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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행진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

학생행진(행진)이 다함께의 투표 전술 문제에 반론을 제기했다(‘다함께의 ‘전국학생행진의 지방선거 입장 비판’에 대한 반론 — 이제 ‘이념 없는 실용주의 노선’에 결별을 고하자!’).

행진의 책임 있는 논쟁을 환영한다. 다만, 투표 전술 문제가 중요한 논점 중 하나기 때문에 투표일 전에 미리 논의됐어야 했는데, 만시지탄이다. 그럼에도 이 논쟁이 좌파의 실천에 생산적 영향을 미치기를 바란다.

전술 문제

“진보진영이 공동 선거 전략 수립에 실패했고” “선거가 무원칙한 반MB연대로 수렴되고 있”다는 행진의 지적은 현실을 직시한 것이다. 그래서 “지방선거를 둘러싼 주객관적 조건이 특정 정당/후보를 지지하는 운동으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행진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행진은 이런 상황 인식에 근거해 진보 후보들의 선거 도전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진보 후보에게 투표하라는 다함께의 투표 방침이 “실용주의의 극치로 달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다함께의 투표 전술이 반MB 민주연합 논리와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고, 민주당에까지 투표할 수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실용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좌파는 반MB 민주연합을 반대하는 것과 반MB 민주연합을 추진하는 민주노동당(또는 진보신당) 후보에 투표하는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반MB 민주연합은 계급 간 연합이다. 자본가 정당과 노동자 정당의 연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계급 간 연합이 아니라 계급 내 연합(진보대연합)을 지지했다. 그러나 진보대연합은 제안에 그쳤다.

그 때문에 진보정당들의 후보들에게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

행진은 진보 후보들의 “이념”이 지지 여부의 잣대라고 보는 듯하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강령과 이념은 확실히 혁명적인 것에는 못 미친다. 이번 선거 정책도 노동자들의 당면 현안들을 충분히 부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행진도 인정했듯이, 자본가 야당의 그것보다는 낫다. “이념”의 잣대로 봐도 자본가 정당의 후보와 진보정당 후보가 맞붙는다면 후자에 비판적 투표를 해야 마땅하다.

무엇보다, 사회주의자들이 진보정당 후보들에게 투표하는 까닭은 그 당들의 흡족하지 못한 강령과 이념에도 불구하고 그 당(과 후보)들을 지지하는 선진 노동자들에게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해서다.

민주노동당이 반MB 민주연합을 추진했지만, 여전히 그 당에 투표하는 수십만 선진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좌파가 민주노동당의 우경 전략을 비판하면서도 이 노동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은 비판적 투표를 하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에게 선거는 언제나 전술일 뿐이다.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에 이를 수는 없다. 전술의 핵심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다. 올바른 전술을 수립하려면 (선진 노동자) 대중의 정서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행진은 선진 노동자 대중의 정서에 근거해 전술을 수립하는 것을 “인민주의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과학적 분석과 그에 따른 정세 판단, 대중운동의 이념적 강화라는 원칙을 상실한 좌파가 어떻게 사회주의자로 자신을 칭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과학적 분석과 그에 따른 정세 판단, 대중운동의 이념적 강화라는 원칙”은 대중의 경험 속에서 그 올바름을 입증받아야 한다. 올바름은 결코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전술은 좌파의 “원칙”과 대중의 경험을 조응시키려는 기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임과 동시에 기예이자 창조적 예술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경험과 실천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는 이론과 실천의 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원칙”을 앞세워 대중의 정서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면, 그 “원칙”은 결코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원칙에서 전술을 곧장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원칙에서 곧장 전술을 도출한다면 기껏해야 종파주의로 심하면 초좌파주의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 행진이 원칙적으로 선거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니 초좌파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러나 진보정당들의 이러저러한 문제점들을 이유로 선거에서 그 후보들을 지지하기를 꺼리는 것은 종파적 태도다.

마르크스는 “자기 존재의 정당성과 명예를 계급 운동과의 공통점이 아니라 운동과 자신을 구별짓는 특별한 표지에서 찾는” 태도를 종파주의라고 했다.

조건부 지지냐 비판적 지지냐

행진은 좌파 세력이 “자생성에 굴하지 않는 의식성”을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함께의 전술 개념은 반대로 “대중의 자생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자생성과 의식성을 이렇게 칼같이 대립시키는 것은 실천에서 부정적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행진의 주장을 좌파와 대중의 관계 맺기 방식에 적용하면, 좌파는 대중의 경험(과 행동)이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지지하지 않거나 잘해야 조건부 지지를 보내게 될 것이다. 상대방이 이러이러한 요구들을 받아들일 때만 지지하겠다는 것이 조건부 지지다. 수용하지 않으면 지지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건부 지지는 사실상 지지가 아닌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행진이 보여 주는 태도가 정확히 조건부 지지다.

“행진은 진보정당들이 분명하게 반신자유주의를 표명하고 노동자운동 재건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동한다면 지지할 수 있다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그러나 비판적으로 진보정당들을 지지한다. 그래서 진보정당들의 정치적 문제점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조건을 달지 않고 투표하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 전술을 이번 선거에 적용해 보자.

첫째, 자본가 정당에 반대해 진보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 이것이 1순위다.

그러나 행진은 반MB 민주연합 때문에 “지방선거 승리가 대중운동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어떤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고 본다.

진보정당의 분열, 반MB 민주연합 등 때문에 진보정당의 선전(善戰) 효과가 상대적으로 반감되긴 할 것이다. 그렇다고 진보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은 상황을 창출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반MB 민주연합을 호소했는데도(이것은 사실상 민주당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다) 진보 후보들이 상당한 득표를 한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우경 전략에 적잖은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지표가 될 것이다.

한편, 진보 후보 지지를 꺼리는 행진의 태도는 개혁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될까 봐 무서워 오히려 도망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개혁주의 정당의 성장이 역설적으로 사회주의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진보 후보들이 선전해 진보정당들이 성장하는 것은 노동자 운동에 도움이 된다. 그와 동시에 진보정당들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둘째, 유감스럽게도 진보정당 후보들이 복수 출마한 선거구들이 일부 있다. 정당 투표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중 누구를 찍을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다.

행진은 다함께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더욱 좌파적인 후보를 지지”하라고 하는 이유를 묻는다. 또, “덜 진보적이고, 더 진보적인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진보정당들이 분열해 있는 상황에서 민주노동당만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노동계급을 분열시킬 수 있다. 그래서 다함께는 계급의 단결을 우선하는 투표 방침을 제시한 것이다. 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중 어떤 당이 “덜 진보적이고, 더 진보적인”지를 칼로 무 썰듯이 단정할 수 없다. 그러나 후보들을 놓고 보면, 그 후보의 투쟁 전력, (과거와 현재의) 정견, 해당 지역 선진 노동자들의 평가 등을 종합해 상대적 좌파성과 우파성을 구별할 수 있다. 그조차 힘들 때는 자유투표를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가?

셋째, 진보정당 후보들은 두 당을 합쳐도 6백26명(민주노동당 4백52명, 진보신당 1백74명)이다. 전체 선거구 3천8백93개 중 16퍼센트 남짓이다. 나머지 84퍼센트 선거구에서 진보적 노동자들은 누구에게 투표해야 할 것인가?

다함께는 진보 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곳에서는 진보적 노동자들이 ‘개혁적’으로 여기는 민주당/국참당 후보들에게 투표할 수 있다고 했다(‘민주당에 투표할 수 있다’가 아니다). 민주당의 배신이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진행형이 될 것이라고 경고를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러나 진보적 노동자들이 전혀 ‘개혁적’이지 않다고 여기는 민주당/국참당 후보라면 다함께가 그들에게 투표하라고 하는 것은 멍청한 짓일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투표 전술은 선진 노동자들의 정서에 연대감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반MB 민주연합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반MB 진보연합과 반MB 민주연합은 목표와 방향이 다르다. 전자는 이명박 정부에 맞서 민주당이 아닌 진보적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고, 후자는 노동자 정당과 자본가 정당의 연합이다.

일부 ‘개혁적’ 민주당/국참당 후보들에게 투표하라는 것을 두고 반MB 민주연합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전자는 투표 전술이지만, 후자는 민주노동당에게 집권 전략 프로젝트다. 그래서 후자를 위해 기꺼이 진보연합을 희생시킨 것이다.

그러나 행진은 이런 투표 전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어떻게 민주당에게 투표할 수 있냐고 반문할 뿐, 선진 노동자 대중의 정서(그것이 결코 기대에 찬 것이 아니라 울며 겨자 먹기 식인 것이긴 하지만)는 고려하지 않는다.

행진은 다함께의 “실용주의” 전술이 “전략적 침로 자체를 상실해 버리는 우익적 기회주의”로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종파의 프리즘으로 다함께를 본다면 다함께가 “우익적 기회주의”일 수 있다. 그러나 건강한 선진 노동자들의 눈에서 본다면 다함께의 전술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일 것이다.

덧붙이는 말

행진은 다함께가 “현 시기 좌파에게 “‘전술’의 의미를 협소화할 것을 강요”했다고 한다.

우리가 행진을 비판한 것은 “현 시기” 전술 문제들 전반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 “현 시기” 전술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노동자 투쟁이나 학생 투쟁 또는 다른 운동들의 전술 문제들 등. 우리가 제기한 것은 당면한 정치 문제 중 하나인 선거 전술 문제였다.

우리가 행진에게 “대중운동을 포기하고 있다는 식의 혐의”를 씌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진보정당의 선거 도전에 대한 행진의 태도가 종파적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행진은 이를 “대중운동을 포기하고 있다”는 비판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한편, 행진이 진보대연합을 지지한 것은 사실이다. 행진은 진보정당들의 분열이 대중운동의 분열로까지 이어지는 위험을 막기 위해 옳게도 진보대연합을 지지했다. 우리도 이를 우려해 진작부터 진보대연합을 주장해 왔다.

문제는 행진이 너무 늦게 진보대연합 논의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진보대연합을 통해 이번 선거에 대응하려면 아무리 늦어도 지난해 10월 재보선 직후부터 진보연합을 진지하게 추진했어야 했다. 당시 민주노동당 지도부의 반MB 민주연합이 정치적 패착임이 드러났고 당 내부에서도 진보대연합 주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행진을 비롯한 일부 좌파들은 이미 진보대연합을 통한 지방선거 대응이 사실상 물 건너 간 시점에서 진보대연합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민주당이 아닌 진보적 정치 대안을 공동으로 건설해야 할 필요성은 여전하기 때문에 이 과제가 완전히 증발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진보연합은 제안으로 끝났고 반MB 민주연합이 현실이 된 상황에서 좌파의 투표 전술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행진의 답변은 지방선거에 한해서는 공식적으로는 진보 후보에 지지(투표)를 제공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단순히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극복될 상황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다함께는 원하지 않는 상황일지라도 최대한 노동계급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투표 전술을 내놓았던 것이다.

문제는 선거 이후다.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이명박 정부는 노동계급을 공격할 것이다. 선거 뒤로 미룬 공공부문 공격들이 개시될 것이다. 이때 우리는 최대한 단결해 맞서 싸워야 한다. 진보진영은 노동자 투쟁을 공동으로 지원해야 한다. 이때 반MB 민주연합이 시험대에 오를 것이다. 다함께의 투표 전술은 바로 그 상황에서 과거에 반MB 민주연합을 지지했으나 지금은 그것에 문제 의식을 느끼는 노동자들과 접촉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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