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함께의 ‘전국학생행진의 지방선거 입장 비판’에 대한 반론:
이제 ‘이념없는 실용주의 노선’에 결별을 고하자!
〈노동자 연대〉 구독
이 글은 레프트21에 기고된 정선영씨의 〈전국학생행진의 지방선거 입장 비판〉(이하 〈비판〉)에 대한 반론이자, 지방선거 국면에서 생겨나고 있는 쟁점을 구체화하기 위한 것이다. 행진의 기본입장은 〈팜플렛 3호〉와 〈6.2 지방선거를 바라보며〉 등에서 충분히 밝혔다고 생각하지만, 다함께의 〈비판〉 논지가 행진의 입장을 오해하고 있을뿐더러, 부당한 쟁점을 형성하기에 반론을 제기하는 바다.
‘투표방침’을 내 놓지 않는 좌파는 무능하다?
다함께가 제기하는 비판의 핵심은 결국 “왜 분명하게 진보정당에 투표할 것을 호소하지 않는가?”와 “실용적으로 자유주의 세력에 투표하는 것이 왜 나쁜가?”로 요약할 수 있다. 다함께는 현 시기 진보정당을 보위하기 위해서는 대중들에게 ‘투표행위’를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보기에 행진이 대중들에게 정권심판을 위해 투표하자고 호소하지 않는 것은 대중의 정서를 인식하지 못한 ‘추상적’ 전술일 뿐이고, 종파적 태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입장이 현 시 기 좌파에게 ‘전술’의 의미를 협소화할 것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한다. 행진이 그간 벌여온 다양한 정치활동과 노조와 당의 이념·실천의 강화를 위한 노력 하에 지방선거 입장과 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 간과하고, 오직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투표방침’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중운동을 포기하고 있다는 식의 혐의를 씌워서야 되겠는가.
행진은 지방선거를 둘러싼 주·객관적 조건이 특정 정당/후보를 지지하는 운동으로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이야기해왔다. 진보진영이 공동 선거 전략 수립에 실패했고,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대중운동의 강화라는 원칙과 목표를 상실했고, 이에 따라 선거가 무원칙한 반MB연대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정적 흐름을 바꾸어내기 위한 실천에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도대체 왜 선거라는 국면을 회피하는 것이라 이해되는 것인가. 지방선거 승리(지방선거 승리가 도대체 무엇인지조차 합의되지 않고 있는데)가 대중운동의 성과로 연결될 수 있는 어떤 구조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기에 환상을 가질 이유가 전혀 없다. 아주 냉정하게 현실 분석을 할 뿐이다.
첨언하자면, 진보진영의 공동 선거전략 수립이라는 것은 정당 통합이나 후보단일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다함께는 ‘진보정당이 분열해있기 때문에 진보 후보 지지운동을 벌이자는 주장은 정치적 올바름을 떠나 어떠한 정치적 효과도 내지 못하기에 한계적이라고 주장한다.’라고 행진의 입장을 요약했는데 심각한 오독이다. 일차적으로 행진은 ‘진보정당이 분열해있기 때문에’라고 그 이유를 단순하게 제기한 바 없다. 진보정당 분열이라는 조건이 대중운동 상의 분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서술한 것이다. 진보진영의 공동 선거전략 수립이라는 것은 선거 시기 진보정당들이 어떠한 것을 핵심 과제와 목표로 설정하고, 노동자운동의 재건과 혁신을 위해 어떻게 선거‘투쟁’을 벌일 것인가에 대한 합의를 뜻한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모두 알다시피 이런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더러 깊어진 불신과 갈등으로 선거 이후의 운동질서를 전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것의 결과로서 현재 진보정당들은 투표율을 올리고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한 각개 노력을 하고 있다. 지역별로, 후보별로 실리적인 판단에 의해 선거전술을 수립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진보진영의 약진을 바라는 대중을 실망시키는 일이다. 행진은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진보정당과 운동진영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한 축으로, 이번 지방선거에서 핵심적으로 이야기되어야 하는 ‘진보적 의제’가 무엇인지를 대중들과 함께 토론하고, 다른 한 축으로는 선거 이후에 노동자운동의 재건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전략에 대해 고민할 것을 운동진영에 제안하고 있다. ‘진보적 의제’를 제대로 발언하는 진보정당이 없어서, 다시 말해 파산한 신자유주의와 이후의 대안에 대해 제시할 만한 ‘실력 있는’ 진보정당을 대중들이 찾지 못해한다면, 단순히 지지를 호소하는 것으로 극복될 상황은 아닐 것이다.
현재 민중운동진영의 행보에 대한 우려
물론 공약들이나 정책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간다면 다함께의 말대로 민주당과 진보정당의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이것마저 없다면 당을 합치는 것이 맞겠다. 진보정당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 노동자 대중의 분명한 지지를 획득할 때 승리할 수 있다. 사회변혁운동의 재건과 혁신으로 기층 대중조직이 활발하게 사회운동을 벌일 수 있어야 승리한다. ‘복지가 강한 **시/도, 복지혁명’ 등의 주장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분명하게 대중들에게 밝히고, 이를 해결한다고 나서는 자유주의-보수주의 세력들과 진보세력이 어떻게 다른 전망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적이다.
다함께는 ‘진보정당은 민주노총 노동자들을 주된 기반으로 한다.’고 이야기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진보양당과 민주노총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단적으로 심상정 후보의 중도 사퇴 문제만 봐도 그렇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쟁점을 우리에게 던져 주는데, 하나는 현재 진보정당운동이 진정으로 당원들과 노동자·민중의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진보정당의 이념과 목표가 도대체 무엇이냐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수차례 이야기한 바 있지만 소위 진보정당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야권 대연합’이라는 전술(!)이 노동자·민중의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기나긴 투쟁의 과정에서 도대체 어떤 중요성이 있다는 것인지 ‘한나라당·이명박 심판’ 이외의 언어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기대 마저도 저버리는 등의 행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어디 심상정이라는 정치인 개인의 문제겠는가? ‘민주노총 후보’로 공식화 해놓고도 유시민으로의 후보단일화를 종용하는 지역본부, 반MB연합이라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이념과 노선마저도 잠시 접어두라고 압력을 가하는 민중운동진영의 분위기가 만들어낸 사태 아니던가.
전략과 이념 없는 전술은 위험하다!
다함께는 진보대연합을 주장하며 반MB 민주대연합에 대해 비판한 바 있다. 민주대연합에 적극적인 민주노동당과 일부 민주대연합을 수용한 진보신당에 대해서도 비판한 것으로 안다. 그러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민주당에 투표할 수도 있다고 한다.
다함께에게 묻고 싶다. 투표 전술을 중요하게 여기는 다함께의 공식 입장은 한나라당만 아니면 누구라도 지지하자는 反MB 민주대연합 논리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더 나아가서는 진보신당 혹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애매하게 양당 모두를 지지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진보정당끼리 경합을 벌이는 곳에서는 (다함께가 몸담고 있는 민주노동당이 아닌) 더욱 좌파적인 후보를 지지하라고 하는데 여기서 ‘덜 진보적이고, 더 진보적인 후보’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민주당의 어떤 점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민주당에 대해서도 투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대중들에게 그러한 기준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는가? 행진에게 선거에 대한 입장이 일관된 기준이 없다고 비판하기 전에, 실용주의의 극치로 달리고 있는 다함께의 투표방침부터 돌아볼 일이다. 행진은 진보정당들이 분명하게 反신자유주의를 표명하고 노동자운동 재건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동한다면 지지할 수 있다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다함께의 모호한 태도들이야말로 일관되지 않으며 대중들에게 혼란을 가져다줄 것이 아닌가.
다함께는 또한 ‘선거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원칙이나 이념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사회주의적 원칙을 가지지 않은 어떤 후보도 지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선거에서 우리의 입장은 전술적인 것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전술은 ‘전략을 전제로’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되지 못할 경우 대중의 요구에 매몰되어 전략적 침로 자체를 상실해버리는 우익적 기회주의에 빠질 수 있다. 다함께 스스로 비판해 마지않는 ‘무원칙한 反MB’에 매몰된 선거 국면에서, 노동권·생존권은 전혀 쟁점이 되지 못하고, 기층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결합하지 못하는 선거 국면에서, 유독 진보정당 후보에 대한 지지나 민주당 후보에 대한 ‘투표’에 전술적 지위를 거창하게 부여하는 것이 맞는가?
연대연합의 원칙
정선영씨는 레닌의 『공산주의에서의 “좌익”소아병』을 인용하면서 행진이 진보정당 지지를 표명하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현 국면에서 ‘투표’를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위해 이 문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레닌이 이야기한 것이 이념 없이 실용주의적으로 연대연합을 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레닌은 혁명은 결국 다수자혁명일 수밖에 없으며, 그를 위해서는 계급동맹이 필요함을 설파했던 것이지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 없이 무조건적으로 손을 잡으라고 주장한 적은 없다.
다함께는 ‘누구에게 투표할지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은 노동자들의 정서이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다.’라고 주장한다. 좌파에게 이처럼 위험한 주장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는 인민주의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주장이다. 과학적 분석과 그에 따른 정세판단, 대중운동의 이념적 강화라는 원칙을 상실한 좌파가 어떻게 사회주의자로 자신을 칭할 수 있겠는가?
물론 대중들의 자발적 운동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와 평행하는 정치의 위기 속에서 대중의 자생성에 대한 무조건적인 찬양은 자본주의의 ‘최종적 위기’와 맞물려 자칫 잘못하면 대안세계가 아니라 야만으로 치닫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붕괴가 곧 대안세계로 나아갈 것이라고 교조주의적인 믿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면 의식적 활동가들은 그리고 좌파세력들은 ‘자생성에 굴하지 않는 의식성’을 반드시 견지해야 할 것이다. 정선영씨는 글 마지막에 “변화는 대중들의 정치적 경험으로써 창출되는 것이지 선전만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고 하면서,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을 건설하려면 추상적으로 “대중운동의 이념”만 선전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중들이 어떤 정치적 경험을 하느냐, 어떤 이념을 지향하는 운동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질 것이다.
행진이 이번 선거 국면에서 구체 실천을 행하지 못하고 무기력으로 일관해왔다는 혐의를 제기하기에 사족을 달아본다. 행진이 적극 참여해왔던 ‘진보대연합을 위한 원탁회의’등의 기획이 만약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진보정치 운동의 고전과 운동진영 분열의 상황을 타개하는 전환의 ‘계기’가 만들어졌다면 행진의 지방선거전술의 선택의 폭은 훨씬 넓어졌을 것이고, 대중들에게 자신있게 진보정당에 투표할 것을 주장할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랬다면 지금쯤 ‘투표’를 하냐마냐하는 ‘묵은’ 쟁점이 아닌, 우리가 당면한 공동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더욱더 발전적인 쟁점을 가지고 다함께 동지들과 논쟁을 벌였을텐데 그런 기회가 허락되지 않은 것이 굉장히 안타깝다.
앞서가는 이야기지만 이번 선거에서 (예정된) 진보진영의 총체적 패배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적어도 민주대연합으로 상징되는 우경화된 노선은 향후에도 민중운동 전반을 잠식해올 것이다. 2012년 대선시기까지 남한 민중운동의 대다수가 앓게 될 동요의 징후가 뚜렷히 드러난 지금, 기층에 혼란을 주며 복수의 진보정당이 각개부진하고 있는 현 상황과 남한 노동자운동이 역사적으로 벌여온 정치세력화 운동에 대한 진지한 반성을 촉구해야한다. 이번 선거를 경유하며 우리는, 전체 민중운동이 자유주의 세력과의 동맹에 홀려 실족사하지 않도록 민중운동 내 좌파들이 이를 막을 실력행사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행진이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향후 진행될 진보진영 상설연대체 논의, 그리고 진보정당 운동의 미래에 대한 논의에 함께 참여할 것이다.
최근 이명박 지지율이 57%를 넘어섰다고 한다. 이명박은 입으로는 親서민 운운하지만 실제로 이명박 정부가 펼쳐내는 정책을 보면 노동자민중들을 탄압하는 정책 일색이다. 그야말로 親서민 이미지만 뒤집어 쓴 채 많은 국민들에게 사기를 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50%를 넘는 국민들은 이런 대통령에게 ‘잘하고 있다’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상황인가? 이런 지배계급에게 맞서기 위한 이념과 전략적 혁신, 노동자운동의 재건 없이는 지방선거에서 모든 야당들이 힘을 합쳐 후보를 단일화한들, 그래서 당선이 된다 한들 지금의 계급역관계를 역전시킬 수 없다.
이제는 이념없는 실용주의와 이별해야 할 때이다. 눈앞의 성과를 쫓아서는 실용적 이익 하나 얻을 수 없는 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보(一步) 전진하려다 십보(十步) 후퇴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이 글에 대한 재반론은 “학생행진의 반론에 대한 재반론”을 참조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