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저항과 노동자·학생 연대에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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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학생들은 프랑스 학생들과 달리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게 지난 십여 년 동안 영국 사회의 중론이었다. 이 주장은 지난해 11월과 12월 학생 수만 명이 등록금 인상과 교육수당 삭감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그중 수천 명이 보수당 당사 유리창을 부수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영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 학생 반란을 ‘진정한 사회운동의 출현’이라 불렀다.
유럽 학생운동의 전진은 눈부시다. 그리스,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지에서 학생들은 등록금인상과 교육예산 삭감 등에 반대해 학교를 점거하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청년실업은 늘고(스페인의 경우 40퍼센트) 좋은 일자리는 하늘에 별 따기인데(소위 1천 유로 세대) 집값은 비싸고 복지는 축소되는데다 교육비까지 늘어가는 현실(영국은 등록금 3배 인상)에서 청년과 학생 들의 분노가 투쟁으로 폭발하는 것이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한 유럽 지배자들의 긴축정책 강행이 투쟁의 촉매제 구실을 했다.
게다가 이 투쟁은 사회 전체의 지지를 받으며 자신감을 얻고 있다. 영국의 등록금 인상 반대 시위는 70퍼센트 이상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런 폭발적인 학생·청년 들의 투쟁이 노동자 투쟁과 만나 자본주의 생산과 이윤에 직접 타격을 미칠 때 투쟁은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유럽 전역을 휩쓸고 있는 총파업 물결에서 보듯 노동자 투쟁 역시 성장하고 있다. 최근에도 지난해 11월 24일 포르투갈 역사상 최대의 총파업이 벌어졌고, 12월 15일 그리스 총파업의 규모와 힘도 대단했다.
하지만 그 잠재력이 아직 충분히 발현되고 있지는 않다. 노동조합 상층 지도부의 통제력이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간 ‘사회적 합의주의’에 길들여져 온 유럽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긴축정책에 맞선 저항을 건설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이 투쟁이 기존 제체에 실질적 타격을 가하지 않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동안 유럽 각국에서 벌어진 대부분의 총파업이 하루 파업에 그쳤던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현장 노동자들의 활력과 전투성이 중요하다. 프랑스와 그리스에서는 현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조직하고 연대를 건설하는 데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장 노동자들의 네트워크가 강화되고 있다.
분노하라
유럽을 휩쓸고 있는 투쟁에서 주목할 점은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서로의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하며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1월 프랑스 정유공장 노동자들이 항만을 봉쇄했을 때, 10~20대 프랑스 청년·학생 들이 항만으로 통하는 도로를 봉쇄하며 연금개악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영국 학생 시위는 대학직원노동조합 UCU의 지지와 연대를 통해 더욱 확대될 수 있었다.
그래서 특정한 억압을 받는 집단들의 파편화된 저항을 일면적으로 찬양하는 ‘정체성의 정치’ 같은 주장들은 오늘날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노동자·학생 연대’나 ‘계급투쟁’ 같은 말이 훨씬 더 공감을 얻고 있다.
이 때문에 연금법이 개악됐다고 해서 혹은 등록금 인상법안이 통과됐다고 해서 투쟁이 쉽게 사그라지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나하나의 투쟁이 사회 전체를 재구성하는 거대한 계급전쟁의 일부라는 것을 점점 더 많은 유럽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연금법 개악안의 의회 통과 이후에도 ‘돈과 시장의 무례함’에 《분노하라》라는 책이 60만 부나 팔리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사회적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음을 잘 보여 줬다. 영국 학생들도 등록금 인상법안이 통과됐지만 시위를 계속 조직하고 있다.
분노가 투쟁으로 조직되고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영국에서 수천 명의 학생들이 보수당사를 공격할 때 좌파 활동가들은 분노한 학생들의 선두에 섰다. 또한 좌파들이 주도하는 교육활동가네트워크(EAN)를 통해 노동자·학생 연대를 강화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 좌파들은 연금개악 반대 투쟁에서 도로 봉쇄와 점거 농성 등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을 강화하고 지역과 작업장 사이의 연대를 건설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했다.
유럽의 학생과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는 한국의 학생과 노동자가 직면한 문제와 다르지 않다. 따라서 홍익대학교 노동자 투쟁 등에서 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등록금 인하 등 학생들의 투쟁에 노동자들이 연대를 건설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동자와 학생 들이 연대를 통해 서로 투쟁의 활력을 제공하고 고무할 때 한국에서도 진정한 사회운동이 건설될 수 있다.