국 대학들의 이름이 세계 경쟁력 평가 1백 위 이내에 오르내릴 때 우리 대학들은 깊은 침묵 속에서 잠을 자고 있는 듯하다.”(‘21세기에 요구되는 대학 경쟁력’, 《교육정책포럼》, 2005)
한국의 지배계급은 경제 규모에 걸맞는 대학 경쟁력을 바랐다.
“경쟁력 강화”
한국의 지배계급은 대학 교육에 ‘시장’을 도입해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기업을 대학에 끌어들이고 대학의 돈벌이를 허용하는 것이었다. 국제경영개발원(IMD) 같은 기관도 대학의 “국제 경쟁력”을 결정짓는 주요 지표로 바로 “사회수요 부응”과 “발전기금” 같은 것들을 든다.
정부는 대학 평가에 산학협동 실적을 포함시키는 등으로 기업을 대학에 끌어들였다.
대학들은 산학협력단을 설치했고 각종 기업 연구소가 대학 안으로 들어왔다. 특정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 양성을 위해 성균관대학교의 휴대폰학과 같은 ‘계약학과’도 생겼다.
학사과정도 기업의 필요에 맞게 개편됐다. 상대평가제가 확대되는 등 졸업 요건이 강화되거나 한문학과 같은 데까지 영어 강의가 도입됐다. 최근 중앙대학교에서는 ‘회계’가 필수과목이 됐다.
마찬가지로,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학들은 앞다퉈 적립금을 쌓고 기부금 모금에 나섰다. 2007년 기준으로, 목적도 불분명한 채로 쌓아 둔 이월적립금이 7조 원에 이른다. 교육부는 이에 발맞춰 적립금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것을 허용했다.
최근 대학들은 기술지주회사나 ‘학교 기업’을 설립해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과 상품·서비스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학교기업 사업금지’ 업종을 1백2개에서 19개로 대폭 줄여 줬다.
정부는 산학협동과 대학의 돈벌이를 부추기면서 고등교육에 대한 책임을 떠넘겼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은 모두 교육예산 확대를 공약했지만, GDP 대비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비율은 좀체 늘지 않았다. 2009년 기준, 한국은 0.6퍼센트로 OECD 평균 1.1퍼센트의 절반 수준이다.
국립대도 법인화가 추진됐다.
‘맞춤형 교육’
이제 이윤논리가 대학을 지배한다. 학생들은 대학 당국의 돈벌이 대상이 됐다. 지난 10년 동안 등록금은 매년 물가인상률의 2~3배로 올라 전체적으로 갑절로 올랐다.
‘비용절감’을 위해 교수들과 학내 노동자들의 처우도 나빠졌다. 교수들도 경쟁해야 한다며 계약제, 연봉제, 성과급제가 확산됐다. ‘비정년 전임교수제’(단기 계약직으로 교수 비정규직인 셈이다)는 2003년 연세대학교에서 도입한 이후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2009년 교수 신규 채용에서 20퍼센트나 차지했다.
교수들의 처지가 이런데, 시간강사들의 처지는 말할 것도 없다. 학내 청소·경비 노동자들도 1997년 이후 대부분 비정규직이 됐다.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 사회과학 같은 학문은 찬밥 신세로 구조조정 대상이 됐다.
대학은 그야말로 ‘취업양성소’로 변했다.
연초에 기획재정부 장관 윤증현은 “대학에서 ‘맞춤형 교육’이 일어나지 않고 있어 고학력자들이 한꺼번에 길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맞춤형 교육’이 일어나지 않기는커녕 완전 포화 상태다. 학생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경쟁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스펙’을 쌓고 있지만 일자리를 얻기는 더 어려워졌다.
4년제 대학의 평균 정규직 취업률은 2006년 58.4퍼센트에서 2009년 48.3퍼센트로 꾸준히 감소했다. 지난해 남성 대졸신입직원의 평균 나이는 29세로 10년 전보다 3세나 증가했다. 근본적으로 기업들이 일자리를 늘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윤 추구에 매진하는 데 민주주의는 거추장스러운 것이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성과로 쟁취한 총장직선제는 차츰 폐지돼 사립대학에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대학 당국이 비민주적 대학 운영과 기업화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징계하고 학교에 비판적인 학내 언론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일도 벌어졌다.
학내 구성원들에게 대학의 기업화는 끔찍한 일이었지만 대신 기업들은 이득을 봤다.
2002년에 전경련은 “신입 사원들이 대학에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은 기업에서 필요한 수준의 26퍼센트에 불과하며, 이들을 재교육시키는 데 평균 2년, 1년에 2조 8천억 원이 소요된다”고 불평했다. 결과적으로, 지금 대학은 기업들이 해야 할 신입 사원 교육을 대신 해 주는 셈이다.
기업들은 대학에 ‘LG-포스코관’, ‘이화-신세계관’을 지어 주고 홍보 효과를 누린다. 산학협력으로 싸게 원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대학의 권위까지 등에 업을 수 있게 됐다.
기업들은 교육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아예 대학을 인수하고 있다. 성균관대학교는 삼성이, 중앙대학교는 두산이 인수했다.
노동계급의 문제
요컨대, 지난 15년은 신자유주의 논리 ― 이윤지상주의와 경쟁 ― 를 대학 교육에 도입하는 과정이었다. 두산이 중앙대학교를 인수하고 나서 “자본주의 논리가 어디 가나 통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는 이사장 박용성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정부는 그 누구보다 이런 과정을 심화시키고 싶어 한다.
이명박의 대학 관련 대선 공약 첫째 과제는 ‘대학 관치 완전 철폐’와 ‘국립대학의 단계적 법인화’였다. 이명박은 대학이 산학협력, 민간자본유치와 적립금 펀드 투자를 더 원활히 하는 길을 터 주고 있다.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영리법인이 국제학교를 설립하는 것도 허용했다.
그러나 이명박의 바람이 뜻대로 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지금까지도 대학과 기업의 ‘공세’에 대학 구성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아니다.
국립대 법인화 계획은 국립대 구성원들의 저항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지금도 서울대학교 법인화는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립대학 구성원들의 반발 때문에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등록금 문제는 한나라당조차 (물론 거짓말이었지만)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걸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적 문제가 됐다. 수년간 학생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들이 함께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해 온 덕분이다.
2005년 삼성 이건희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것에 반대한 고려대학교 학생들의 투쟁은 대표적인 대학 기업화 반대 투쟁 중 하나였다. 이 투쟁은 삼성 재벌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결합되면서 커다란 사회적 쟁점이 됐다.
지난해 부산대학교에서는 시간강사 대량해고에 맞서 싸워 해고를 철회시켰다. 성신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등 노동자와 학생들이 연대해 청소노동자들의 해고를 막아낸 경험도 확산되고 있다.
지금 중앙대학교 학생과 교수 들은 구조조정에 반대해 천막 농성을 하고 있다.
당장 행동에 나서지 않더라도 대학 구성원들의 불만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자퇴생 김예슬 씨의 대자보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세계경제 위기로 지배자들의 정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고, 지배이데올로기로서 신자유주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상황에서 앞으로도 저항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이런 저항의 경험은 국제적으로도 있다. 교육에 신자유주의를 도입하려는 흐름은 전 세계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전역에서 교육 재정 삭감에 따른 등록금 폭등에 항의해 학생들이 대학 건물과 도로를 점거했다. 지난해 유럽 전역에서는 학생들의 점거 투쟁과 항의시위가 잇따랐다. 유럽 정부들이 교육재정을 대폭 삭감하고, 수업료를 올리고, 교육을 시장에 내맡길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의 투쟁 경험은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 준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 학생들은 교육 재정 삭감 문제를 자신들만의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다른 학생들에게 지지를 구하는 한편 노동자들에게도(대학 내 노동자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까지) 연대를 호소했다. 교육 문제가 노동계급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 정부와 기업들이 추진하는 것은 교육시장화만이 아니다. 이들은 은행과 기업, 부자 들을 구제하려고 노동자들에게 해고와 임금삭감을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빈 대학교 학생들은 이런 요구를 내걸었다. “은행과 기업이 아니라 교육에 돈을 써라!”
이런 노력은 투쟁을 한층 더 광범하게 만들고 진정으로 정부와 대학 당국에 압박을 가할 수 있게 한다.
우리도 노동자·학생이 함께 교육공공성을 확충하기 위한 투쟁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