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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노동자 투쟁에서 배우기

긴축정책에 맞선 투쟁이 유럽을 뒤흔들고 있다.

긴축정책에 맞선 투쟁의 중심 세력은 노동자들이다. 그와 동시에, 살인적인 등록금 인상과 청년실업, 민주적 권리 탄압에 환멸을 느끼는 대학생과 중고등학생들도 투쟁의 주요 세력이다. 청년들의 투쟁은 노동자 투쟁의 방아쇠 구실을 하거나 강력한 지지 세력이 되면서 전체 운동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이 투쟁은 한두 번의 집회나 파업이 아니라 반복해서 지속되는 양상이며, 다른 나라 노동자들을 고무하면서 꼬리를 물고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바야흐로, 2008년 세계경제 위기 후 노동계급에 그 대가를 뒤집어씌우려는 정부들에 맞선 계급투쟁이 폭발하면서 새로운 희망이 커지고 있다.

세계경제가 대규모 경기부양에도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유럽 재정위기가 번지고 있고, 최근 들어 미국, 중국, 일본 등 주요국의 경기도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각국 정부는 세계경제 전망이 불투명할수록 노동자 공격에 집착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이 투쟁이 더 강력해진다면 각국 정부와 기업주들의 공격을 좌절시키고, 고통전가가 아닌 새로운 대안을 쟁취할 수 있다.

좌파

투쟁의 전진을 위해서는 단결을 강화하고, 제대로 된 대안을 내세워 운동의 결집점을 제시하고, 승리를 위한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내놓으려는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그리스 반자본주의 좌파는 이주노동자와 다른 노동자를 이간질하려는 시도에 맞섰다.

지난봄 그리스 파업에서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 등 급진좌파가 국면마다 운동의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해 기여한 것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은 정부의 파업 분쇄를 노린 온갖 정치적 공격에 일관되게 맞섰다. 정부가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보너스를 공격하고 상대적 고임금을 문제 삼으며 다른 부문 노동자들한테서 고립시키려 하자 이를 방어하며 단결을 호소했다. 정부가 인종차별적 공격으로 또다시 투쟁 대열을 분열시키려 했을 때도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들은 오히려 이주노동자들을 조직해서 투쟁 대열에 동참하면서 효과적으로 저항했다.

투쟁의 요구와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도 매우 중요했다. 그리스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빌미로 긴축을 강요하자, 정면 대결을 회피하려던 개혁주의 정치세력들과 달리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들은 정부가 부채상환을 중단하고 그 돈을 노동자의 삶을 지원하는 데 충당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는 경제 위기의 책임이 기업주들에게 있다는 점을 폭로하는 동시에 부자들 살리기 방식의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의 정당성을 표현함으로써 운동의 결집점을 제시하려는 노력이었다. 쌍용차 파업 당시의 공기업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처럼 제대로 된 정치적 대안이 없다면 운동의 전진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사회주의노동자당은 파업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그리스 공산당 등이 투쟁을 그만 중단하고 국민투표를 요구하자는 주장을 내놨을 때에도 이에 맞서 중단 없이 투쟁을 지속하자고 선동했다. 아쉽게도 규모나 영향력이 충분히 크지 못해 전체 운동의 방향을 바꾸진 못했지만 말이다.

투쟁이 지속되고 규모가 확대돼서 판돈이 커질수록 좌파의 정치적 개입과 기여가 전체 투쟁의 향방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노조 지도부의 투쟁 회피적 방침이나 대중투쟁의 힘을 온전히 믿기보다는 제도정치 무대의 압력 요소쯤으로 여기는 개혁주의 정당들의 주도력에 도전하며 단결을 유지하고 투쟁을 발전시키려는 좌파정치세력의 구실이 중요해질 것이다.

양상

이런 투쟁은 단지 유럽 노동자들 얘기만은 아닐 것이다. 국가마다 경제 위기 양상이 조금씩 다르듯이, 한국에서 지금 유럽과 비슷한 긴축정책이 추진되거나 프랑스나 그리스처럼 노동자들의 대규모 투쟁이 벌어지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지난 2년여간 경제 위기의 대가를 떠넘기는 공격으로 노동자들의 불만이 켜켜이 쌓이기는 긴축정책 정도가 덜 했던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따른 불만과 반감을 보여 준다(얼마 전 한나라당 의원 모임 ‘민본21’ 여론조사에서조차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이 61.6퍼센트나 됐다).

게다가 만약 앞으로 경기가 악화된다면 더한층의 노동자 공격과 이에 맞선 투쟁이 분출할 가능성도 커질 수 있다.

유럽 노동자 투쟁은 정규직 대기업(대공장) 노동자들도 얼마든지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줬다.

그동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보수성 때문에 더는 투쟁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며 많은 활동가들이 낙담했다. 그러나 한국 정규직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나쁠 것 없는 노동조건에 좋은 복지 혜택을 누리는 유럽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은 그런 의구심을 일거에 날려 버렸다.

서유럽 노동자들은 노동조건이 좋아 안 싸운다는 주장(박노자)도 있었지만 바로 그 ‘좋은’ 노동조건이 공격받을 때 오히려 대규모 투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줬다.

유럽 투쟁에서 보듯이 투쟁의 발전은 여러 부문의 투쟁이 쌓이는 과정에서 증대된다. 그 돌파구는 학생부문의 투쟁일 수도 특정 산업부문의 투쟁일 수도 있다.

지금의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 승리한다면 이것은 의미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활동가들은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집중해야 한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 노동운동이 보여 온 잠재력을 다시 발휘하고 전진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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